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굿 럭 이자벨”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베벌리 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로 연결된 레드 카펫을 밟는 스타들을 향해 야외 석에 앉은 팬들이 스타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음에 가까운 환호성을 지른다. 아예 도시락과 물까지 싸들고 온 팬들도 보인다. 팬들 뿐만이 아니다. 레드 카펫 옆으로 일렬횡대로 선 전 세계서 온 기자들도 스타들에게 인터뷰를 청하느라 고함을 지른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회원인 나는 지난 8일 거행된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레드 카펫 안내원 노릇을 했다. 스타들에 대한 우상 숭배와도 같은 팬들의 열광 속에 레드 카펫을 오라가락 하면서 도대체 스타란 무엇인가 하고 자문했다.
영화란 결국 미몽이요 허상이자 대리만족의 잔영일진대 그런 업무를 수행하는 스타들 역시 신기루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날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 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은 배우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것이 어떤 느낌을 지녔는지를 당신들로 하여금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매년 레드 카펫에서 보는 여자가 ‘하이 눈’과 ‘그날이 오면’ 그리고 ‘흑과 백’과 같은 명화를 제작하고 감독한 스탠리 크레이머의 딸 캐서린 크레이머다. 마침 얼마 전에 TV로 ‘그날이 오면’을 다시 봐 캐서린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그의 아버지 얘기를 잠시 나눴다. 캐서린은 “올해가 아버지가 만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개봉 50주년이 되는 해”라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팬들이 “에이미”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돌아보니 이날 ‘어라이발’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에이미 애담스가 카펫을 밟고 온다. 스타들의 인기에 비례해 팬들의 환호도 높아지는데 저스틴 팀벌레이크가 나타나자 팬들이 “저스틴, 저스틴”이라며 아우성을 친다. 스타란 자기를 알아주는 인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팬들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그들에겐 필수적인 충전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얼음색 푸른 드레스를 입고 카펫을 밟기에 용기를 내 찾아가 악수를 나누고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난 당신을 사랑 한다”고 고백했다. 이자벨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고 묻기에 “한국”이라고 알려줬더니 “그럼 내 친구 홍상수도 알겠네”하며 반긴다. 모습이 고상하다.
이날 ‘엘르’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이자벨과 사진을 찍은 뒤(사진) 식장으로 들어가는 그를 향해 “굿 럭 이자벨”이라고 소리쳤더니 이자벨이 뒤 돌아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내 “굿 럭”이 신통력을 발휘했는지 이자벨은 주연상을 탔고 ‘엘르’는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나도 이자벨과 영화에 표를 던졌다.
키다리 베테런 명우 존 리트가우도 만났다. 나는 그를 오래 전에 UCLA의 공연장인 로이스 홀에서 만나 목례를 나눈 적이 있어 “요즘도 로이스 홀에 가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라며 반가워했다. 리트가우는 TV시리즈 ‘크라운’에서의 처칠 역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내가 “당신 처칠 역하기엔 키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커도 훨씬 크지”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이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자 “박찬욱의 ‘아가씨’ 정말 잘 만들었더라”며 칭찬했다.
시상식 개막이 가까워지면서 별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팬들은 잃어버렸던 가족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샴페인이 흘러넘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오스카 시상식과 달리 먹고 마시고 떠드는 가운데 진행되는 스타들의 파티나 마찬가지다. 원조 ‘배트맨’으로 유명한 마이클 키튼은 시상식 전부터 식장에 딸린 오픈 바에서 칵테일을 시켜 들고 제 자리로 갔다. 나도 그를 따라 스카치 온 더 락스를 한잔 시켰다.  
스타들은 식 중에도 자리를 떠 오픈 바 옆 발코니로 나가 끽연들을 하는데 이날 ‘골리앗’으로 TV시리즈 남우주연상을 탄 빌리 밥 손턴은 손에 골든 글로브를 쥔 채 담배를 태운다. 역시 끽연하는 로렌스 피시번과도 인사와 함께 짧은 대화를 나눴다. 모두들 인터뷰를 통한 구면이어서 친구처럼 반갑다.
이 파티 저 파티 장으로 다니다가 이날 ‘핵소 리지’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신병 훈련 교관 역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쾌활한 빈스 본을 만났다. 내가 “야 당신 진짜 겁나더라”고 추켜세웠더니 “그렇지. 해피 뉴 이어”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시상식보다 식 후 여러 영화와 TV사에서 여는 파티가 더 인기 있다. 인 스타일/워너 브라더스, HBO, 폭스, NBC/유니버설/E!, 와인스틴/네트플릭스, WME 및 아마존 스튜디오 등이 각기 먹을거리와 술과 음악을 제공하며 손님들을 맞는데 파티장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난 대충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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