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6월 29일 금요일

리브 노 트레이스(Leave No Trace)


톰(왼쪽)과 윌은 사회를 등지고 숲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산다.

세상 등지고 숲에서 사는 아버지와 딸의 생존과 사랑


세상을 등지고 숲속에서 사는 아버지와 딸의 세상 주변인들로서의 삶과 사랑과 존경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린 조용하고 부드럽고 사려 깊은 소품 드라마로 강렬한 충격을 주지는 못하나 보고 난 후에도 영화의 이미지와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가 한동안 뇌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우아한 작품이다.
감독은 제니퍼 로렌스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소품 ‘윈터즈 본’(Winter‘s Bone-2010)을 만든 여류 데브라 그래닉으로 두 영화가 다 사회의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얘기는 빈약할 정도로 간결하지만 감독은 아버지와 딸을 연민과 동정과 깊은 이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검소하고 사려 깊게 이들의 생존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일종의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한데 아버지로 나오는 벤 포스터와 딸로 나오는 뉴질랜드 배우 토마신 하코트 맥켄지의 콤비와 착 가라앉은 연기가 감동적이다. 맥켄지는 훌륭한 배우가 되겠다. 
영화는 오레곤 주 포틀랜드의 국립공원의 깊은 숲속에서 텐트를 치고 사는 윌(포스터)과 그의 13세 난 딸 톰(맥켄지)이 아침에 일어나 밥 지어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윌은 철저히 문명과 사회를 기피하는 사람으로 딸이 독립 정신을 갖도록 격려하면서도 사회로 내려 보내진 않는다. 톰도 이에 불만 없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둘이 평화 공존하는데 둘은 서로에게 철저히 의존하면서 사는 관계다. 
둘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때는 식료품을 살 때와 재향군인인 윌이 병원에서 약을 받으러 갈 때 뿐이다. 윌이 세상을 기피하는 이유는 그의 종군 후유증 때문임을 알 수가 있다. 
윌과 톰은 당국의 단속에 걸려 사회보장센터에 보내지는데 여기서 잠시 헤어졌던 둘은 센터의 도움으로 목장을 경영하는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 문명을 하나의 교도소로 여기는 윌은 며칠 못 가 톰을 데리고 다시 숲속으로 돌아간다. 
윌과 톰은 숲속과 도시에서 다른 텐트 족들과 재향군인들과 사회봉사자들과 좌표를 잃은 10대들 그리고 친절한 종교지도자들을 만나는데 이들이 마지막에 조우하는 사람들은 숲 속에 자리 잡은 트레일러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서 톰은 자기가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숲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디까지나 딸의 독립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윌은 톰을 남겨 놓고 다시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둘의 이별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드는데 영화는 윌과 톰이 언젠가 다시 만날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연기를 잘 하는 포스터의 안으로 폭발할 것 같으면서도 자비롭고 부드러운 연기와 맥켄지의 나이를 넘어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가득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주라기 세계: 몰락한 왕국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


오웬 그레이디(오른 쪽)가 자기가 어렸을 때 키운 공룡을 달래고 있다. 겁에 질린 여자가 클레어 디어링.

더 사나워진 공룡들을 구하라


스티븐 스필버그가 1993년에 고 마이클 크라이턴의 동명 공상과학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주라기 공원’의 4번째 속편 격으로 편을 거듭할수록 공룡들이 더욱 잔인하고 사나워진다. 이번 것은 3년 전에 나온 ‘주라기 세계’의 첫 속편이다. 
온갖 흉측한 모양을 한 거대한 공룡들이 나와 괴성을 지르면서 서로 사생결단을 하다가 사람을 보면 입으로 물어 씹어 먹어버리는 전형적인 여름철용 블록버스터 오락물로 얘기가 터무니가 없다 못해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러나 특수효과로 만든 공룡들의 난리법석과 두 주인공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감독 론 하워드의 딸)의 콤비가 괜찮은데 종종 유머를 집어넣어 때로 살벌한 분위기를 다독여 주고 있다.
오프닝 크레딧 이전에 공룡들의 섬 이슬라 뉴블라에서 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이 원형 투명 수중 탐색선을 타고 해저에 가라앉은 공룡의 사체를 찾는데 갑자기 뒤에서 거대한 공룡이 나타나 탐색선을 공격하면서 둘은 공룡의 밥이 된다. 이들에 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들의 밥이 된다. 
이슬라 뉴블라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미 의회는 공룡들을 살릴 것이냐 또는 죽도록 놔둘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한다. 의회 청문회에 나와 공룡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주라기’시리즈의 단골 제프 골드블럼. 
이어 존 해몬드(시리즈에서 리처드 아텐보로가 역을 맡았다)와 함께 주라기 공원을 설립한 벤자민 락우드(제임스 크롬웰)가 캘리포니아의 박물관 같은 자택으로 클레어 디어링(하워드 달라스가 야무지다)을 불러 전편에서 함께 활동한 공룡 사육사인 오웬 그레이디(프랫이 너스레를 떨면서 잘 한다)와 함께 섬에서 공룡들을 구출해 인근 보호지로 옮겨달라고 당부한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어쩐지 정체가 수상한 벤자민의 비서격인 엘리(레이프 스팔). 
오웬과 클레어가 고생물학자 지아(다니엘라 피네다)와 컴퓨터 전문가 프랭클린(저스티스 스미스)과 함께 화산이 계속해 용암을 분출하는 섬에 도착하니 엘리가 고용한 용병들이 공룡 수거에 분주하다. 
엘리는 무슨 목적으로 공룡 구출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인가. 터무니없는 공룡의 유전인자 조작과 더욱 사나워진 공룡들을 국제경매에 내놓고 파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얘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에 갇혔던 공룡들이 우리를 부수고 밖으로 뛰어 나오면서 경매장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다가 공룡들에게 짓밟히고 물어 뜯긴다. 속편이 나올 것 같다. 
J.A. 베이오나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복종’ 의 레이철 바이스




