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2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거행된다. 코미디언 엘렌 드제네레스가 사회를 보는 시상식은 ABC-TV가 생중계 하는데 ABC 측은 전미서 4,000만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측했다.
오스카상의 백미인 작품상 부문에는 총 9개 작품이 후보에 올랐는데 이 중 6편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작품상을 놓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칸 허슬’과 ‘그래비티’ 및 ‘12년 노예’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시상식이 가까워 오면서 코미디인 ‘아메리칸 허슬’이 기를 잃고 지금 나머지 2편이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내가 아카데미 회원이라면 ‘그래비티’에게 표를 던지겠으나 아카데미 사상 공상과학 영화가 작품상을 탄 적이 없다. 이보다는 미국의 치욕적인 역사인 노예제도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12년 노예’가 간발의 차이로 영광을 누릴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뒤집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작품상 대신 감독상은 미 감독노조상을 비롯해 각 단체가 주는 상을 독식하다시피 한 ‘그래비티’의 멕시칸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받을 것이다. ‘그래비티’는 촬영상과 음향상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카우보이즈 클럽’에서 에이즈 환자로 멕시코에서 사제 약을 텍사스로 밀반입해 환자들에게 판 실제인물 론 우드러프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가 탄다. 매코너헤이는 역을 위해 체중을 47파운드나 뺐다. 아카데미는 질병을 앓거나 정신상태가 이상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기를 좋아하는데 ‘필라델피아’에서 역시 에이즈 환자로 나온 탐 행스가 주연상을 탄 것이 그 좋은 예다.
여우주연상은 우디 알렌의 ‘푸른 재스민’에서 월가의 유한부인에서 알거지가 된 뒤 정신상태가 혼란해진 미망인으로 나온 케이트 블랜쳇이 탄다. 알렌이 최근 양녀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려 그의 영화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었으나 설은 설로 끝날 것이다.
남자조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에서 매코너헤이의 에이즈 약 밀매 파트너로 여성으로 성전환한 에이즈 환자로 나온 재렛 레토가 탄다. 그러니까 이번 오스카 남자주조연상은 모두 에이즈 환자가 타는 셈이다.
여자조연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칸 허슬’에서 날사기꾼의 불같은 성질을 한 젊은 아내로 나온 제니퍼 로렌스가 탈 것이 유력했었다. 그런데 최근 ‘12년의 노예’에서 잔혹한 농장주인의 노예이자 섹스놀이개로 스크린에 데뷔한 루피타 니옹고가 미배우조노가 주는 상을 타면서 로렌스가 다소 밀리고 있다.
더구나 로렌스는 지난해에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으로 주연상을 타 아카데미가 이제 나이 23세 밖에 안 된 로렌스에게 2년 연속으로 상을 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이 부문도 작품상부문처럼 예측이 뒤바뀔 수도 있다.
각본상은 1970년대 말 뉴저지주를 무대로 한 FBI의 부패 정치인 함정수사인 앱스캠 작전에서 FBI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기꾼들의 실화를 그린 ‘아메리칸 허슬’이 탈 확률이 높다. 이 영화와 함께 각본상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이 스파이크 존즈가 쓰고 감독한 ‘허’다.
‘허’는 가까운 미래 LA의 젊은 연애편지 대필 작가(와킨 피닉스)와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인(스칼렛 조핸슨 음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로 나 같으면 이 영화에 표를 던지겠다.
만화영화상은 디즈니의 ‘프로즌’이 탄다. 흥행서 대박을 터뜨린 이 영화는 이밖에도 주제가인 ‘렛 잇 고’가 상을 탈 것이다.
외국어 영화상은 이탈리아의 파올로 소렌티노가 감독한 ‘그레이트 뷰티’가 상을 탈 것이 거의 분명하다. 65세난 작가의 눈을 통해 본 로마의 호화 방탕한 밤의 삶을 조명한 영화로 내용보다 영상미가 화사하다.
단편기록 영화상을 탈 가능성이 높은 영국의 ‘6호 아파트의 숙녀-내 삶을 구원한 음악’의 주인공인 체코 태생의 유대인 여류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좀머(사진)가 23일 110세로 별세했다.
젊었을 때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음악 때문에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헤르츠-좀머의 삶을 아름답게 담은 감동적인 영화다. 헤르츠-좀머는 영화에서 “음악이 내 삶을 지탱해 준 양식”이라면서 “증오는 증오를 나을 뿐이어서 나는 결코 독일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헬츠-좀머가 자신의 삶을 그린 작품이 상을 타는 것을 채 못 보고 영면했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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