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레베카’디지털로 복원


캡션 추가

대저택 떠도는 죽은 부인의 망령… 히치콕 스릴러물


알프레드 히치콕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빗 O. 셀즈닉과 계약을 맺고 미국에 진출해 만든 첫 작품으로 로맨틱하고 강렬한 심리 로맨스 드라마다. 히치콕과 셀즈닉은 영화를 만들면서 의견 대립이 심했는데 히치콕은 이 영화 이후 계약 때문에 셀즈닉의 영화들인   ‘망각의 여로’(Spellbound·1945)와 ‘패라다인 케이스’(The Paradine Case·1948) 등 2편을 더 만들고 둘이 헤어졌다.
영화는 또 귀신 이야기이자 살인 미스터리 분위기를 지닌 분위기 스산하면서도 우아한 흑백 명작으로 대프니 뒤 모리에의 1938년 작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작품상과 감독상 등 모두 11개 부문에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촬영상을 탔다. 남우주연(로렌스 올리비에), 여우주연(조운 폰테인), 여우조연(주디스 앤더슨) 및 각색상 등이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올랐었다. 
폰테인은 후에 이 영화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한 ‘제인 에어’(Jane Eyre·1944)에도 주연했다. 이 흑백영화는 샬롯 브론테가 쓴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레베카’처럼 서민층의 젊은 여자와 ‘손필드 홀’이라는 음습한 기운을 내뿜는 대저택을 소유한 지체 높고 정체가 신비한 중년 남자 미스터 로체스터의 사랑을 그렸는데 로체스터로 오손 웰즈가 나온다.   
시종일관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 서술되는 신비하고 비가적인 사랑의 이야기로 특이한 것은 제목의 레베카는 남자 주인공 맥심 드 윈터의 첫 아내로 얘기가 시작되기 전에 죽어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영화의 주인공인 여자는 이름이 없다는 것.
그런데 이 죽은 여자 레베카는 영화 전편을 통해 맥심과 그의 젊은 두 번째 아내 그리고 레베카의 충실한 하녀였던 댄버스 부인(앤더슨)을 집요하게 군림한다. 
이름 없는 순진한 젊은 여자(폰테인)는 돈을 받고 나이 먹은 귀부인 이디스 밴 호퍼의 동반자가 되어 몬테 칼로로 여행을 갔다가 귀족가문의 멋쟁이로 침울한 남자 맥심 드 윈터(올리비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은 만난 지 2주 만에 결혼해 콘월의 맥심의 고풍 창연한 저택 ‘맨덜레이’로 온다. 귀신 들린 집과도 같은 ‘맨덜레이’가 영화에서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구실을 한다.  
새 부인을 맞는 사람이 차갑고 도도한 레베카의 하녀 댄버스 부인으로 사망한 레베카에게 아직도 그가 살아있는 듯이 집착하는 댄버스 부인은 드 윈터 부인을 냉정히 영접한다. 댄버스 부인 역의 주디스 앤더슨이 소름끼치는 사악한 연기를 한다. 
그런데 드 윈터 부인은 ‘맨덜레이’ 곳곳에 레베카의 존재와 흔적이 뚜렷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집의 매스터 베드룸 문과 레베카가 쓴 문필도구와 손수건 그리고 침대의 린넨 쉬트 등에 레베카의 두문자 ‘R‘과 드 윈터의 부인을 뜻하는 ‘R de W’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댄버스 부인은 새 부인에게 수시로 레베카의 미와 우아함과 세련미 및 지성에 대해 얘기해 드 윈터 부인은 레베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다. 
이로 인해 드 윈터 부인은 가끔 자기에게 별 이유도 없이 크게 화를 내는 남편과의 관계에 의심을 갖게 되나 그가 아직도 자기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이어 드 윈터 부인은 남편이 ‘맨덜레이’를 비운 사이 집을 방문한 소위 ‘제일 좋은 사촌’이라 불리는 잭 화벨(조지 샌더스)을 만난다. 과연 화벨은 누구인가. 
레베카의 망령에 시달리던 드 윈터 부인은 마침내 댄버스 부인과 정면 대결을 하고 남편으로부터도 레베카와의 결혼생활이 외부에서 보았듯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레베카의 방종하고 부도덕한 생활 스타일의 희생자였다는 고백을 받아낸다. 그리고 레베카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남편이 첫 아내가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드 윈터 부인은 그 동안의 소녀처럼 순진하던 삶의 태도를 내던지고 ‘맨덜레이’의 안방 주인 노릇을 시작하면서 아울러 레베카의 죽음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남편의 충실한 조언자 역을 떠맡는다. 
광기에 휩싸인 댄버스 부인에 의해 ‘맨덜레이’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댄버스 부인은 무너져 내린 천장에 깔려 죽고 영화는 레베카의 침대에 놓인 비단 잠옷 케이스에 새겨진 ‘R’자가 불길에 타면서 끝난다. 순진하고 겁먹은 모습의 폰테인의 연기와 허점이 많은 남자의 연기를 교활하도록 기민하게 해낸 올리비에의 연기가 훌륭하다.  ‘레베카’가 새로 4K 디지털로 복원돼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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