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5월 9일 화요일

파닉(Panique)


이르씨(왼쪽)는 요부 알리스를 깊이사랑한다.

프랑스 명장 쥘리앙 뒤비비에의 심리 범죄 스릴러


‘페페 르 모코’ ‘무도회의 수첩’ ‘파리의 하늘 밑’ 그리고 ‘나의 청춘 마리안’ 등과 같은 명화를 만든 프랑스의 명장  쥘리앙 뒤비비에의 심리 범죄 스릴러 ‘파닉’(1947)은 고독과 소외에 관한 영화이자 관음증과 우매한 집단의 떼거리 근성을 파헤친 걸작이다.
이 필름 느와르의 원작은 벨기에 태생의 소설가 조르지 시메농의 ‘이르씨의 약혼’이 원작. ‘시계 만드는 사람’과 ‘베티’ 등 생애 500여 편의 장?단편 소설을 쓴 시메농의 소설은 300여편이 영화와 TV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명우 미셸 시몽. 그는 ‘익사 직전에 구원 받은 부뒤’와 ‘암캐’ 및 버트 랜카스터가 주연한 미국영화 ‘기차’ 등에 나온 연기파로 이 영화에서도 중후한 연기를 보여준다.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에 사는 과묵한 이르씨(시몽)는 인간 기피증자로 동네 사람들도 자기들과 한 통속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르씨를 눈에 가시처럼 취급한다. 이 마을에 막 교도소에서 출감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알리스(비비안 로망스-초점을 잃은 듯한 눈 때문에 더 고혹적이다)가 범죄자 애인 알프레드(폴 베르나르)를 찾아오면서 알리스는 이르씨의 집념의 대상이 된다.
알리스는 자기가 지극히 사랑하는 냉정하고 간교한 알프레드의 강도사건의 누명을 대신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여인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알프레드.
알리스가 이르씨의 아파트 길 건너 아파트에 입주하고 이르씨는 이 여자를 창밖으로 훔쳐보면서 동경과 사랑의 질병을 앓는다. 이르씨의 관음증은 영국의 명장 마이클 파월의 스릴러 ‘피핑 탐’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이르씨가 자기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매정한 알리스는 오히려 이를 즐기면서 알프레드와 함께 이르씨의 자기에 대한 집념을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이르씨가 알프레드의 범행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알리스와 알프레드는 이르씨를 범인으로 만들기로 계획을 짠다. 알리스와 알프레드는 이르씨가 알리스를 사랑하는 한 결코 증거를 폭로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영화에서 매우 감정적이요 가슴 싸하니 아름다운 장면은 이르씨가 자기를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알리스가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알프레드를 버리고 자기와 살자고 구애하는 장면.
이르씨의 구애를 거짓으로 받아들인 알리스와  알프레드는 그들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르씨를 싫어하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이르씨를 집단 테러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르씨가 주민들의 폭력을 피해 지붕 위로 도망가는 장면이 아찔하다. 그리고 이르씨는 죽어서 복수를 한다.
고독하고 과격한 남자를 둘러싸고 모여드는 의혹의 구름이 거의 초현실적인 폭력행위의 비바람을 몰고 오는 가학적 쾌감을 지닌 집단 히스테리에 관한 작품이다. 사실주의와 필름 느와르 장르를 잘 혼합한 명작으로 전쟁 중의 프랑스 사람들의 나치에 대한 협력을 은유한 작품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잔인한 낭설과 공포 그리고 원한의 근저를 파헤치고 있다.  
시몽과 함께 로망스와 베르나르의 연기도 좋은데 이 밖에도 아파트 주인과 정육점 주인을 비롯해 가지각색의 주민들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필름 느와르의 전통을 살린 그림자와 명암을 잘 이용한 촬영도 훌륭하다.
쓴 맛나고 미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 영화는 지난 1989년에 ‘이르씨’(Monsieur Hire)로 리메이크 됐다. 이르씨 역에는 쥐처럼 생긴 미셸 블랑이 알리스 역에는 산드린 본네르가 각기 나와 좋은 연기와 함께 몸에서 소름이 돋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긴장감과 서스펜스 그리고 심장을 도려 내는듯한 집념의 통증이 느껴지는 명작이다.
‘파닉’은 뒤비비에의 전후 첫 작품으로 그의 가장 어둡고 개인적인 영화로 알려졌다. 1930년대 훌륭한 영화를 양산한 뒤비비에는 그래암 그린과 오손 웰즈 그리고 잉그마르 베리만 및 장 르느와르 같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명장 르느와르는 “만약에 내가 건축가로 영화의 기념비를 만든다면 기념비 입구에 쥘리앙 뒤비비에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미셀 시몽과 장 르느와르는 평생 친구로 둘이 함께 ‘암캐’ 등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인 시몽은 르느와르 외에도 장 비고(아탈랑트)와 마르셀 카르네(안개 낀 부두) 및 르네 클레어(미녀와 악마) 등 여러 명의 프랑스 명장들의 작품에 출연했다.
디지털로 새로 복원된 ‘파닉’이 5일부터 11일까지 로열극장(11523 산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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