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26일 77세로 로마에서 타계한 이탈리아의 명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1987)로 오스카상을 탔지만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악명(?)을 떨치게 한 영화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1972)다. 그가 31세에 만든 이 영화는 말론 브랜도가 나이 어린 파리지엔 마리아 슈나이더를 뒤로부터 겁탈하면서 버터를 성적 도구로 써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요즘처럼 #미 투 운동이 활발할 때 이 영화가 개봉됐다면 여성들의 보이콧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자살한 충격에 빠져있는 파리의 미국인 폴(브랜도)과 잔느(슈나이더)는 같은 아파트를 보러 왔다 만나면서 서로 상대의 개인 정보나 이름도 알기를 거부한 채 격렬한 섹스를 치른다. 이 섹스 장면과 함께 폴이 잔느를 겁탈하는 장면은 성적 폭력이나 마찬가지로 애정과 감정이 일체 배제된 동물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본능적 욕망에 매어달리기 마련으로 두 사람 특히 폴의 성행위는 고통과 무료와 권태 그리고 소외감과 고독에 시달리는 이방인의 본능적 행동일 뿐이다. 쫓기는 범죄자가 섹스에서 잠시 위로를 찾는다는 것과도 닮았다.
내가 이 영화의 섹스 신을 보면서 ‘젊은이의 양지’에서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키스신을 보면서 가졌던 아슬아슬한 흥분을 느끼지 못한 것도 폴과 잔느의 성행위가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찬반이 극도로 갈린 반응을 받았다. 저명한 영화 비평가 폴린 케이엘은 영화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도 같은 혁명적인 것이라고 찬양한 반면 일부 비평가들은 “예술로 위장한 포르노”라고 비난했다. 영화는 미국에서는 X등급으로 개봉됐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법원으로부터 상영금지 및 필름 몰수 처분을 받았고 베르토루치는 5년간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군인정치하의 한국에서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영화는 뒤 늦게 또 한 번 논란거리가 됐는데 그 것은 슈나이더가 겁탈 장면은 각본에 없었다면서 그 장면을 찍으면서 치욕감을 느꼈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슈나이더는 19세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베르톨루치는 “겁탈 장면은 각본에 있었지만 버터의 사용은 즉흥적이었던 것”이라면서 “이를 슈나이더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은 그녀로부터 사실감 있는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그런 사실에 대해 죄의식은 느끼나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덧 붙였다.
지난 2012년 11월 로마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만난(사진) 베르톨루치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관해 여러 가지로 언급했다. 그는 “판사가 영화 필름 몰수조치를 취했을 때 매우 놀랐었다”면서 “나는 이 영화를 절대적으로 순수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베르톨루치는 당시에도 건강이 안 좋아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는데 그의 상표와도 같은 갈색 중절모를 쓴 채 미소를 지으면서 인자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현자처럼 느껴졌었다.
그는 이어 자기는 그 영화를 절망적인 파리의 미국인이 무언가를 절망적으로 찾는 얘기로 생각했다면서 “폴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어서 사회규범에 매어달리지 않는다면 여자와 새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폴은 잔느에게 둘이 서로 상대의 이름을 알지 않을 것과 함께 둘의 신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아파트의 창밖으로 던져버리자고 제의한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브랜도를 극구 찬양했다. 그는 브랜도를 ‘마법의 산’에 비유하면서 “내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 중에 브랜도처럼 강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로 인해 나는 그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꼈었다”고 회상했다. 베르톨루치는 이어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브랜도와 자기는 매우 즐겼었다고 말했다. 베르톨루치는 브랜도를 파리에서 만나 매일 영화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브랜도는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었다고 한다. 그는 이어 브랜도와 대화를 하면서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브랜도로부터 “진정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폴 역은 당초 베르톨루치의 걸작 ‘준봉자’(The Conformist^1970)에 나온 프랑스배우 장-루이 트랭티냥에게 제의됐지만 그가 이를 거절했다.
베르톨루치는 끝으로 “중국에서 ‘마지막 황제’를 찍을 때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의 조건’을 작품의 무대인 샹하이에서 찍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중국 당국의 거부로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베르톨루치의 유작은 로마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나와 너’(Me and You)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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