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잘 발달된 내 몸의 근육 볼만한가요”




현재 상영 중인 마블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액션영화‘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32)와의 인터뷰가 3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2011년에 나온‘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속편. 에반스는 4월에는 역시 그가 나왔던‘어벤저스’의 속편인‘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차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는 또 봉준호 감독의 공상과학 액션영화‘설국열차’(6월 개봉)에서도 주연을 맡아 한국 팬들에게는 낯이 익은 배우다. 에반스는 자신이 주연을 하는 미 동부 해안을 무대로 한 로맨틱 드라메디‘1:30 열차’(그는 인터뷰에서 제목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텁수룩한 수염을 하고 푸른색의 짧은 소매 셔츠를 입은 건강한 호남형인 에반스는 마치 캡틴 아메리카처럼 씩씩하고 원기가 왕성했는데 질문에 깔깔대고 웃으면서 박수까지 쳐가며 속사포 쏘듯이 대답했다. 기자가“당신 한국서 영화를 촬영할 예정인데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묻자“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후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 악수를 나누면서“내 영화 홍보 차 한국에 갔었는데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 영화에서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체구를 보여주는데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위해 신체단련을 했는가.
“영화 촬영 2주 전부터 신체단련에 들어가 계속하다가 촬영이 끝나기 2~3주 전부터 그것을 중단했다. 영화가 끝난 뒤로 난 체육관에 대해선 일절 생각을 안 했는데 ‘어벤저스’ 속편을 찍기 위해 다시 맹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 그러면 다이어트를 하는가. 신체단련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라도 있었는가.
“다이어트는 아니고 철저한 신체단련이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해 근육이 발달됐고 또 신진대사가 잘 된다. 그래서 체중의 증감이 아주 신속하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과거와 달리 몸이 쑤시고 여기저기서 덜커덕거리는 소리도 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 이젠 이런 역을 몇 개만 더 하고 그만 둘 것이다.”

―‘어벤저스’ 속편 촬영을 위해 한국에 간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촬영을 위해 한국에 얼마간 머물 것이다. 나 외에 또 누가 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선 아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 당신이 나온 ‘설국열차’를 감독한 봉준호에 대해 얘기해 달라.
“그는 참으로 멋진 감독이다. 난 그 영화와 봉 감독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할리웃과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다. 그는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 카메라 위치만 정해지면 그 즉시 찍고 편집을 한다. 매우 대담무쌍한 연출로 그것은 봉 감독이 자신의 방법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연기 외에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감독은 자신의 얘기를 할 수가 있고 또 영화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다. 반면 연기란 다른 배우들과 감독과 함께 일하는 큰 그림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배우는 촬영이 끝나면 그것과 작별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감독은 재능을 지닌 다양한 예술인들의 비전을 구체화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연출은 대화와 협조의 게임으로 나는 그것에서 큰 보상을 받는 느낌을 가졌다. 연출이 정말로 즐거운 것은 편집할 때다. 편집실은 본격적으로 영화를 건축하는 곳으로 그것은 마치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 당신에 관해선 약물 복용이나 요란한 파티 참석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가십이 전연 없는데 어떻게 해서 도덕적으로 난장판인 할리웃에서 자신을 지켜나갈 수가 있는가.
“영화란 매우 아슬아슬한 사업이다. 개인의 정신적 건강을 맑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대중의 눈 밖에 머물러 있고 또 자신의 삶에서 개인적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면 평화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캡틴 아메리카(왼쪽)와 윈터 솔저가 격투를 벌이고 있다.

―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이상을 지키는 것이 일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상은 무엇인가.
“난 그가 반드시 미국의 이상만 수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가 인간의 이상을 수호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캡틴 아메리카라 불리고 적과 백과 청색의 옷을 입긴 했지만 그가 대변하는 도덕과 가치는 그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신조가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투쟁과 염려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범세계적인 것으로 따라서 비록 그의 이름엔 아메리카가 붙어 있지만 그를 반드시 미국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 당신은 영화에서 70년간 동면에 빠졌다가 깨어나서도 20대 모습 그대로인데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면 영원히 젊은 상태로 남고 싶은가.
“유혹적인 제안이긴 하나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에 난 그런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싶지 않다.”

― 여자를 만날 때 당신은 상대에게 스스로 데이트를 청하는가 아니면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는가.
“난 스스로 데이트를 신청할 배짱이 있다. 그러나 만남이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바른 것이 아니다. 내게 바른 사람을 만나면 나의 데이트 신청도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은 여자문제에 있어 구식 스타일인가.
“어느 정도 그렇다. 요즘에는 상대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이전엔 전화로 ‘누구 있어요’라고 물었다. 난 분명히 문자 메시지 보내는 사람보다 전화를 들고 말을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 나이를 먹으면서 무얼 배웠는가.
“난 지금 32살인데 20대 때보다 확실히 더 내 나이와 위치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의 실수에 대해 더 이상 염려하지 않고 또 미래에 대해서 집념하지 않으면서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현재를 즐기고 있다.”

― 현재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감독하는 것을 즐겼다. 현재 내가 오직 하고 싶은 것은 감독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열을 찾고 이해하는 것이다.”

