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3월 7일 금요일

구글글래스



3월2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파이크 존스가 각본상을 받은 ‘허’(Her-존스 감독)는 가까운 미래 LA에 사는 고독한 젊은 연애편지 대필 작가 디오도어(와킨 피닉스)와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인 새만사(스칼렛 조핸슨 음성연기)와의 관계를 그린 공상과학 러브 스토리다.
궁극적인 고독에 관한 얘기로 존스 감독은 온라인으로 데이트를 하고 대화를 텍스트로 대신하는 컴퓨터 없이는 못 사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을 악의 없이 희롱하고 있다. 인간 접촉의 필요와 당위성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영화로 디오도어(사진)를 비롯해 영화 속의 사람들은 귀에 리시버를 꽂고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
인파 속의 행인들이 각기 다른 표정과 제스처를 써가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소슬하게 느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난 거리에서 혼자서 제스처를 써가면서 마치 배우가 무대에서 독백을 하듯이 중얼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이 꼭 실성한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편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기술이 마침내는 인간성을 대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이런 얘기를 한다). 얼마 전 조지 클루니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자신의 셀폰을 들어 보이면서 “이 망할 놈의 것 때문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특히 스마트폰처럼 e메일을 주고받고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며 또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스마트글래스인 구글글래스 시판을 앞두고 크게 우려되고 있는 것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다.
구글글래스에 대한 이런 우려와 반감은 급기야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폭력행위로까지 비화했다. 구글글래스 성능 실험자인 새라 슬로컴(34)이 이 안경을 끼고 왕년의 히피의 터전인 헤이트-애쉬베리에 있는 한 바에 들렀다가 손님들로부터 큰 봉변을 당했다고 최근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손님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모습이 구글글래스에 의해 기록될 가능성 때문에 슬로컴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요구하면서 모욕적인 욕설과 함께 바를 닦는 걸레를 집어던지면서 악의에 찬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시애틀의 한 바에서는 구글글래스 착용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진보와 발전에 대한 추구와 미지에 대한 도전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이카러스가 있었기에 지금 우주선이 하늘을 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에 너무 가까이 비상하다가 몸에 붙인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바다로 떨어져 익사한 이카러스의 죽음은 이런 발전 지향과 함께 오만에 가까운 인간의 지나친 확신이 낳을 수도 있는 부작용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눈과 비를 인공으로 만들고 남의 정자를 빌려 아기를 낳고 생명체 복제까지 하고 있다. 아마 지금 어디선가는 인간 창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디스토피아에 관한 영화로 권하고 싶은 것이 찰턴 헤스턴과 에드워드 G. 로빈슨(그의 마지막 영화)이 나오는 ‘소일런트 그린’(Soylent Greenㆍ1973)이다.
2022년(8년밖에 안 남았네) 오염된 대기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온 그리고 인구 포화상태의 식량난에 시달리는 맨해턴을 무대로 전개되는 공상 과학영화다. G.로빈슨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이제는 모두 없어진 살아 숨 쉬는 푸른 숲과 야생동물 그리고 강과 바다가 나오는 스크린을 보면서 방조된 자살을 하는 끝부분 장면이 인상적이다.
난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뎠을 때도 ‘거긴 왜 가. 그냥 놔두고 감상할 일이지’라고 생각한 퇴행성 인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성적이 엉망이어서 그런지 컴퓨터라는 기계만  봐도 겁이 더럭 난다.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아직도 미개한 상태로 남아 있겠지만 구글글래스 끼고 싶은 생각은 전연 없다. 사람들이 모두 로보캅처럼 구글글래스를 끼고 다니면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최근 매년 전 미국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보행자들 중 10%가 셀폰으로 문자를 전송하다가 다쳤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모두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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