영화 ‘불복종’(Disobedience)에서 유대교 랍비인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오래간만에 뉴욕으로부터 자기가 뛰쳐나온 런던 북부의 정통 보수 유대인 동네를 찾아와 결혼한 옛 동성애 연인과 사랑을 재점화시키는 사진사 로닛으로 나오는 레이철 바이스(48)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감독은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팬타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을 만든 칠레의 세바스티안 렐리오.
짙고 뚜렷한 윤곽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지적인 바이스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물음에 대답했는데 친근감이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엄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바이스는 현재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맡고 있는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다.


“정통 유대교·동성애 소재로 자유를 찾는 여정”


▲당신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로닛의 상대역인 에스티로 레이철 맥애담스를 선택한 것도 당신인가.
“감독인 렐리오와 상의해 처음으로 고른 사람이 맥애담스였다. 맥애담스는 각본을 읽고 당장에 반해 내게 ‘내 가슴이 에스티 역을 하고파서 피를 흘리고 있다’며 역을 달라고 했다. 맥애담스에게 처음으로 역을 제공한 우리는 참 운이 좋았다.” 

▲배우로서 역에 깊이 함몰되기 위해 때로 음악에 의존하는가.
“맡은 역의 감정에 빠져들기 위해 음악을 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면 감정이 용솟음치곤 했다. 로닛과 에스티가 오래간만에 만나 사랑을 재점화시키는데 그들이 옛날에 듣던 팝뮤직이 크게 작용을 한 것처럼 오래된 팝뮤직은 그 어느 다른 것들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로닛은 매우 강하고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로닛은 강하다기보다 반항적이라고 봐야겠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그는 연약하고 허점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오래 전에 떠난 집으로 잠시나마 돌아온 것은 자신으로부터 절단된 과거와의 재연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언가로부터 계속해 도망 다니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개인의 자유를 찾는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이 영화는 렐리오의 첫 영어 영화인데 그와 일한 경험은.
“렐리오는 영어를 잘 구사하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내가 이 영화의 원작인 책을 그에게 보냈는데 가톨릭신자로 동성애자가 아닌 그가 연출을 쾌히 수락한데 대해 처음엔 놀랐다. 그는 각본에도 참여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렐리오가 런던에 사는 유대인들에 관한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대만 사람인 앙리가 옛날 영국 사람들의 얘기인 ‘이성과 감성’을 연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렐리오는 책과는 아주 거리가 먼 문화권에 속하나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렐리오를 감독으로 선정했는가
“58세 난 여인의 성적욕망과 데이트의 실패를 사실적이면서도 우습게 그린 ‘글로리아’(Gloria)를 보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미국영화 같았으면 글로리아는 할머니로나 나왔을 것이다. 렐리오는 58세 여자도 성적 욕망이 강하고 또 그 나이가 생의 성숙기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영화야 말로 걸작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맡긴 것이다.”

옛 연인 사이인 로닛과 에스티(왼쪽)가 밀회장소를 찾아가고 있다.

▲무엇 때문에 영화의 소재에 이끌렸는가.
“정통 보수 유대교인들의 사회라는 외부와 차단된 사람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난 두 여자의 얘기를 찾고 있었다. 소설은 내가 자란 런던 북부 사람들의 얘기이면서도 내가 전연 몰랐던 사회의 얘기라는 점에 이끌렸다. 그들의 사회는 철저히 사적인 사회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로닛이 어렸을 때 자기 사회를 떠났듯이 사라질 수 있는 용기다. 또 어떻게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어떻게 자신이 되고픈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통 보수 유대교인 사회의 얘기이면서도 모든 집단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얘기로 보는가.
“자기 사회에만 집념하는 모든 다른 집단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무슬림과 기독교를 비롯해 극단적으로 자기 집단에만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렐리오가 이 얘기에 이끌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얘기는 소설을 쓴 네이오미 알더만의 경험담이다.”

▲로닛은 사진사인데 당신도 사진촬영에 능한가.
“사진사는 아니지만 사진 작품을 수집한다. 하셀블라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법은 배웠다. 나는 사진을 잘 찍는 재능은 없지만 사진을 사랑하고 사진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당신의 부모는 유대인인데 그 부모 아래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
“아버지는 유대인이나 어머니는 엄격한 가톨릭 집안 태생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려고 개종했다. 따라서 나는 두 종교를 다 이해하며 자랐다. 그러나 난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자란 사회의 사람들은 신에 집착하는 극보수파 유대인들이어서 내겐 이상하게 보였다. 하지만 믿음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난 아직 그 것을 찾지 못했으나 언젠가 신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로닛과 에스티의 섹스 신은 매우 뜨겁고 또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데 그 장면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섹스 신을 찍을 때면 늘 이것이 정말로 얘기에 필요한 것이냐는 점을 생각하곤 한다. 우리의 섹스 신은 얘기의 중심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성적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에스티가 로닛을 만나면서 비로소 둘만이 서로의 감정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감정적인 부분이다. 감독이나 나나 연기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만을 위해선 준비했다. 렐리오가 미리 구상한대로 섹스 신을 찍었는데 하루 종일 찍었지만 영화에는 단 6분간만 계속된다. 그리고 잘 보면 알겠지만 노골적인 나체장면은 없다. 나체를 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것이 더 에로틱하다. 그러나 우리의 섹스 신은 단지 섹스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영혼이자 마음의 표현이다. 매우 깊은 것이다.”