―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온 로버트 레드포드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철두철미한 프로다. 자기 대사를 암기해 세트에 나온다. 매우 인내심 있고 이해심이 깊다. 뛰어난 연기인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 캡틴 아메리카는 자기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방패가 있는데 당신을 이 세상에서 지켜주는 방패는 무엇인가.
“가족이다. 가족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내 직업과 사업으로부터 지켜줄 뿐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준다. 왜냐하면 때로 자신이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 영화에 당신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들어가 자신의 옛 모습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신은 실제로 고요 속에서 무언가를 들은 적이 있는가.
“매일 그렇다. 난 매일 정적을 연습하며 산다. 나는 목에 정적에 관한 문신이 있다.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퍼져 있고 또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집착해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큰 장애다. 이것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것이다. 삶은 현재의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결코 만날 수 없다. 미래란 현재가 될 뿐이니까.”

― 연예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바로 그게 문제다. LA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들이 문제가 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난 집에를 자주 간다. 이 사업은 너무나 유혹이 많고 혼란스럽다. 따라서 고요함 속에 현재를 유지하면서 잡생각을 제거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싸우는 목표도 이를 성취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나의 공포다. 공포 자체가 문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로크(Locke)

차 안에서 나누는 전화통화 `스릴 만점'  


로크가 운전을 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대단한 원맨쇼다. 지극히 검소한 영국산 미니멀리스트 영화로 건축 수퍼바이저인 아이반 로크가 밤에(완전히 차 안에서 찍은 촬영이 훌륭하다) BMW를 운전하고 85분간 영국의 버밍엄에서부터 런던까지 가면서 차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가족을 비롯해 이 사람 저 사람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힐 정도로 서스펜스가 가득하다.
내용은 물론이요 기술적으로도 대담하고 혁신적인 영화로 로크로 나오는 탐 하디의 목소리와 얼굴표정 연기가 압도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 높이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하디의 기민성과 능력이 가상하다.
과실과 책임 그리고 상실과 얻음의 영화인데 로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그가 차를 타고 가면서 전화 통화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하디의 연기와 함께 또 하나 칭찬 받을 만한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음성연기. 사실감 있다.
우선 첫 문제는 로크는 내일 새벽에 고층건물 건축의 토대용 콘크리트를 붓는 일을 감독해야 하는 데도 만부득이한 일 때문에 현장을 떠났다. 공사문제로 로크는 자기 보스(벤 대니얼스)와 조수(앤드루 스캇)는 물론이요 수십대의 콘크리트 적재 트럭의 원활한 교통을 위해 교통 통제관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당면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이어 그는 축구광인 집에 있는 어린 두 아들과 아내 카트리나(루스 윌슨)와 대화를 나눈다. 아들에게는 경기 결과를 물어보면서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그의 과오는 지난해에 런던에서 일할 때 현장의 사무직원인 베탄(올리비아 콜만)과 하룻밤을 지냈는데 베탄이 로크의 아이를 임신, 지금 조산하게 돼 병원에 입원했다. 
로크는 자신의 책임을 지키기 위해 직장과 가정을 잃을지도 모르는 데도 현장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카트리나에게 용서를 빌랴 징징대며 우는 베탄을 달래느라 바쁘다. 
로크가 운전을 하면서 계속해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고 또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는 연기를 일사불란하게 하는데 경탄할 만한 것이다. 꽉 죄어드는 긴장감 가득한 드라마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뼈 빼고 기름 빼고 진국만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스티븐 나잇 감독(각본 겸). R. A24.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다른 여자(The Other Woman)

세 여자의 `플레이보이 골탕 먹이기'  


케이트(왼쪽부터)와 칼리와 앰버가 술 마시고 춤추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전형적인 할리웃산 속빈 강정과 같은 영화로 상스럽고 짜증나게 만드는 우습지 않은 ‘시스맨스’ 코미디다. 코미디에 재주가 있는 캐메론 디애스와 레즐리 맨이 주연하는데 웃음이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억지로 쥐어짜는 듯이 불편해 피곤하다.
연기와 대사 역시 모두 가짜투성이인 ‘칙 플릭’인데 디애스와 맨 외에 순전히 눈요깃거리로 나온 젖가슴이 큰 호박만한 모델 케이트 업톤 등 세 여자의 억지 교태와 제스처와 함께 끊임없이 재잘대는 허튼 소리에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난다.
영화를 감독한 사람은 센티멘털한 로맨스 영화 ‘노트북’을 만든 닉 캐사베이티즈인데 코미디 데뷔가 엉망진창이다. 레즐리 맨을 비롯해 역시 여자들이 주인공인 코미디 ‘브라이즈메이즈’의 재미와 폭소에 비하면 이 영화는 허접 쓰레기에 가깝다.
바람둥이 남자의 피해자들인 세 여자가 일치단결해 남자에게 온갖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는 ‘복수 코미디’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이들이 어떻게 해서 별 남성적 매력이 없는 이기적인 플레이보이 역의 니콜라이 코스터-발다우(덴마크 배우로 HBO의 인기 시리즈 ‘왕좌 게임’에 나온다)에게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느냐 하는 점이다. 꼭두각시 같은 역의 코스터-발다우는 미스 캐스팅이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맹렬여성 변호사 칼리 위튼(디애스)은 재정전문가인 마크 킹(코스터-발다우)을 만나자마자 반해 둘이 요란한 섹스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코네티컷주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마크가 유부남이 아닌가.
대경실색한 것은 칼리뿐 아니라 마크의 전형적인 가정주부 케이트(맨)도 마찬가지. 그런데 서로 적이 돼야 할 칼리와 케이트는 서로 마음이 맞아 둘이 팀이 되어 마크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다.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마크의 또 다른 여인인 젊은 육체파로 약간 맹한 스타일의 앰버(업톤-뻣뻣하다).
셋이 복수의 삼총사가 돼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런 복수과정에서 셋은 술 마시고 춤추고 포옹하고 재잘대고 찧고 까불면서(보기가 낯간지럽다) 우정으로 단단히 맺어진다. 그런데 이 복수 수단이 참으로 상스럽기 짝이 없다.
마크의 샴푸제에 탈모제를 대신 집어 넣어 마크의 머리털이 빠지게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불인견인 것은 복수용 설사약을 먹은 마크가 고급 식당에서 방귀를 뀌다가 급기야 참지를 못하고 일을 저지르는 장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상스러운 것은 세 여자가 재잘대는 대화에서도 나오는데 그것이 솔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여자의 은밀한 곳의 손질에 대해서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이 밖에도 디애스의 얼굴과 커다란 개의 커다란 그것과의 접촉 등 매우 역겹고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많다. 일종의 여권 회수영화인데 회수는커녕 여자들을 모욕하는 결과를 저지른 상당히 미성숙한 코미디다. R.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로드 짐’



