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이름 없는 사나이’




1960년대 초 서부변경 마을을 무대로 선과 악이 뚜렷이 구별되는 카우보이와 보안관과 무법자 간의(와이트 해트 대 블랙 해트) 권선징악의 구태의연한 얘기로 일관하던 미 웨스턴에 혁명을 일으킨 영화가 1964년에 나온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다.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당시 스크린의 조연급으로 TV 웨스턴 시리즈 ‘로하이드’에 나오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사진ㆍ당시 34세)를 기용해 만든 이 돌연변이와도 같은 웨스턴은 잔인한 폭력과 인물들의 비도덕성 그리고 땀과 냄새와 먼지가 뒤범벅이 된 영화로 이로써 ‘스파게티 웨스턴’(한국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했다)이 탄생했다.
나는 대학생 때 이 영화를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휘파람과 채찍질 소리가 섞인 획기적인 음악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오프닝 크레딧 장면부터 화면에 확 빨려 들어갔었다. 그래서 비싼 입장료를 내고 두 번이나 봤다.
이스트우드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주고 레오네와 모리코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해준 영화의 주인공은 정의한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힘든 자로 반 영웅의 모델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레오네는 이런 주인공과 함께 사악하고 탐욕스런 인물들을 동원해 거의 괴이할 정도로 야단스런 웨스턴을 창조했다.
가히 오페라적이라 할 영화로 특히 레오네가 즐겨 쓰는 과장된 롱 샷과 클로스업은 서부의 무한한 경지와 인간들의 내면을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황야의 무법자’는 라이벌 양 도당이 말아먹는 미 멕시코 접경마을(스페인에서 찍었다)에 나타난 총잡이가 양쪽을 오가며 서로 싸움을 시킨 뒤 자신의 이득을 취하면서 벌어지는 액션영화다. 과묵하고 냉소적인 이스트우드가 여송연을 입 한쪽 끝에 물고 가늘게 뜬 눈을 깜박이면서 악인들을 가차 없이 쏴 죽이는데 어깨에 멕시칸 담요를 걸친 모습이 상거지나 다름없다.
이 영화는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토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의 서양판. 그래서 쿠로사와는 판권침해로 소를 제기, 미국에서는 1967년에야 개봉됐다. 그런데 사실 ‘요짐보’도 미국 탐정소설 작가 대쉬엘 해멧의 소설 ‘붉은 수확’과 앨란 래드가 나온 웨스턴 ‘셰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다 쓴 것이다.    
이탈리안 원제가 ‘당당한 이방인’이었던 영화가 전 세계서 빅히트하면서 곧 이어 ‘황야의 무법자 속편’(For a Few Dollars Moreㆍ1965)과 ‘착한 사람, 나쁜 놈 그리고 추악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ㆍ1966)이 만들어져 둘 다 빅히트 했다.
시리즈를 배급한 미국의 UA사는 이들을 ‘이름 없는 사나이’(Man with No Name) 시리즈로 선전했지만 이스트우드는 3편에서 모두 이름이 있다. 조와 만코와 블론디가 그것이다.
‘황야의 무법자 속편’은 둘 다 바운티헌터인 만코(이스트우드)와 모티머(리 밴 클리프)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잔인하고 간악한 무법자를 쫓는다. 제1편과 2편의 악인으로는 모두 이탈리아의 명우 지안 마리아 볼론테가 나온다. 또 제2편에서는 나스타샤 킨스키(‘테스’)의 아버지로 독일의 명우인 클라우스 킨스키가 곱사등이 악인으로 나와 모티머의 총에 맞아 죽는다.
레오네의 거의 자아도취적인 작품인 제3편은 미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숨겨진 금괴의 장소에 관해 서로 정보의 일부만 소유한 자들이 목적지에서 만나 대결을 벌이는 3시간짜리 대하 서사극. 물론 이스트우드가 착한(?) 사람이고 나쁜 놈과 추악한 놈으로 각기 밴 클리프와 일라이 월랙(6월24일 98세로 사망)이 나온다.
시리즈 3편 모두 대부분의 웨스턴처럼 건맨들의 대결로 마지막이 장식되는데 특히 제3편의 라스트신은 정말 멋있다. 3명의 주인공이 원을 그리고 맞서 서로를 째려보는데 이 모습을 롱 샷과 클로스업을 번갈아 써 잡은 촬영과 함께 모리코네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무법자’시리즈와 함께 그의 다른 영화음악이 담긴 CD가 있다)  아슬아슬한 쾌감을 자아낸다. ‘황야의 무법자’ 개봉 50주년을 맞아 ‘이름 없는 사나이’ 시리즈가 블루-레이로 나왔다.
레오네는 이 시리즈 후속 편으로 서부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옛날 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ㆍ1968)를 만들었다. 조운 크로포드가 주연한 이색적인 웨스턴 ‘자니 기타’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 철도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여 지주(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를 둘러싸고 선한 자와 악인의 대결을 큰 화폭에 그린 먼지가 일고 흙냄새가 나는 거칠면서도 서정적인 풍경화다
이색적으로 찰스 브론슨이 복수심에 불타는 정의한으로 나오고 헨리 폰다가 검은 모자에 검은 조끼 그리고 검은 옷에 검은 부츠를 신은 악인으로 나와 차갑도록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광야에 달랑 혼자 자리 잡은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맨들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포착한 오프닝 신의 클로스업과 브론슨과 폰다의 대결을 둘러싼 회전촬영 등 카메라 작업이 탁월한 께느른한 분위기의 오페라 웨스턴으로 모리코네의 쓸쓸한 음악이 아름답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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