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2월 9일 금요일

육과 영(On Body and Soul)


같은 꿈을 꾸는 엔드레와 마리아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다.

같은 꿈 꾸는 차가운 남녀, 마음 문 여는 마법적 사랑


살육의 현장인 도살장에서 일하는 두 고독한 남녀의 서서히 영글어가는 사랑의 드라마로 마법적 사실주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엉뚱하고 약간 과격하고 괴팍하며 시치미 뚝 떼는 유머와 엄격한 현실 그리고 피와 꿈이 뒤엉킨 어른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영화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감동으로 젖게 만든다.
고독과 동경의 얘기로 스타일이 좋고 육감적이다. 두 남녀의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접근을 꿈속의 수사슴과 암사슴의 접촉으로 묘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교접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도살장으로 몰려가는 소들의 모습과 도살된 짐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육과 영의 관계를 묻고 있다.
사랑이 가는 순수한 작품으로 사랑과 육과 영의 문제를 절묘하게 엮어간 헝가리의 여류 감독 일디코 에니에디(각본 겸)의 마술사 같은 솜씨가 경탄스럽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 상을 받은 빼어난 영화다.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처음에 눈 덮인 숲속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서로를 응시하며 다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영화 플롯이 이어지면서 중간 중간 반복돼 나오는데 그림엽서처럼 곱다. 이어 부다페스트 교외의 도살장의 경리부장으로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한 중년의 독신남 엔드레(게자 모르크사니)와 도살장 고기 품질검사관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답고 병적으로 대인관계에 서툰 마리아(알렉산드라 보르벨리)가 각기 따로 소개된다.
둘은 구내식당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엔드레가 마리아를 흠모하게 되지만 내성적인 엔드레는 마리아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마리아도 엔드레에 호감을 갖는다. 물론 마리아도 자기 마음을 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독특한 성격의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만나면서도 관계에 진전이 없는데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둘의 고요한 분위기를 도살장의 살육이 어지럽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되는 동기는 둘이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 꿈이란 다름 아닌 암수 두 마리 사슴의 꿈.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에 들어보자며 일종의 실험을 실시한다. 둘은 같은 침상에 눕지만 육체관계를 맺진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드레와 마리아는 서서히 깊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데 사랑의 얘기이니 만큼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좋다. 모르크사니의 속에 유머가 깃든 무딘 사람 같은 덤덤한 연기도 좋지만 백설공주처럼 하얀 얼굴과 큰 눈을 한 보르벨리의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은 무표정한 연기가 뛰어나다. 수많은 표정을 지닌 무표정으로 카메라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주 클로스업 한다. 이와 함께 촬영도 매우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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