‘할리웃 외신기자협회를 대표해 귀국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우리 협회가 이번 참사에 대해 도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으니 알려주기 바랍니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장 테오 킹마.
‘귀국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앞으로 긴 인생과 함께 며칠간의 휴가를 기대하던 그렇게 어린 아이들의 삶이 끝나다니 이 무슨 비극입니까. 다시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을 슬픔에 잠긴 모든 가족에게 제 마음을 보냅니다.’ -HFPA 회원 카렌 마틴.
며칠 전 e메일로 보내온 HFPA 동료들의 글을 읽고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한국판 ‘타이태닉’이라 부를 만한 ‘세월’호 비극은 단순히 먼저 달아난 선장이나 일본산 고물 배를 사서 뜯어 고친 뒤 바다에 띄운 선주나 무능하기 구태의연한 정부의 탓만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총체적 잘못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번 우리나라는 기초가 제대로 안 돼 있고 규칙과 법은 지킨다기 보다 오히려 깨기 위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꼭 가건물을 보는 것 같다. 기초 부실로 붕괴한 와우아파트처럼 언제 어디가 무너져 내릴지 몰라 아슬아슬하기가 짝이 없다. 정말이다. 기초 공부부터 다시 하려는 국민운동이라도 일으켜야겠다.
‘세월’호 사건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 눈물만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승객 구조를 안 하고 자기들 먼저 달아난 선장과 승무원들이다. 이 사람들은 영화 ‘타이태닉’도 안 봤는가. 나도 죽음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지 장담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장과 승무원이라면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되지 않겠는가.
이들의 도주는 용기와 비겁을 생각나게 한다. 용기와 비겁의 차이는 백지 한 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월’호 선장처럼 가라앉는 배의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간 비겁자인 항해사 짐은 그 후 속죄하고 더 이상 도망가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맞는 용감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짐은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모험얘기이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한 소설 ‘로드 짐’(Lord Jim)의 주인공이다. 콘래드의 또 다른 소설로는 ‘어둠의 심장’이 있는데 이 소설은 프랜시스 F. 코폴라가 감독하고 말론 브랜도가 나온 영화 ‘지옥의 묵시록’으로 만들어졌다.
소설 ‘로드 짐’도 1965년 리처드 브룩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짐으로는 비수의 감촉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한 피터 오툴이 나왔다. 난 이 영화를 대학생 때 을지로에 있던 을지극장에서 봤는데 로맨틱하면서도 장렬한 내용에 진한 감동을 느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로드 짐’은 인간의 순간적 과오와 그로 인한 인간성의 추락 그리고 고통과 자괴와 궁극적 속죄와 재생의 이야기다.
영국의 1등 항해사 짐(사진)은 부상 치료차 자바에 남아 머물다가 건강을 회복, 구닥다리 화물선 S.S. 파트나에 오른다. 메카로 가는 회교신자들을 잔뜩 태운 배가 항해 중 심한 태풍을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짐은 승객들을 버리고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과 똑같다.
그런데 짐이 항구에 도착해 보니 뜻밖에도 파트나호가 멀쩡히 정박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짐은 재판에 회부돼 승무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여기서부터 그는 뜨내기가 돼 스스로 버러지 같은 삶을 산다.
자신을 증오하는 자아 혐오증자가 된 비겁자 짐이 재생의 기회를 찾게 되는 것은 그가 말레이시아의 외딴 섬 파투산에 정착하면서 이뤄진다. 짐은 이 섬의 주민들을 수탈하는 강도단 두목 제너럴(일라이 월랙)에 맞서 주민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여 승리, 주민들로부터 ‘로드’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제너럴이 짐과의 약속을 어기고 마을을 역습하면서 촌장의 아들이 사망하고 짐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촌장은 짐에게 마을을 떠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나 다시는 도주하지 않기를 자신에게 다짐한 짐은 총을 든 촌장을 향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걸음을 내디딘다. 오툴이 새파란 눈을 들어 창공을 응시하는 순간 “빵”하는 총소리가 난다.
올스타 캐스트의 이 영화는 브룩스 감독(‘엘마 갠트리’ ‘인 콜드 블러드’)의 영화치곤 감상적이요 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 때여서 그랬는지 난 비겁과 용기와 인간 재생의 얘기를 진지하게 보면서 짙은 감동을 받았었다. 난 영화를 본 뒤 영어소설을 사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중단했다. 언젠가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 샌타모니카 에어로극장서 특별상영

