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워터 디바이너’감독·주연 러셀 크로




“10여년 구상 끝 감독 데뷔… 배우보다 흥미”


부모-자식 관계는 모든 것 초월, 영적 접근능력까지 생겨
여행은 항상 마법같아… 최근 한국방문도 정말 멋진 경험


1차 대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4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세 아들을 찾아 터키로 간 호주농부 조슈아의 전쟁 액션영화이자 가족 드라마인‘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로 감독에 데뷔하고 주연도 한 러셀 크로(5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제목은 나뭇가지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감정의 기폭이 심해 심술첨지로 알려진 크로는 자기가 처음 감독한 영화를 위한 인터뷰여서 그런지 일어서서 상소리를 섞은 농담을 하면서 신이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비만해 보이는 호남형의 크로는 굵은 음성으로 유머를 구사해 가며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진지했다.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크로는 “나는 한국에서 정말로 훌륭하고 멋있는 경험을 했다”면서“크게 즐겼던 나라”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필자가 이에“다시 방문하라”고 하자 그는 윙크로 대답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터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터키는 역사가 깊은 나라로 방문하기에 멋있는 나라다. 아름답고 볼 것이 많은 나라다. 나는 이스탄불을 비롯해 터키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터키 정부와 영화계가 우리를 진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화 끝에 가서 당신과 당신이 묵던 콘스탄티노플 호텔의 매니저로 전쟁미망인 역의 올가 쿠리렌코가 서로 미소를 주고받던데 이는 둘이 그 뒤로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것을 뜻하는지.
“그것은 당신의 추측일 뿐이다. 둘은 영화에서 손도 안 잡고 키스도 안 한다. 둘은 서로 슬픔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으로 영화 끝에 가서 둘 간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소지는 있으나 우린 그것이 어떤 소지인지를 결코 모른다. 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는 있지만 영화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끝난다.”

-영화에서 터키를 침공한 그리스 군을 일종의 악한들로 묘사했는데 이 영화를 반 그리스적이라고 불러도 되겠는가.
“난 이 영화가 그리스를 비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터키와 그리스 간의 충돌은 역사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오토만제국 초기로까지 올라간다. 영화는 그리스 측의 눈으로 본 얘기가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들들의 유골을 찾으러 터키에 간 호주 농부의 것이다.”

-오토만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조금은 안다. 이 영화는 그 제국의 융성이 아닌 해체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내가 터키여행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터키공화국의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이 사용했던 방에 앉았던 일이다. 침대와 그가 피우던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가 그대로 있더라. 터키 국민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조슈아(가운데)가 아들의 유골을 찾으러 격전지로 들어가는 것을 영국군이 저지하고 있다.
“호주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피터 위어, 프레드 스켑시, 브루스 베레스포드, 필립 노이스 및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들의 작품을 생각했다. 이 영화는 비록 규모는 커 보이나 독립영화다. 나는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싸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당신은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아들들과의 관계가 가까운지. 
“부모란 아이를 가지자마자 세상만사를 부모의 프리즘으로 보게 된다. 자식과의 연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영화 처음에 조슈아는 손에 든 두 개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정확한가.
“철사나 나뭇가지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일은 호주에서는 180년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과학적인 일이다. 호주뿐 아니라 다른 곳의 건조한 땅에서도 그 방법을 쓸 수가 있다.”

-조슈아는 영화에서 아들들의 유골을 찾을 때도 그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조슈아는 아들의 일기를 참고로 유골을 찾아낸다. 아들의 소속부대가 어디서 싸웠다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영적 능력을 동원해 지하수 찾는 식으로 유골을 찾았다. 부모란 자식에 대해 영적 접근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법이 아니라 사실적인 일이다.”

-당신은 두 아들(11세와 8세)을 어떻게 훌륭한 아들들로 키우고 있는가.
“난 직업 때문에 여행을 자주해 다른 부모들보다 그 문제에 있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이젠 보다 많은 시간을 호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매우 강하고 기본적인 일의 윤리를 저버리는 것을 가르쳐주는 셈이다. 우린 늘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에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노동의 윤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왜 감독을 하려고 하나.
“돈이나 영예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정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수년간 머리에 구상을 해왔다. 감독을 하겠다는 것은 14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도전해 볼 만한 각본을 찾아보지 못했다. 극영화 대신 난 그동안 세 편의 장편 기록영화와 30여편의 비디오 클립을 찍었는데 이것이 나의 감독교육인 셈이다. 이제 감독으로 나선 것은 이 영화의 각본 때문이다. 글을 읽고 그것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 때문이다. 글을 읽은 뒤 내 가슴으로부터 이 글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만이 이 각본을 생명체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여섯 살 때부터 배우 노릇을 했기 때문에 세트에서의 지식은 충분히 갖춰 그것이 감독에 도움이 됐다. 따라서 자신도 있었고 일에서 위안도 받았다.” 

-당신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전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잘 따르는가.
“다니엘(스펜서)은 훌륭한 엄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작정한 규칙은 영화를 찍을 때 아내와 내가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매번 다른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고 친구도 자꾸 바뀌는 바람에 아이들의 근본에 심한 변동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젠 내가 영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을 못 본다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다.”

-다니엘과 아직도 결혼한 상태인가.
“별거했으나 아직 이혼은 안 했다.”

-이 영화는 호주에서 이미 빅히트를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기대치 않았던 일이다. 2014년의 최고 흥행성적을 낸 호주 영화다. 특히 미국의 대작들과 겨뤄 흥행에서 이겼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호주의 오스카상인 작품과 의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5개의 호주영화비평가협회 상도 받았다. 과거 15년간 내 영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들이 상을 줬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워터 디바이너는 사실 내 아버지다. 1978년인데 지하의 깨진 수도파이프 위치를 찾아낸 사람이 내 아버지다. 아버진 그 때 집에서 철사 옷걸이를 가지고 나와 파이프가 깨어진 곳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훌륭한 일들을 가르쳐 줬다. 그는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난 어렸을 때 밤에 몰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을 어디서 벌어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겁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내가 그런 문제를 알도록 하지 않았다. 축구화를 비롯해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사 줬다. 아버지의 제일 법칙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공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엄격하지 않으면서도 잘 지도를 했다. 음성을 높인 적도 없다. 내가 15세가 되기 전까진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여행을 자주 하는데 훌륭한 여행자인지.
“가능하면 새 곳의 진수를 배우려고 한다. 새로운 곳의 문화적 유산을 볼 때면 마법에 걸리는 것 같다. 최근에 처음으로 한국엘 갔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다. 새로운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또 그것에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감독 데뷔에 대한 소감은 어떤지. 
“내 나이와 내 경험에서 본다면 감독은 배우보다 훨씬 더 흥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 감독 데뷔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배우들이 연습 없이 단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통례인데 난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배우들과 2주간의 리허설을 했다. 그래야 배우들이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으로 준비가 제대로 된다. 따라서 준비가 작품의 좋은 성공의 열쇄라고 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투모로랜드 (Tomorrowland)