▲바쁜 연기자로서의 삶과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의 삶에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내 아들 헨리 챈스 아로노프스키(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마더!’ 감독)는 11살이다. 다른 모든 직업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직업과 가정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직업여성으로 어머니 노릇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일하다가도 시간을 내 아이에게 그 시간을 할애하는 수밖에 없다. 난 지금 직업여성으로서나 어머니로서 모두 스스로를 즐기고 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가을에 나올 ‘페이보릿’(The Favorite)으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연출했다. 1608년 영국의 앤 여왕시대 궁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힘든 성격을 지닌 3명의 여자들의 권력쟁취 드라마다. 나와 엠마 스톤과 올리비아 콜만이 주연이다. 아직 완성된 영화는 안 봤지만 각본이 아주 좋다.”

▲에스티의 남편인 젊은 랍비 역의 알레산드로 니볼라는 어떻게 선정했는가.
“우린 20여 년 전에 마이클 윈터바틈 감독의 ‘나는 너를 원해’(I Want You)라는 영화에서 공연한 바 있다. 그래서 우린 그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가 각본을 읽은 뒤 완전히 자기 역에 몰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역은 초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또 완전히 자기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정말로 하기를 원해야 되는 역이다. 니볼라는 참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완전히 역과 동일 인물이 된 연기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인도 아니고 또 그런 사회에서도 자라지 않았다. 그런데도 니볼라는 자기 역을 진실로 이해했다. 그는 훌륭한 배우다.” 

▲영화의 메시지 중 하나가 자유라고 말했는데 당신에게 있어 자유는 어떤 뜻을 지녔는가.
“자유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도전이다. 그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힘든 도전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다. 난 그저 하나의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 얘기를 사랑한 까닭은 그것이 자유에 대한 명상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우려면 불복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인데 따라서 불복종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유럽 삼국지


세트 방문과 배우와 감독 인터뷰 차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고 월드컵 경기가 시작된 지난 한주 간 스페인과 영국과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은 여정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은 조지 클루니를 비롯한 총 13명.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해변 가 좁은 골목에 오밀조밀 들어선 아파트마다 베란다에 빨래를 내건 정경이 한국 모습이다. 바르셀로나는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카탈로니아의 수도. 카탈로니아는 작년 9월 주민투표를 통해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했다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불법조치를 당해 정치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망명을 했다.
그 후 카탈로니아는 최근에서야 자치권을 회복했는데 새로 지역 대통령으로 선출된 큄 토라가  다시 10월 1일에 독립 찬반투표를 하겠다고 선언, 귀추가 주목된다. 길을 걷다보면 아파트에 ‘리베르타’(해방)라고 쓴 현수막과 함께 카탈로니아기가 걸린 것을 보게 된다(사진).
소매치기 많기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명품인 속칭 가우디성당을 보려고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키다리 스웨덴 동료회원 마그너스와 함께 폭염 속으로 나섰다. 갈증을 풀려고 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마신 생맥주 한 잔 값이 무려 10유로. 노상강도나 진배없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은 1882년에 짓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계속해 짓고 있는데 곰팡이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옛 성당 자태가 엄숙하다.
그런데 옛 성당 뒤로 짓고 있는 새 건물의 뾰족탑 위 십자가와 허리춤에 조각한 성당이름에   빨간색을 입혀 불경스럽게도 마치 베이가스의 카지노를 옮겨 놓은 것 같다. 가우디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야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소위 관광지의 명물을 볼 때마다 감탄을 제대로 못하고 서먹하기만 해 공연히 죄책감에 빠지곤 한다. 마치 글로만 소통하던 여인을 막상 만나고 나니 안 보니 만 못한 심정이라고나 할까. 상상이 실제보다 아름다운 탓일까.
작년에 트럭테러로 14명이 사망한 산타모니카의 프로미나드 확대판인 올드타운을 걷는데 아프리카 흑인들이 대마초 사라고 권유한다. 부자들의 요트가 정박한 부두 주위로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상에 즐비하니 가짜 루이뷔통과 나이키 등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경찰이 단속도 안 한다.
사방에서 담배들을 태우고 한 집 건너 있다시피 한 노천카페에서 느긋하니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유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통제가 심한 LA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다. 유럽의 서민적 자유가 미국의 그 것보다 훨씬 관대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이날 총 1만8,597보를 걸었다. 총 6.4마일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범죄 스릴러 ‘거미집의 여인’의 주인공 클레어 포이와 한국계 존 조가 주연하는 컴퓨터 스릴러 ‘서칭’의 인도계 감독 아네쉬 차간티 등을 인터뷰하고 런던에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구름이 낀 날씨다.
스타즈 TV의 시리즈인 초현실적 스파이 스릴러 ‘룩’의 세트 방문에 이어 시리즈에 나오는 졸리 리처드슨(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딸) 등을 인터뷰한 뒤 저녁에 마그너스와 함께 템즈강 인근의 숙소로 런던에서 최초로 전기승강기를 설치한 사보이호텔을 나와 코벤트가든 주위로 산책을 나섰다. 영국의 선술집 펍에 들러 맥주를 시킨 뒤 싸늘한 공기가 기분 좋은 술집 앞 보도에서 마시면서 런더너 흉내를 냈다. 밤 11시가 되니 바텐더가 술집 기둥에 매어달린 종을 “땡 땡”하고 치면서 문 닫는다고 통보한다.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의 피서지인 사르디니아 섬에 왔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감독하고 출연도 하는 훌루 TV 시리즈 ‘캐치-22’의 세트를 방문하고 클루니 등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진퇴양난의 처지를 뜻하는 ‘캐치-22’는 조셉 헬러가 쓴 전쟁 풍자소설이 원작이다. 올비아라는 마을의 안 쓰는 활주로에서 찍는 현장을 방문하고 인터뷰에 들어갔는데 내가 몹시 보고팠던 배우는 종종 만나는 사람 좋은 클루니 보다는 이탈리아의 베테런 스타로 시리즈에서 로마 사창가 포주로 나오는 지안칼로 지아니니(75)였다. 지아니니는 여류감독 리나 워트물러가 만든 ‘7명의 미녀들’과 ‘표류’ 등에 나온 명배우다.
사르디니아는 휴양지답게 하늘과 바다가 깨어질듯이 청명하고 태양이 제 성을 못 이겨 속 열기를 활활 내뿜고 있었다. 나는 이런 태양의 횡포를 볼 때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생각난다. 뫼르소는 해변에 나갔다가 별 이유도 없이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는데 구태여 이유를 찾자면 작열하는 태양 탓. 나도 뫼르소처럼 가학적인 태양을 대하게 되면 머리가 아프다.
귀국 행 비행기를 타려고 다시 런던에 도착하니 바람이 불고 쌀쌀한 날씨가 쓸쓸해서 살 것 같았다. 땅에 머문 시간보다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은 여행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오션스 8’(Ocean‘s 8)


