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넘어 선험적이요 지적으로 도전적인 예술 매체임을 작품에서 추구해온 프랑스의 명장 알랭 르네(사진)가 3월1일 파리에서 91세로 사망했다. 그가 숨지자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의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70년에 가까운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를 통해 공상과학영화, 기록영화, 코미디, 기족드라마, 뮤지컬 및 도저히 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든 독특한 영화 등 다양한 부류의 영화를 만들었던 르네는 죽기 직전까지 병상에서도 다음 영화의 편집 초안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뉴웨이브의 대표적 인물로 모더니스트였던 르네의 많은 영화들은 너무 지적이요 초현실적인 데다가 실험적이어서 대중적이진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터득코자 하는 사람들에겐 선지자 같은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수수께끼를 푸는 지적 재미마저 있다.
르네도 이 점을 잘 안다는 듯이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보지는 않았지만 수백만명이 본 ‘조스’와 같은 영화에 물론 관심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집에서 TV 보기를 원치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우아한 트래킹 샷과 생략적인 편집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왕래가 잦은 르네의 큰 주제는 인간은 기억이라는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로 르네하면 대뜸 이 두 영화가 떠오르게 되는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ㆍ1959)과 ‘작년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ㆍ1961)는 모두 기억에 관한 것들이다.
르네의 첫 극영화인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본인 건축가와 프랑스인 여배우(에마뉘엘 리바)의 핵의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의 짧은 만남을 통해 사랑의 망각성과 기억의 아픔을 이 도시의 고통과 핵 투하 불과 14년 만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상실과 접목시킨 러브스토리이자 반전영화다.
이름도 없는 국적이 서로 다른 두 남녀의 대사와 포옹과 클로스업 되는 두 얼굴을 통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명상이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에서 서술되는데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게리트 뒤라스가 쓴 각본이 육감적이요 상징적인 시와도 같다. 리바(87)는 지난해에 ‘아무르’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영화도 그 진의를 깊이 깨달으려면 여러 번 봐야 되겠지만 ‘작년 마리앙바드에서’는 완전히 비논리적이요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기억의 영화여서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은 작품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그 때 마음과 두뇌가 당한 혼란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봤지만 매번 어려운 수학문제 풀듯이 끙끙 앓는다..
처음 공포영화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오르간 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풍의 호텔 내부의 천장과 복도와 계단을 트래킹 샷으로 천천히 포착한다. 이어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처럼 이름도 없는 남자의 “다시 한 번 나는 걷는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남자의 반복되는 과거 회상과 그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역시 이름 없는 여인(델핀 세릭)의 이에 대한 부인이 계속되면서 장소를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가 분주히 교차된다. 그런데 과연 둘은 남자의 말대로 작년에 마리앙바드에서 만났을까.
영화가 논리와 질서정연한 서술방식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미로를 헤매고 다녀 오죽하면 당대 굴지의 비평가였던 뉴요커의 폴린 케이엘이 “목표 없는 대재난”이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뉴욕타임스는 “1960년대 가장 신비한 영화 중 하나”라고 칭찬했고 재클린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멋 부린 의문부호와도 같은 영화로 지식인들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히로시마 내 사랑’과 닮은 데가 있다
르네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30분짜리 기록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ㆍ1955)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찍은 영화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시적 수필이라고 불린다.
큰 키에 멋쟁이 신사로 수줍음이 많았던 르네는 몸이 약해 어릴 때 집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아들이 영화에 사로잡힌 것을 안 부모가 8mm 카메라를 사 준 것이 그가 영화인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생애 프랑스의 오스카상인 세자르 상을 두 번 탔고 칸영화제서 생애업적상을 받았는데 자기 영화에 부인이자 배우인 사빈 아제마(1998년 결혼)와 함께 베테런 배우인 앙드레 뒤솔리에 등 단골배우들을 자주 기용했다. 르네의 첫 부인은 작가이자 프랑스 문화상을 지낸 앙드레 말로의 딸인 플로랑스였으나 이혼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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