과학자 프랭크(조지 클루니·왼쪽)와 케이시(브릿 로벗슨)는 인류를 구하려고 투모로랜드로 간다

“순순한 동심이여, 인류를 구원하라”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공상과학 모험영화로 어른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정체가 불분명한 아주 평범한 영화다. 디즈니 작품으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투모로랜드 선전 영화 같은데 시각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은 눈부시다. 그러나 인류의 참담한 미래 세상을 구원할 사람들은 아이들밖에 없다는 주제를 공연히 복잡하고 난삽하게 서술해 전연 영화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상영시간 129분이 3시간은 되는 것 같다.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간성의 발휘와 환경보호 그리고 우리 주위의 세상사에 대한 인간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순수한 동심에 의한 세상 구원 등 온갖 좋은 소리는 다하고 있으나 서술 능력이 유연치가 못하고 설교조여서 지루한 공염불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아이언 자이언트’ ‘라타투이’ ‘인크레더블즈’ 같은 훌륭한 만화영화를 만든 브래드 버드가 감독했는데 선의적인 모험과 상상의 얘기를 신나는 액션을 곁들여 날렵하고 흥분되게 연출하지 못했다. 내용을 극적으로 흥미 있고 역동력 있게 몰고 가는 모험심이 결여돼 무미한 맹물 같은 영화가 됐다.    
영화는 두 해설자의 서술로 진행된다(처음부터 뭔가 잘 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심술첨지 같은 과학자 프랭크(클루니)가 자기가 어렸을(토머스 로빈슨) 때인 1964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등에 지고 비행할 수 있는 젯팩을 만들어 출품하러 갔다가 심사위원 데이빗(휴 로리)에게 퇴짜 맞았다고 회상한다. 
이 때 소년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소녀 아테나(래피 캐시디)가 프랭크에게 접근, ‘T’자가 적힌 옷깃에 꽂는 핀을 준다. 그리고 프랭크는 이 핀으로 인해 거대한 로봇들과 초현대적 건물들이 있는 상상이 자유롭게 날개를 펼 수 있는 투모로랜드에 도착한다.
여기서 얘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해설자는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의 폐쇄된 우주선 발사기지 옆에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피어스 개그논)과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과학적 두뇌가 뛰어난 케이시(브릿 로벗슨)로 바뀐다. 그리고 케이시도 ‘T’핀을 받아 투모로랜드로 간다. 그러나 케이시의 여행은 불과 2분 만에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에게 핀을 준 사람과 다시 투모로랜드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생각난다) 애를 쓰는 케이시 앞에 아테나가 나타나 미래의 위험을 예고하면서 아울러 오래 전에 세계 종말에 관한 사실을 발견, 투모로랜드에서 쫓겨난 프랭크를 찾아가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만난 프랭크와 케이시가 부녀의 관계를 이루면서 함께 인류를 세상 종말에서 구원하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겪는다. 이 과정이 스릴러 형식을 취했으나 별 스릴 없다. 진짜 주인공은 케이시로 클루니는 사실 조연급인데 연기들도 무덤덤하다. PG.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 딸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My Daughter)


르네(카트린 드뇌브·왼쪽)와 모리스(기욤 카네)가 카지노 경영을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카지노 전쟁과 딸의 배신·실종 다룬 실화


‘미친 사랑’과 모녀간의 힘겨루기와 배신 그리고 마피아가 개입된 카지노 경영을 둘러싼 세력다툼의 소프오페라요 신파극으로 프랑스의 명장 앙드레 테시네가 감독하고 베테런 카트린 드뇌브와 연기파 기욤 카네가 나온 영화치곤 단타 정도의 영화로 끝나고 말았다.
현재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절경의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1970~1980년에 벌어진 카지노 전쟁과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실종에 관한 실화로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너무 달라 두 편의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흥미진진한 소재가 긴박감과 스릴 그리고 열정이 결여된 채 연출돼 아쉬움이 있지만 보고 즐길 만은 하다.
결혼에 실패한 독립심 강하고 도전적인 젊은 여인 아녜스(아델 아넬)가 아프리카에서 위풍당당한 암사자 같은 어머니 르네(드뇌브)가 카지노를 경영하는 프렌치 리비에라로 돌아온다. 두 사람 외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르네의 재정고문인 야심만만한 모리스(카네).
그런데 아녜스가 자기보다 10세가 위인 모리스에게 깊이 빠진다. 그러나 모리스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남자. 여기에 르네의 카지노를 노리는 마피아가 마수를 뻗치면서 모리스에게 협조하라고 종용한다. 
르네의 밑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리스는 마피아와 결탁하기로 결심하고 여기에 자기 없으면 못 산다는 아녜스를 끌어들인다. 아녜스는 독립하겠다면서 사망한 아버지가 남겨준 카지노 경영 지분을 내놓으라고 르네에게 대어든다. 결국 딸의 배신으로 인해 르네는 카지노에서 축출 당한다. 
그리고 모리스에게 집착하는 아녜스가 실종된다. 여기서 영화는 무슨 기록영화 만들 듯이 현재의 프랑스 법정으로 넘어와 아녜스 실종을 살인사건으로 취급하는 검찰에 의해 살인혐의자로 기소된 모리스에 대한 재판과정이 묘사된다(실제 모리스를 찍은 뉴스필름이 사용됐다). 모리스는 무죄에 이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아녜스의 사체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장면 장면을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고 선정적이지만 전체적으로 플롯이 일사분란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실타래 풀리듯 느슨해 극적 흥분감이나 자극성을 느끼기가 힘들다. 맥이 빠지는 연출이다. 연기는 그저 무난한 정도다. 성인용. 로열극장(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잊혀진 전쟁




25일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할리웃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6.25동란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됐고 LA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다.  
전쟁은 인간애와 희생 그리고 갈등과 액션 등 극적 요소가 많아 할리웃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오스카 작품상을 탄 ‘윙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시즈 미니버’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패튼’ ‘디어 헌터’ ‘플래툰’ 및 ‘허트 라커’ 등은 다 전쟁영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이락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역대 여러 전쟁에 관한 훌륭한 영화를 만든 것에 비하면 3만3,000여명에 이르는 전사자와 9만2,0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낸 한국전에 관한 뛰어난 영화는 극히 미미하다.
한국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이 감독하고 앨란 앨다가 주연한 ‘매쉬’(M.A.S.H.)로 이 영화는 한국전에 파견된 미군 이동 외과병원에 관한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매쉬’는 영화보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인기 TV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 그런데 LA에서 찍은 시리즈는 한국과 한국인을 엿장수 마음대로 식으로 묘사해 미주 한인들의 집단항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할리웃이 한국전에 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 전쟁이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나 이미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차 대전 영화에 물린 관객들이 더 이상 전쟁영화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참전용사들로 이들 세대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제한전쟁인 한국전보다는 선이 악을 이긴 세계적인 2차 대전을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전은 또 2차 대전의 위대한 야망과 TV로 중계된 베트남전의 생생한 현장감이 모두 결여돼 할리웃의 홀대를 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을 다룬 영화들 중에 볼만한 것들도 더러 있다. 먼저 둘 다 터프가이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만든 ‘철모’(The Steel Helmet)와 ‘착검’(Fixed Bayonets)은 모두 강력하고 긴박감 있고 또 치열하며 인간성 있는 영화들로 ‘착검’에는 제임스 딘이 단역으로 나온다.
그레고리 펙이 소대장으로 나온 ‘포크 찹 힐’(Pork Chop Hill)도 준수한 한국전 영화다. 휴전 직전 서로들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무모한 고지전을 벌이는 얘기로 실화다. 걸작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만든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했다.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가 나온 ‘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뒤 탈출하려다가 인민군에 의해 사살된 미 공군 파일럿의 얘기다. 그런데 홀든은 제니퍼 존스와 공연한 애정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에서는 홍콩 주재 미 기자로 한국전을 취재하다가 순직, 한국전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은 셈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트기 파일럿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공연한 ‘헌터즈’(The Hunters)가 있다. 그리고 역시 미치너의 소설이 원전인 ‘사요나라’(Sayonara)에서는 말론 브랜도가 한국전 참전 파일럿으로 나와 전쟁은 안 하고 일본 무대배우와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
록 허드슨이 주연한 ‘전송가’(Battle Hymn·사진)는 실화여서 한국인들에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지난 3월 97세로 사망한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린 딘 헤스 미 공군대령의 얘기로 여기서 말론 브랜도의 전 부인인 인도계 안나 카쉬피가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 양은순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 나온다.
한국전에 참전, 중공군의 포로가 돼 세뇌를 당한 뒤 귀국한 미군의 정치인 암살시도를 그린 ‘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하는 좋은 정치 스릴러다.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에 관한 영화로는 그레고리 펙이 나온 ‘맥아더’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오 인천!’이 있는데 ‘맥아더’가 훨씬 낫다.
이밖에도 볼만한 것들로는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 ‘전쟁의 사나이들’(Men in War)과 장진호 후퇴를 그린 ‘지옥 철수’(Retreat Hell)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에 영국군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지옥의 한국’(Hell in Korea)과 앨란 래드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모든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 및 로버트 레드포드가 육군 졸병으로 나온 ‘전쟁 사냥꾼’(War Hunt) 등이 있다. TCM 채널에서는 23~25일 32편의 전쟁영화를 마라톤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웰컴 투 뉴욕’ 재클린 비셋




“섹스장면 논란됐지만 깊이 있고 복잡한 영화”


페라라 감독·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일하고 싶어 출연
요즘 여배우들 너무 상품화…삶의 고통도 모르고 연기


최근 개봉된 아벨 페라라 감독의‘웰컴 투 뉴욕’에서 2011년 뉴욕의 호텔 하녀를 성추행한 뒤 국제통화기금 총재직을 사임한 프랑스인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캉(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아내로 나온 재클린 비셋(70)과의 인터뷰가 4월30일 웨스트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폴 뉴만과 스티브 맥퀸(‘불릿’)과 같은 수퍼스타들과 공연하며 할리웃의 지적이면서도 섹시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비셋은 얼굴과 손과 목에 주름이 지긴 했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특히 비수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는데 우아한 귀부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셋은 통일교의 돈으로 만든 맥아더(로렌스 올리비에)의 인천상륙작전을 그린‘인천’(1981)에 출연 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방문했던 한국이 아름다웠다”면서“한국을 좋아한다”며 반가워했다.   