알프레드 히치콕

아메리칸 시네마테크는 샌타모니카에 있는 에어로 극장(Aero-1328 Montana Ave.)에서 4월과 5월에 걸쳐‘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사진)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 상영에서는‘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와‘비밀 첩보원’과 같은 그의 전문인 스릴러뿐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들인 가정 드라마, 풍자극 그리고 스크루볼 코미디 등도 상영된다. 이 밖에도 대중의 큰 인기를 모았던‘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의혹의 그림자‘ 그리고‘새’ 등과 함께 히치콕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영국에서 만든 보기 드문 무성영화 등 히치콕의 포괄적인 작품세계를 조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 상영된다. 작품은 2편씩 동시 상영된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19일(하오 7시30분)
‘다이얼 M을 돌려라’
▲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ㆍ1956)-히치콕이 1934년에 만든 동명영화의 리메이크. 아프리카로 어린 아들과 함께 휴가를 간 미국인 부부(제임스 스튜어트와 도리스 데이)가 아들이 납치되면서 국제적 스파이 사건에 휘말려든다. 데이가 노래 부른 ‘케 세라세라’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클라이맥스의 런던 알버트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사람이 히치콕의 단골 영화음악▲ ‘언더 카프리콘’(Under Capricornㆍ1949)-1830년대 호주를 무대로 진행되는 삼각관계 의상극. 아일랜드 출신의 전과자인 호주의 지주(조셉 카튼)와 망상에 시달리는 그의 아내(잉그리드 버그만) 그리고 이 집을 방문한 아내의 어릴 적 남자친구(마이클 와일딩)가 엮는 드라마로 잭 카르디프의 컬러촬영이 눈부시다.
(‘사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작곡가인 버나드 허만이다.

*25일(하오 7시30분)
▲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ㆍ1955)-풍광이 수려한 프랑스의 리비에라에서 살고 있는 은퇴한 전직 야간 주택침입 전문 보석털이(케리 그랜트)가 자기 수법을 그대로 본 딴 연쇄 보석절도 사건이 일어나자 범인을 잡기 위해 집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 도둑은 이 곳에 놀러온 화사하게 아름다운 미국인 사교계 미녀(그레이스 켈리)와 사랑을 나눈다. 성적으로 은근히 자극적인 대사가 많다. 켈리의 의상(유명한 영화의상 디자이너 이디스 헤드의 작품)이 화려하다. 코믹 터치의 스릴러. ▲ ‘찢어진 커튼’(Torn Curtainㆍ1966)-냉전시대 미국인 물리학자(폴 뉴만)가 아내(줄리 앤드루스)와 함께 미사일 기술을 빼내기 위해 동독으로 위장 망명한다.

*27일(하오 7시30분)
▲ ‘메리’(Maryㆍ1931)-살인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여배우(올가 체초바)에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유죄평결을 내린 배심원(알프레드 아벨)이 여자가 처형되기 전에 자신의 평결에 대한 의혹을 풀기 위해 스스로 사건 수사에 나선다. 독일시장을 위해 만든 독일어판(영어자막). ▲ ‘스킨게임’(The Skin Gameㆍ1931)-오랜 역사를 지닌 부자 혼블로어(에드먼드 그웬) 와 신흥부자가 땅 경매를 놓고 맞서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혼블로어의 며느리(필리스 콘스탐)의 삶이 파괴된다. 두 작품 모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5월2일(하오 7시30분)
▲ ‘블랙메일’(Blackmailㆍ1929)-자기를 겁탈하려는 남자를 죽인 여자(애니 온드라)가 자기 애인인 형사의 심문을 받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정당방위를 살인으로 몰아 협박하는 남자 사이에서 시달린다. 영국 최초의 토키로 무성영화로도 찍었다. ▲ ‘살인!’(Murder!ㆍ1930)-‘메리’의 영어판으로 여배우 역은 노라 배링이 배심원 역은 허버트 마샬이 각기 맡았다.  

*4일(하오 7시30분)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ㆍ1954)-킬러(앤소니 도슨)를 고용해 자기 부정한 아내(그레이스 켈리)를 살해 하려던 남편(레이 밀랜드)이 일이 어긋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여자를 실크스타킹으로 교살하려던 킬러가 여자가 집어든 가위에 등을 찔려 죽는 장면이 긴장감 있다. 여자의 옛 애인 역은 로버트 커밍스. 입체영화로 상영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한물 간 남창(Fading Gigolo)

사랑과 섹스, 살짝 뒤틀려 그린 코미디


핌프 머리(우디 알렌·왼쪽)가 휘오라반테(존 투투로)에게 남창을 
권유하고 있다.

