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도널드 덕


내가 미국에 살면서 기부를 한 적이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지난 1980년대 초에 기부한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아일랜드의 복구기금이다. 이민자로서 자유의 상징이요 이민사의 현장을 복원하는데 일조, 나와 내 가족을 받아준 이 나라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복구위원회측이 자유의 여신상 재단장에 참여한 내게 기부자 증서를 보내 왔다. ‘흥진 박의 개인적 헌납에 의해 자유의 여신상은 구원 받고, 복원 되고 또 보존돼 전 세계의 장래 세대가 자유의 상징의 불이 밝게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나는 이 증서를 액자에 넣어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 갔을 때 그 받침대에 적힌 ‘자유를 숨 쉬고자 갈구하는 너의 피곤하며 가난하며 복작대는 무리를 내게 다오. 집을 잃고 폭풍우에 시달린 이들을 내게 다오. 내가 황금의 문 옆에 나의 등불을 치켜 들 테니’라는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이 땅의 자유를 심호흡했었다.
두 번째는 얼마 전에 기부한 난민구호기금이다. 이민자들을 반갑게 맞아주던 자유의 여신상을 참수한(슈피겔지)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7개 국가에 대한 미 입국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ACLU(미 민권자유연맹)에 체크를 보냈다.
트럼프의 조상도 독일계이듯이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이 땅의 원주민은 미 기병대와 개척자들이 총과 위스키로 살육하고 무기력하게 만든 소위 ‘아메리칸 인디언들’인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다. 그들을 빼곤 트럼프도 당신도 나도 다 이민자들이다.
미국의 건국이념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트럼프이 반 이민 행정명령 탓에 난 얼마 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독일계 동료로부터 농담 성 경고를 받았다. 그는 “트럼프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도 모를 터인즉 너도 불원 북한 사람으로 찍혀 미국에서 쫓겨날지도 모르지”라며 겁을 주었다.
지금 한창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추파를 보면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트럼프와 푸틴은 다 불리(bully)들이다. 체신 머리 없이 트위터로 언론과 사법부를 적으로 취급하면서 비난하는 트럼프야 말로 미국시민들이 잘 못 뽑은 대통령이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트럼프에 표를 던진 사람들 중에서도 지금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내가 요즘 영화보다 더 재미있게 보는 것이 뉴스다. 아침에 눈만 뜨면 트럼프가 밤 새 또 무슨 망령된 짓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 CNN부터 튼다. 이런 트럼프의 연일 이어지는 해프닝 때문에 그는 코미디언들의 좋은 농담거리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NBC-TV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쇼에서 알렉 볼드윈이 트럼프로 나와 온갖 우스꽝스런 표정과 행동을 하면서 트럼프를 조롱, 나도 보면서 박장대소 한다. 또 멜리사 매카시는 기자회견 시 공격 일변도로 나오는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으로 나와 그를 가차 없이 희롱한다.
이로 인해 이 스케치 코미디는 방영 22년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트럼프는 트위터로 “NBC 뉴스는 나쁘지만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는 최악의 프로다. 우습지도 않고 출연진도 형편 없다. 진짜로 나쁜 TV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유머감각도 부족한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논란 속에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의심 그리고 시리아 내전과 난민에 관한 4편의 단편 오스카 후보작들이 지금 상영 중이다. 극영화 ‘내부의 적’(Enemies Within)은 프랑스 시민권 신청을 하는 프랑스 태생의 무슬림 알제리 계 남자와 그를 테러동조자로 취급하면서 인터뷰하는 심사관의 긴장된 대면을 그렸다. 나머지 ‘4.1마일’(4.1 Miles)과 ‘와타니:내 조국’(Watani:My Homeland) 그리고 ‘하얀 헬멧’(The White Helmets)은 중동난민과 시리아 내전에 관한 기록영화들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도널드 트럼프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도널드 덕을 여러 모로 닮았다. 둘이 생긴 것도 비슷하고 심술첨지인데다 허세와 허풍을 떨면서 남에게 군림하기를 즐기는 것이 닮았다. 또 도널드 덕은 성질이 급해 불끈하고 화를 잘 내는데다가(사진) 공격적인데 그 동안 TV로 목격한 트럼프의 성질이나 행동이 이 오리를 꽤 닮았다.
그리고 도널드 덕은 혀 짧은 소리를 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트럼프는 혀 짧은 소리는 아니지만 툭하면 황당무계한 소리를 해 이해난감인 것도 닮았다. 그런데 도널드 덕은 귀엽기나 하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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