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사진)로부터 친필 편지가 날아왔다.
“디어 H.J.
나를 최우수 주연 남우 후보로 지명해 줘 고맙습니다. 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가 지난 21년간 내 생애에 보내준 후원에 영원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와 나 그리고 전체 영화팀의 사랑의 노고입니다. 당신의 인정은 정말로 많은 것을 뜻합니다. 1월에 당신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마이 베스트,”
판독불명의 서명이 적힌 편지는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레버넌트’(The Revenant)에 나온 자기를 제73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은근히 진짜로 상도 달라는 의미가 내포된 글이다.
그런데 레오는 그 뜻이 이뤄져 지난 10일에 열린 시상식에서 주연상(드라마 부문)을 탔다. 나도 레오와 작품 그리고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 감독에게 투표, 셋이 다 수상을 했는데 내가 레오에게 투표한 것은 그의 편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영화와 TV의 배우와 감독 그리고 제작자와 각본가를 비롯해 작곡가들이 우리들에게 카드와 편지 그리고 서명한 영화사진과 악보 및 음반 등을 보내오곤 한다. 이는 물론 송구영신 인사와 함께 자기들을 수상 후보로(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수상자) 밀어달라는 뜻이 담긴 운동을 겸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편지와 카드들은 내용은 인쇄하고 서명만 친필로 적은 것들로 레오의 편지처럼 내용까지 친필로 써 보내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90명에 가까운 우리 회원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편지를 써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인쇄된 글보다는 친필에 더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물론 친필 편지를 써 보내왔다고 해서 표를 찍어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레오 외에도 친필로 쓴 편지를 보내온 두 명의 배우가 골든 글로브를 탔다. 다음은 ‘크리드’(Creed)에서 나이 먹은 록키 발보아로 나와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의 편지다.
“디어 H.J.
나는 당신과 골든 글로브가 뜻밖에도 나를 후보로 지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베스트, 슬라이 스탤론.”
이 글은 우리가 슬라이(실베스터의 애칭)를 조연상 후보로 뽑은 뒤에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슬라이가 아니라 ‘스파이들의 다리’에서 소련 스파이로 나온 영국 배우 마크 라일런스에게 투표했다.
‘방’(Room)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 부문)을 탐 브리 라슨도 후보로 지명된 후 친필 편지를 보내 왔다.
“디어 H.J.
저의 영화를 시간을 내 본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이 영화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뜻하며 당신과 함께 그 같은 의미를 나누게 된 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지원에 감사합니다. 베스트, 브리 라슨.” 라슨이 상을 탄 데는 내 표도 한몫했다.
이번에 배우들이 보내온 카드들 중에 독특한 것은 수퍼스타 가수 레이디 가가의 것. 그는 TV(HFPA는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미니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호텔’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감사하는 글을 인쇄해 보내 왔다.
내 이름과 자기 서명은 친필인데 서명 옆에 새빨간 루즈를 바른 자신의 탐스런 입술을 찍어 보냈다. 키스 탓은 아니겠으나 레이디 가가는 주연상을 타고 무대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감격해 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편지들 중 이들의 것보다 훨씬 더 반가웠던 것은 영국 여배우 조안 프로갓의 것이다. 프로갓은 TV 시리즈, 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에서 ‘다운턴 애비’에서의 하녀 역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못 탔는데도 시상식 후 감사의 글을 E메일로 보내 왔다.
“디어 H.J.
저를 올해 골든 글로브 후보 중 한 명에 포함시켜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큰 감사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아주 훌륭한 밤을 보냈으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이런 행사의 한 부분이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올 마이 베스트, 조 프로가트.”
나는 지난해에 이 시리즈(현재 PBS에서 마지막 시리즈가 방영 중이다)의 현장 방문차 런던에 갔을 때 프로가트와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었는데 사람이 매우 겸손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