한물 간 남창은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연하고 또 감독한 인디영화 배우 존 투투로이고 그의 핌프는 재잘대는 영감 우디 알렌이다. 딱히 브루클린을 무대로 한 유대인들이 나오는 영화여서라기보다는 영화의 분위기나 대사 및 색조 그리고 재즈음악까지가 알렌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추잡하고 조잡해질 수도 있는 내용을 투투로는 아주 상냥하고 부드럽고 민감하게 다뤄 귀염성이 있지만 역시 소품에 속한다. 투투로는 나오는 인물들을 마치 자기 가족인양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배우들이 모두 감칠맛 나는 연기를 한다. 때로 진지하기까지 한 따스하고 달콤한 살짝 뒤틀린 코미디 드라마로 진짜 어른들용이다.
브루클린에서 경영하던 고서점의 문을 닫고 돈이 궁하게 된 나이 먹은 머리(알렌)는 돈벌이 아이디어를 아름답고 섹시한 자신의 피부과 여의사 파커(샤론 스톤)로부터 얻는다. 파커가 자기 여자 친구인 볼륨이 풍만한 섹스 덩어리 셀리마(소피아 베르가라)와 한 남자와 함께 ‘메나지 아 트롸’(3자간 섹스)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이 남자로 자기 친구로 꽃가게서 일하는 역시 돈이 궁한 휘오라반테(투투로)를 생각한 것.
머리의 권유에 처음에는 대경실색을 하던 휘오라반테는 돈도 궁하고 자기로서는 공짜 섹스라는 혜택에 끌려 머리의 남창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일단 3자간 섹스를 하기 전에 탐색 차 파커를 방문한다. 그 결과 서로 마음에 든다. 그래서 메나지 아 트롸가 이뤄진다.
휘오라반테의 두 번째 손님은 아이를 여섯이나 둔 초보수적인 유대인 커뮤니티의 젊은 과부 아비갈(바네사 파라디-자니 뎁의 전처인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 종교 때문에 성적으로 억눌린 삶을 사는 아비갈은 머리의 권유로 섹스 대신 오일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휘오라반테를 찾아 간다. 그리고 아비갈은 휘오라반테가 자기 등을 정성껏 부드럽게 마사지 해주는 감촉과 그의 인간성에 경직됐던 마음이 녹는다. 아비갈에게 마음이 가기는 휘오라반테도 마찬 가지.
그런데 이런 아비갈을 시시각각 정탐하면서 여자의 행동을 의심하고 질투하는 남자가 아비갈을 어렸을 때부터 지극히 사랑해 온 동네 자경단원인 도비(리에브 슈라이버가 가슴 찡한 연기를 한다). 과연 아비갈은 삼자간 섹스와 자신에 대한 순결한 사랑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휘오라반테와 도비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사랑과 섹스를 통한 미완의 행복 추구의 영화로 연기들이 다 좋다. R.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트랜센덴스(Transcendence)

기계에 인간지능·감정 `업로드' 


컴퓨터 속에서 되살아 난 윌(자니 뎁)은 초능력을 발휘한다.

요즘 영화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인공지능에 관한 공상과학 스릴러이자 사랑의 영화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자니 뎁이 죽었다가 부활하고 신의 노릇까지 하려고 드는 상당히 황당무계한 소리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컴퓨터 만능의 시대인 지금 상황에 알맞은 내용이기도 하다. 여하튼 간에 그렇게 재미가 큰 영화는 아니다.
인간의 지능과 감정까지를 업로드 받은 기계가 완전히 의식을 지닌 복제판 인간이 되고 이 디지털 생명체가 인간과 기계의 한계를 무시한 전지전능한 개체가 되어 자기 뜻대로 의식하고 행동하면서 일어나는 후유증을 다룬 영화로 인간 대 기계의 대결적인 관계를 묻고 있다. 
과연 인간은 우리의 삶을 보다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 기술이 급기야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괴물이 되고 말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영화는 컴퓨터가 못 쓰게 된 황폐화한 세상에서 회상 식으로 시작된다. 윌 캐스터 박사(자니 뎁)는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자기 아내이자 동료 연구자인 이블린(레베카 홀)과 역시 같은 분야의 연구자인 친구 맥스(폴 베타니)와 함께 인간이 보유한 총 지식과 감정까지를 업로드해 의식 있는 기계를 만드는 연구를 한다. 
이 연구가 거의 실현단계에 이르면서 윌은 유명해지나 윌은 한편으로는 이 같은 기술에 반대하는 브리(케이트 마라)가 리드하는 테러그룹 리프트의 공격 표적이 된다. 그리고 리프트의 공격으로 윌은 치명상을 입는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된 이블린은 남편과 함께 연구한 결과를 실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블린은 윌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한다. 업로드는 성공해 윌은 의식과 감정을 지닌 컴퓨터 속의 복제인간이 되나 이 복제인간 윌의 지식과 만유하는 능력에 대한 욕심이 도를 넘으면서 그는 아예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개체가 된다. 
수퍼 휴먼이 된 복제인간 윌은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마치 신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컴퓨터 복제인간인 윌은 진짜로 육신을 지닌 윌로 이 세상에 부활한다. 윌은 예수 같은 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블린과 맥스는 이런 윌에 대해 뭔가 잘못됐다는 의문과 공포감에 빠지고 정부가 윌의 행동을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액션이 일어난다(이 부분이 만화 같다). 
공상과학 스릴러에 로맨스 이야기를 삽입하면서 당신은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이냐는 물음도 하고 있다. 뎁의 연기에 대해선 특별히 언급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내용을 더 이상 자세히 밝히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자문하게 될 것인데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들이 봐도 다소 도깨비 소리 같은 영화다. 
크리스 놀란 감독(‘배트맨’ ‘인셉션’)의 촬영감독으로 ‘인셉션’으로 오스카상 촬영상을 받은 월리 피스터의 감독 데뷔작이다. PG-13.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터너 클래식 무비즈