오션(맨 왼쪽)의 일당이 범행을 논의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한국계 어머니에서 태어난 소매치기 콘스탄스 역의 어콰피나.

고가 보석털이 펼치는‘여성판 오션스 11’ 


대규모 예산을 들여 만든 외화내빈의 전형적인 할리웃 메이저의 영화로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과 명품 패션과 보석들이 즐비하게 나와 보기엔 호화찬란하나 가볍기 짝이 없는 털이영화(하이스트 무비)다. 이 영화는 2001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하고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핏이 나온 ‘오션스 11’의 여성판 스핀오프로 소더버그가 제작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오션스 11’도 프랭크 시내트라와 딘 마틴 그리고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랫 팩’ 나온 1960년 작 동명영화의 신판이다.
여자라고 못 할 줄 아느냐며 여성 8인조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연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갈라에서 1억5,000만 달러짜리 카르티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쳐내는 얘기인데 보기 즐길만은 하나 신선감과 긴장감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너무 작위적이요 기계적이다. 모험정신이 결여된 대신 겉치장에 치중한 화려한 패션쇼와 같은 영화다. 
범죄 파트너로 고급 미술상인 애인 클로드(리처드 아미티지)로부터 배신을 당해 5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옥한 대니 오션스(조지 클루니)의 여동생 데비 오션스(샌드라 불락)는 여성 범죄 파트너 루(케이트 블랜쳇)를 만나 메트 갈라 털이를 음모한다. 데비가 이런 범행을 시도하는 이유는 보석털이 외에도 범죄의 누명을 클로드에게 뒤집어 씌워 그에게 복수를 하자는데 있다. 범행의 목표물은 허영에 들뜬 빅스타 대프니 클루거(앤 해사웨이)가 목에 찰 1억5,000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데비는 범행의 파트너들을 모집한다. 컴퓨터 전문가인 나인 볼(리안나)과 퀸스의 소매치기 콘스탄스(어콰피나) 그리고 파산 직전에 있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로즈 웰(헬레나 본햄 카터)과 보석 전문가 아미타(민디 케일링) 및 암시장 장물아비 태미(새라 폴슨). 나머지 한 명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건 대프니.
마침내 갈라가 열리는 날 8인조는 데비가 짠 치밀한 계획에 따라 범행에 들어간다. 8명 중 일부는 갈라 참석자와 파티 종사자로 위장하고 뮤지엄 밖에 있는 범행 파트너들과 서로 교신하며 일사천리로 털이를 진행하는데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진짜 보석 같지가 않고 가짜 보석 같은 영화로 8명의 배우들의 연기가 들쭉날쭉이다. 범행의 두목인 불락은 목석같고 케일링과 본햄 카터와 폴슨도 낭비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어콰피나. 어콰피나는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배우요 래퍼이며 코미디언인 노라 럼의 예명으로 진짜 보석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연기를 해 그나마 진부한 작품 분위기에 신선미를 주고 있다. 그리고 보석 보험회사 감정사로 나온 제임스 콘론도 재치 있는 연기를 한다. 무던한 솜씨의 게리 로스가 감독했는데 영화가 히트를 하면 속편을 만들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가슴이 크게 뛰네’(Hearts Beat Loud)


프랭크(왼쪽)와 샘이 기타와 키보드를 치면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음악가 부녀의 훈훈한 사랑… 뮤지컬 분위기 복고풍 노래들 즐길만


