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신(왼쪽)과 오르탕스가 밭에 씨를 뿌리고 있다. |
농촌 돌보는 여인들 강인한 모습
거룩하고 아름답고 심오하게 담다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이 현실로 살아난 것처럼 거룩하고 엄숙하며 아름답고 심오한 프랑스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촬영과 음악과 연출이 모두 완벽한 농촌영화다. 농촌영화요 전쟁영화이자 여성영화이며 전장에 나간 남자들 대신에 농촌을 돌보는 여인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린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극기와 인내의 영화이다.
고전영화의 분위기를 지닌 영화는 얘기를 직선적이요 단순하게 이끌어가지만 안으로 감정이 가득히 고인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절절히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은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분출이 된다. 철저하게 절제된 작품인데 와이드 스크린에 펼쳐지는 화면 구성이 완벽한 농촌풍경이 한 폭의 살아 숨 쉬는 그림이다.
1차 대전 중인 1915년부터 종전에 이르기 까지 몇 년에 걸친 얘기. 파리디에 농가의 남자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 이 집의 미망인 주부인 중년의 오르탕스(나탈리 바이)가 농사를 관리한다.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낸 오르탕스와 인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은 똘똘 뭉쳐 산다.
오르탕스를 돕는 것이 남편을 전선에 보낸 딸 솔랑지(로라 스멧).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손이 모자라 오르탕스는 젊고 아름답고 원기 왕성한 프랑신(이리스 브리)을 임시직 일꾼으로 고용한다.
프랑신은 고아 출신으로 조용하지만 속은 알찬 여자로 밝고 맑고 근면하고 일을 잘 해(그리고 노래도 잘 부른다) 오르탕스는 그를 풀타임 일꾼으로 고용하고 거의 양녀처럼 여긴다. 영화는 이들 여자들이 밭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고 타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흙냄새가 날 정도로 사실적이다.
어느 날 오르탕스의 잘 생긴 둘째 아들 조르지(시릴 데쿠르)가 휴가를 맞아 귀가해 프랑신을 보고 마음을 주는데 프랑신도 마찬가지. 그런데 오르탕스는 자기 아들이 천민 고아 프랑신을 좋아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다시 전장에 나간 조르지와 프랑신은 편지를 나누면서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오르탕스는 프랑신을 해고, 프랑신은 짐을 싸들고 남편이 전장에 나간 뒤 혼자 어린 딸을 키우는 여자의 집에 일꾼으로 들어간다. 전쟁과 온갖 간난을 견디고 자유를 쟁취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라스트 신이 이 강인한 여인을 치하하고 위로하고 있다.
신인인 프랑신 역의 브리의 민감한 연기가 돋보인다. 그러나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느끼게 하는 것은 베테런 바이의 연기다.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든든하게 보여준다. 거의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연기다.
또 하나 훌륭한 것은 베테런 영화음악 작곡가 미셸 르그랑(‘쉘부르의 우산’)의 음악. 곱고 우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농촌 풍경과 작품의 내용을 절묘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다. 감독(공동 각본 겸)은 사비에르 보봐로 옛날 스타일의 대가적인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Music Box.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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