-영화에 나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스트라우스-캉의 사건이 났을 때 그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영화에 나온 것은 페라라감독과 일하고 싶어서였다. 그와 영화에 대해 얘기한 뒤 TV를 통해 스트라우스-캉의 아내 안이 매우 지적이요 광채가 나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제라르와는 구면이어서 호흡 맞추기도 좋겠다고 느꼈다. 제라르는 야성적이나 시적이요 부드러운 점도 가진 사람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자기가 믿고 모든 것을 걸었던 남편이 그른 사람이지만 안은 진실로 남편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다. 안은 매우 조직적이요, 매사를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는 사람으로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난 그녀에 관해 많이 읽었다. 그리고 그녀가 늘 미소 짓고 따스하며 빛나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그 역을 진실로 맡고 싶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로 스트라우스-캉을 옹호하는 편이어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출품됐지만 영화 처음의 섹스파티 장면을 자르라는 요구를 페라라가 거절해 선정이 거부됐다. 그러나 그 장면은 에로틱한 것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스트라우스-캉의 성격과 인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영화는 섹스영화가 아니라 깊이가 있고 복잡한 영화다. 따라서 난 영화에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당초 내 역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맡기로 했다가 그녀가 물러나는 바람에 내게 주어졌다.”

-당신의 남편은 섹스 중독자인 괴물인데도 당신은 그의 곁을 굳건히 지키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안은 남편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그가 비록 섹스 중독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은 사랑이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스티브 맥퀸을 비롯해 멋쟁이 스타들과 영화에 나오던 때가 그리운가.
“아니다. 스티브는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고 영화들도 좋았지만 미국 스튜디오의 대작에서 내 역이란 별로 연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영화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난 지금하고 있는 독립영화에서의 역이 더 좋다. 깊고 복잡한 성격의 여자 역이 있는 미국영화가 있다면 기꺼이 나오겠지만 그런 역을 찾기가 어렵다.”

-안을 만났는가.
안이 남편 스트라우스-캉과 법정을 나서고 있다.
“그녀가 별로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은 줄 안다. 안은 영화를 보고 혹평을 했다고 들었다. 난 안을 그녀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연기했다.”

-당신의 인생관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난 삶을 사랑한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매우 낙담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믿음을 잃었다. 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데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그것들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말까하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난 세상사에 관심을 버릴 수가 없고 그 같은 관심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난 인생과 우정 등 모든 것에서 진짜와 꾸미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끼며 진실을 사랑한다.”

-일 안할 때는 어떻게 소일하는가.
“난 휴가도 거의 안 간다. 가끔 유럽에 가서 친구들과 우정을 새롭게 하는 것이 전부다. 내 친구들은 다 내가 20대 때 만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늘 집을 가꾸느라 분주하다. 같은 집에서 지난 40년간 살고 있다. 그 집은 나의 뿌리나 마찬가지다.”

-당신은 여행할 때 비행기 안에서 무엇을 읽으며 호텔은 어떤 곳에 드는가.
“가벼운 책과 내가 읽고 싶은 LA타임스 기사들의 스크랩을 읽는다. 호텔은 밝고 깨끗하고 실용적이면 된다.”

-어느 나라에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영국이다.” (비셋은 영국의 서리에서 출생했다.)

-당신은 앤젤리나 졸리의 대모인데 졸리의 어머니와 친했는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내게 대모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해 다소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매우 진지한 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난 앤젤리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도 앤젤리나가 원체 바빠서 그럴 틈이 없다. 더구나 난 수줍음이 많아 누가 내게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잘 접근을 못한다.”

-폴 뉴만과 스티브 맥퀸에 대해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있는가.
“그들을 썩 잘 알지는 못했다. 폴은 참으로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끔 기찬 농담으로 사람을 웃겼다. 농담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웃곤 했다. 아주 즐거운 소년과도 같은 사람으로 매력적이었다. 반면 맥퀸은 무드파로 농담하는 것을 못 봤다.”

-당신은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니나 내 어머니는 프랑스인의 피를 지녔다. 내가 프랑스어를 하게 된 것은 나이 28세 때 프랑솨 트뤼포의 ‘데이 포 나잇’에 나오면서다. 16세 때 프랑스어 학교에 2년간 다니긴 했지만 학교의 남학생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용돈을 벌기 위해 중국 식당에서 일하는 바람에 공부는 하지도 못했다.”

-프랑스 영화는 좋아하는가.
“중독자다. 프랑스어 학교에 다닐 때 프랑스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기를 결심했다. 그 때 잔느 모로를 발견했고 베리만과 파졸리니와 펠리니 그리고 비스콘티 등도 알게 됐다. 그 때 베리만을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그가 여자를 카메라로 포착한 모습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그리고 트뤼포와 로머도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이들의 영화를 못 본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

-요즘 젊은 여배우들을 보면서 과거와 어떤 변화를 느끼는가.
“모두들 갈비씨라는데 경악한다. 그리고 요즘 배우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역을 찾아 연기를 한다기보다 스튜디오가 마련해 주는 대로 역을 맡으면서 블락버스터 영화에 나와 자기를 과시하는데 내가 젊었을 땐 안 그랬다. 그 때 우린 그렇게 상품화하진 않았다. 물론 스튜디오 시스템 때는 배우들이 상품취급을 받았지만 적어도 내기 일할 때는 안 그랬다. 요즘 여배우들은 너무 상품화했다. 연기를 하려면 보다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요즘 여배우들은 삶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

-영화사 간부들을 잘 아는가.
“전연 모른다. 난 매우 사적인 사람이어서 가까운 친구 외에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고 산다. 어떤 때 프리미어에 가면 거기 온 사람들이 도대체 다 뭘 하는 사람들인가 하고 놀란다.”

-할리웃에선 정직함이 해가 되는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언제나 솔직해 왔다. 난 가짜가 아니다. 난 내가 느끼는 것을 솔직히 얘기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도 더 신장된다고 본다. 나는 직선적인 사람이 좋다.”

-당신은 ‘그릭 타이쿤’에서 오나시스(앤소니 퀸)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로 나왔는데 재키를 만난 적이 있는가.
“뉴욕의 ‘러시안 티룸’에서 캔디스 버겐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 때 재키가 들어왔는데 우리 곁은 지나면서 ‘헬로’하고 냉정하게 한 마디 하고 지나갔다. 난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드 맥스: 분노의 길 (Mad Max: Fury Road)


맥스(왼쪽)와 퓨리오사가 쫓아 오는 무리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

활화산처럼 터지는 ‘폭력의 미’