두 남녀 거리의 음악가 얘기인 뮤지컬 드라마 ‘원스’(Once)를 연상케 하는 음악이 많이 나오는 두 남녀 음악가의 드라마로 이 영화의 두 남녀는 아버지와 딸이다. 제목은 부녀가 작곡해 부르는 노래의 것. 이 노래 외에도 약간 복고풍의 새 노래들이 여러 곡 나와 음악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겁게 볼 훈훈하면서도 감상적인 부녀간 사랑의 얘기다. 
꾸밈이 없는 소박한 멜로드라마로 베테런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와 얘기에 다양성을 주는데 멸종되어가는 바이닐 레코드 가게를 경영하는 사람의 드라마여서 올드 팬들이 즐길만하다. 너무 차분하려고 애쓰고 또 상투적인 처리가 보이는 것이 흠이긴 하나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보기 좋고 노래가 듣기 좋은 영화다.  
브루클린 레드 훅 지역에서 바이닐 레코드 가게를 경영하는 프랭크(닉 오퍼만)는 과거 음반까지 낸 음악가. 프랭크는 11년 전에 사망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 샘(키어시 클레몬스)과 둘이 사는데 샘은 UCLA에 합격해 곧 서부로 이주할 예정. 그런데 프랭크는 딸과 헤어지기가 싫어 고민이 크다. 프랭크의 약간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 매리앤(블라이드 대너)은 따로 혼자 산다. 
샘도 아버지를 닮아 음악에 재질이 뛰어난데 프랭크는 기타리스트요 샘은 키보디스트. 어느 날 둘이 샘이 즉흥적으로 작곡한 노래를 웹사이트에 올렸다가 큰 호응을 받으면서 음반회사로부터 취입제의와 함께 순회공연 제의까지 받는다.
한편 프랭크의 가게는 장사가 안 되는데다가 건물주인 레즐리(토니 콜렛)가 임대료마저 올린다고 통보하면서 프랭크는 가게를 닫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답답한 속을 오랜 친구인 데이브(테드 댄슨)가 경영하는 바에 가서 술로 푼다. 
그리고 프랭크는 어떻게 해서든지 샘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딸에게 자기와 함께 음반회사의 제의대로 순회공연에 나서자고 종용하나 샘은 이를 거절한다. 이와 함께 샘과 미술을 하는 로즈(사샤 레인)와의 로맨스가 얘기의 가지를 이룬다. 또 다른 서브 플롯은 프랭크와 레즐리의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데이트 관계. 
마지막은 가게 폐업 대세일을 하는 날 가게에서 프랭크와 샘이 단골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연주회로 장식된다. 오퍼만과 클레몬스의 콤비와 연기가 좋은데 특히 클레몬스가 잘 한다. 브렛 헤일리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메리칸 애니멀즈(American Animals)


변장을 한 4명의 대학생 아마추어 도둑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도서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서관의 희귀고서적 훔쳐내 팔자”
 4인조 대학생‘황당 절도’흥미진진


너무나 터무니가 없어 믿어지지가 않는 대학생들의 도서관 절도사건을 다룬 범죄 스릴러인데 실화다. ‘털이 영화’(heist movie)로 괴이할 정도로 비현실적인데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다. 2003년에 켄터키주 렉싱턴의 대학에서 벌어진 4인조 대학생들의 희귀고서적 절도 사건을 털이 영화답게 박력 있고 긴장감 가득하게 그리면서 아울러 거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처리했는데 이 영화로 데뷔한 영국의 바트 레이턴 감독(각본 겸)의 솜씨가 장인 급이다.
특이한 것은 실제로 범행을 저지른 4명이 영화 중간 중간에 나와 카메라를 보고 딩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철없던 젊은 시절의 무모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는데 이런 수법은 감독이 기록영화 감독 출신이어서 사용한 것 같다. 이들의 설명 때문에 저럴 수가 있나 하면서 보던 영화가 탄탄한 현실감을 갖추게 된다.
2003년. 켄터키주의 렉싱턴에 있는 트랜실베니아 대학생들인 스펜서(배리 키간)와 워렌(에반 피터스)은 친구. 둘 다 똑똑하고 가정환경도 좋아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들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스펜서가 느닷없이 교내 도서관 별실에 있는 희귀고서적을 훔쳐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상, 워렌에게 동조하라고 부탁한다.
도서관 별실에는 미국 조류학자 존 제임스 오더번의 책 ‘미국의 새들’과 함께 다윈의 서적이 있는데 이것이 두 도둑의 목표. 그리고 별실에는 여자 사서(앤 다우드) 한 사람만이 있어 책 훔치기는 누어서 떡 먹기라는 것이 스펜서의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추어 예비 도둑들인 스펜서와 워렌은 인원이 더 필요해 대학 동급생들인 채스(블레이크 제너)와 에릭(재레드 에이브래햄슨)을 포섭한다.
넷은 이제부터 범행 계획을 짜면서 먼저 뉴욕과 유럽에까지 가 장물아비와 만난다. 그리고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짜지만 역시 아마추어들이라 긴급 상황 시 대처 방안 등에 대해선 소홀히 한다. 이들은 또 자신들의 털이를 위해 털이 영화들도 보는데 ‘킬링’ ‘아스팔트 정글’ ‘리피피’ ‘굿 펠라즈’ 및 ‘저수지의 개들’ 등이 교과서 구실을 한다. 4인조 아마추어 도둑들의 실제 범행이 이들 영화 분위기를 풍긴다.
그 동안 범행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드디어 범행일이 와 4인조는 털이에 들어간다. 때는 학기말 시험 때.
4인조는 회색 가발에 수염을 붙이고 두터운 코트에 모자들을 쓴 채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이들의 범행 과정이 긴장감 가득하고 스릴이 넘치면서도 황당무계한 코미디 같아 킬킬거리며 웃게 된다.
범행은 일부만 성공, 스펜서와 워렌은 훔친 책을 팔려고 뉴욕에 간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하게 아마추어들이라 여기서 스펜서가 큰 실수를 한다. 4명의 젊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어수룩해 보이는 키간의 연기가 돋보인다.
소품인데 스튜디오 영화 같은 스케일을 지닌 대담한 영화다. R등급. The Orchard.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솔로: 스타워즈 이야기 (Solo: A Star Wars Story)


