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의 장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 뒤 영화 내내 괴롭히는 악취미를 지닌 새디스트다. 이 생사람 잡는 히치콕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하나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케리 그랜트다.
그는 이 영화에서 스파이로 몰려 뉴욕에서부터 시카고를 거쳐 큰 바위 대통령들의 얼굴이 있는 사우스다코타주의 마운트 러시모어까지 도망 다니면서 죽을 고생을 한다. 그랜트는 또 ‘나는 결백하다’에서는 왕년의 자기 수법을 본 딴 보석 전문털이의 혐의를 받는다. 이 밖에도 ‘하숙생’ ‘39계단’ ‘영 앤 이노선트’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 및 ‘프렌지’ 등의 주인공들도 킬러나 스파이로 오인돼 곤욕을 치른다.
그런데 히치콕의 1956년 작으로 긴장감 가득한 드라마 ‘오인된 남자’(The Wrong Man·사진)의 주인공 매니 발레스트레로(실명 크리스토퍼 에마누엘 발레스트레로)는 히치콕에 의해 누명을 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강도로 오인돼 짧지만 악몽과도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이다.
매니의 얘기는 히치콕에겐 딱 알맞은 소재로 이 영화는 그의 유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매니의 사건이야 말로 사실이 허구보다 더 기막히고 극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로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매니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처졌다.
뉴욕주 퀸즈의 잭슨하이츠에서 두 아들과 현모양처인 로즈(베라 마일즈-히치콕의 ‘사이코’에도 나왔다)와 함께 넉넉지는 못하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매니(헨리 폰다)는 나이트클럽 ‘스토크’의 베이스 연주자. 매니는 1953년(당시 38세) 1월14일 아내의 치통 치료비 300달러를 대부 받기 위해 보험회사에 찾아갔다가 자기를 이 회사를 턴 강도로 오인한 여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체포된다.
여기서부터 도대체 자기가 왜 체포됐는지를 몰라 어안이 벙벙해하는(폰다의 과묵한 연기가 좋다) 매니의 악몽이 시작되는데 이 악몽은 매니 뿐 아니라 로즈와 두 아들과 매니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비롯한 온 가족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매니는 강도 피해자들의 확인과 필적감정 등에 의해 범인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때문에 남편이 저지경이 됐다는 자책감과 죄의식에 빠진 로즈는 정신파탄을 일으켜 요양소에 입원한다.
그러나 재판 중 진범 찰스 제임스 대니엘이 델리가게를 털다 붙잡히는 바람에 매니는 석방된다. 매니가 찰스로 오인된 까닭은 두 사람이 너무나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만약 찰스가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매니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편 40여건의 강도 전과가 있는 찰스는 경찰 진술에서 매니가 유죄판결을 받으면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매니는 입원한지 2년 만에 퇴원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플로리다로 이사해 거기서 악사로 일하며 살다가 지난 1998년 88세로 사망했고 로즈는 이보다 14년 전에 먼저 타계했다. 영화의 끝은 로즈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히치콕이 실루엣으로 등장해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되는 ‘오인된 남자’는 기록영화처럼 모든 것이 세밀하고 정확한데 이런 사실성은 로버트 버크스의 뛰어난 흑백촬영이 포착한 강렬한 이미지에 의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와 함께 ‘사이코’와 ‘현기증’ 등 히치콕의 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재즈풍 음악이 매니의 상황을 잘 알려준다.
뉴욕이 하나의 인물처럼 뚜렷한 역할을 하는 영화에서 히치콕은 실제사건의 목격자들을 단역으로 쓰고 매니가 수감됐던 110지구 경찰서 영창과 ‘스토크 클럽’ 및 요양소와 법정 등 현장 촬영을 통해 가급적 사실성을 살려 마치 한 편의 기록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사건은 당시 전국적인 화제가 됐었는데 무혐의로 풀려난 매니는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진짜로 새 출발을 하려면 모든 것이 달라져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과 친척들과 집과 가구를 다 남겨놓고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매니는 시와 보험회사를 상대로 50만달러의 소송을 냈으나 법정 외 합의로 7,000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히치콕의 팬이었던 매니는 자기 얘기의 영화화 판권을 20만달러에 팔았으나 아내의 입원비로 다 썼다고.
지난 2014년 매니가 살던 집 근처의 73스트릿과 41블러버드 교차로가 “매니 ‘더 렁 맨’ 발레스트레로 웨이”(“Many ‘The Wrong Man’ Balestrero Way”)로 명명됐는데 명명식에 형 로버트와 함께 참석한 매니의 차남 그레고리(사건 당시 5세)는 “이것은 우리 부모가 겪은 고통과 아픔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매니는 지난 1953년 라이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누군가를 고발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은 내 삶이 파괴될 뻔했던 것처럼 한 가정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인된 남자’가 워너 아카이브에 의해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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