내가 퇴근 후 집에 돌아가자마자 트는 TV 채널이 24시간 내내 고전영화만 방영하는 베이식 케이블 TV인 터너 클래식 무비즈(TCM)다. 고전영화의 보고와도 같은 이 채널은 주로 1970년대 이전에 제작된 스튜디오시대 영화들을 내보내는데 무엇보다 광고가 없어 좋다.
과거 여러 번 본 영화들과 생전 처음 보는 영화들이 명 호스트 로버트 아즈본의 유익하고 간단명료한 해설과 함께 방영되는데 채널을 한 번 틀면 정신없이 TV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원작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방영하는 TCM의 특징은 작품의 질이다. 툭하면 방영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시민 케인’ ‘카사블랑카’ ‘빗속에 노래하며’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목사인 내 아들이 어릴 때 좋아하던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와 나의 올타임 페이보릿인 ‘지상에서 영원으로’ 및 나올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나오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ㆍ사진) 같은 명화들을 어디서 이렇게 손쉽게 볼 수가 있단 말인가.
14일에는 그동안 한 열댓 번은 봤을 에롤 플린이 날렵하게 칼질을 하는 컬러가 눈부신 ‘로빈 후드의 모험’을 다시 보느라 밤 1시가 넘어서야 수면자세를 취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 고전영화들은 매번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과 같은 감동과 흥분감을 준다. 영화가 마법이라는 것을 그 때마다 실감하곤 한다. 반면 요즘 영화는 두 번 보고 싶은 것이 거의 없다.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을 주름잡던 게리 쿠퍼, 존 웨인, 지미 스튜어트, 클라크 게이블, 바바라 스탠윅, 케리 그랜트,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와 베티 데이비스와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들을 자주 대면해 이들의 영화를 볼 때마다 아득한 향수감과 함께 마치 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현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난 이들과 만나느라 어느 듯 TCM 중독자가 되었다.
TCM이 14일로 개국 20주년을 맞았다. TCM이 개국 첫 날 최초로 방영한 영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여서 이달 같은 날에도 이 영화가 방영됐다. 난 TV 앞에 꼼짝 없이 눌러앉아 이 거센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드라마를 열심히 구경했다. 도대체 그 동안 모두 몇 번이나 이 걸작을 봤을까.
TCM은 테드 터너가 1986년 MGM을 산 뒤 영화사의 앙꼬인 영화들만 쏙 빼먹고 껍데기는 다시 팔아 치우면서 태동의 씨앗이 잉태됐다. TCM이 방영하는 영화들은 MGM의 이 영화들과 워너브라더스의 1950년대 이전 것들이 중심 품목들이다. 이 밖에도 유니버설과 폭스 및 패라마운트 등과도 계약을 맺고 이 영화사들의 고전영화들도 방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활발하던 1930~60년대 작품들이 중심 프로그램이지만 종종 1970년대 후의 영화들도 볼 수 있다.
TCM은 금요일 밤에는 공상과학과 공포영화 등 컬트무비를 일요일에는 ‘사일런트 선데이 나잇’이라는 제하에 무성영화를 그리고 ‘TCM 임포츠’ 제하로는 외국어 영화를 방영하고 또 단편영화도 방영한다. 이 밖에도 ‘TCM 리멤버즈’라는 제목으로 작고한 유명 영화인들의 영화를 방영하면서 이들의 생애를 추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13일에는 최근 93세로 작고한 미키 루니의 영화들인 ‘녹원의 천사’와 ‘소년들의 도시’ 및 ‘베이브즈 인 암즈’ 등 그의 영화들을 하루 종일 방영했다.
또 ‘이 달의 스타’라는 제하로는 선정된 스타들의 작품을 집중 방영하고 매년 2월부터 3월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31일 간의 오스카’라는 제목으로 역대 각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들을 방영한다.
TCM은 또 2010년부터 매년 4월에 할리웃에 있는 차이니즈 극장을 중심으로 ‘TCM 클래식 필름 페스티벌’을 연다. 짧은 기간에 크게 성공해 타주에서도 대거로 팬들이 참가하는 페스티벌은 올해는 17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는데 이번 페스티벌에는 왕년의 수퍼스타들인 모린 오하라와 킴 노백 그리고 제리 루이스 등이 각기 자기 영화들인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벨, 책 그리고 초’ 및 ‘정신 나간 교수’ 상영에 참석해 아즈본과 얘기를 나눈다.      
한편 TCM은 개국 20주년을 맞아 차이니즈 극장을 떠나 포모사 카페와 패라마운트 스튜디오 및 다운타운의 2가 터널 등 영화들의 촬영현장을 둘러보는 무료관광 ‘TCM 무비 로케이션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고전 없이는 현대작품이 없기는 책이나 영화나 마찬가지다. 그런 뜻에서 미 영화문화의 한 흐름이 된 TCM은 고전을 꺼려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반드시 권할만한 채널이다. TCM은 고전영화 팬들에게는 고서적들이 들어찬 도서관이다. 책도 주로 고전을 읽는 나는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TCM 채널을 틀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4월은 말론 브랜도의 달

올해로 90세…뉴베벌리 시네마 한달간 연속 상영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는 말론 브랜도가 90세가 되는 2014년 4월(3일생)을 맞아 그의 영화들을 4월 한 달간 2편씩 동시 상영한다.

*11~12일
‘사요나라’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ㆍ1972)-파리에 사는 미국인 남자(브랜도)가 아내의 자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도전적이요 고혹적인 젊은 여인(마리아 슈나이더)과 대화나 감정의 교류가 거의 없는 동물적인 육체관계를 맺는다. 버터를 이용한 섹스 신 때문에 개봉 당시 큰 논란이 됐던 영화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X등급을 받았다. 고독과 허무가 판을 치는 실존적 작품으로 촬영이 눈부시다. 베르나르도 베르토루치 감독. 136분. 
▲ ‘황금 눈동자 속의 반영’(Reflections in a Golden Eyeㆍ1967)-1940년대 미 남부에 주둔한 동성애자인 육군 소령(브랜도)과 남편의 부하와 정사를 나누는 소령의 아내(엘리자베스 테일러)및 이들의 주위사람들을 중심으로 억눌린 성욕과 동성애 그리고 관음증과 살인을 다룬 변태적인 영화. 카슨 맥컬러의 소설이 원작. 존 휴스턴 감독.

