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아푸가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
깡촌 소년이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윤회적 삶
인도의 벵갈 깡촌에서 태어난 소년 아푸의 삶의 서클을 그린 인도의 명장 사티아짓 레이의 ‘아푸’ 3부작은 인도 영화를 세계적인 예술영화의 무대에 올려놓은 인생과 인간성에 관한 풍요한 찬미다. 인도 영화계의 마하트마 간디라 불린 레이의 이 3부작은 세계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비부티부산 배너지의 2권으로 된 베스트셀러가 원작. 영화는 1955년 제1편이 만들어진 뒤 5년간에 걸쳐 3편이 완성됐다. 각 영화는 개별적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서 즐길 수 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는 자연광과 현장을 이용한 영화들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낙천성과 함께 강한 생명력을 구사하는 아푸의 삶을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될 때까지 윤회하듯이 아름답고 정직하고 또 민감하게 그렸다.
가슴 다한 연민의 정과 자비롭게 통찰하는 눈길 그리고 시적인 붓질로 인생을 관조한 심오한 영화인데 절제되고 정적인 카메라가 포착한 인간성의 적나라한 내면의 조감도라고 하겠다. 흑백화면이 광채를 발휘, 보는 사람을 아름다운 이미지 속으로 침잠케 만든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마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들 같아 작품의 사실성을 더욱 북돋우는데 대화가 별로 많지 않은데도 찌들고 여윈 삶을 헤쳐 나아가는 아푸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웅변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요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역동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로 가깝고 상냥하며 비탄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으로 술렁거리는데 이런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을 인도의 세계적 시타 음악가인 라비 샨카르의 음악이 뒤에서 효과적으로 반주해 주고 있다.
1955년에 만든 3부작의 제1편 ‘파터 판찰리’(Pather Panchali)는 ‘작은 길의 노래’(Song of the Little Road)라는 뜻으로 레이의 영화 데뷔작이다.
벵갈의 깡촌에서 평 승려인 아버지와 잔소리가 많지만 굳건하고 실질적이며 다정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푸가 검고 큰 눈으로 세상의 경이를 보고 경험하면서 자라는 얘기다. 카메라가 아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시골 정경을 조용하고 곱게 화폭에 담는다.
아푸의 또 다른 가족은 아푸의 독립심 강한 어린 누나와 죽음의 변두리에서 서성대지만 장난기를 잃지 않은 깡마른 꼬부랑 할머니(이 할머니를 통해 우리는 닥쳐올 죽음을 관조할 수 있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아 아푸는 여자들 틈에서 자라는 셈이다. 인간적이요 솔직하며 아름다운 영화다.
제2편은 ‘아파라지토’(Aparajito)로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The Unvanquished). 원래 레이는 속편을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파터 판찰리’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속편을 만들었다. 아푸의 누나가 병으로 죽으면서 슬픔에 빠진 가족이 시골을 떠나 시끌벅적한 도시 베나레스로 이사 온다. 카메라가 도시의 혼란의 소리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많은 10대 소년 아푸가 콜카타에서 공부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성장과정과 비슷한 어머니를 둔 아푸가 나처럼 느껴졌다)를 표현력 풍부하게 묘사했는데 1957년 베니스 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제3부는 ‘아푸 산사르’(Apu Sansar)로 ‘아푸의 세계’(The World of Apu). 이 영화는 레이가 그의 또 다른 걸작 ‘음악실’(The Music Room)로 세계 영화계의 전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었다.
20대가 된 아푸는 작가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면서 박봉에 콜카타의 달동네에 살면서도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낙천성과 생명력에 감염이 된다. 어느 날 아푸는 친구와 함께 시골에 있는 친구의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남의 부인이 될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여자와 벼락치기로 결혼을 하게 된다.
아푸와 아내는 콜카타의 쪽방에서 행복한 신혼살림을 하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출산 차 친정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사망한다. 깊은 슬픔에 빠진 아푸는 아들을 보기조차 마다하고 집을 떠나 방랑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동안 써놓은 귀중한 소설 원고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전 3부작을 통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제3편의 마지막 장면. 아푸가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기 전 아내의 집에 와 어린 아들과 대면하는데 아들은 아푸에게 돌팔매질로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탓한다. 부자 간의 짧지만 긴장감 감도는 갈등이 끝나고 아들을 목마 태우고 미래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 아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이로써 아푸의 삶이 한 바퀴 돌아온 셈이다. 디지털로 복원된 ‘아푸’ 3부작이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출시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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