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릿 버그만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다. |
잉그릿 버그만의 삶 다룬 기록영화
그레타 가르보 이후 할리웃이 스웨덴으로부터 직수입한 광채 나는 보석과도 같은 여배우 잉그릿 버그만의 삶을 포괄적으로 다룬 기록영화로 스웨덴의 작가이자 감독이며 비평가인 스틱 뵤르크만이 버그만의 딸이자 배우인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제안에 따라 만들었다. 가족사진과 홈무비 그리고 버그만의 유품과 일기와 그녀가 늘 가지고 다니던 각종 카메라로 찍은 필름 및 버그만의 네 자녀의 진술 등을 통해 이 윤기 나는 미소를 지녔던 여배우의 삶을 매우 자세히 보여준다.
대단히 흥미 있고 버그만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작품이나 다소 미흡한 것은 내용이 너무 가족위주라는 점이다. 그녀의 영화와 영화인으로서의 삶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처리됐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버그만은 공부보다는 연기에 더 능해 엑스트라를 거쳐 스크린에 등장한다. 그녀가 나온 스웨덴 영화 ‘간주곡’이 할리웃의 눈에 띄어 버그만은 24세 때 남편 페터 린드스트롬과 딸 피아를 남겨 놓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빗 O. 셀즈닉의 초청으로 할리웃에 진출, 이 영화의 미국판에 나온다.
그 뒤에 만든 ‘개스등’(버그만 최초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작)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및 ‘카사블랑카’와 함께 히치콕의 작품 ‘망각의 여로’와 ‘오명’ 등에 관한 설명이 너무 약하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집착했던 ‘잔 다크’의 스크린과 무대에서의 역에 관해서는 다소 시간을 할애했다.
버그만은 매우 용감하고 독립적이 또 강한 여성으로 자기 사생활에 대해선 철저히 외부 시선을 무시했다. 그녀가 이탈리아의 명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스트롬볼리’를 찍기 위해 이탈리아에 갔다가 둘 다 기혼자인 버그만과 로셀리니는 사랑에 빠진다. 버그만이 이혼도 하기 전에 아들 로베르토를 낳으면서 그녀는 할리웃의 기피인물로 찍혀 10여년을 유럽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버그만은 할리웃의 보이콧을 철저히 무시했다. 버그만은 이어 딸 쌍둥이 이사벨라와 잉그릿 이소타를 낳았다. 버그만의 할리웃 컴백작품은 ‘추상’으로 이 영화로 두 번째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버그만이 세계적인 배우여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자주 떨어져 살아야 했는데 그래서 아이들은 어머니를 장기간 못 보기가 일쑤였다. 버그만은 아이들을 사랑하면서도 독립적이어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자녀 양육을 거의 즐기다시피 했다.
그녀의 마지막 영화는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 그녀는 유방암에 걸린 채 TV 영화에서 이스라엘 수상 골다 마이어 역을 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유작이다. 그녀가 2차 대전 때 유럽으로 군 위문공연을 다니면서 만난 유명한 전쟁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와 깊은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 알았다. 버그만의 팬은 물론이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중요한 작품이다. 17일까지 뉴아트(11272 Santa Monica)서 상영.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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