*13~14일
▲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ㆍ1954)-뉴욕 항구의 부두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시피 한 깡패조직에서 졸개로 일하는 실패한 권투선수(브랜도-오스카 주연상)가 자기가 사랑하는 비둘기처럼 순수한 노동자의 대학생 딸(이바 마리 세인트가 데뷔작으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영향을 받아 자각해 깡패조직에 단신으로 저항한다. 오스카 작품, 감독(엘리아 카잔), 각본 및 촬영상 등 모두 8개 부문 수상. 로드 스타이거, 리 J. 캅, 칼 말덴 공연.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이 작품의 무드를 한껏 떠받쳐주고 있다. 
▲ ‘아팔루사’(The Appaloosaㆍ1966)-1870년대 멕시칸 도적들에게 자기 말을 도난당한 남자가 이를 찾기 위해 도적들을 추적한다. 침울한 무드의 진행이 느린 이색 웨스턴.   
‘워터프론트’
*15일
▲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ㆍ1964)-두 사기꾼(브랜도와 데이빗 니븐)이 한 여자(셜리 존스)를 놓고 사랑 다툼을 벌인다. 이 영화는 1988년 스티브 마틴과 마이클 케인 주연으로 ‘더티 로튼 스카운드럴’로 리메이크 됐다.
▲ ‘홍콩의 공작부인’(A Countess from Hong Kongㆍ1967)-여객선의 외교관(브랜도)과 그의 접견실에 무임 승선한 여인(소피아 로렌)과의 로맨틱 코미디. 찰리 채플린이 감독 집필 작곡의 1인3역을 하고 단역으로까지 나온 그의 마지막 작품.  

*16~17일
▲ ‘체이스’(The Chaseㆍ1966)-텍사스의 한 작은 마을을 무대로 전개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광적이요 파괴적인 군중심리와 이 동네 출신으로 교도소에서 탈출한 젊은이(로버트 레드포드)가 동네 사람들과 셰리프(브랜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이색적인 드라마다. 호튼 후트의 소설이 원작으로 앤지 딕킨슨, 제임스 팍스, 로버트 두발, E.G. 마샬 및 마사 하이여 등 올스타 캐스트. 릴리언 헬만이 각색하고 감독은 아서 펜. 133분. 
▲ ‘사요나라’(Sayonaraㆍ1957)-한국전 당시 일본의 고베 인근에 주둔한 미 공군 소령 파일럿 에이스(브랜도)와 아름다운 일본 연예인 하나오기(타카 미이코가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하다)와의 로맨틱한 사랑을 그린 빼어난 드라마. 에이스의 부하인 조(레드 버튼스)는 일본 여인 카추미(우메키 미요시)를 사랑해 결혼하려 하나 군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려 하자 임신한 카추미와 함께 동반자살을 한다. 이에 충격을 받아 인종차별의 편견을 채 벗어나지 못한 에이스는 하나오기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애절하고 아름다운 주제가는 어빙 벌린이 작곡했다. 버튼스와 미요시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고 미술상도 받았다. 147분. 상영시간 문의 (323-938-4038).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연인들만이 살아 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

수백년 사랑 이어온 흡혈귀 연인 스토리


오래간만에 재회한 애담과 이브가 사랑의 기운에 싸여 있다.

수백 년간을 서로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 두 남녀 보헤미안 떠돌이 흡혈귀 연인의 러브 스토리로 항상 비스듬한 각도로 서정적 무드의 예술적이요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만드는 독립영화인 짐 자무시(‘미스터리 열차’ ‘브로큰 플라워’ ‘데드 맨’) 감독의 영화다.
몽환적인 분위기 안에서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식해가는 도시를 배경으로 국외자들인 연인 흡혈귀의 세상에 대한 탄식과 둘의 사랑 그리고 자신들의 앞날의 운명에 대한 불안감을 우울하고 이름답고 또 감정 가득히 부드럽게 그린 꿈꾸는 듯한 로맨틱 소야곡이다.
흡혈귀 얘기여서 대부분 밤에 얘기된다. 두 연인은 애담과 이브. 애담(탐 히들스톤)은 쇠락한 디트로이트(파산한 이 도시를 참 잘 사용했다)에 살고 이브(틸다 스윈튼)는 아프리카의 탄지에에 살고 있다. 은둔자처럼 사는 애담은 방에서 죽치고 앉아 음악에 심취해 살고 있는데 신선한 피를 돈을 주고 병원기구 담당자인 닥터 왓슨(제프리 라이트)으로부터 산다. 애담은 또 비닐 레코드와 희귀 기타를 자기를 따르는 젊은 이안(안톤 옐친)으로부터 공급 받는다.   
한편 이브는 셰익스피어와 관계가 있던 말로(존 허트)로부터 신선한 피를 공급 받는데 인간들의 피는 위험하게 오염이 돼 애담과 이브는 신선한 피를 확보하는 것이 큰일이다. 이것은 둘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브가 돌연 애담이 그리워 디트로이트로 오면서 이 음악과 문학에 정통하고 세련된 멋쟁이 연인들은 오래간만에 뜨거운 사랑으로 재회를 반긴다. 소극적인 애담과 적극적인 이브가 두문불출하고 사랑에 잠겨 있는 정경이 아주 섹시하고 로맨틱하다. 
그런데 갑자기 저돌적인 이브의 여동생 에이바(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이 집에 쳐들어오면서 두 연인의 가정적 평온이 깨어지고 이를 견디다 못해 둘은 탄지에로 도피한다. 여전히 문제는 깨끗한 피를 조달하는 것. 애담과 이브는 인적이 끊긴 탄지에를 헤매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염려한다. 갈비씨 키다리 연기파인 스윈튼이 긴 백금발 가발을 쓴 채 우아하고 육감적인 흡혈귀 연기를 상냥하고 정감 가득하게 보여준다. 매력적인 영화다. 
R.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470-0492)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드래프트 데이(Draft Day)