몬스터 트럭들의 황무지 왕복 질주 광란의 액션으로 얘기는 다소 빈약하나 ‘댐 굿 무비’다. 시종일관 에너지가 활화산 터지듯 분출되면서 관객의 감관을 마비시키는 잘 만들고 재미 만점의 영화로 대형 화면에 펼쳐지는 스펙태클의 본 떼를 보여준다. 
30여년 전에 멜 깁슨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매드 맥스’를 감독(각본 겸)한 조지 밀러가 새 매드 맥스로 탐 하디를 써 다시 만들었는데 폭력적이면서 아름다운 발레 같은 액션이 쉴 새 없이 전개돼 호흡이 다 가쁘다. 특히 이 액션들은 거의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아 더욱 사실적이고 쓴 쓸개 씹는 것처럼 통렬하다.
영화의 주제는 생존인데 주인공이 매드 맥스라기보다 여전사인 퓨리오사(샬리즈 테론)라고 해야 맞다. 맥스는 퓨리오사의 조수급으로 이 영화는 남성위주의 세상으로부터의 여성해방과 여권신장의 영화다.  
세상 종말 후 석유가 거의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 세상(석유 때문에 전쟁하는 요즘 세상 얘기라고 봐도 좋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높은 언덕 위에 세운 빛나는 크롬 색깔의 발할라(바그너의 오페라 ‘링 사이클’에 나오는 신들의 세상)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흉측한 모습의 독재자 임모탄 조(휴 키스-번). 선택된 자들만 발할라에 살고 나머지 인간들은 발할라 아래 지상에서 노예처럼 산다. 발할라의 여자들은 아기를 낳고 모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만 생존한다.
이에 반기를 들고 일단의 젊은 여자들을 대형 유조트럭에 싣고 발할라를 탈출해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여자가 조의 고급 참모였던 강인한 퓨리오사. 머리를 박박 깎고 왼팔이 쇠팔인 퓨리오사는 말하자면 여자 모세다. 
이에 본의 아니게 합류하는 자가 매드 맥스. 여기서부터 퓨리오사와 매드 맥스는 고철상에서 수집한 각종 트럭 부속품들로 짜깁기한 것 같은 온갖 모양과 성능의 몬스터 트럭을 탄 조의 졸개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도주하면서 액션이 뜨거운 프라이팬의 콩 튀듯 한다. 열사의 불과 폭력의 영화요 추격과 도주의 영화다. 
퓨리오사와 매드 맥스를 추격하는 트럭들을 리드하는 트럭의 본넷 위에서는 조의 졸개가 전자기타를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요란하게 치면서 흥을 돋우는데 마치 옛날 서부시대 인디언들을 학살하던 미 기병대의 나팔수 같다.        
퓨리오사와 매드 맥스 외 제3의 주요 인물은 암에 걸린 조의 젊은 전사 넉스(미콜라스 훌트). 넉스는 처음에는 퓨리오사와 매드 맥스를 처치해 발할라로 올라가는 것이 꿈이었으나 후에 회개하고 퓨리오사의 동지가 된다. 그리고 넉스는 로맨스까지 경험한다.
바그너의 오페라적인 액션의 대혼란으로 이 혼란은 질서를 갖췄는데 끊임없이 폭발하는 액션 을 완벽하고 날렵하게 포착한 카메라가 일품이다. 과묵하고 묵직한 하디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는 테론의 것이라고 해야겠다. 강단 있는 얼굴 표정과 사나우면서도 유연한 육체의 동작이 완벽한 여 전사를 탄생시키고 있는데 이런 다부진 행동과 함께 보일 듯 말듯 한 감정적 연기까지 보여주고 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액션영화의 절대판으로 이에 비하면 ‘분노의 질주 7’은 아이들 장난이다.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슬로 웨스트 (Slow West)


제이(왼쪽)와 그의 바디가드 사일라스가 제이의 애인을 찾아 가고 있다.

우수에 찬 폭력·숨막히는 자연미 ‘이색 웨스턴’


말 대신 나귀를 타고 가는 듯이 천천히 서술되는 아름답고 유혈 폭력적이며 명상하는 듯한 기이할 정도로 독특한 웨스턴으로 마치 초현실적인 서부 신화 같다. 소년의 성장기요 로드 무비이자 버디 무비이며 또 러브 스토리로 영화의 색조가 수시로 변해 보는 사람의 기대를 넘는  재미를 제공한다.
우수가 가득 찬 시적 혼과 미와 함께 터무니없는 코믹 터치로 잔인하고 인정사정없는 폭력을 채색, 황당무계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존 맥클린은 뛰어난 재주꾼으로 앞으로 대성하겠다.         
1870년대 콜로라도주. 스코틀랜드에 사는 16세난 소년 제이 카벤디시(코디 스밋-맥피)는 아버지와 함께 미 서부로 온 자기가 사랑하는 소녀 로즈 로스(캐런 피스토리어스)를 찾아 미국에 온다.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말을 타고 낯설고 물 설은 서부를 가로질러 애인을 찾아가는 제이는 가다가 산도적을 만나는데 이 때 어디선가 나타나 제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개과천선한 무법자로 과묵한 바운티 헌터인 사일라스(마이클 화스벤더). 사일라스가 시가릴로를 입 한쪽 끝에 물고 있는 모습이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았다. 
제이는 사일라스를 바디가드로 고용하고 계속해 길을 가는데 둘의 여정을 콜로라도의 광야와 숲과 사막의 자연미가 전원시처럼 뒷받쳐준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뚜렷한 원색의 촬영이 절경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이들은 가다가 광야에 덩그마니 혼자 있는 잡화상에 물건을 사려고 들르는데 여기서 갑작스럽고 잔인한 폭력이 일어난다. 영화의 폭력은 전연 예기치 않는 순간에 발생, 충격이 더 크다.
그런데 제이가 모르는 것은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 머리에 2,000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 사일라스도 이 돈을 노리고 제이의 바디가드 노릇을 하고 있다. 사일라스 외에도 이 돈을 노린 산도적 떼의 두목 페인(벤 멘델손)을 비롯한 온갖 무리의 바운티 헌터들이 로즈 부녀를 처치하려고 모여 들고 클라이맥스에 이 잡다한 무리들 간에 스타일 멋지고 슬랩스틱 코미디 같으면서 아울러 가차 없이 유혈 폭력적이며 비극적인 총격전이 일어난다. 
피와 살육의 파티와도 같은 이 총격전은 감탄을 금할 수 없게끔 말끔하고 맵시 있고 또 상쾌하다. 장면 장면을 한 장의 움직이지 않는 사진처럼 찍은 촬영과 차분한 스밋-맥피와 화스벤더의 거칠면서도 정감이 있는 연기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성인용. A42. 선댄스 시네마 (323) 654-2717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황야의 이병헌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45)이 MGM이 만드는 웨스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신판에 7인의 한 사람인 빌리 록스로 나온다. 록스는 노역계약에 따라 미 서부에 와 종노릇을 하던 자로 날카로운 쇠꼬챙이 같이 생긴 사이칼의 명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월13일 개봉을 예정으로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신판은 앤톤 후콰가 감독하는데 7인의 리더 역은 후콰의 ‘트레이닝 데이’(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이퀄라이저’에 나온 덴젤 워싱턴이 맡는다. 흑인과 동양인과 브라질 배우(왜그너 모라)가 미 웨스턴에 나오는 파격적인 다인종 캐스트다.
신판은 ‘O.K. 목장의 결투’와 ‘건힐 발 마지막 기차’ 같은 멋있는 웨스턴을 만든 존 스터제스가 감독한 ‘황야의 7인’(1960·사진)이 원전이다. 이 영화는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토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7인의 사무라이’의 웨스턴 판이다. 그런데 역시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미후네가 주연한 ‘요짐보’와 ‘숨겨진 요새’도 ‘황야의 무법자’와 ‘스타워즈’로 만들어졌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호스트 북홀즈 및 브래드 덱스터 등이 나온 ‘황야의 7인’은 총알이 빗발치듯하는 박력 있는 액션과 과묵하고 각기 개성이 뚜렷한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와 명예를 다룬 걸작 웨스턴이다.
멕시코 깡촌의 농부들이 1년에도 몇 차례씩 마을에 나타나 닥치는 대로 곡물과 재물을 약탈해 가는 산적두목 칼베로(일라이 왈랙이 금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고약하게 호연한다)가 이끄는 도둑떼를 견디다 못해 미국의 건맨 7명을 고용, 이들과 수십 명의 산적 떼가 맞붙는다는 것이 내용이다. 앙상블 캐스트로 구성된 서부 건맨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표정과 말없이 행동하는 남성적인 연기가 일품으로 총격전이 끝나면 7명 중 3명만 살아남는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돼 서울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딜리 극장에서 봤는데 7인의 건맨들이 대형 화면을 가로지르며 말을 달리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서부터 아찔한 흥분감에 빠져 들었었다. 특히 이 때 나오는 박진하고 강건하며 또 질주하고 높이 치솟는 듯한 음악이 이 흥분감을 배가시킨다. “딴따따란 딴따딴따란 따라 따라라라”하며 리듬과 멜로디의 물결이 신나게 출렁이는 음악은 영화의 전모를 뚜렷이 묘사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생전 200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엘머 번스틴이 지었는데 그는 음악을 미 클래시컬 음악작곡가로 오스카상을 탄 ‘사랑이여 나는 통곡한다’ 등 여러 편의 영화음악도 작곡한 아론 코플랜드의 발레곡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번스틴이 음악을 작곡한 또 다른 유명한 영화들로는 그의 유일한 오스카상 수상작인 ‘서럴리 모던 밀리’와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대탈주’ 및 ‘십계’ 등이 있다.
‘황야의 7인’은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빅히트했고 쿠로사와도 대단히 만족해 스터제스에게 일본 검을 선사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친한 사이로 나오는 크리스 역의 율 브린너와 빈 역의 스티브 맥퀸이 실제로는 촬영장에서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 맥퀸이 리더 노릇을 하는 브린너에게 지지 않겠다고 자기 과시를 했기 때문이다.
‘황야의 7인’ 신판에는 워싱턴과 이병헌과 모라 외에도 이산 호크, 크리스 프랫, 빈센트 도노프리오 및 루크 그라임스 등이 나오고 HBO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왕좌 게임’에 나온 제이슨 모모아가 악역을 맡는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 남북전쟁 후 미 서부의 한 작은 마을을 말아먹는 무자비한 광산주와 그의 졸개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젊은 미망인이 바운티 헌터인 워싱턴 등 산전수전 다 겪은 7명의 사나이들을 고용해 악당과 한판 붙는다.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이병헌이 과연 원작의 건맨 중 누구 역을 맡을지 궁금한데 어쩌면 브래드 덱스터가 맡았던 해리 럭에 상응하는 역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병헌은 비록 조연급이긴 하나 이 영화에 나옴으로써 이제 명실 공히 할리웃 스타로서의 입지를 보다 단단히 굳히게 됐다. 박중훈과 장동건도 각기 ‘찰리의 비밀’(2003)과 ‘워리어스 웨이’(2010)로 할리웃 진출을 시도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이병헌은 2009년 ‘G.I. 조’로 할리웃에 진출했는데 할리웃이 그를 캐스팅한 것은 이병헌이 영화시장의 규모가 큰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어 2013년 ‘G.I. 조’ 속편과 ‘레드 2’에 나왔고 오는 7월1일에 개봉되는 ‘터미네이터:제니시스’에서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로버트 패트릭이 맡았던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터미네이터 T-1000로 나온다. 그는 또 패러디 영화 ‘러시아워 4: 페이스오프 2’에서 랩 수퍼스타 션 ‘펍 대디’ 콤즈와 공연하며 내년에 개봉될 앤소니 홉킨스와 알 파치노가 나오는 섹시 법정스릴러 ‘비욘드 디시트’에서는 회계사로 나온다.
나는 이병헌을 몇년 전 할리웃에서 만나 적이 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영어가 미숙해 걱정”이라며 염려를 했었다.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병헌이 다시는 섹스스캔들에 휘말려들지 말기를 바라면서 그의 건투를 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뜨거운 추격’ 소피아 베르가라




