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빨강머리 모린 오하라




새빨간 머리답게 성질도 불같았던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의 여왕으로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인  모린 오하라하면 대뜸 떠오르는 영화가 존 웨인과 공연한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1952)이다.
원제와는 엉뚱하게 다른 한국어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미국에서 권투선수로 활약하던 웨인이 은퇴 후 아일랜드의 시골고향으로 돌아와 아름답고 불같은 성격을 지닌 오하라와 격정적인 로맨스를 엮는 흥미진진한 얘기다. 역시 아일랜드계인 존 포드가 감독해 오스카 감독상과 함께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촬영도 오스카상을 받았다.  
난 꼬마 때 이 영화를 봤는데 특히 지금도 잊지 못할 장면은 캡을 쓰고 레인코트를 입은 웨인이 강풍에 빨강머리가 마당 빗질하듯 날리는 자기를 마다하는 오하라의 손을 잡아 끈 뒤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 모습이다(사진). 사랑이 무언지 채 모르던 꼬마의 가슴이 황홀감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하라와 포드는 이 영화를 비롯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리오 그랜드’ 및 ‘롱 그레이 라인’ 등 총 5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오하라는 웨인과도 멋 있는 콤비를 이루면서 ‘아일랜드의 연풍’ 외에도 모두 웨스턴인 ‘리오 그랜드’와 ‘맥클린톡!’ 및 ‘빅 제이크‘ 등 모두 5편에서 공연했다.
웨인은 오하라를 “크고, 원기왕성하며 절대적으로 멋들어진-확실히 내 스타일의 여자”라고 찬탄했다. 오하라 역시 “나만이 존 웨인을 상대할 만큼 크고 강인한 주연여우였다”고 웨인의 말에 동의했다.
오하라가 지난 24일 아이다호주 보이지에서 95세로 별세했다. 그녀가 침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날 때 가족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아일랜드의 연풍’의 음악을 틀었다고 한다.  
오하라는 아이리시 답게 성질이 불 같았을뿐 아니라 강하고 굳세며 담대했는데 빨강머리에 커다란 초록색 눈과 붉고 탐스런 입술 그리고 크림 빛 피부에 체격이 큰 화끈한 미녀여서 생전 ‘총천연색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거구의 웨인과 과연 맞설만한 여자로 스크린을 압도했는데   꼬마 때 그녀의 영화를 많이 본 나로선 오하라가 화면에 나타나면 위협감마저 느꼈었다.
오하라의 영화 중 내 기억에 생생한 또 다른 영화가 중앙극장에서 본 절세미남 타이론 파워가 해적으로 나온  ‘흑조’다. 두 미남미녀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다가 뜨겁게 입술을 맞추는데 오스카 촬영상을 탄 총천연색 영화에 딱 맞는 불타는 키스였다. 오하라가 나온 또 다른 해양모험영화로 재미 있는 것이 더글러스 페어뱅스 주니어가 신배드로 나온 화려한 총천연색 ‘뱃사람 신배드’다.
오하라는 부당한 것에 굴복치 않는 여자로 1950년대 후반 할리웃의 가십전문지 ‘칸피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큰 화제가 됐었다. 오하라는 이 잡지가 자신이 외간 남자와 차이니즈극장에서 뜨거운 애무행위를 나눴다고 허위보도를 하자 소송을 제기해 승소, 결국 ‘칸피덴셜’은 문을 닫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으로 연기실력을 쌓은 오하라는 18세 때인 1939년 런던에서 히치콕이 감독한 ‘자매이카 인’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는데 여기서 공연한 명우 찰스 로턴의 눈에 띄어  같은 해 할리웃에 진출했다. 오하라는 로턴이 콰지모도로 나온 ‘노트르담의 곱추’에서 집시 에스메랄다로 나왔는데 18세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성숙한 모습이다. 그리고 3개월만 머물기로 했던 미국체류가 유럽에서 전쟁이 나면서 그녀의 할리웃생애가 시작됐다.
오하라의 영화 중 내가 재미 있게 본 또 다른 것이 브라이언 키스와 1인2역의 헤일리 밀스와 공연한 ‘페어런트 트랩’과 경남극장에서 본 헨리 폰다와 공연한 ‘스펜서의 산’이다. 극장에서 오하라를 못 본 젊은 세대들이라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TV를 통해 방영되는 ‘34가의 기적’을 통해 그녀를 만났을 것이다. 메이시백화점의 산타 클로스인 크리스 크링글이 산타를 믿지 않는 소녀(나탈리 우드)에게 자기가 진짜 산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 까지 서는 얘기로 오하라는 우드의 어머니로 나온다.
생애 50여편의 영화에 나온 오하라는 미모 때문에 자신의 연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 못한 배우로 그녀의 많은 역이 주연남우의 장식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하라는 진지한 역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예쁜 여자’라는 이미지와 끊임 없이 다퉈야 했다. 오하라는 “내가 유럽으로 돌아 갔다면 보다 많은 강한 성격 위주의 역을 맡았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스튜디오는 결코 내 재능이 내 얼굴을 능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술회한바 있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 한편 TCM은 11월 20일 오하라의 영화를 24시간 마라톤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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