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마술 피리’




요지경처럼 마법적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The Magic Flute·사진)를 노래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곁들인 무성영화로 보면 어떨까. 그 파격적인 독창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유일한 독일어 작품으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사로 대화를 하는 ‘징슈필’(Singspiel)이다. ‘징슈필’은 후에 바그너의 ‘악극’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현재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 중인 LA 오페라의 ‘마술 피리’는 대사가 나올 때는 포르테피아노가 반주를 하면서 자막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내용을 보충 설명하고 있다.
무성영화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오페라를 보면서 금방 주인공들이 옛날 무성영화의 인물들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타미노(테너 벤 블리스)가 사랑하는 거대한 거미 모양을 한 ‘밤의 여왕’(소프라노 박소영)의 딸 파미나(소프라노 마리타 죌버그)는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독일 감독 G.W. 팝스트가 만든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1928)의 팜므 파탈 룰루(루이즈 브룩스)를 꼭 닮았다.
또 지혜보다는 포도주를 더 좋아하는 재잘대는 새 잡이 파파게노(바리톤 조나단 미치)가 쓴 모자는 무성영화 시대 ‘돌의 얼굴’이라 불렸던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이 썼던 더비모자다. 그리고 파미나를 납치한 ‘지혜의 사원’의 제사장 자라스트로(베이스 빌헬름 슈빙하머)의 졸개모노스타토스(테너 브렌턴 라이언)는 독일 감독 F. W. 무르나우의 흡혈귀 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1922)의 올록 백작(막스 슈렉)처럼 흉측하게 생겼다.
오페라는 이렇게 무성영화의 흉내를 내면서 아울러 작품 속에 나오는 용, 뱀, 검은 고양이, 개, 물고기, 둥둥 떠다니는 코끼리, 원숭이를 비롯해 요정과 박동하는 붉은 심장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 마치 무성영화로 만든 동화와 만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가수들도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과 같은 편평한 배경 속에 박혀 있듯이 처리해 영화 같은 기분을 더 북돋우는데 이 때문인지 음악이 다소 희생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눈이 번쩍 뜨이면서 경이감에 빠지게 되는 기발 나게 창조적인 제작이다.
이런 무대를 만든 팀은 독일의 코미셰 오퍼 베를린(코믹 오페라 베를린)의 감독인 배리 코스키와 영국의 극단 ‘1927’(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기 나온 해)의 공동 창립자인 수잔 안드레이드와 폴 배릿인데 배릿은 이 오페라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오페라를 보면서 오페라를 사랑하는 내 친구 C가 “독일에서는 별의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오페라를 만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동화와 환상과 마법이 뒤엉켰으면서도 다분히 지적인 ‘마술 피리’는 음의 마술사인 모차르트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오페라다. 상징과 은유가 있는 철학적 깊이와 세속적 희롱기를 함께 지녔는데 위험에 처한 연인들의 영적·육체적 시련과 선과  악의 대결 및 인간성에 대한 가치 추구 그리고 지혜의 중요성을 말한 계몽주의적 작품이기도 하다.
내용과 음악이 진지한 드라마에서 익살극으로 자유롭고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는 ‘마술 피리’는 음악의 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타미노가 마술 피리를 불어 침묵과 유혹의 시험 끝에 불과 물의 시험을 이겨내고 또 타미노의 짝패가 된 파파게노가 작은 종을 울려 괴물들을 물리치고 애인 파파게나(소프라노 바네사 베세라)와 재회하게 되는 것도 다 음악의 힘 때문이다. 이 음악의 힘은 사랑의 힘과도 같은 것이다. 타미노가 파미나의 초상화만 보고 사랑에 빠진 것도 사랑의 막강한 힘을 말해주고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타미노이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인물은 말 많은 파파게노다. 먹고 마시고 자고 사랑하고 아이 많이 낳는 것이 꿈인 파파게노는 ‘케 세라 세라’ 형으로 삶의 기술을 터득한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2막에서 파파게노가 파파게나와 함께 “파파 파파 파파”하면서 부르는 듀엣이 귀엽고 즐겁다.
이번 공연에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사람이 박소영이다. 그는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네”를 맑고 고운 음성으로 아슬아슬 하면서도 매끄럽게 불러 넘겼다. 이 아리아는 대중화한 인기곡으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최고의 높이와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듣고 있으면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데 박소영은 제1막에서 아리아 “오 떨지 말지어다, 내 아들아”를 부를 때는 목소리가 채 다듬어지지 않은 듯 했다. 그 외에 블리스가 잘 불렀고 나머지 가수들의 노래는 무난한 편. 지휘는 LA 오페라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콘론.
‘마술 피리’(Die Zuberfloete)는 1970년에는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리만 그리고 2006년에는 영국의 케네스 브라나에 의해서 오페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마술 피리’는 오는 28일과 3월 2일과 6일 등 세 차례 공연이 남았다. (213)972-8801.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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