“친구들과 점심·샤핑 즐기는 난 보통 여자”


라티나가 주연 맡아 행운… 소수계도 열심히 하면 기회
외모관리 안할 순 없지만 나이에 너무 신경 쓰면 꼴불견


8일 개봉한 코미디 여자 버디 무비‘뜨거운 추격’(영화평 참조)에서 부패 형사들과 킬러들의 추격 속에 여형사(리스 위더스푼)의 경호를 받으며 도주하는 마약 밀매단 두목의 섹시하고 성격이 괄괄한 미망인으로 나오는 콜롬비아 태생의 소피아 베르가라(42)와의 인터뷰가 4월25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ABC-TV의 인기 코미디 시리즈‘모던 패밀리’로 일약 스타가 된 날씬하고 키가 큰 육체파인 베르가라는 히스패닉답게 정열적이었는데 짙은 화장을 한 큰 입으로 크고 요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애교 만점으로 귀엽기까지 했는데 혀를 쑥 내밀어 가면서“흐흐흐흐”하고 웃으며 가끔 스패니시를 섞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여자로 유머와 위트가 풍부해 인터뷰가 아주 즐거웠다.     

-할리웃에는 라틴계 배우가 주연을 하는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난 내가 필요로 한 역을 모두 맡아 해봐 불평해선 안 되는 줄 안다. 그러나 라틴계 배우들을 위한 역이 모자란다는 것은 사실이다. 라티노 각본가들도 있긴 하나 그들이 쓴 것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결국 할리웃이어서 열매를 맺는다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리스 위더스푼과 같은 영화인이 더 많이 있다면 라티노들에겐 큰 복이 될 것이다.”   

-영화의 당신 옷장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구두 등 없는 것이 없던데 실제로는 어떤가.
“구두가 많다. 가방도 많다. 돈 벌어 대부분 그런 것들 사는데 쓴다. 그러나 옷은 한 벌에 29달러짜리 진이나 12달러짜리 T셔츠를 입는다. 옷보다는 멋들어진 구두와 백이 더 좋다.”

-영화에서 달아나는 당신의 나이에 대해 TV 뉴스인들이 실제보다 많이 올려 얘기할 때마다 당신은 화를 냈는데 실제로도 나이에 예민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여자건 간에 나이에 대해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여자는 거짓말쟁이다. 영원히 젊고 싶지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이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꼴불견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선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얼굴 마사지나 외모 가꾸기에 무관심하단 말인가.
“아니다. 우린 배우로서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별로 달갑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요즘엔 사방에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있어 얼굴 단장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당신의 애인(배우인 조 맹가넬로)은 할리웃에서 가장 뜨거운 총각으로 알려졌는데 처음에 당신은 그를 만나기 꺼려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그 때 난 막 다른 애인과의 관계를 끝냈을 때로 평화와 고요를 원했다. 따라서 나보다 4세 아래인 할리웃의 화끈한 배우와 교제한다는 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그보다 나이도 먹고 또 보통 남자를 만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가 딱 한 번만 데이트하자고 날 설득시켰다. 나도 딱 한 번만 즐기겠다고 생각하고 데이트에 응했는데 만나고 보니…”

-당신은 사람들을 웃기면서도 매우 복잡한 성격을 지닌 여자로 알려졌는데.
“모든 여자는 다 복잡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어떤 한 가지에 능하다고 해서 그 것밖에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자의 위대한 점은 우리는 어머니와 자매와 친구가 다 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단히 많은 일을 해낼 수가 있다.”

-무엇이 당신을 침울하게 하는가.
“배고픈 것이다. 배고픈 모두가 밉고 아프기까지 한다. 난 침울하지 않기 위해서 즐겁고 근면한 사람들과 지낸다. 그리고 가족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이 날 가장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 때문에 침울해지지는 않다. 언제나 또 좋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당신과 나는 이 나라에서 소위 소수계인데 실제로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 나보다 더 소수계지. 플로리다에 가 봐라. 우리가 완전히 접수하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해 난 별로 불평할 일이 없다. 난 운이 좋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가 있었다. 진실로 고맙다. 물론 우린 이민자로서 우리 나라에 있지 않다는 것과 미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종의 어떤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아 주었으니 우린 그것을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수계임에는 분명한 만큼 그 같은 사실을 아니 느낄 수는 없다. 우린 그런 현실에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노력만 한다면 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영화에서 성경을 다 읽어 그 끝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 끝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
다니엘라(왼쪽)와 쿠퍼가 관광버스를 신나게 몰고 있다.

-아니 당신이 말한 대사도 모른단 말인가. 
“영화를 1년 전에 찍은 데다 영어대사를 외운 것이어서 기억 안 난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이 읽어야 할 책으로 그 끝은 다소 을씨년스럽다고 본다.”

-당신은 키가 큰 편인데 남자들은 키 큰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나.
“난 거꾸리와 장다리 그리고 갈비씨와 뚱보 등 여러 남자와 데이트를 해봤다. 키 같은 것은 문제도 안 된다.”

