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회 오스카 시상식은 ‘라 라 랜드’(La La Land-사진)의 잔치로 이어질 것 같다. 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노스탤지어 가득한 이 영화는 지난 24일 발표된 오스카상 각 부문 수상후보에서 작품 감독 남녀주연 등 무려 1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이는 베티 데이비스가 나온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과 ‘타이태닉’에 이어 오스카 사상 최다 부문에 후보에 오르는 기록이다. ‘라 라 랜드’는 지난 8일에 있은 골든 그로브 시상식에서도 총 7개 부문에서 상을 타 골든 글로브 사상 초유의 기록을 냈었는데 이로써 이 영화는 오는 시상식에서 오스카 작품상을 탈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아카데미는 지난 2년간 남녀연기상 부문에서 흑인배우를 한 명도 안 뽑아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이번에는 작품, 감독 및 연기 부문에서 여러 명의 흑인작품과 영화인들을 후보로 선정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문라이트’(Moonlight), ‘울타리‘(Fences)’, ‘히든 피겨즈’(Hidden Figures) 등과 감독상 후보에 오른 배리 젠킨스(문라이트) 그리고 주^조연상 후보에 오른 덴젤 워싱턴(울타리)과 바이올라 데이비스(울타리), 마헤르샬라 알리(문라이트)와 네이오미 해리스(문라이트)를 비롯해 루스 네가(러빙) 및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즈) 등이 그 예다. 흑인 배우들이 연기상 부문에서 6명이나 후보에 오른 것은 오스카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밖에도 기록영화 후보에 오른 5개의 영화들 중 4편이 흑인감독이 만든 것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신파극 ‘라이언’에 나온 데브 파텔은 인도태생이다. 이는 백인 일색에 대한 비판에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데 이와 함께 작년에는 흑인들이 만들고 나온 영화들뿐 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7,000여명으로 구성된 아카데미의 회원들은 아직도 대부분 나이 먹은 백인 남자들이다.
상기 작품들 외에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들로는 ‘도착’(Arrival),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 ‘라이언’(Lion) 및 ‘핵소 고지’(Hacksaw Ridge) 등 총 9편이다. ‘핵소 고지’를 감독한 멜 깁슨은 감독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이로써 유대인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적 발언과 개인적 행동으로 과거 10년간 할리웃의 금기인물이 되었던 깁슨은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됐다.
그리고 ‘핵소 고지’ 나온 앤드루 가필드는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다른 남우주연상 후보들은 케이시 애플렉(바닷가의 맨체스터), 라이언 가슬링(라 라 랜드) 및 거의 아무도 안 본 영화 ‘캡튼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에서 자녀들을 자연 속에서 키우는 히피 아버지로 나온 비고 모텐슨이다.
해 마다 수상후보가 발표되면 뜻밖의 후보들의 선정과 함께 당연히 후보에 오를 줄 알았던 배우들의 탈락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에도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 그 중 가장 놀랄 일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을 그린 공상과학 영화 ‘도착’에서 언어학자로 나온 에이미 애담스의 주연상 후보 탈락이다. 애담스는 이 영화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으면서 골든 글로브 등 여러 시상그룹에 의해 후보로 뽑혔으나 탈락했다. ‘도착’은 작품상 외에도 감독과 각색 및 촬영 등 모두 8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랐다.
애담스의 탈락으로 어부지리를 본 사람들이 강간당한 후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반전 하는 섹시 스릴러 ‘엘르’(Elle)의 이자벨 위페르와 흑백결혼의 드라마 ‘러빙’(Loving)의 신인 루스 네가. 위페르는 프랑스의 베테런 배우로 이번에 처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는데 올 해 골든 글로브 주연상을 탔다. 그런데 ‘엘르’는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선 탈락됐다. 탈락이라는 이변을 맞은 또 다른 여배우가 아넷 베닝이다. 베닝은 ‘20세기 여자들’(20th Century Women)에서 1970년대 북가주에서 10대의 아들을 혼자 키우는 어머니로 나와 깊고 섬세한 연기를 보여줘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오스카상 단골 후보인 메릴 스트립은 이번에도 또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스트립은 실화인 코미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로 후보가 됐는데 이는 스트립이 지금까지 모두 20차례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오스카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또 다른 여우주연상 후보들은 ‘재키’(Jackie)의 나탈리 포트만, 엠마 스톤(라 라 랜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베테런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의 믿음에 관한 드라마 ‘침묵’(Silence)은 골든 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종교와 신앙에 관한 치열한 탐구인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훌륭한 영화인데 달랑 촬영상 후보 하나에만 올랐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2월 26일 지미 킴멜의 사회로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열리고 ABC-TV에 의해 생중계 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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