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에는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는 말이 있다. 스튜디오의 막강한 권력을 쥔 사장과 제작자와 감독들이 배역을 미끼로 자기들의 사무실 카우치에서 젊은 여성 스타지망생들로부터 섹스를 제공 받은 것에서 온 말이다. 할리웃 황금기 콜럼비아사의 해리 콘 사장이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카우치는 할리웃의 생성과 함께 있어온 것으로 얼마 전에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50년 전에 내가 배우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 것은 있었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팅 카우치’ 얘기는 조지 페파드가 영화사사장으로 나와 자기에게 섹스를 제공한 여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야한 드라마 ‘카펫배거스’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캐스팅 카우치’ 때문에 지금 할리웃의 뜨거운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사람이 명제작자 하비 와인스틴(65^사진)이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애슐리 저드, 그위니스 팰트로 및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와인스틴은 삽시에 인디영화의 거목에서 섹스치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와인스틴은 자기가 회장으로 있던 와인스틴영화사와 함께 아카데미로부터도 퇴출당했다.
와인스틴은 동생 밥과 함께 영화사 미라맥스의 창업주로 남들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주제와 개인적 비전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서슴없이 만들면서 인디영화를 흥행서도 성공시킨 인디영화의 제우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영화들은 총 300여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는데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국인 환자’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 ‘시카고’ 및 ‘왕의 연설’ 등이 다 그의 영화들이다.
와인스틴은 자기 추행이 폭로되자 “나는 요즘과는 판이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풍토에서 자랐다”면서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는 옛날에 직장의 힘 있는 남자들이 자기 밑의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풍토를 말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맨해탄의 광고계 실태를 그린 TV시리즈 ‘매드 멘’을 보면 여자들은 비서직만 얻어도 큰 성공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자기 상사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일은 당연지사로 그려졌다.
할리웃에서 권력 있는 남자들이 여배우들이나 부하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일은 ‘공개된 비밀’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할리웃에선 와인스틴 스캔들로 인해 가슴이 섬뜩한 영화사 간부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은 할리웃 뿐 아니라 미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캐스팅 카우치’ 사건은 비단 할리웃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9년 떠오르는 스타 장자연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감독을 비롯해 화사사장 등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술시중 등을 들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29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사건 후 한 인권단체가 여배우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중 60%가 출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캐스팅 카우치’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일부 젊은 스타지망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왕년의 할리웃에서 와인스틴과 같은 비행을 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알프렛 히치콕이다. 히치콕은 자기 영화 ‘새들’과 ‘마니’에 기용한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에게 끈질기게 성적으로 추근거리다가 거절당했다. 내가 헤드렌과 만났을 때 그는 “그 후로 내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와인스틴 추행사건에 대한 희생자들의 폭로가 뒤늦은 이유도 이런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리웃은 겉으로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또래들끼리 똘똘 뭉치는 폐쇄된 동네여서 한 배우가 영화사의 눈밖에 벗어나면 다른 영화사들로 부터도 금기인물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동네이니 만큼 동료의 비행을 알면서도 너도 나도 ‘나 모르쇠’하는 것도 관례처럼 됐다.
나는 와인스틴을 몇 차례 만났는데 스모선수 같은 체구에 위압적인 인상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지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년의 명제작자들로 영화 사랑이 극진했던 새뮤얼 골드윈, 데이빗 O. 셀즈닉, 대릴 F. 재눅 등에 비유 됐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고약해 욕설을 밥 먹듯이 내뱉고 자기 목표를 위해선 공갈과 협박도 서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유명해 여자들을 마구 더듬어도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와인스틴의 추행은 사실 경악할 일도 아니다. 이번 스캔들로 할리웃에서 ‘캐스팅 카우치’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이 동네의 물이 어느 정도 맑아질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 카우치는 할리웃의 생성과 함께 있어온 것으로 얼마 전에 만난 더스틴 호프만도 “50년 전에 내가 배우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 것은 있었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캐스팅 카우치’ 얘기는 조지 페파드가 영화사사장으로 나와 자기에게 섹스를 제공한 여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야한 드라마 ‘카펫배거스’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캐스팅 카우치’ 때문에 지금 할리웃의 뜨거운 화제 거리가 되고 있는 사람이 명제작자 하비 와인스틴(65^사진)이다. 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지난 수십 년 간에 걸쳐 애슐리 저드, 그위니스 팰트로 및 앤젤리나 졸리 등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와인스틴은 삽시에 인디영화의 거목에서 섹스치한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와인스틴은 자기가 회장으로 있던 와인스틴영화사와 함께 아카데미로부터도 퇴출당했다.
와인스틴은 동생 밥과 함께 영화사 미라맥스의 창업주로 남들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주제와 개인적 비전이 뚜렷한 감독의 영화를 서슴없이 만들면서 인디영화를 흥행서도 성공시킨 인디영화의 제우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영화들은 총 300여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는데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국인 환자’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 ‘시카고’ 및 ‘왕의 연설’ 등이 다 그의 영화들이다.
와인스틴은 자기 추행이 폭로되자 “나는 요즘과는 판이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풍토에서 자랐다”면서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는 옛날에 직장의 힘 있는 남자들이 자기 밑의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던 풍토를 말한다. 1950년대와 60년대 맨해탄의 광고계 실태를 그린 TV시리즈 ‘매드 멘’을 보면 여자들은 비서직만 얻어도 큰 성공이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자기 상사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일은 당연지사로 그려졌다.
할리웃에서 권력 있는 남자들이 여배우들이나 부하 여직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일은 ‘공개된 비밀’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할리웃에선 와인스틴 스캔들로 인해 가슴이 섬뜩한 영화사 간부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은 할리웃 뿐 아니라 미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캐스팅 카우치’ 사건은 비단 할리웃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9년 떠오르는 스타 장자연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감독을 비롯해 화사사장 등에게 섹스를 제공하고 술시중 등을 들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29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사건 후 한 인권단체가 여배우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중 60%가 출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캐스팅 카우치’가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일부 젊은 스타지망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왕년의 할리웃에서 와인스틴과 같은 비행을 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알프렛 히치콕이다. 히치콕은 자기 영화 ‘새들’과 ‘마니’에 기용한 금발미녀 티피 헤드렌에게 끈질기게 성적으로 추근거리다가 거절당했다. 내가 헤드렌과 만났을 때 그는 “그 후로 내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와인스틴 추행사건에 대한 희생자들의 폭로가 뒤늦은 이유도 이런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리웃은 겉으로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또래들끼리 똘똘 뭉치는 폐쇄된 동네여서 한 배우가 영화사의 눈밖에 벗어나면 다른 영화사들로 부터도 금기인물 취급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동네이니 만큼 동료의 비행을 알면서도 너도 나도 ‘나 모르쇠’하는 것도 관례처럼 됐다.
나는 와인스틴을 몇 차례 만났는데 스모선수 같은 체구에 위압적인 인상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지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년의 명제작자들로 영화 사랑이 극진했던 새뮤얼 골드윈, 데이빗 O. 셀즈닉, 대릴 F. 재눅 등에 비유 됐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고약해 욕설을 밥 먹듯이 내뱉고 자기 목표를 위해선 공갈과 협박도 서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유명해 여자들을 마구 더듬어도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와인스틴의 추행은 사실 경악할 일도 아니다. 이번 스캔들로 할리웃에서 ‘캐스팅 카우치’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이 동네의 물이 어느 정도 맑아질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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