-당신은 치과공부를 했는데 당신과 당신 아들의 이가 다 양호한가.
“내 아들은 지금 23세로 단 하나의 충치도 없다. 그것이 나의 큰 업적 중 하나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아들이 10개월 되자 이가 나면서부터 아들을 치과에 데려 갔다. 그래서 아들은 늘 단 한 번도 충치가 없었다는 점을 자랑한다.” 

-다음 선거에서 이민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할 텐데 당신은 이민자를 위해 일할 용의가 있는가.
“물론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

-유명세에 대해 얘기 해보라.
“유명해져서 나쁜 것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다. 난 25년간 배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최근에 유명해졌다고 해서 삶이 바뀐 점은 없다. 그러나 소위 명사가 된 뒤로 힘든 것은 모두들 손에 전화를 들고 있어서 아무 때나 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식당에서도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변소에까지 따라 온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 정도다. 또 요즘은 언론매체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아무 것이나 막 쓴다는 점도 참기 힘든 일이다. 잡지를 열어 보면 내가 하지도 않은 소리들이 쓰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아기를 더 가질 생각인가.
“모르겠다. 나이가 자꾸 먹어 가니 힘들겠지. 그러나 조가 나보다 젊고 아이도 없으니 가져 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기가 생기면 생기는 거지. 우린 올해 결혼하기를 바란다.”

-드러매틱한 역을 할 생각은 없는가.
“기꺼이 하겠다. 난 연기를 할지 모르지만 감독이 내가 드러매틱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맡긴다면 기꺼이 하겠다.”             

-액센트를 없애려고 시도했는가.
“돈 많이 들여 시도했지만 별무효과였다. 고치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달라.
“보통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일을 하기를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점심 먹으로 가기와 샤핑을 즐긴다. 난 특별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것은 아침 커피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점심 때 머리가 아파지고 조금 있다가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당신과 콜롬비아와의 관계는 어떤가.
“매우 가깝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이제 훨씬 많이 안전해졌다. 최근엔 외국 영화사들이 여럿 진출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부도 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LA에서 떠나는 직항로가 폐쇄된 뒤론 자주 가진 않는다. 그래서 결혼이나 장례식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마이애미를 경유해 간다. 가족과 친구들은 1년에 한 번씩 마이애미에서 만난다.”        

-일 안 할 땐 어떻게 소일하는가.
“조와 나는 둘 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식성도 비슷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연극도 보면서 남들과 같이 소일한다.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취미는.
“최근 들어 자기 그릇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늙었나 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엘리에 관하여 (About Elly)


엘리(오른쪽)는 친구 세피데의 강청에 못이겨 해변으로 놀러온다.

실종 친구는 어디에… 거짓말의 참담한 끝은


2012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이혼'(A Seperation)을 감독한 이란의 아스가 파라디가 쓰고 연출한 심리극이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는 대사위주의 영화로 연극 같은 분위기가 나는데 현대 이란 중상층의 위선과 거짓을 통해 이란사회의 병폐와 함께 계급과 남녀간의 차이를 그린 지적이요 세련된 영화다.
전반부가 너무 장황하고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나 후반부에 들어 긴장감 감도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모하면서 보는 사람의 심리를 바짝 쥐어튼다. 복잡한 얘기를 솜씨 있게 이끌어가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탄탄하고 흡인력 있는 작품으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면서 무고한 삶이 파괴되는 결과가 참담하다. 
주말을 맞아 세피데(골쉬프테 파라하니)와 그의 남편 아미르(마니 하기기) 그리고 둘의 친구들인 두 쌍의 부부와 3명의 어린 아이들 및 독일서 갓 이혼한 아마드(샤하브 호세이니)와 세피데의 대학 친구로 유치원 선생인 엘리(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카스피해 연안 마을로 놀러온다. 세피데는 오기 싫다는 엘리를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엘리를 아마드에게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다.
이어 영화는 1시간가량 이들의 놀이와 대화와 잡동사니 같은 일상사를 보여주면서 본격적인 골격을 구성해 가는데 그러기까지 너무 길다. 세피데를 비롯한 사람들은 아마드와 엘리를 가깝게 만들어주려고 선의적인 뚜쟁이 노릇들을 하는데 엘리는 이를 매우 거북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엘리는 하루가 지나자 만류하는 세피데에게 테헤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물결이 센 바다에서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감시하던 엘리가 행방불명이 된다. 엘리는 테헤란으로 돌아갔는가 아니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이를 구하려다가 익사했는가.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엘리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피데는 엘리가 사실은 악혼자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엘리는 이 남자와 파혼하려고 하나 남자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세피데조차 엘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의 실종이 더욱 미스터리 기운을 조성한다. 
세피데의 선의적인 거짓말은 자꾸 새끼를 치면서 불어나고 이 거짓은 세피데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돼 온통 이들이 하는 말이 어느 게 진실이요 허위인지를 모르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서로들 악다구니를 쓰며 다툰다. 이 과정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것이 엘리의 명예다. 엘리의 실종을 놓고 벌이는 주변 인물들의 드라마가 안토니오니의 ‘라벤투라’를 생각나게 만든다.
마침내 이들은 엘리의 약혼자(사베르 아바)에게 엘리의 실종을 통보한다. 약혼자가 이들을 찾아오면서 드라마는 비극적 색채를 띤다.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가 좋은데 특히 친구의 실종에 간을 태우는 세피데 역의 파라하니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런데 파라하니는 리들리 스캇의 ‘바디 오브 라이즈’에 나와 이란 당국으로부터 영화 활동이 금지된 상태다.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은 촬영이 현실감 강하다. 성인용. 14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뜨거운 추격 (Hot Pursuit)


다니엘라(왼쪽)가 쿠퍼를 끌어안고 애인처럼 쓰다듬고 있다.

마약밀매단 두목의 아내 호송작전


‘워크 더 라인’에서 컨트리가수 자니 캐시의 아내이자 역시 가수인 준 카터로 나와 오스카 주연상을 타고 지난해에는 진지한 자아탐구의 영화 ‘와일드’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리스 위더스푼의 망신살이 뻗친 쓰레기 같은 영화로 눈 뜨고 보기에 민망하다.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 억지춘향 격으로 한 팀이 되어 티격태격하면서 나쁜 놈들을 피해 길 따라 내빼면서 겪는 온갖 해프닝과 모험을 통해 친구가 된다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탈을 쓴 구태의연하고 식상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영화다.
위더스푼 뿐만 아니라 그의 상대역인 뜨거운 라티나 배우 소피아 베르가라(ABC-TV 시리즈‘모던 패밀리’)의 재주도 함께 낭비된 영화로 상투적이요 냄새 나는 성적 농담과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일관한 멍청한 영화다. 두 배우의 이력서에 오점을 남길 한심한 영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경찰의 고지식하고 교과서적인 여경찰 쿠퍼(위더스푼)는 증거물 보관실 담당자. 어느 날 쿠퍼를 서장이 호출, 마약 밀매단 두목의 섹시하고 요란한 콜롬비아 태생의 아내 다니엘라(베르가라)가 달라스 법정에서 마약 밀매단에 관한 정보를 까발리기 위해 가니 호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래서 쿠퍼는 연방 경찰 남자 형사와 함께 다니엘라의 집에 가는데 여기서 다니엘라를 저지하려는 킬러들을 만나 요란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쿠퍼와 다니엘라는 다니엘라의 캐딜락을 타고 달라스로 달리는데 이들 뒤를 킬러들과 부패한 형사 둘이 쫓으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다니엘라와 재잘대는 겁먹은 벅스 버니 같은 쿠퍼가 영화 내내 말싸움을 하고 끌어안고 붙들고 뒹굴면서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데 가관이다. 그런데 죽으면 죽었지 하이힐 구두들이 가득 찬 트렁크를 놓고는 꼼짝도 않겠다는 다니엘라는 알고 보니 그냥 만만한 마약 밀매단 두목의 아내가 아니다. 
감독은 ‘길트 트립’과 ‘청혼’ 및 ‘27벌의 드레스’ 등 65점 정도의 코미디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여류 앤 플레처로 이 영화도 그의 이력에 큰 플러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할리웃의 스튜디오들이 양산해 내는 돈벌이 위주의 관객 수준을 얕보는 영화로 보고 있자니 짜증난다. 
PG-13.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랭크 시내트라



