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5일 화요일

‘위대한 환상’


구약시대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이스라엘 땅에서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에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꼬마 때부터 전쟁놀이를 즐기듯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되겠다. 7월이 소위 ‘위대한 전쟁’이라 일컫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의 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정의는 매우 타당하게 여겨진다.
나는 현 교전이 있기 직전 긴장감이 감도는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청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청년으로부터 국가 없는 민족의 허무감과 점령자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과연 어떤 심정일까.
이번 전쟁의 근인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인 10대 3명을 납치, 살해한데 있지만 원인은 땅 싸움이다. 2차 대전 후 오랫동안 살아오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현재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는 이 두 지역은 콘크리트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지구 최대의 야외감옥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안의 무기수들이나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 땅이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남이 살던 안방에 무단 침입해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주인 행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 대결은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기가 어려운데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 ‘두 국가체제’.에 대해 나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 동료회원으로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인 샘은 “내 생전에는 턱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쌍방교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측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주민들. 벌써 사망자가 1,000여명이 넘는데 그 중에 어린 아이들이 많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살육이다.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는 전쟁이란 아마도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 영화가 반전영화의 금자탑인 프랑스 영화 ‘위대한 환상’(Grand Illusionㆍ1937ㆍ사진)이다. 
나치 선전상 요젭 괴벨스가 ‘시네마의 적 제1호’로 지목한 작품으로 감독 장 르놔르(화가 오귀스트 르놔르의 아들)는 “이 영화는 정치적 경계를 초월한 인류 형제애의 선언”이라고 말했다. 1차 대전 때 독일군 라우펜슈타인 대위(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포로가 된 프랑스군 봐디에 대위와 마르샬 소위(장 가방)를 중심으로한 적과 아군 간의 인간관계와 성격묘사에 치중한 전투장면 없는 아름다운 전쟁영화다. 
전쟁에 대한 강력한 기소로 르놔르는 독불 중 어느 한편을 들지 않고 인간애를 얘기하는데  우아한 귀족풍의 영화로 영화가 깊은 영혼을 지녀 크게 감동하게 된다. 볼만한 것은 오스트리아인 배우이자 감독이요 제작자인 폰 슈트로하임의 자태와 연기. 적마저 인간으로서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접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사도 정신이 풍겨 나온다.
반전영화의 또 다른 걸작은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한(오스카상 수상)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ㆍ1930)이다. 독일의 반전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차 대전에 참전, 부상을 입었던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뼈마디가 쑤시도록 사실적으로 그렸다. 
교사의 열변하는 ‘군복무의 영광과 조국 구원’에 감동한 대입 예비교생들이 자원입대해 서부전선에 투입되면서 겪는 전쟁의 단말마적인 참혹함을 통해 전쟁의 무자비성을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레마르크는 또 다른 반전소설 ‘살 때와 죽을 때’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은 후에 주멕시코 미국대사를 지낸 존 개빈 주연으로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위대한 환상’과 ‘서부전선 이상 없다’ 못지않은 반전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광의 길’(Paths of Gloryㆍ1957)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광기를 웅변적으로 고발한 작품으로 냉소적인 인간성 고찰의 영화이기도 하다. 전쟁 미치광이인 프랑스 장군의 자살임무나 다름없는 명령을 어겨 군재에 회부된 3명의 병사를 변호하는 커크 더글러스의 치열한 연기가 눈부신 명작이다.
게리 쿠퍼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사전트 요크’도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명화다. 테네시주 촌뜨기로 신심이 돈독한 평화주의자 알빈 요크가 마지못해 군에 입대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실화다.  
나는 얼마 전 현재 상영 중인 전쟁 액션영화 ‘허큘리스’에 주연한 레슬러 출신의 드웨인 잔슨과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당신이 만약 허큘리스처럼 반신반인이라면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잔슨은 이에 대해 “먼저 미소와 악수이나 그래도 안 통하면 주먹”이라며 크게 웃었다. 말 안 듣는 놈에겐 주먹밖에 없다는 말인데 이러니 세상에 전쟁이 끊일 날이 있겠는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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