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터너 클래식 무비즈


내가 퇴근 후 집에 돌아가자마자 트는 TV 채널이 24시간 내내 고전영화만 방영하는 베이식 케이블 TV인 터너 클래식 무비즈(TCM)다. 고전영화의 보고와도 같은 이 채널은 주로 1970년대 이전에 제작된 스튜디오시대 영화들을 내보내는데 무엇보다 광고가 없어 좋다.
과거 여러 번 본 영화들과 생전 처음 보는 영화들이 명 호스트 로버트 아즈본의 유익하고 간단명료한 해설과 함께 방영되는데 채널을 한 번 틀면 정신없이 TV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원작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방영하는 TCM의 특징은 작품의 질이다. 툭하면 방영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시민 케인’ ‘카사블랑카’ ‘빗속에 노래하며’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목사인 내 아들이 어릴 때 좋아하던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와 나의 올타임 페이보릿인 ‘지상에서 영원으로’ 및 나올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나오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ㆍ사진) 같은 명화들을 어디서 이렇게 손쉽게 볼 수가 있단 말인가.
14일에는 그동안 한 열댓 번은 봤을 에롤 플린이 날렵하게 칼질을 하는 컬러가 눈부신 ‘로빈 후드의 모험’을 다시 보느라 밤 1시가 넘어서야 수면자세를 취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 고전영화들은 매번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과 같은 감동과 흥분감을 준다. 영화가 마법이라는 것을 그 때마다 실감하곤 한다. 반면 요즘 영화는 두 번 보고 싶은 것이 거의 없다.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을 주름잡던 게리 쿠퍼, 존 웨인, 지미 스튜어트, 클라크 게이블, 바바라 스탠윅, 케리 그랜트,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와 베티 데이비스와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들을 자주 대면해 이들의 영화를 볼 때마다 아득한 향수감과 함께 마치 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현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난 이들과 만나느라 어느 듯 TCM 중독자가 되었다.
TCM이 14일로 개국 20주년을 맞았다. TCM이 개국 첫 날 최초로 방영한 영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여서 이달 같은 날에도 이 영화가 방영됐다. 난 TV 앞에 꼼짝 없이 눌러앉아 이 거센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드라마를 열심히 구경했다. 도대체 그 동안 모두 몇 번이나 이 걸작을 봤을까.
TCM은 테드 터너가 1986년 MGM을 산 뒤 영화사의 앙꼬인 영화들만 쏙 빼먹고 껍데기는 다시 팔아 치우면서 태동의 씨앗이 잉태됐다. TCM이 방영하는 영화들은 MGM의 이 영화들과 워너브라더스의 1950년대 이전 것들이 중심 품목들이다. 이 밖에도 유니버설과 폭스 및 패라마운트 등과도 계약을 맺고 이 영화사들의 고전영화들도 방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활발하던 1930~60년대 작품들이 중심 프로그램이지만 종종 1970년대 후의 영화들도 볼 수 있다.
TCM은 금요일 밤에는 공상과학과 공포영화 등 컬트무비를 일요일에는 ‘사일런트 선데이 나잇’이라는 제하에 무성영화를 그리고 ‘TCM 임포츠’ 제하로는 외국어 영화를 방영하고 또 단편영화도 방영한다. 이 밖에도 ‘TCM 리멤버즈’라는 제목으로 작고한 유명 영화인들의 영화를 방영하면서 이들의 생애를 추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13일에는 최근 93세로 작고한 미키 루니의 영화들인 ‘녹원의 천사’와 ‘소년들의 도시’ 및 ‘베이브즈 인 암즈’ 등 그의 영화들을 하루 종일 방영했다.
또 ‘이 달의 스타’라는 제하로는 선정된 스타들의 작품을 집중 방영하고 매년 2월부터 3월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31일 간의 오스카’라는 제목으로 역대 각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들을 방영한다.
TCM은 또 2010년부터 매년 4월에 할리웃에 있는 차이니즈 극장을 중심으로 ‘TCM 클래식 필름 페스티벌’을 연다. 짧은 기간에 크게 성공해 타주에서도 대거로 팬들이 참가하는 페스티벌은 올해는 17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는데 이번 페스티벌에는 왕년의 수퍼스타들인 모린 오하라와 킴 노백 그리고 제리 루이스 등이 각기 자기 영화들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벨, 책 그리고 초’ 및 ‘정신 나간 교수’ 상영에 참석해 아즈본과 얘기를 나눈다.      
한편 TCM은 개국 20주년을 맞아 차이니즈 극장을 떠나 포모사 카페와 패라마운트 스튜디오 및 다운타운의 2가 터널 등 영화들의 촬영현장을 둘러보는 무료관광 ‘TCM 무비 로케이션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고전 없이는 현대작품이 없기는 책이나 영화나 마찬가지다. 그런 뜻에서 미 영화문화의 한 흐름이 된 TCM은 고전을 꺼려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반드시 권할만한 채널이다. TCM은 고전영화 팬들에게는 고서적들이 들어찬 도서관이다. 책도 주로 고전을 읽는 나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TCM 채널을 틀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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