2015년은 생전 ‘올 블루 아이즈’라 불린 프랭크 시내트라(12/15/1915~5/14/1998)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목소리’요 ‘이사장’이라고도 불린 시내트라(사진)는 극적인 창법으로 팝송에 품위와 스타일을 부여한 가수로 팝송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또 우리가 그것을 듣고 감지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은 사람이다.
특히 그의 악구를 걸고넘어지는 듯한 창법은 그 어떤 가수도 따를 사람이 없는데 그가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으로 이런 창법을 구사해 부르는 ‘토치송’을 듣노라면 삭신이 다 노곤해진다.  시내트라의 노래는 까칠까칠한 재즈성 음색을 지녔는데 그가 이런 음색으로 넋두리나 하듯 다소 되는대로 부르는 노래들은 로맨틱하다 못해 섹시하기까지 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노래들인 ‘나이스 앤 이지’ ‘레이디 이즈 어 트램프’ ‘컴 플라이 위드 미’ ‘비위치트’ ‘아이브 갓 유 언더 마이 스킨’ ‘영 앳 하트’ ‘나잇 앤 데이’ ‘아일 네버 스마일 어겐’ 및 ‘오텀 인 뉴욕’ 등을 듣고 있으면 매캐한 연기가 자옥한 어두컴컴한 살룬의 체온이 느껴진다.
시내트라도 자신을 ‘살룬가수’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가 가수 초기시절 살룬에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내트라는 갱스터들과도 알게 됐고 후에 마피아와 한 패라는 말을 들었다.  
영화 ‘워터프론트’의 무대인 뉴저지주 항구도시 호보켄의 이탈리안 부모 밑에서 태어난 시내트라는 가수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때부터 야심이 대단했다. 살룬에서 노래 부르다가 1939년 뉴욕 빅밴드의 거물 해리 제임스밴드에 의해 발탁됐고 이어 타미 도시의 빅밴드로 옮겼다. 여기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히면서 1941년께 솔로로 전향했다. 이로부터 시내트라는 스타 가수로서 최초의 전성기를 누렸는데 특히 10대 소녀들이 주축인 바비 삭서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대며 그를 따랐다.
1940년대 들어 할리웃에도 진출, 영화에 나오면서 시내트라는 가수와 배우 노릇을 모두 즐기며 첫 아내 낸시와 이혼, 할리웃의 최고의 글래머스타 에이바 가드너와 결혼했다. 가드너는 시내트라 인생의 가장 큰 사랑이었다. 그의 세 번째 아내도 배우인 미아 패로다. 시내트라가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낸시와 프랭크 주니어도 가수로 낸시의 빅히트 송으로는 ‘디즈 부츠 아 메이드 포 워킨’이 있다.
그러나 시내트라가 나이 30대에 들면서 바비 삭서들도 떠나고 1940년대 말부터 그의 가수와 배우로서의 삶이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이런 슬럼프에서 그를 구해준 것이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 직전 후의 하와이 주둔 미육군 병영 내 군인들의 삶을 그린 영화에서 시내트라는 ‘케 세라 세라’ 스타일의 졸병으로 나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이와 함께 1953년 그가 음반 전속사를 컬럼비아에서 캐피톨 레코드로 옮기면서 시내트라는 가수와 배우로서 재생한다. 팝송의 클래식이 된 그의 많은 히트곡들은 캐피톨과의 9년 전속기간에 부른 것들이다. 여기서 시내트라는 비로소 가수로서 성장하고 완성됐다.
시내트라는 1960년대 밀어닥친 락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노래를 “가짜요 더럽고 어리석은 음악”이라며 경멸했다.
시내트라는 1960년대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피터 로포드 및 조 E. 비숍 등과 함께 ‘랫 팩’이라 불리며 샌즈호텔을 중심으로 베가스를 주름잡았다. 이들이 나온 영화 ‘오션의 11인’을 보면 장난 심한 아이들 같은 이 무리들의 생활스타일을 잘 알 수 있다.
여자는 모두 그와 자기를 원했고 남자는 모두 그처럼 되기를 원했다는 시내트라는 인종차별을 증오했고 자선에도 인색치 않았으나 인간적으로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화를 잘 냈고 주먹질과 욕을 서슴지 않던 매우 오만한 사람으로 여자를 신발 흙털개처럼 취급했다.
나는 시내트라가 죽던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날 나는 LA 윌셔의 구 앰배서더 호텔 건너편에 있는 바 겸 식당 H.M.S 바운티(지금도 있다)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는데 나를 서브하던 나이 먹은 미국인 웨이트리스가 내게 “오늘 시내트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었다”면서 슬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푹 패인 양 볼과 허기진 눈동자에 작고 야윈 몸을 가진 시내트라의 러브송이 듣는 사람의 가슴에 간절히 어필해 오는 까닭은 ‘고독의 계관시인’이라 불린 그가 노래를 통해 발가벗은 감정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노래들은 솔직하고 가깝고 숨 쉬고 정열적이며 또 낭만적이며 센티멘탈하다. 그는 우리를 격하게 만드는 팝송의 감정적 힘을 잘 파악했던 가수였다.
시내트라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워너 브라더스 홈 엔터테인먼트(WBHE)는 그의 영화 5편을 묶은 블루-레이 ‘프랭크 시내트라: 5편 컬렉션’(Frank Sinatra: 5 Film Collection)을 출시했다. ‘앵커즈 어웨이’ ‘온 더 타운’ ‘로빈과 7인의 건달들’ ‘오션의 11인’ ‘가이즈 앤 달즈’가 수록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시끄러운 무리를 떠나 (Far from the Madding Crowd)


에버딘이 농장을 떠나는 오크(왼쪽)의 뒤를 쫓아와 만류하고 있다.

남자 필요 없다는 여자를 사랑한 세 남자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독립심 강한 젊은 여자와 이 여자를 사랑하는 세 남자의 로맨틱 멜로드라마로 토머스 하디의 소설이 원작이다. 연기와 촬영과 내용이 모두 준수한 영화로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67년 존 슐레신저 감독(‘미드나잇 카우보이’)에 의해서도 영화화 했는데 주인공 여자로는 줄리 크리스티가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로는 각기 알란 베이츠와 테렌스 스탬프 그리고 피터 핀치가 나왔다.
슐레신저의 영화(DVD로 나왔다)는 3시간짜리로 내용의 깊이와 배우들의 연기가 새 영화보다 한 수 위다. 그리고 촬영(후에 감독이 된 니콜라스 로그)과 음악도 매우 뛰어나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흥미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아주머니와 둘이 사는 독립적이요 자기주장이 뚜렷한 바스쉐바 에버딘(캐리 멀리간)은 땅을 사랑하는 여자. 이런 면에서 위기와 난관에 잘 대처할 줄 아는 에버딘은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케 한다. 둘 다 남성위주의 세상에서 여권을 주장하는 신여성들이다.
에버딘의 옆 동네에서 양을 키우는 젊고 근면하며 늠름한 게이브리엘 오크(벨기에 배우 마티아스 쇠네어츠-‘러스트 앤 본’)가 에버딘을 찾아와 느닷없이 구혼을 한다. 에버딘은 자기는 남편이 필요 없다며 오크를 퇴짜 놓는다. 그리고 오크는 자기가 키우는 개가 양떼를 절벽으로 몰아 모두 추락사하자 보따리를 싸들고 마을을 떠난다.
이어 에버딘은 아저씨가 유산으로 물려준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웨스트 컨트리로 이주한다. 그리고 많은 농부들을 고용한 농장의 주인으로서 본격적으로 농장 재건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다. 일꾼 들 중의 하나가 공교롭게도 오크로 그는 여주인 에버딘을 깍듯이 섬긴다.
에버딘에게 청혼하는 두 번째 남자가 에버딘의 옆 동네에 사는 거부 농장주로 나이 먹고 고지식한 윌리엄 볼드우드(마이클 쉰). 물론 에버딘은 이 남자도 퇴짜를 놓는데 볼드우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에버딘의 세 번째 남자가 검은 바지에 빨간 군복 상의를 입고 콧수염을 한 멋쟁이 사전트 트로이(탐 스터리지). 트로이는 에버딘을 칼부림 솜씨(슐레신저의 영화에서 테렌스 스탬프가 줄리 크리스티에게 과시하는 칼부림 장면이 황홀하다)로 녹여 둘은 초고속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방랑기가 있는 트로이는 술타령과 에버딘의 돈을 낭비하면서 소일한다. 그런데 트로이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는 자기 아기를 임신한 패니(주노 템플)로 이것이 비극의 씨가 된다.
멀리간은 연기를 잘 하나 줄리 크리스티에 비하면 성숙미가 결여됐다. 그리고 그녀의 의상이 너무 신식이다. 세 남자 중에 제일 약한 것이 쉰으로 어색하다. 가장 믿음직한 것이 쇠네어츠로 과묵하고 무게가 있다. 시골생활과 모습 그리고 자연풍광을 잘 찍은 촬영이 훌륭한데 끝 부분이 서둘러 만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 흠이다. 감독은 덴마크인 토머스 빈터버그(‘생일 파티’ ‘사냥'). PG-13.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 (Avengers: Age of Ultron)


스칼렛 위치 (왼쪽부터)., 퀵 실버,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위도, 호크아이.