추바카와 한 솔로(오른쪽)가 밀레니엄 팰콘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솔로 한은 어떻게 탄생했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서막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는 우주의 무법자이자 무뢰한인 한 솔로가 어떻게 해서 솔로라는 성을 가지게 됐으며 또 그의 친구가 된 괴성을 지르는 털투성이 추바카와 도박사 랜도 칼리시안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얘기한 한 솔로의 성장기로 별 재미가 없다. 
시리즈에서 해리슨 포드가 맡은 한 솔로는 용감무쌍한 무법자로 심술첨지이며 유머가 있어 여러 주인공들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인물인데 이번에 28세 난 알든 에렌라익이 젊은 시절의 한 솔로로 나와 무난하게 역을 소화하고는 있으나 포드의 멋엔 못 따라간다.
이 영화는 제작 도중에 두 명의 공동 감독을 해고하고 뒤늦게 론 하워드를 고용해 완성했는데 하워드의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가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안전 위주식이요 무사 안일한 솜씨다. 주니어급 영화로 기대에 못 미친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수많은 속편이 계속해 나오고 있는데다가 이것처럼 리부트까지 만들어내 식상할 정도. 
이 영화는 액션이 많아 공상과학 액션모험영화의 구실을 하곤 있지만 산발적인 액션이 별로 새로운 흥분을 일궈내진 못한다. 내용이나 액션이 신선한 극적 충격을 주지를 못하며 일사분란하지 못한 플롯과 많은 조연진의 어정쩡한 연기 그리고 한의 성격 개발이 미흡한 것도 흠이다.
젊은 한은 고아로 자란 도둑으로 거대한 파충류 괴물 레이디 프록시마(린다 헌트의 음성)가 다스리는 땅에서 도둑질로 연명한다. ‘플라이 보이’(우주선 조종사)가 꿈인 그에겐 애인 퀴라(에밀리아 클락이 완전 소모됐고 연기도 모자란다)가 있는데 둘은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도주하다가 공항에서 본의 아니게 헤어진다. 성이 없던 한은 출입국 관리직원으로 부터 솔로라는 성을 얻는다. 
그리고 한은 퀴리에게 돌아가기 위한 우주선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제국군대에 입대한다. 여기서 조종사 훈련을 받다가 쫓겨난 한은 지하 진흙바닥의 옥에 갇히는데 그와 함께 수감된 것이 추바카. 둘이 옥에서 탈출하면서 액션이 벌어지는데 이 때부터 한과 추바카는 이 별 저 별로 옮겨 다니며 무법자들의 집단과 어울린다.
한은 연료도 될 수 있고 또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물질을 노리는 남녀 도둑 베켓(우디 해럴슨)과 밸(탠디 뉴턴)과 한 패가 되나 베켓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데 베켓의 두목은 얼굴에 흉한 상처가 난 드라이든 보스(폴 베타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퀴라가 보스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닌가.
한은 이런 과정에서 또 하나의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가 시리즈에서 빌리 디 윌리엄스가 역을 맡았던 느글느글한 사기 도박사 랜도 칼리시안. 랜도 역은 이번에 도널드 글로버가 맡아 능청맞게 해낸다. 그리고 한과 랜도가 카드게임을 한 끝에 한이 이겨 자기 소유가 된 랜도의 우주선 밀레니엄 팰콘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속편을 예고한다. PG-13. Disney. 전지역.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1993년 여름(Summer 1993)


안나(왼쪽)와 프리다가 1993년 여름을 함께 보내고 있다.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애잔한 어린 시절 회상


이 영화로 데뷔한 스페인의 여류 감독 칼라 시몬이 1993년 여름 여섯 살 때 경험한 시골에서의 삶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고 따스하면서도 애잔하게 그린 꾸밈없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얘기는 자칫하면 감상적이 되기 쉬우나 시몬은 감상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직선적이며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섬세한 솜씨로 상세히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연인 소녀 프리다 역을 맡은 라이아 아티가스와 프리다의 세 살짜리 사촌 소녀 안나 역의 파울라 로블레스의 연기가 뛰어난데 특히 영혼이 가득한 시선을 지닌 아티가스의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런 연기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두 소녀가 영화를 튼튼히 받쳐주고 있다. 
도시 소녀 프리다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으면서 산악지대 시골에 사는 친삼촌 에스테베(다비드 베르다구에르)와 그의 부인 마르가(브루나 쿠시)와 두 사람의 세 살 난 딸 안나가 사는 집으로 온다. 영화는 시몬이 실제로 여름을 보낸 곳에서 찍었는데 마당의 닭들과 호수와 숲을 찍은 촬영이 전원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낯설고 물 설은 프리다는 외롭고 슬퍼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상 앞에 찾아가 하소연을 한다. 이런 신앙심은 프리다의 할머니 마리아(이사벨 로카티)로 부터 물려받은 것. 
그리고 프리다는 화풀이를 어린 안나에게 해댄다. 프리다는 안나에게 놀이를 하자며 숲 속으로 깊이 데리고 들어가 버려 놓고 오는가하면 안나의 팔까지 부러뜨리게 만들어 마르가의 미움을 산다. 그러나 에스테베는 프리다를 극진히 아낀다. 영화는 두 어른을 좋거나 나쁜 사람들로 양분하지 않고 아주 공평하게 다루고 있다.
프리다와 안나는 비록 나이 차가 있긴 하지만 친구가 되는데 시몬은 두 아이의 감정과 심정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마치 아동 심리학자처럼 사실적이요 긴장감마저 감돌도록 묘사하고 있다. 
영화는 극적 충격이나 파고는 심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이 벌어지는 일들에 의해 받는 심리적 영향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차분하고 조용하며 또 주도면밀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시골에서 프리다가 보낸 삶을 마치 꿈과도 같이 회상한 감동적인 영화로 아티가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연기가 정말로 경이롭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레이트 와이트 호프’


