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월 11일 수요일

나의 2016년 베스트 텐


1년 내내 영화만 보면서 살다보니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현실과도 같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데 영화가 내게 주는 위로와 휴식과 기쁨을 생각하면 영화는 내게 있어 하나의 종교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영화 때문에 한 가지 안 된 것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없다는 점.
내가 2016년에 한 해에 본 영화제목을 적은 노트북을 들춰보니 300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 예년에 비해 좀 모자라는 수여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한 것 같은 마음이다.
한 해의 베스트 텐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는 예술성과 재미를 완벽하게 겸비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러나 2016년은 재미있는 양질의 영화가 많다. 극영화 뿐 아니라 만화영화와 기록영화 및 외국어영화 등 모든 분야에서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베스트 텐의 첫째 것과 둘째 것은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요 나머지는 알파벳순이다.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보스턴 인근 맨체스터를 무대로 비극적 과거를 가진 아파트 막일꾼(케이시 애플렉)의 삶을 가슴 저미도록 사실적이요 우수 가득하며 또 때론 우습게 그렸다. 골든 글로브 작품상(드라마) 등 5개 부문 후보작. (사진)

*‘라 라 랜드’(La La Land)-젊은 배우지망생 여자(엠마 스톤)와 콧대  높은 재즈 피아니스트 청년(라이언 가슬링)의 사랑과 삶을 엮어 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향수 짙은 황홀한 헌사. 골든 글로브 작품상(뮤지컬/코미디) 등 7개 부문 후보작.

*‘아슬아슬한 17세’(Edge of Seventeen)-여고 3년생(헤일리 스타인펠드)이 겪는 10대 특유의 성장통. 지혜롭고 사실적이며 유머러스하다. 스타인펠드의 골든 글로브 주연상(뮤지컬/코미디) 후보작.

*‘핵소 리지’(Hacksaw Ridge)-신앙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오끼나와 전투에 투입돼 단신 수십 명의 부상당한 전우와 함께 일본군마저 구출한 데즈먼드 S. 도스(앤드루 가필드)의 실화. 골든 글로브 작품(드라마) 남우주연(드라마) 및 감독상(멜 깁슨) 등 3개 부문 후보작.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차압 위기에 놓인 텍사스의 목장을 살리려고 은행을 터는 형제와 이들을 쫓는 노련한 텍사스 레인저(제프 브리지스)의 긴박감 넘치는 현대판 웨스턴. 브리지스의 골든 글로브 조연상 후보작.

*‘러빙’(Loving)-1960년대 흑백결혼이 불법인 버지니아에서 결혼한 백인 리처드 러빙(조엘 에저턴)과 흑인 밀드레드(루스 네가)의 결혼 합법화를 위한 투쟁 실화. 골든 글로브 작품(드라마) 및 남녀주연상(드라마) 후보작.

*‘문라이트’(Moonlight)-플로리다의 달동네에 사는 동성애자 흑인 소년의 성장을 세 시간대에 걸쳐 그린 달빛처럼 고운 감동적인 드라마. 골든 글로브 작품(드라마) 및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작.

*‘패터슨’(Patterson)-뉴저지 패터슨시의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담 드라이버)은 하루 하루의 삶을 시로 옮긴다. 마치 시의 각운처럼 패터슨의 일상이 아름다운 반복음을 낸다. 드라이버가 LA 영화비평가협회의 2016년도 최우수 주연배우로 뽑혔다.        

*‘침묵’(Silence)-17세기 일본에 자원해 간 두 명의 예수회 선교사(앤드루 가필드와 애담 드라이버)가 겪는 핍박과 믿음과 회의.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의 신을 향한 구원과 속죄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정열적이요 경건한 작품. 보고 나서 한참 지나서야 작품의 깊이와 열정을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

*‘선셋 송’(Sunset Song)-19세기 초 스코틀랜드 농촌 처녀의 성장기. 대사와 연기와 연출 등이 연극과도 같은 서정적인 산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의 분위기에 깊이 잠기게 된다.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 특유의 여유 있고 다소 묵직한 연출이 아름답다.        

이 밖에도 ‘아메리칸 하니’(American Honey), ‘나는 대니얼 블레이크‘(I, Daniel Blake), ’캡틴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 ‘어 비거 스플래쉬’(A Bigger Splash) 등이 좋았다.
외국어영화로는 첫 사랑과 그것의 오랜 후유증을 그린 ‘나의 황금기’(My Golden Days-프랑스), 겁탈 당한 50대 여인이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역전극을 펼치는 변태적으로 섹시한 ‘엘르’(Elle-프랑스), 파리 교외 달동네에 살면서 서푼짜리 범죄를 밥 먹듯이 저지르는 10대 소녀의 생존 몸부림을 그린 ‘디바인즈’(Divines-프랑스) 그리고 데모하다 잡혀 경찰의 트럭에 갇힌 가지각색의 이집트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현 이집트의 사회 및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충돌’(Clash-이집트) 및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가 오래간만에 자기 작품의 영감이 된 고향을 찾았다가 겪는 온갖 해프닝을 그린 풍자극 ‘출중한 시민’(The Distinguished Citizen-아르헨티나)  등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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