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26일 하오 5시부터 할리웃에 있는 돌비극장에서 지미 킴멜의 사회로 열린다. ABC-TV가 전 세계로 생중계한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상의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 부문에는 총 9개의 영화가 후보에 올랐는데 일찌감치 뮤지컬 ‘라 라 랜드’(La La Land^사진)가 탈것으로 점쳐졌다.
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헌사인 이 노스탤지어 가득한 영화는 작품상을 비롯해 무려 14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는데 이미 제작자협회상을 탔고 지난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뮤지컬/코미디) 등 모두 7개의 상을 탔다.
작품상을 타는 영화의 감독이 감독상을 타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해 감독상은 ‘라 라 랜드’를 연출한 데미언 차젤(32-‘위프래쉬’)이 탈 것이 분명하다. 차젤은 이미 감독협회상을 탔는데 그를 바짝 추격하는 사람이 마이애미 흑인 달동네 소년의 성장기인 ‘문라이트’(Moonlight)를 연출한 배리 젠킨스.
남자 주연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의 케이시 애플렉과 ‘울타리’(Fences)의 덴젤 워싱턴. 이 부문에서는 쓰라린 과거를 지닌 아파트 핸디맨의 고뇌와 자아 구제의 모습을 극도로 절제해 보여줘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탄 애플렉이 상을 탈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최근 아카데미 회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배우협회가 가정을 독재자처럼 군림하면서 독설을 내뱉고 허세를 부리는 피츠버그의 쓰레기차 용원으로 나와 겁이 날 정도로 위협적인 연기를 한 워싱턴에게 상을 주면서 워싱턴이 유력한 오스카상 후보로 부상했다. 워싱턴이 주연상을 타면 그는 오스카 3관왕이 된다. ‘울타리’는 어거스트 윌슨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동명 연극이 원작이다.
애플렉이 배우협회상을 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 비하 행동과 성적 희롱 등 그의 과거의 개인적 편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작년 초만 해도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젊은 흑인 감독 네이트 파커의 흑인 노예들의 폭동 실화를 다룬 ‘국가의 탄생’이 파커가 대학시절 연루돼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동료 여대생(후에 자살했다) 강간사건이 알려지면서 영화계로부터 완전히 외면을 받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자 주연상은 ‘라 라 랜드’에서 할리웃에 사는 배우 지망생으로 나와 빛나는 연기를 한 엠마 스톤이 탈 것이 유력하다. 스톤은 이미 골든 글로브상(뮤지컬/코미디)을 탔다. 스톤에 이어 유력한 수상 후보자가 ‘엘르’(Elle)에서 강간을 당한 후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한 행동을 취하는 여사장 역을 맹렬히 한 프랑스의 베테런 이자벨 위페르. 위페르는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탔으나 오스카상은 5명의 후보가 나온 작품 중 유일하게 작품상 후보에도 오른 ‘라 라 랜드’의 스톤이 탈 확률이 높다.
남자 조연상은 ‘문라이트’에서 주인공 소년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마약 딜러로 나와 따스하고 인간적인 연기를 한 마헤르샬라 알리가 탈 것이다. 그는 이미 배우협회상을 탔다. 여자 조연상은 ‘울타리’에서 남편의 허세와 독재적 군림을 너그러운 마음과 지혜로 인내하는 아내로 나와 깊이와 무게를 지닌 연기를 한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탈 것이 유력하다. 데이비스는 이미 골든 글로브상과 배우협회상을 탔다.
데이비스가 상을 타면 남녀 주조연상 부문에서 여자 주연만 빼고 모두 흑인 배우들이 상을 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 2년간 연기상 부문에서 단 한 명의 흑인 배우도 포함되지 않아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구설수에 올랐던 아카데미가 면죄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올 해 연기상 부문에서는 워싱턴과 알리 및 데이비스 외에도 또 다른 여자 주연상 후보인 루스 네가(‘러빙’)와 조연상 후보들인 네이오미 해라스(‘문라이트’) 및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즈’) 등도 다 흑인들이다. 연기상 부문에서 흑인 배우들이 6명이나 후보에 오른 것은 오스카 사상 초유의 일이다.
‘라 라 랜드’는 작품과 감독 및 여자 주연상 외에도 음악, 주제가(‘시티 오브 스타즈’) 그리고 촬영과 의상상 등도 탈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휩쓸다시피 할 것이다.
외국어 영화상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가 감독한 ‘세일즈맨’(The Salesman)이 탈 것이 유력하다. 트럼프의 이란인들의 미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이 이 영화가 상을 타는 것을 더 힘차게 뒷받침해준 셈이다. 이에 경쟁하는 영화가 독일영화 ‘토니 에르트만’(Toni Erdmann). 만화영화는 ‘주토피아’(Zootopia)가 탈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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