최근 트럼프대통령이 특별사면한 사람들 중에 독특한 인물이 1946년에 사망한 미 프로권투 사상 최초의 흑인 챔피언인 잭 존슨(사진)이다. 존슨은 1913년 ‘비도덕적인 목적’으로 백인애인으로 창녀인 벨 슈라이버를 주 경계를 넘어 수송했다는 혐의로 재판 끝에 1년형에 처해졌다. 그 후 존슨은 국외로 도주했다가 1920년에 귀국해 10개월 옥살이를 했다.
존 맥케인 상원의원도 지지하는 존슨에 대한 사면요청은 조지 부시대통령 때부터 있어왔는데 인종차별주의자로 비판 받는 트럼프가 그를 사면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트럼프가 존슨을 사면한 이유 중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해보고 아울러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거부한 것을 자신이 했다는 것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돼 있다.
백악관에서 있은 사면발표에는 전 헤비급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와 ‘록키’ 실베스터 스탤론 등이 참석했는데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오바마가 거부한 것을 내가 했다”고 뽐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한편 스탤론은 존슨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발표했다.
존슨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극적인 것이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백인 적수들을 계속해 때려누이고 1908년 미 최초의 흑인 챔피언이 됐는데 이로 인해 백인들은 존슨을 제압할 백인들의 위대한 희망인 ‘그레이트 와이트 호프’(The Great White Hope)가 나타나기를 갈망했다.
그 ‘위대한 희망’으로 선발된 사람이 은퇴한 헤비급 챔피언 제임스 J. 제프리즈. ‘세기의 대결’이라 불린 존슨 대 제프리즈의 경기는 1910년 7월 네바다 주 리노에서 열렸는데 제프리즈는 존슨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15회 TKO 패했다. 존슨이 이 후에도 백인상대를 계속해 때려 누이자 열 받은 백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이 두려운 미연방의회는 1912년 프로권투경기영화를 주 경계를 넘어 운반하는 것을 금하는 법까지 통과시켰었다.       
존슨은 흑백차별이 극심하던 당시로서는 흑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기 할 말은 하면서 자기 신분과 위치를 과시한 사람이었다. 주먹 힘이 세고 권투기술이 빼어났을 뿐 아니라 지능이 간교할 정도로 뛰어나고 백인여자들을 아내와 애인으로 삼는 바람에 백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는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그 누구의 지시도 안 받고 내 짝을 고를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존슨은 무하마드 알리의 대선배인 셈이다.
존슨의 삶은 이미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1967년에 나온 연극 ‘그레이트 와이트 호프’. 잭 존슨은 잭 제퍼슨으로 이름으로 나오는데 역은 거구에 굵은 바리톤 음성(‘스타 워즈’의 다트 베이더 음성)을 지닌 제임스 얼 존스가 맡았다. 그의 첫 백인 아내 에타 테리 듀리에는 엘리노어 박만이라는 이름으로 제인 알렉잰더가 역을 맡았는데 둘 다 토니주연상을 탔다. 하워드 새클로가 쓴 연극은 퓰리처상을 탔다.
알리는 이 연극을 보고 존스에게 “이것은 내 얘기다. 백인여자들을 종교문제로 대치한다면 그 것은 내 얘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종교문제는 알리가 무슬림 양심적 거부자로서 군 징집을 거부한 것을 뜻한다.
마틴 릿 감독은 1970년 연극을 바탕으로 동명영화를 만들었다. 제임스 얼 존스와 제인 알렉잰더가 역시 주연을 맡았는데 둘 다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었다. 제퍼슨의 백인 도전자들을 때려누이는 선수로서의 삶과 유죄선고와 국외도주 그리고 아름다운 백인 여인 박만과의 기복이 심한 로맨스 등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그런데 존슨의 아내 듀리에는 남편의 잦은 구타와 심한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1912년 권총 자살했다. 존슨은 가정폭력자로 알려졌다. 이것이 과거 대통령들이 존슨의 사면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링 안팎에서 백인 적수들과 맞서 싸운 투사다.
트럼프도 말했듯이 존슨의 옥살이는 인종차별로 인한 불의에 의한 것인데 이런 인종차별은 존슨의 옥살이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세가 등등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최근 트럼프 지지자인 코미디언 로잰 바가 오바마 대통령의 전 보좌관이었던 흑인 발레리 재렛을 “무슬림 형제와 원숭이 사이에서 나온 아기”라고 야유한 것만 봐도 미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상존하는 차별의식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이에 로잰 바의 시리즈 ‘로잰’을 방영하는 ABC-TV가 대국민사과를 하고 시리즈를 전격 취소하자 트럼프는 ABC는 비판하면서도 로잰의 발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내게 “인종차별은 어릴 때부터의 교육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 그 것은 자기 것과 다른 것에 대한 생태적 거부반응이라고 본다. 미국의 한국 사람들은 소수계로서 인종차별의 피해자 의식을 내세우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타 인종에 대해 가해자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레이트 사일런스’


