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모두 실화가 원전인 ‘스파이들의 다리’와 ‘스티브 잡스’의 프레스 정킷차 뉴욕엘 다녀왔다. 습기가 축축하니 배인 잿빛 하늘 아래 센트럴파크 앞 숙소를 나서니 시내트라가 부른 ‘오텀 인 뉴욕’이 생각났다. 토요일 저녁은 자유로워 얼마 전 알게된 줄리아드 음대의 강효 바이얼린 교수와 한국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세종 솔로이스츠의 총감독 강경원씨 내외와 함께 저녁을 하면서 음악과 영화와 책에 관해 환담을 했다.
자연히 대화는 음악 얘기로 이어졌는데 토요일은 강효씨가 줄리아드 예비학교의 꼬마 천재들을 가르치는 날이었다. 이 예비학교를 ‘오! 캐롤’을 부른 닐 세다카가 다닌 얘기와 줄리아드의 전설적인 바이얼린 여교수 도로시 디레이 그리고 현재 LA의 디즈니 홀에서 LA필과 시몬 볼리바 심포니가 돌아가면서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등에 관해 얘기를 했다.
우리는 과연 베토벤 사이클을 잘 지휘할 사람으로 누가 가장 적합할까 하는 질문을 하다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좋을 것 같다는데 동의했다. 두 사람은 다 매우 겸손하고 조용하고 따스하며 평화스러워 보였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만해도 줄리아드 바이얼린 교수라는 생각에 공연히 위압감을 느꼈었는데 함께 하기가 너무 편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그들과 헤어진 뒤 호텔로 돌아오면서 얼마 전 월스트릿 저널에서 감동 깊게 읽은 저명 콘서트 피아니스트 바이런 재니스의 글이 생각났다. 그는 ‘다친 영혼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음악은 아름다운 것 외에도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면서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한 손가락으로 음 하나를 튕기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니스는 이어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1960년 냉전의 분위기가 고조에 다다랐을 때 나는 소련과의 첫 번째 문화교류의 사절로 모스크바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내가 무대에 오르자 청중들은 “U-2, U-2”와 “클리번, 클리번”을 외치면서 야유를 했다. U-2는 소련이 그 때 막 격추한 미 스파이기의 이름이고 ‘클리번’은 2년 전에 국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경연대회서 우승한 밴 클라이번이다. 그들에게는 클라이번만이 미국의 유일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인 것처럼 보였다.
청중이 조용해진 뒤 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G장조)와 슈만의 ‘아라베스크’ 그리고 쇼팽의 ‘장송행진곡’ 소나타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귀가 먹을 것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청중들이 무대로 몰려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았다.
재니스는 음악은 이렇게 적대감을 눈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서 음악은 영혼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육체적 문제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11세 때 사고로 새끼손가락이 영구히 마비됐고 지난 40여년 간을 관절염에 시달리면서도 늘 음악이 치유의 힘이 되었다고 한다. 재니스는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치유 능력을 말한 ‘음악적 약’이 자기 생애의 시도동기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음악은 참으로 다치고 피곤한 영혼을 위한 명약이다. 나도 마음이 힘들 땐 클래시컬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한다. 우리나라와 아일랜드의 노래가 슬픈 것이 많은 까닭은 둘 다 어려운 역사를 지닌 탓인데 두 민족이 다 그런 슬픔을 슬픈 노래로 달래고 있다.
피곤한 직장의 하루가 끝나고 귀가 길에 술집에 들러 음주 방가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모차르트도 작곡한 ‘타펠무직’은 귀족들의 저녁식사 소화제 구실을 했고 낯선 사람들끼리 탄 엘리베이터 안의 긴장을 풀라고 트는 것이 엘리베이터 음악이다. 또 태아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IQ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 효과’도 있다.
음악의 질병 치유능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파라셀루스의대 여교수 베라 브란데스는 음악을 처방약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은 환자의 문제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을 처방해 주는데 4주간 주 5일 매일 30분씩 이 음악을 들었더니 질병치료에 큰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란데스가 다루는 질병은 주로 정신적 불안정과 통증과 같은 문명병으로 음악처방은 전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뉴욕타임스).
런던에서는 음악을 각종 지하철 범죄 퇴치용으로 써 효과를 봤다. 지하철 스피커로 비발디와 헨델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었더니 날치기 퍽치기 및 낙서 등 각종 범죄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트는 음악은 후기 낭만파 이전의 바로크나 고전파 음악이라고 한다(LA타임스).
‘오디세이’의 사이렌은 그 노래 소리로 인간의 혼을 홀려 사람 잡는 능력을 지닌 반면 음악은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공상 과학영화 ‘소일런트 그린’에서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안락사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침대 앞 대형 스크린에 산과 들과 바다와 태양과 전원풍경이 펼쳐지면서(사진) 흐르는 음악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제 1악장이다. 그는 이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게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능하다면 나는 말러의 ‘부활’교향곡을 들으며 이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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