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종로 3가에 개관한 한국 최초의 영화관으로 나운규의 ‘아리랑’을 상영한 단성사가 수 년 전 폐관, 경매에 내놓았지만 3차 경매까지 유찰돼 아직까지 새 주인을 못 찾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아, 단성사’하는 한숨과 함께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영화 구경을 단체로 수업시간 전 꼭두새벽에 담임선생 인솔 하에 극장에 가서 했다. 혼자 따로 극장에 갔다가 걸리면 정학을 받았다. 무지한 학칙이었다.
내가 특히 단성사의 폐관에 남다른 석별의 정을 느끼는 것은 경복중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단체 관람한 ‘셰인’을 여기서 봤기 때문이다. 말을 탄 셰인이 그랜드 티튼을 배경으로 멀리서 조이의 농가를 향해 다가오는 첫 장면부터 “셰인 컴백”하고 외치는 조이를 남겨 놓고 셰인이 말을 타고 그랜드 티튼을 타고 넘는 마지막 장면까지 넋을 잃고 봤다.
이렇게 꼬마 때 처음 간 단성사는 내가 어른이 돼서도 자주 갔던 극장이다. ‘대경주’ ‘네바다 스미스’ ‘알라모’ ‘대장 부리바’ ‘나바론’ ‘졸업’ 및 ‘줄루전쟁’ 등도 다 여기서 봤다.
당시 종로 3가는 극장가로 단성사 건너편에는 피카디리가 있었고 피카디리에서 종로길 건너편에는 서울극장이 있었다. 학생 때 피카디리에서 단체 관람한 영화가 후에 제임스 본드가 된 로저 모어가 나온 ‘기적’인데 그 밖에도 ‘양귀비도 꽃이다’ ‘633 비행중대’ ‘황야의 7인’ ‘엘 시드’ 및 ‘007/위기일발’ 등을 여기서 봤다. 서울극장에서는 고등학교에 붙은 날 폴 뉴만이 나온 권투영화 ‘상처뿐인 영광’을 봤고 ‘형제는 용감했다’도 여기서 봤다.
그런데 그 때 단성사나 피카디리에 가려면 공연히 남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피카디리 옆 골목이 소위 ‘종3’이라 불리는 유명한 사창가로 때론 아가씨들이 극장 근처에까지 나와 유객행위를 했었다.
피카디리는 멀티플렉스로 개조돼 운영되고 있다고 하나 내가 어렸을 때 다니던 극장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난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면서 인격 형성이 되고 또 자랐다고 해도 될 만큼 영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들 극장이 폐쇄됐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과거의 살점이 한 줌씩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곤 한다.
단성사나 피카디리는 일류극장이어서 고등학교를 나와서야 자주 갔고 중·고등학생 때는 2류 극장들인 현 조선호텔 앞의 경남극장과 서대문의 동양극장 그리고 명동극장과 용산에 있던 성남극장이 내 단골이었다.
동양극장은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해 주다시피 한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본 곳. ‘쾌걸 조로’와 ‘7인의 신부’도 여기서 봤다. 성남극장에서는 ‘제17 포로수용소’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봤고 명동극장에서는 ‘뜨거운 것이 좋아’와 ‘태양은 뜨거워’ 및 ‘초연’과 내가 좋아하던 수전 헤이워드가 나온 신파극 ‘백 스트릿’을 봤다.
이들 극장 중 내가 제일 자주 간 곳이 경남극장. 여기서 고1 때 앨란 래드가 주연한 웨스턴 ‘대혈산’을 보고 나오다가 단속원에게 걸려 2주 정학을 받았다. 그러나 난 정학기간에도 회개하지 않고 마치 벌을 명예의 배지처럼 착용하고 열심히 극장엘 갔다. ‘노인과 바다’와 ‘피서지에서 생긴 일’과 ‘기관총 켈리’와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및 ‘십계’도 여기서 봤다.
이 네 극장 외에도 싸구려 극장들인 계림, 마포, 우미관, 광무극장 그리고 화신백화점 꼭대기에 있던 화신극장 등 서울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안 가본 극장이 없다. 화신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이미 다른 극장에서 하도 많이 돌려 화면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옛날 극장 이름을 생각하면 극장마다 대뜸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국도극장은 어머니와 같이 본 ‘쿼바디스’, 을지극장은 ‘파계’, 명보극장은 존 웨인이 징기스칸으로 나온 ‘정복자’, 국제극장은 마리오 란자가 노래 부르는 ‘세레나데’, 중앙극장은 역시 존 웨인이 나온 ‘리오 브라보’, 수도극장은 이탈리아의 육체파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나온 ‘외인부대’, 아카데미는 루이 말르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서대문극장은 장-폴 벨몽도가 나온 ‘네 멋대로 해라’.
단성사의 폐관은 급속히 변화하는 영화산업 구조 탓이라고 하겠다. 단독관이던 단성사도 시류에 따라 멀티플렉스로 개조했으나 식당가와 샤핑가까지 복합 운영하는 3, 4개의 대기업 유통망으로 재편된 배급시장 구조에 밀려 부도를 내면서 폐관했다는 소식이다. 그런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로 LA를 비롯한 대도시의 단독 상영관들도 모두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기사를 쓰려고 구글을 들춰 찾아낸 사진을 보니 상영 중인 영화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인-인디언 혼혈아로 나온 웨스턴 ‘평원아’(Flaming Star·1960)이고 그 위에 차기 상영작인 말론 브랜도의 유일한 감독 작품이자 주연도 겸한 ‘애꾸눈 잭크’(One-Eyed Jacks·1961)와 프랑스배우 장 마레가 나오는 칼싸움 영화 ‘기사 푸라카스’(Le Capitaine Pracasse·1961)의 간판이 보인다. (사진)
참 옛날이다. 단성사의 폐관을 보면서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마치 ‘황혼열차’를 탄 기분으로 쓸쓸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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