최근 한국영화 10편을 봤다. 대부분 한국서 히트했거나 해외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들이다.
한국에서 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복수극 ‘일대일’은 한국의 구정권과 현 사회비판을 앞에 내세운 감독 자신의 신세한탄이자 화풀이 같은 영화다. 김 감독 특유의 폭력과 잔인이 판을 치는 설교조의 타작이다.
이선균이 나오는 범죄스릴러 ‘끝까지 간다’는 빈자의 양말처럼 플롯에 구멍이 많아 그 내용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정우가 주연하는 ‘군도’는 철종시대 천민들의 반란을 그린 한국판 ‘로빈 후드’인데 코미디와 사극과 웨스턴과 쿵후 영화를 짬뽕한 국적불명의 튀기 같은 영화. 음악마저 스파게티 웨스턴식인 넌센스다.
‘스톤’은 바둑과 폭력을 접목한 이색적인 내용으로 바둑과 인생을 비교하면서 인간적 얘기를 다뤘으나 잔인한 폭력이 이런 뜻을 저해한다. 볼만은 하다.
‘야간비행’은 지난해에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출품한 ‘불량소년’ 스타일의 소품. 청소년 문제와 동성애를 다뤘으나 깊이가 부족하고 진행속도가 처지는데 이것 역시 폭력적이다.
설경구가 나온 ‘소원’은 아동 성폭행을 당한 한 가족의 비극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소박하고 곱게 그렸다.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규모가 작아 마치 TV 영화를 보는 것 같지만 잘 만들었다.
청소년 성폭행 문제를 다룬 ‘한공주’는 단아한 소품인데 후반 들어 진행이 축 처진다. 역시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주제 외에 주변 얘기를 너무 많이 늘어놓아 당초 하고자 한 얘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있다. 그러나 볼만한 영화다.
배두나가 주연한 폭력에 시달리는 불우아동과 동성애 문제를 다룬 ‘도희야’는 볼만한 소품이나 강력한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어 보면서 지치겠다. 이 것 역시 폭력이 자심하다. 다소 맹한 모습과 연기로 알려진 배두나가 과거를 지닌 여자의 연기를 안으로 가라 앉혀 강한 저류로 몰아가지 못해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이 제작을 맡고 정주리가 감독했는데 9월4일부터 열리는 올 토론토 국제영화제 ‘도시기행’(올해는 서울)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에서 1,600만명이 관람하면서 거국적 뉴스가 된 ‘명량’은 그저 보고 즐길 만한 액션 사극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우국충정의 영화로 동양대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졸작’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주 평범한 오락영화다.
우선 이순신 역의 최민식이 전연 카리스마가 없고 성격개발도 전무하다. 그리고 영화 전반부는 말이 많은 드라마요 후반부는 액션영화로 양분돼 마치 2개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액션신은 볼만하나 너무 길어 부담이 가고 컴퓨터 특수효과도 엉성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 아키라 쿠로사와의 ‘란’과 같은 드라마와 액션의 절묘한 조화와 뚜렷한 인물과 성격묘사를 비롯해 장엄과 우아미를 고루 갖춘 사무라이 사극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량’이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관람객수를 기록하면서 국가를 들었다 놓을 듯한 사건이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현 한국민들의 반일감정과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진정한 지도자인 이순신과는 다른 현 한국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한 반동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싹쓸이 작전도 주효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여기에 ‘너도 봤으니 나도 봐야지’ 하는 무리의식도 한몫 했을 것이다. 좌우지간 나로서는 이 영화의 흥행대박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내가 본 10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봉준호가 제작하고 심성보가 감독한 생존문제를 강인하고 강렬하게 그린 실존주의적 영화 ‘해무’다(사진.) 물고기 대신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재중 동포를 싣고 귀항하는 트롤선 어부들과 밀입국자들과의 관계를 그린 사납고 거친 스릴러로 현실성이 강하다. 인간의 수성과 함께 휴머니즘을 충격적이면서도 따스하게 그렸다. 연기들도 좋다. ‘해무’는 올 토론토 국제영화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문제는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 이런 폭력은 한국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이중성을 지녔다. 한국영화는 세계적으로 사납고 거칠며 폭력적이요 비타협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많은 경우 이런 특징을 살린다고 폭력을 남용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긴 상영시간. ‘벤-허’도 길지만 그것은 충분한 내용 서술을 위한 시간인 반면 한국영화들은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질적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지만 이웃 일본과 달리 아직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이번 오스카상 후보로 ‘해무’를 밀어볼 만한데 폭력이 큰 핸디캡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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