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프랭크 시내트라



2015년은 생전 ‘올 블루 아이즈’라 불린 프랭크 시내트라(12/15/1915~5/14/1998)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목소리’요 ‘이사장’이라고도 불린 시내트라(사진)는 극적인 창법으로 팝송에 품위와 스타일을 부여한 가수로 팝송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또 우리가 그것을 듣고 감지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은 사람이다.
특히 그의 악구를 걸고넘어지는 듯한 창법은 그 어떤 가수도 따를 사람이 없는데 그가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으로 이런 창법을 구사해 부르는 ‘토치송’을 듣노라면 삭신이 다 노곤해진다.  시내트라의 노래는 까칠까칠한 재즈성 음색을 지녔는데 그가 이런 음색으로 넋두리나 하듯 다소 되는대로 부르는 노래들은 로맨틱하다 못해 섹시하기까지 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노래들인 ‘나이스 앤 이지’ ‘레이디 이즈 어 트램프’ ‘컴 플라이 위드 미’ ‘비위치트’ ‘아이브 갓 유 언더 마이 스킨’ ‘영 앳 하트’ ‘나잇 앤 데이’ ‘아일 네버 스마일 어겐’ 및 ‘오텀 인 뉴욕’ 등을 듣고 있으면 매캐한 연기가 자옥한 어두컴컴한 살룬의 체온이 느껴진다.
시내트라도 자신을 ‘살룬가수’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가 가수 초기시절 살룬에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내트라는 갱스터들과도 알게 됐고 후에 마피아와 한 패라는 말을 들었다.  
영화 ‘워터프론트’의 무대인 뉴저지주 항구도시 호보켄의 이탈리안 부모 밑에서 태어난 시내트라는 가수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때부터 야심이 대단했다. 살룬에서 노래 부르다가 1939년 뉴욕 빅밴드의 거물 해리 제임스밴드에 의해 발탁됐고 이어 타미 도시의 빅밴드로 옮겼다. 여기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1941년께 솔로로 전향했다. 이로부터 시내트라는 스타 가수로서 최초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특히 10대 소녀들이 주축인 바비 삭서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대며 그를 따랐다.
1940년대 들어 할리웃에도 진출, 영화에 나오면서 시내트라는 가수와 배우 노릇을 모두 즐기며 첫 아내 낸시와 이혼, 할리웃의 최고의 글래머스타 에이바 가드너와 결혼했다. 가드너는 시내트라 인생의 가장 큰 사랑이었다. 그의 세 번째 아내도 배우인 미아 패로다. 시내트라가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낸시와 프랭크 주니어도 가수로 낸시의 빅히트 송으로는 ‘디즈 부츠 아 메이드 포 워킨’이 있다.
그러나 시내트라가 나이 30대에 들면서 바비 삭서들도 떠나고 1940년대 말부터 그의 가수와 배우로서의 삶이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이런 슬럼프에서 그를 구해준 것이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 직전 후의 하와이 주둔 미육군 병영 내 군인들의 삶을 그린 영화에서 시내트라는 ‘케 세라 세라’ 스타일의 졸병으로 나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이와 함께 1953년 그가 음반 전속사를 컬럼비아에서 캐피톨 레코드로 옮기면서 시내트라는 가수와 배우로서 재생한다. 팝송의 클래식이 된 그의 많은 히트곡들은 캐피톨과의 9년 전속기간에 부른 것들이다. 여기서 시내트라는 비로소 가수로서 성장하고 완성됐다.
시내트라는 1960년대 밀어닥친 락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노래를 “가짜요 더럽고 어리석은 음악”이라며 경멸했다.
시내트라는 1960년대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피터 로포드 및 조 E. 비숍 등과 함께 ‘랫 팩’이라 불리며 샌즈호텔을 중심으로 베가스를 주름잡았다. 이들이 나온 영화 ‘오션의 11인’을 보면 장난 심한 아이들 같은 이 무리들의 생활스타일을 잘 알 수 있다.
여자는 모두 그와 자기를 원했고 남자는 모두 그처럼 되기를 원했다는 시내트라는 인종차별을 증오했고 자선에도 인색치 않았으나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화를 잘 냈고 주먹질과 욕을 서슴지 않던 매우 오만한 사람으로 여자를 신발 흙털개처럼 취급했다.
나는 시내트라가 죽던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날 나는 LA 윌셔의 구 앰배서더 호텔 건너편에 있는 바 겸 식당 H.M.S 바운티(지금도 있다)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는데 나를 서브하던 나이 먹은 미국인 웨이트리스가 내게 “오늘 시내트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다”면서 슬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푹 패인 양 볼과 허기진 눈동자에 작고 야윈 몸을 가진 시내트라의 러브송이 듣는 사람의 가슴에 간절히 어필해 오는 까닭은 ‘고독의 계관시인’이라 불린 그가 노래를 통해 발가벗은 감정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노래들은 솔직하고 가깝고 숨 쉬고 정열적이며 또 낭만적이며 센티멘탈하다. 그는 우리를 격하게 만드는 팝송의 감정적 힘을 잘 파악했던 가수였다.
시내트라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워너 브라더스 홈 엔터테인먼트(WBHE)는 그의 영화 5편을 묶은 블루-레이 ‘프랭크 시내트라: 5편 컬렉션’(Frank Sinatra: 5 Film Collection)을 출시했다. ‘앵커즈 어웨이’ ‘온 더 타운’ ‘로빈과 7인의 건달들’ ‘오션의 11인’ ‘가이즈 앤 달즈’가 수록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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