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확인하라!




지금 LA에서는 언론에 관한 2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먼저 개봉된 영화는 소위 ‘래더게이트’라 불리는 CBS-TV의 앵커맨 댄 래더의 부시의 병역문제를 둘러싼 오보를 다룬 ‘진실’(Truth)이다.
래더는 미 대통령 선거 2개월 전인 지난 2004년 9월8일 시사프로 ‘60분’을 통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과거 특혜를 이용, 텍사스주 공군방위군에 입대한 뒤 근무지를 이탈하면서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의 근거가 된 문서가 가짜임이 밝혀지면서 래더는 사임하고 프로의 제작자인 메리 메입스는 해고를 당했다. 진실보도가 허위보도가 된 셈인데 래더는 지금까지도 비록 문서는 가짜이나 부시의 근무 태만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에서 래더로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입스로는 케이트 블랜쳇이 나오는데 잘 만든 재미있는 작품이나 지나치게 래더 편을 들고 있는 느낌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가열되고 있는 요즘 보면 딱 알맞을 영화다.
이어 얼마 전에 개봉된 ‘스팟라이트’(Spotlight)는 2002년 막강한 보스턴 천주교 교구 내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지의 기자들의 취재를 다룬 튼튼한 드라마다. 신문사 내 4명으로 구성된 심층조사 보도팀인 ‘스팟라이트’(사진)가 6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교구 내 90여명의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교회가 알고서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로 인해 LA를 비롯한 전 미국 내 천주교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과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신부들의 섹스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천주교는 지금까지 문제수습에 무려 30억달러를 써야 했다.
취재팀의 팀장으로 마이클 키튼이 나오고 마크 러팔로와 레이철 맥애담스 등이 취재기자들로 나오는 앙상블 캐스트 영화로 마치 수사영화를 보듯이 긴장감과 스릴이 있는데 배우를 비롯해 작품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기능성이 크다.
‘래더게이트’의 원인은 보도의 소스 진위여부를 100%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팀이 문제의 문서의 진위여부를 놓고 필적 감정사까지 고용해 99%의 확인 작업을 한다. 그러나 마감날짜에 쫓기면서 부시를 잡겠다는 욕심으로 인해 100%의 확인 없이 보도, 래더는 TV를 통해 공개사과를 하고 방송인으로서의 생명도 끝이 났다. 그러니까 1%의 확인 불이행 때문에 일어난 희대의 오보사건이었다.
‘스팟라이트’에서도 이런 확인 작업이 자세히 묘사된다. 취재팀이 신부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희생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실여부를 묻는 모습과 함께 시끌벅적한 편집국 내 풍경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졌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 한국에서의 내 기자시절이 생각나 감개가 무량했다. 내가 한국일보의 졸병기자였을 때 후에 주불 특파원을 지낸 김승웅 선배를 비롯한 고참들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은 것이 ‘100% 확인’이었다. 기사를 써 데스크에 넘기면 기사를 손보던 데스크들이 매번 묻는 말이 “야, 박흥진 너 이거 확인한 것 맞지”였다. 그래서 확인은 그 뒤로 나의 좌우명이 되었고 후에 내가 미주 한국일보에 와 데스크 노릇을 하면서 신참 기자들에게 가르친 첫 말도 ‘100% 확인’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확인을 게을리 하다가 오보를 낸 적이 더러 있다. 글을 쓰면서 어딘가 찜찜한 부분이 있으면 꼭 확인을 해야 하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면서 이를 어물쩍 넘기다 보면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다. 독자로부터 오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받으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기자가 되는 자격 중 하나가 ‘100% 확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또 다른 자격을 과연 ‘스팟라이트’의 팀장 역의 키튼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해서 며칠 전 그를 인터뷰했을 때 물었다.
키튼은 이에 대뜸 “완전무결”이라고 대답했다. 기자라는 인격체의 완전무결을 의미하는 듯했다. 이어 그는 파고들어 사실을 캐내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이에 “집요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더니 키튼은 “그것도 맞다”고 말했다.
내가 ‘확인’과 ‘집요성’ 이외에 생각하는 좋은 기자로서의 자격요건들은 ‘불의를 의롭게 하겠다는 결의’와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 나는 이런 뜻을 품고 기자가 되었지만 과연 그 뜻을 얼마나 실천으로 옮겼는지는 의문이다.
‘진실’과 ‘스팟라이트’는 언론매체가 인터넷화 하는 요즘에 보면 향수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식 언론’의 모습이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종이신문을 외면해 신문사들이 문을 닫고 최근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처럼 파산신청을 하거나 기자를 비롯한 직원들이 대량 해고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0여년을 기자생활을 해온 나로선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곤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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