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얼굴들이 있었다. 할리웃 황금기의 스타들은 스크린을 광채로 가득 채우는 마력이 있었다. 이 얼굴들 중의 하나였던 로렌 바콜이 12일 고향인 뉴욕에서 89세로 사망했다. 참으로 멋진 클래식 스타일을 지닌 스타였었다.
바콜하면 떨쳐 버릴 수 없는 이름이 생전 ‘보기’라 불린 터프가이 험프리 보가트다.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진 얘기는 영화 속의 영화나 다름없다. 둘은 헤밍웨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워드 혹스가 감독한 전시 액션 드라마 ‘투 해브 앤드 해브 낫’(1944ㆍ사진)에서 공연하며 만났다.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바콜은 19세였고 이미 수퍼스타였던 보기는 44세였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바콜이 보기를 유혹하면서 던지는 대사다. 바콜이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기를 내려다보면서 안개가 자욱한 음성으로 이렇게 은근짜를 놓는다. “당신 휘파람불 줄 알지요. 그저 두 입술을 함께 모아 불면 돼요.” 바콜의 얼굴이나 자태가 도저히 19세짜리의 그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성숙하고 자극적이다.
아마 보기도 이 장면 때문에 바콜에게 깊이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때 세 번째 부인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보기와 바콜은 밀회를 하면서 사랑을 불태우다가 이듬해 결혼했다. 보기는 너무 행복해 결혼케익을 자르면서 울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할리웃 커플의 탄생이다. 또 다른 유명한 할리웃 커플로는 게이블과 롬바드 그리고 트레이시와 헵번이 있지만 보기와 바콜의 농도 짙은 화학작용을 따르진 못한다. 보기와 바콜의 합성에 비하면 브란젤리나(브래드 핏과 안젤리나 졸리)의 그것은 아이들 소꿉장난이다.
바콜은 전형적인 미녀는 아니었다. 광대뼈가 뚜렷한 개성이 강한 얼굴인데 시선이 자못 상대를 희떱게 보듯이 오만하다. 이 시선과 함께 바콜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것이 그의 천근만근 무겁고 복날 땀에 절어 피곤에 지친 듯한 허스키한 음성이다. 사이렌의 치명적 흡인력을 지닌 성감대를 자극하는 음성이다.
19세에 큰 어른 보기에 당당히 맞섰던 바콜은 터프가이에 걸맞은 터프걸이었다. 카리스마와 우아함을 겸비했던 바콜은 지적이요 독립적이며 섹시한 여자로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었다. 보기와 바콜은 첫 공연작 이후 모두 1940년대에 만든 ‘빅 슬리프’와 ‘다크 패시지’ 그리고 ‘키 라르고’에 함께 나왔다.
둘은 골초였던 보기가 1957년 57세로 후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바콜은 그 후 프랭크 시내트라와 잠시 약혼을 했다가 파혼하고 배우 제이슨 로바즈와 8년간의 기복이 심한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다.
나는 어렸을 때 한국에서 바콜의 영화들을 여러 편 봤는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록 허드슨과 공연한 끈끈한 드라마 ‘리튼 온 더 윈드’와 바콜이 애정의 표시로 애인 그레고리 펙의 귀를 잘근잘근 씹는 로맨틱 코미디 ‘디자이닝 우먼’(바콜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몬로와 베티 그레이블과 공연한 노래가 있는 로맨틱 코미디 ‘하우 투 매리 어 밀리어네어’도 즐겁다.
바콜은 보기 사망 후 배우로서의 생애도 다소 빛을 잃기 시작한다. 폴 뉴만과 나온 ‘하퍼’와 존 웨인의 유작 ‘슈티스트’ 그리고 앙상블 캐스트의 ‘머더 온 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등은 모두 조연급 역. 그러나 뒤늦게 ‘미러 해즈 투 페이시즈’로 골든 글로브 조연상을 탔고 오스카상 후보에도 올랐다. 2009년 오스카 명예상을 받았다.
17세 때부터 모델을 하면서 브로드웨이 무대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바콜은 나이를 먹어 무대에 복귀해 ‘어플러즈’와 ‘우먼 오브 더 이여’(트레이시와 헵번이 나온 동명영화가 원전)로 토니상을 탔다. 60여년의 연기생활 간 60여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사망할 때도 범죄영화에 출연하기로 돼 있었다.
바콜은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배우였지만 보기의 카리스마가 원체 강해 그의 후광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바콜도 “나는 결코 그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바콜은 연기를 사랑한 스타였지만 자기를 “베이비”라 부르며 사랑하는 보기의 뜻에 따라 가정을 먼저 여겼다. 그리고 바콜은 스타덤이라는 것을 생애라기보다 우연이라고 생각한 건전한 생각을 지녔던 사람이었다.
보기와 바콜은 정치적으로도 소신이 뚜렷했던 커플로 전후 미국에 매카시 광풍이 불던 때 워싱턴 D.C.로 날아가 의회에 매카시즘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배우와 감독 사이에 서로를 빨갱이라고 고발하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용감한 행위였다.
‘투 해브 앤드 해브 낫’의 또 다른 은근히 선정적인 장면은 보기와 바콜의 첫 키스신. 바콜이 보기의 무릎에 앉아 보기에게 키스를 하자 보기가 “무엇 때문에 했지”하고 묻는다. 바콜이 “그걸 좋아할지 궁금해서 했어요”라고 답하자 보기가 “결정은 뭐야”라고 묻는다. 이에 바콜이 “아직 몰라요”라더니 다시 보기에게 정열적으로 키스를 하면서 “당신이 도와줄 땐 더 낫지요”라고 한 마디 한다. 이제 보기와 바콜은 하늘에서 이런 사랑의 희롱을 하면서 여생을 즐기게 됐다.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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