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1월 10일 화요일

트럼보(Trumbo)


트럼보가 독수리타법으로 각본을 쓰고 있다.

할리웃에 불어닥친 ‘공산당 때려잡기’


2차 대전 종전 직후 미국에 불어 닥친 공산당 때려잡기(Red Scare)의 제물이 되었던 저명한 영화 각본가 달턴 트럼보의 삶을 다룬 향수감 짙은 코믹 터치가 있는 드라마로 할리웃의 옛 모습과 정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스케일이 작아 TV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이 흠이나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레드 스케어’의 실상을 상세히 기술했고 또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 영화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의 작품이다.
‘레드 스케어’와 맥카시즘으로 인해 할리웃은 배우와 감독과 각본가 등 수 많은 재주 있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이 중 어떤 사람들은 자살했고 또 일부는 해외로 도피했는가 하면 트럼보 같은 사람은 10년간이나 블랙리스트에 올라 남의 이름으로 각본을 써야 했다.
영화는 미 연방하원의 비미국인 활동조사위가 할리웃의 진보파와 좌파들을 때려잡기 위해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고 좌파 영화인들을 소환, 각자의 공산당과의 관계를 묻던 1947년부터 시작한다.
1930년대와 40년대 할리웃의 탑 각본가 중 하나였던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턴)는 이 때 이미 ‘키티 포일’과 ‘도쿄 상공의 30초’ 및 ‘조라는 이름의 사나이’ 등의 각본을 써 명성을 날릴 때. 줄담배에 술꾼인 트럼보는 쏜살 같이 각본을 쓸 때 자주 목욕탕 욕조에 앉아 썼다.
위트 있고 신랄한 일벌레로 정의파인 트럼보는 MGM 전속으로 한창 잘 나가다가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의회 조사위의 표적이 된다. 트럼보를 원수처럼 여기는 또 다른 사람이 당시 스튜디오 보스들을 덜덜 떨게 만들 정도로 세력이 강했던 할리웃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였다. 호퍼 역을 헬렌 미렌이 맡아 밉살스럽게 해낸다.
트럼보는 청문회에 출두,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의회 모독죄로 1950년 1년간 영창생활을 했는데 이 때 트럼보와 함께 묵비권을 써 감옥에 간 10명의 감독과 각본가들을 ‘할리웃 텐’이라고 부른다. 트럼보의 이런 신조 때문에 특히 심적으로 고생이 심한 것이 그의 부인 클리오(다이앤 레인)와 세 남매. 그러나 그들은 트럼보를 굳세게 지원한다.
영화의 후반은 트럼보가 출옥한 뒤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남의 이름을 빌려 글을 쓰면서 싸구려 영화전문 제작자인 프랭크 킹(존 굿맨이 웃긴다)을 위해 싸구려 영화들을 국화빵 찍어내듯 써낸다.
이와 함께 그는 ‘로마의 휴일’과 ‘용감한 소년’의 각본을 써 둘 다 오스카상을 받으나 식장에서 상은 다른 사람이 받았다.            
트럼보의 블랙리스트를 깨어놓은 사람이 커크 더글러스다. 더글러스는 ‘스파르타커스’(1960)를 제작하고 주연도 겸하면서 트럼보에게 각본을 맡긴 뒤 그의 이름을 스크린에 올렸고 이어 오토 프레민저 감독이 ‘엑소더스’의 각본을 쓴 트럼보의 이름을 역시 스크린에 올리면서 블랙리스트도 소멸된다.
재미있는 것은 더글러스와 프레민저 및 극우파인 존 웨인 그리고 MGM 사장 루이 B. 메이어 등을 배우들이 맡아 보여주는 연기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매너리즘도 비슷해 보기에 즐겁다. 크랜스턴이 약간 심술첨지 같은 연기를 능숙하게 잘 하고 레인과 굿맨을 비롯한 조연진의 연기도 좋다. 제이 로치 감독. R. Bleecker Street.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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