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잔느 모로, 권태의 현신




공중전화 부스 안의 여인의 감은 눈을 클로스업 하던 카메라가 그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로 훑고 내려가면서 여인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사진) “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 날거에요. 쥘리앙.” 자기 정부에게 자기 남편을 어서 죽이라고 호소하는 이 간부가 콱 씹으면 다크 초콜릿 맛이 날 것 같은 잔느 모로다. 모로가 지난 달 31일 파리서 89세로 사망했다.
모로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수 중 하나였던 루이 말르가 24세에 감독으로 데뷔한 범죄 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 찬 트럼펫 소리가 자아내는 짙은 무드가 연무처럼 영화를 감싸고돈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때 광화문에 있던 아카데미극장에서 봤는데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모로가 투피스상의의 깃을 올린 채 밤새 비 내리는 샹젤리제거리를 쥘리앙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 살인마저 저지르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모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양끝이 내려앉은 농염한 윗입술과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리고 생존을 마다하는 것 같은 눈동자와 그늘진 얼굴을 했던 모로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인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피곤이 지닌 육감을 현시한 프렌치 쿨의 전형이었다.
모로는 자기 애인이 된 말르와 다음해 ‘연인들’(The Lovers)을 만들었는데 권태로운 유부녀와 젊은 애인의 정사를 다룬 영화에서 모로가 오르가즘을 묘사해 오하이오주의 판사로부터 외설딱지를 받기도 했다.
무대배우로 시작한 모로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것이 프랑솨 트뤼포의 ‘쥘르와 짐’(Jules et Jim^1962)이다.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인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그린 명화로 모로는 역시 자기 애인이 된 트뤼포의 복수스릴러 ‘흑의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1968)에도 나왔다.
모로의 미국영화로 잘 알려진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2차대전 액션영화 ‘기차’(The Train^1964)와 리 마빈과 공연한 ‘몬테 월쉬’(Monte Walsh^1970). ‘몬테 월쉬’에서 황금의 마음을 지닌 창녀로 나온 모로는 마빈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모로의 또 다른 유명애인으로는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있다. 모로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엑소시스트’를 감독한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모로의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한 나태와 피곤이 십분 발산된 것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La Notte^1961)이다. 모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아내로 나와 가정주부의 권태를 천착했다. 입천장이 쩍쩍 말라붙도록 노곤한 영화다.
‘생각하는 남자들의 팜므 파탈’이라 불린 무엇엔가 홀린 듯한 모습의 모로는 겁 없는 도도한 여자였는데 그를 타임지는 일찍이 이렇게 찬양했다. “할리웃에는 그 만큼의 깊이와 폭을 가진 여배우가 없다. 그리고 긴 고문처럼 달려드는 카메라의 시선을 그처럼 이겨낼 개성도 없으며 단순히 자태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낼 여자도 없다. 모로의 사랑의 장면은 그 누구의 것보다 강렬하고 그의 고통은 번뇌스러울 만치 신랄하다. 그야말로 무한한 복합성과 신념의 스타다.”
파리에서 태어난 모로는 장 아누이의 연극 ‘안티고네’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했다. 모로는 이런 결심을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뺨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는 몇 년 후 유명한 코메디 프랑세즈 연극반의 최연소 단원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연극과 범작 영화들에 나왔는데 말르가 모로를 이 영화에 기용한 것은 모로가 나온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고 나서였다.
모로의 또 다른 좋은 영화들로는 자크 데미의 ‘천사들의 만’(Bay of Angels^1963), 루이스 부누엘의 ‘하녀의 일기’(Diary of a Chambermaid^1964) 그리고 모두 오손 웰즈가 감독한 ‘심판’(The Trial^1962)과 ‘자정의 종소리’(Chimes at Midnight^1965) 및 ‘불멸의 이야기’(The Immortal Story^1968) 등이 있다. 모로는 1976년 자기가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자전적영화 ‘뤼미에르’(Lumiere)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또 다른 연출작으로는 ‘사춘기’(L‘Adolescente^1979)가 있다.
내가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9^11일 테러가 났다. 영화제측이 영화제 중단을 검토하자 영화제에 참석했던 모로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에너지를 죽이려한다고 해서 왜 우리가 살기를 멈춰야 합니까.” 나는 그때 모로의 이 말을 듣고 그의 고매한 인간 혼에 깊이 감동했었다. 아디외 잔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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