괴이하고 과장되고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이탈리아의 웨스턴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1960년대 한 때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었다. 이 웨스턴의 대명사와도 같은 감독이 세르지오 레오네로 그가 만든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는 레오네와 함께 그 때까지만 해도 무명씨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유명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대학생 때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봤는데 시가릴로를 입 한쪽에 물고 가늘게 뜬 눈으로 째려보는 과묵한 건 맨 이스트우드의 카리스마와 채찍질과 휘파람 소리를 섞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그리고 미국 웨스턴과는 전연 다른 폭력에 ‘야, 이런 웨스턴도 있구나 ’하면서 넋을 잃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얼마 있다가 같은 극장에서 또 한 번 봤다.
아끼라 구로사와의 ‘요짐보’(Yojimbo^1961)를 바탕으로 만든 ‘황야의 무법자’는 빅 히트를 하면서 제2편 ‘속 황야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1965)와 제3편 ‘좋은 자,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 등이 나왔는데 편이 늘어날수록 재미도 더 있다.
그런데 레오네의 이름은 잘 알려졌지만 그와 같은 때 활동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또 다른 명장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코르부치의 웨스턴은 레오네의 그 것보다 훨씬 더 사납고 거칠고 무자비해 보고 있자면 속 피부가 얼얼해지는 쓴 맛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코르부치의 대표적 웨스턴이 ‘장고’라는 이름을 인정사정없는 웨스턴 킬러의 대명사처럼 만들어놓은 ‘장고’(Django^1966)다. 나는 장고로 나온 프랑코 네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이 폭력적이요 음습한 분위기의 영화를 국도극장에서 봤는데 개틀링 연발기관총을 관 속에 넣고 끌고 다니면서 악인들을 닥치는 대로 쏴 죽이는 장고의 액션과 비명과도 같은 독특한 사운드 트랙에 정신이 팔려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었다.
코르부치의 열렬한 팬이 유혈폭력에 있어 남보다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타란티노는 코르부치의 웨스턴을 “그의 서부는 웨스턴장르의 그 어느 감독의 것보다도 가장 폭력적이요 초현실적이며 인정사정없는 풍경”이라고 찬양한바 있다.
제이미 팍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타란티노의 ‘장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2012)는 코르부치의 ‘장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네로가 캐미오로 나오고 또 ‘장고’의 주제음악도 빌려다 썼다.
코르부치가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와 한판 겨뤄 보자고 만든 또 하나의 걸작 ‘스파게티’ 웨스턴이 만든지 50주년이 되는 올 해 최근에 와서야 LA등 대도시에서 잠깐 개봉된 ‘그레이트 사일런스’(The Great Silence^1968^사진)다. 천지사방이 눈으로 덮인 유타 주의 스노 힐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그렸는데 타란티노의 잔혹한 웨스턴 ‘가증스런 8인’(The Hateful Eight^2015)의 무대가 백설이 만건곤한 와이오밍 주인 것도 코르부치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레이트 사일런스’의 사일런스는 말을 못하는 정의의 건 맨 이름으로 프랑스의 명우 장-루이 트랭티냥이 나온다. 그가 이탈리아 산 웨스턴에 나온 까닭은 대사를 말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일런스의 천적은 현상금을 노리고 졸개들과 함께 사람 사냥을 하는 잔인한 로코. 로코로는 독일의 명우로 ‘속 황야의 무법자’에도 나온 클라우스 킨스키가 나온다. 클라우스는 ‘테스’에 주연한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다.
로코는 졸개들을 데리고 현상금이 걸린 범법자들로 몰려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을 사냥하는데 독일제 마우저 권총을 쓰는 속사의 명수 사일런스가 이들에 맞서면서 피의 살육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 편 저 편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이 영화는 전연 뜻 밖에 여느 웨스턴과는 달리 처절한 비극으로 끝난다. 
선과 악의 구별이 분명치 않은 이 영화처럼 염세적이요 비관적인 웨스턴도 보기 드문데 그래서 코르부치는 해피 엔딩 판을 따로 찍었다. 영화가 지독하게 염세적인 이유는 코르부치가 자기가 존경하던 체 게바라와 말콤 X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잔인하고 황량하고 사납고 야성적이며 무드 짙고 폭력적이며 고독한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무표정하고 무언인 트랭티냥과 간교하고 새디스틱한 푸른 눈의 킨스키의 적의에 찬 대결. 또 하나 특징은 당시만 해도 보기 힘든 사일런스와 흑인 미망인 폴린(미국배우 보네타 맥기)간의 흑백 로맨스. 영화의 음악은 모리코네가 작곡했는데 매우 아름답다. 촬영도 훌륭하다.
‘그레이트 사일런스’의 개봉 50주년을 맞아 필름 무브먼트(Film Movement)가 새 복원 판 DVD를 6월 5일에 출시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