널린 게 영웅, 넘치는 액션, 피로감마저…


마블만화가 원작인 ‘어벤저스’의 제3편으로 온갖 수퍼히로들이 나와 때리고 박고 치고 부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심신이 다 피곤하다. 스토리는 빈약하고 그냥 무지막지하고 정량이 훨씬 넘는 액션을 비빔밥 만들듯이 마구 섞어 놓아 과식한 기분이어서 영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모든 속편들처럼 갈수록 제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액션 영화인데도 천근만근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액션 신을 서울에서 찍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서울의 특징이나 제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서울인지 아니면 다른 도시인지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한국 여배우 수현이 어벤저스들을 돕는 과학자 헬렌 조로 나온다.
액션은 어벤저스들이 동구라파의 가상국 소코비아에 있는 하이드라(HYDRA) 기지를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어벤저스들은 아이언 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르(크리스 헴스워드), 헐크(마크 러팔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 및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등. 이들의 리더는 아이언 맨의 창조자 토니 스타크(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이들은 소코비아에서 만만치 않은 적수들인 쌍둥이 퀵실버(아론 테일러-존슨)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를 만난다. 스칼렛 위치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어벤저스의 가공할 적은 토니 스타크가 세상을 악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려다가 이것이 잘 못돼 태어난 인공지능 얼트론(제임스 스페이더의 음성연기). 얼트론은 말하자면 스타크의 프랑켄스타인인 셈이다.
얼트론이 스스로 근육질의 강철 육체를 만들고 이어 졸개 로보트들을 규합해 이 세상에서 인간과 어벤저스들을 말끔히 제거하려고 하면서 어벤저스들과 얼트론의 필사의 격전이 일어난다. 
여기에 어벤저스들 간의 내분과 함께 궁극적 킬러라는 자신들의 신원에 대한 회의 같은 구차한 플롯이 개입된다. 과다한 액션을 그나마 다소 누그러트려 주는 것은 코믹한 대사인데 그것도 어설프다. 제4편과 5편이 각기 2018년과 2019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조시 위던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다의 침묵’




프랑스의 명장 장-피에르 멜빌(원래 성은 그룸바하로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 허만 멜빌의 성을 땄다)은 과묵한 터프가이들의 운명적이요 어두운 범죄세계를 좋아해 여러 편의 갱스터 범죄드라마를 만든 불치의 로맨티스트였다.
미국의 갱스터 소설과 필름 느와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멜빌의 반영웅적인 범죄자들은 우정을 자기 목숨보다 더 중시하는 아름다운 고독자들이다. 이들의 우정은 순결한 감정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사나이들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무라이’(Le Samourai 1967)의 우수에 깃든 암살자(알랑 들롱)와 ‘도박사 밥’(Bob the Gambler·1955)의 은발의 도박사(로제 뒤세스네)가 다 그런 인물들이다. 그의 또 다른 멋진 갱스터영화로는 ‘고발자’와 ‘붉은 서클’ 등이 있다.
그러나 죽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 범죄자들을 사랑하던 멜빌의 데뷔작은 범죄와는 거리가 먼 시적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가득한 ‘바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Sea·1947·사진)이다.
저널리스트였던 장 브뤼에르가 베르코르라는 필명으로 나치 점령 하의 파리 교외에 살 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베르코르는 이 책을 1942년 나치의 눈을 피해 지하 출판했는데 프랑스 시민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의 성경으로 사랑을 받았다.
나는 앙드레 지드의 글을 연상케 하는 이 책을 내가 잠시 다닌 서강대학 1학년 때 읽었다. 그 때 나는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교정의 잔디 위에 누워 시를 읽으면서 애매하고 몽롱한 삶을 살 때였다. 어느 날 같은 영문과에 다니던 황씨 성을 가진 여학생이 느닷없이 내게 “이 책 한번 읽어 봐”라며 건네준 것이 ‘바다의 침묵’이었다. 큰 키에 긴 생머리를 한 그녀는 내가 좋아한 소녀였다.
‘바다의 침묵’은 1941년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관할하는 음악가 출신의 이상적이요 지적인 독일 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과 그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인 초로의 남자와 그의 젊은 질녀가 주인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폰 에브레낙의 독백으로 서술된다.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에브레낙은 매일 저녁 노신사와 그의 질녀가 앉아 있는 거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벽난로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독백을 시작한다. 자신의 청춘과 음악과 책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사랑을 마치 시를 읊조리듯 얘기한다.
그런 그를 노신사와 질녀는 각기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침묵으로 나치의 침략에 대해 저항하는데 방안을 가득 채운 바다의 무게 같은 침묵이 벽시계의 추소리에 의해 해심을 더욱 파고든다.
폰 에브레낙의 독백 중에서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독일의 음악 자랑이다. 그는 “프랑스하면 몽테뉴, 라신느, 몰리에르 그리고 위고 같은 문인들로 유명하지만 독일하면 음악가들이지요.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바그너.” 그리고 그는 방에 있는 하모니움으로 바흐의 프렐루드와 퓨그 제8번을 치면서 “이것은 인간을 초월한 음악이지요. 신의 존재처럼 날 채우는 음악입니다”라며 바흐를 찬양한다.
폰 에브레낙의 독백은 눈을 아래로 내려 깐 채 그의 존재조차를 무시하는 노신사와 질녀의 침묵에 휩싸여 거의 초현실적인 주문처럼 들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폰 에브레낙을 침묵으로 거부하고 또 그를 마치 귀신이나 되듯 취급하던 노신사와 질녀의 가슴에 그에 대한 존경의 념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리고 폰 에르낙과 질녀 간에 애매모호한 감정이 아기 눈 뜨듯 한다. 이런 둘의 관계가 폰 에브레낙이 좋아한다는 얘기인 ‘미녀와 야수’를 생각나게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적 융합이라는 자신의 이상이 나치 하에서는 허상임을 깨달은  폰 에브레낙이 자원해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밤 질녀에게 “아디외”하면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이에 비로소 질녀도 “아디외”하고 처음으로 말문을 연다. “아디외”가 바다의 침묵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영화 ‘바다의 침묵’(프랑스 제목 ‘Le Silence de la Mer’)은 영화에 시혼을 가미한 미니멀리스트 멜빌이 흑백 속에 잡아 가둔 침묵의 소리와도 같은 작품이다, 거의 영화화가 불가능한 내용(멜빌은 이 영화를 ‘반영화’라고 했다)을 행동과 동작을 배제한 채 이미지와 독백과 침묵을 결합해 아름답고 순수하고 또 슬프게 그렸다. 장소도 폐쇄된 공간(베르코르의 집에서 찍었다)이어서 바다의 침묵의 압박감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멜빌의 영향을 받은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바다의 침묵’은 역시 이 영화로 데뷔한 촬영감독 앙리 드카에의 엄격한 흑백촬영이 아름답다. 그리고 세 인물 역을 맡은 배우들도 훌륭하다,
폰 에브레낙 역의 하워드 버논은 언어로 연기를(카메라가 가끔 그의 손 움직임을 통해 그의 느낌을 보여준다)하는 셈인데 노신사 역의 장-마리 로뱅과 질녀 역의 니콜 스테판은 무표정의 연기다. 스테판의 깨끗한 옆모습과 호수처럼 맑은 눈이 버논의 독백에 침묵으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소리와 무성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다의 침묵’이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