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할리웃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나 질보다 양이 앞서간 해였다. 이 해 북미의 총 흥행수입은 할리웃 사상 최고인 111억달러. 그러나 이런 기록은 순전히 메이저들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주라기 월드’ 같은 블락버스터 덕에 이뤄진 것이다.
블락버스터들이 기승을 떨면서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중간급 영화들과 인디 영화들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블락버스터들은 대부분 속편과 컴퓨터 만화영화이거나 만화와 장난감과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들이 아니면 전에 빅히트한 영화들을 변용한 소위 ‘리부트’들이다. 따라서 이런 영화들은 오락적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예술적 가치나 질 면에서는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2015년은 메이저들이 대목을 본 해이긴 했으나 이들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영화들 중 흥행서 참패한 영화들도 꽤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적인 수모를 받은 것이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하고 남편 브래드 핏과 공연한 ‘바닷가에서’다. 또 샌드라 불락이 주연한 ‘우리의 상표는 위기’와 론 하워드가 감독한 ‘바다의 심장 속에서’ 등도 본전도 못 건진 것들. 이 밖에도 ‘팬’ ‘투머로우랜드’ ‘팬태스틱 포’ ‘픽슬즈’ 및 ‘주피터 어센딩’ 등도 큰 손해를 봤다.
한편 영화 전문가들은 올해도 거액의 예산을 들인 속편 위주의 블락버스터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의 2015년도 베스트 텐 중 1위는 지난해 오스카상을 탄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레버넌트’다. 2위와 3위는 각기 ‘스팟라이트’와 ‘45년’이고 나머지는 알파벳 순서대로다.
*‘레버넌트’(The Revenant)-동료들에 의해 동토에 버려진 빈사상태의 모피사냥꾼이 기사회생, 복수를 위해 처절한 생존투쟁을 하면서 설원을 간다.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위대한 영화제작의 표본과도 같은 작품으로 디카프리오가 골든 글로브상과 함께 네 번의 도전 끝에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
*‘스팟라이트’(Spotlight)-가톨릭 보스턴교구 내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 퓰리처상을 탄 보스턴 글로브의 특별취재팀의 활약.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작품상을 탈 확률이 높다.
*‘45년’(45 Years)-결혼 45주년을 맞은 부부(탐 코트니와 샬롯 램플링)가 남편에게 날아든 편지 한 통 때문에 심각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스파이들의 다리’(Bridge of Spies)-냉전시대 미국에 수감된 소련 스파이(마크 라일런스)와 소련에 수감된 미 스파이기 조종사의 교환을 성사시킨 미 변호사(탐 행스)의 실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브루클린’(Brooklyn)-혼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젊은 여자(셔사 로난)가 정착해 결혼까지 하나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한다.
*‘캐롤’(Carol)-1950년대 뉴욕주의 부유한 가정주부이자 어머니(케이트 블랜쳇)가 젊은 백화점 여직원(루니 마라)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시-락’(Chi-Raq)-시카고의 라이벌 갱 간에 살육이 횡행하면서 이를 막으려고 갱스터들의 아내와 애인들이 섹스 스트라이크를 벌인다. 희랍연극 ‘라이시스트라타’를 원작으로 스파이크 리가 감독했다.
*‘희생 수’(Pawn Sacrifice)-소련의 세계 체스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리에브 슈라이버)와 미국의 체스 선수 바비 피셔(토비 맥과이어) 간의 세기의 대결.
*‘슬로 웨스트’(Slow West)-180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의 콜로라도주로 애인을 찾으러 온 청년이 자신의 목적을 숨긴 바운티 헌터(마이클 화스벤더)를 바디가드로 고용한 뒤 목적지로 향한다. 총격적전이 환상적일 만큼 유혈폭력적이요 아름답다.
*‘청춘의 유언’(Testament of Youth)-1차 대전 때 옥스포드대 학업을 중단하고 간호사로 종군한 여자(알리시아 비칸더)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할 뿐 아니라 자기 애인과 오빠가 모두 전사하는 비극을 맞는다.
이 밖에도 ‘탠저린’ ‘청춘’ ‘트럼보’ ‘매드 맥스: 분노의 길’ ‘룸’ ‘트레인렉’ ‘나와 얼과 죽어가는 소녀’ ‘크리드’ 및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등이 기억에 남는다.
와국어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터키의 해변마을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5자매의 생기발랄하면서도 가혹한 현실을 그린 프랑스 영화 ‘야생마’(Mustang)다. 벨기에 영화 ‘최신판 신약’(The Brand New Testament)은 배꼽 빠지게시리 우습다.
훌륭한 기록영화들로는 둘 다 여가수의 삶을 다룬 ‘에이미’(Amy)와 ‘미스 시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Happened, Miss Simone?)와 사이언톨로지의 내막을 폭로한 ‘고잉 클리어’(Going Clear) 및 마약생산과 밀매문제를 다룬 ‘카르텔 랜드’(Cartel Land) 등이 있다. 지난해는 매우 우수한 기록영화들이 많이 나온 해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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