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웨스트월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자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아우성을 쳐댔다. 그런데 기계는 인간을 상대로 백가몬과 체커스 및 체스게임을 벌여 이긴 지가 이미 오래돼 알파고의 승리는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알파고의 이세돌 제압이 있기 전에 인간은 이미 기계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젠 없으면 못 사는 스마트폰을 맘몬처럼 섬기며 살고 있다. 매년 모양을 바꿔 나오는 스마트폰을 사려고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보면 마치 맘몬에게 경배하기 위해 신전 앞에 모여든 우상숭배자들을 보는 것 같다.
컴퓨터와 로봇은 이미 인간의 활동영역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호텔 심부름꾼과 자동차 조립 같은 단순직에서부터 병원과 금융계를 비롯해 무대와 스크린의 배우 그리고 작곡과 그림을 그리고 소설과 기사도 쓰고 있다. 기자인 내 자리도 위태롭다.    
내가 기계가 사람 잡겠구나 하고 절실히 느낀 것이 스탠리 쿠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빨간 눈동자처럼 생긴 컴퓨터 ‘핼’을 보면서였다.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독순술까지 지닌 ‘핼’은 우주선 디스커버리 1호의 전 기계와 생명보조 체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절대로 오류를 범할 수 없는 ‘핼’이 오류를 범하면서 우주인들이 ‘핼’의 전원을 끊어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우주인의 대화를 멀리서 독순술로 읽은 ‘핼’은 자기를 죽이려는 인간을 먼저 제거한다. 그런데 ‘핼’의 오류가 과연 진짜 오류인가 아니면 인간을 제거하고 자신이 우주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핼’의 술책인가.
영화는 일찌감치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고 또 그것들이 인간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리츠 랭의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와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가 기계화된 인간세계를 묘사한 대표적 작품이다.
공상과학 공포영화 ‘악마의 종자’에서는 A.I. 프로테우스가 인간 모습의 자기 아이를 낳기 위해 자기를 발명한 과학자의 아내 수전(줄리 크리스티)의 세포를 추출한 뒤 정자를 합성해   강제로 임신을 시킨다.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인공수정이다. 스필버그도 ‘A.I.’에서 사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된 로봇소년 데이빗을 통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공존을 탐색했다.
얼마 전에 합성고무 소재로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성관계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갖춘 실제 여자와 같은 섹스로봇 ‘록시’가 출시된다고 해서 ‘인간과 로봇과의 성관계’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이것은 남녀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해롭다”고 주장한 반면 찬성론자들은 “인공지능을 갖추면 주인과 대화도 하고 취향까지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 인간끼리의 관계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허’(Her)의 테오도어(와킨 피닉스)도 여자의 음성으로 인간화한 지적인 컴퓨터 시스템 새만사(스칼렛 조핸슨)와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아주 로맨틱한데 육체가 없는 음성과의 사랑의 대화여서 애잔하다. A.I.가 인간지능을 초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에 나온 ‘엑스-마키나’의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더-올해 ‘덴마크 여인’으로 오스카 조연상)가 그렇다. 에이바는 자신에게 A.I.를 준 창조자 인간을 살해하고 자유를 찾아가는데 이야말로 인간의 신에 대한 반역과도 같다.
기계가 사람을 잡는 영화 중에서 진짜로 흥미진진한 것은 소설 ‘주라기 공원’을 쓴 마이클 크라이턴이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웨스트월드’(Westworld·사진)다. 공상과학 웨스턴 스릴러인 영화의 무대는 미래의 성인용 위락공원 ‘델로스’. 이 곳에는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들이 사는 ‘웨스트월드’와 ‘중세세계’ 및 ‘로마세계’ 등 3개의 세계가 있어 사람들은 하루에 1,000달러를 내고 셋 중 한 곳을 골라 과거를 실제처럼 체험할 수가 있다.
두 친구 존과 피터가 선택한 곳이 ‘웨스트월드.’ 옛날 서부와 똑같은 세계로 바에서 로봇술꾼들과 싸움도 할 수 있고(물론 인간이 이긴다) 로봇창녀와 섹스를 즐길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분되는 것은 로봇건맨(율 브린너-움직이지 않는 눈동자와 무표정한 얼굴이 로봇 같다) 과의 결투. 건맨이 존과 피터에게 시비를 걸어 총격전이 벌어지고 죽는 것은 로봇. 죽은 로봇건맨은 수리 후 이튿날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로봇들에게서 이상이 생기고 이들이 통제실의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행동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희롱의 대상으로 즐기던 인간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로봇건맨에게 다시 결투를 신청한 존이 살해되고 이어 로봇이 피터를 살해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격하면서 피터는 숨이 턱에 차도록 달아난다. 기계의 인간에 대한 역습이요 반란이다. A.I.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멀지 않은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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