“특A급 선수 잡아라”드래프트의 뒷거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케빈 코스너)가 선수 선발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프로야구 개막시즌에 어쩌자고 프로풋볼 영화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골수분자 풋볼 팬이 아니면 별로 큰 관심을 못 끌 스포츠 영화다. 풋볼에 대해서 뭘 좀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인데(그러고도 즐기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관객에게 달렸지만) 왜냐하면 뛰고 달리는 풋볼영화가 아니라 선수 선발을 놓고 일어나는 배후 흥정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브래드 핏이 나온 ‘머니 볼’을 연상케 하는데 ‘머니 볼’이 이 영화보다 한 수 위다.
‘불 더램’과 ‘꿈의 필드’ 및 ‘틴 컵’ 등 여러 편의 스포츠 영화에 나온 케빈 코스너가 풋볼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 소니 위버 주니어로 나와 A급 선수를 선발해 무기력한 팀의 재기를 노리는 내용인데 굉장히 말이 많은 반면 활력과 흥분감은 모자란다. 
그런대로 짜임새가 있고 연기들은 괜찮지만 스토리가 약하고 진행이 느려 좋은 스포츠 드라마가 되기엔 역부족이다. 다소 지루하기까지 한데 스포츠팬들 아닌 일반 관객을 생각하고 로맨스와 가족 드라마 요소까지 삽입했지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믿기가 어려운 점은 소니가 선수 선발을 놓고 벌이는 흥정의 전략. 풋볼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심할 정도로 그의 뒷거래 내용이 터무니가 없다. 클라이맥스인 선수 선발 당일에 가서야 다소 긴장과 스릴마저 느끼게 되나 그것도 사실은 짐작한 대로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제너럴 매니저인 소니는 구단주(프랭크 란젤라)로부터 신인선수 선발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제일 먼저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선발권을 따내 비실비실하는 팀을 살려 놓으라는 압력을 받는다. 선발 일을 코 앞에 놓고 소니는 여러 다른 팀의 제너럴 매니저들과 전화로 협상을 벌이는데 그는 팀의 코치(데니스 리어리)와 쿼터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무모하고 기상천외한 협상을 벌인다. 어쩌자고 이런 소니를 구단주가 해고를 안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선수 선발과정의 막후 드라마를 전면에 깔고 서브플롯으로 소니의 애정문제와 가족 얘기가 들어선다. 소니의 애인은 팀의 연봉문제 전문가인 알리(제니퍼 가너). 그리고 소니는 어머니(엘렌 버스틴)와 사이가 안 좋은 상태인데 그것은 소니가 최근에 작고한 브라운스 전직 코치였던 자기 아버지를 해고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나중에 밝혀지는데 소니가 효자다.
분주하게 벌어지는 선수 선발을 둘러싼 흥정과정에서 소니는 다른 팀의 매니저들뿐 아니라 선발 리스트에 오른 선수(그 중에는 영화 ‘42’에서 미 프로야구의 흑백장벽을 무너뜨린 재키 로빈슨으로 나온 연기 잘 하는 채드윅 보스맨도 있지만 나오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한다)들과도 흥정을 벌인다.           
선발 당일 실제로 ESPN과 NFL 네트웍 등을 이용해 사실감을 살리고 있고 왕년의 브라운스의 명선수로 후에 영화배우로도 활약한 짐 브라운이 캐미오로 나온다. 코스너의 연기는 단단한데 이 영화가 해외 흥행에서 얼마나 성공할지 궁금하다. 감독은 코미디 전문(고스트 버스터즈)의 아이반 라이트만.  PG-13. Summi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미키 루니


할리웃의 황금기 ‘하늘에 뜬 별들보다 더 많은 스타를 보유했다’고 뽐내던 MGM의 수퍼스타로 에너지 덩어리였던 미키 루니가 6일 93세로 LA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5피트 2인치의 단구에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얼굴을 한 루니는 20대 때 역시 MGM 소속으로 ‘할리웃의 왕’이라 불린 클라크 게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가장 흥행성 있는 배우로서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MGM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래서 루이 B. 메이어 MGM 사장은 루니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는데 루니는 신적인 존재였던 메이어를 “아저씨”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루니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영화는 깨끗한 가족 드라마 ‘앤디 하디’ 시리즈다. 무려 15편이나 만들어진 시리즈에서 루니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틴에이저 앤디 하디로 나와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런데 루니는 스크린에서는 앤디 하디였지만 실제로는 치마만 둘렀으면 섹스하자고 달려드는 플레이보이였다. 그는 ‘앤디 하디’ 시리즈에 나온 육체파 라나 터너 외에도 여러 다른 여배우들과도 잤다. 이 때문에 루니의 스크린에서의 깨끗한 이미지를 지켜야 할 메이어는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는 또 성질이 급한데다가 술과 도박(특히 경마)과 파티에 탐닉했는데 철두철미한 배우여서 쉽게 잘 울었고 또 각광 받기를 좋아했다.
표면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수퍼스타로 알려진 루니가 진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19세에 그의 첫 번째 부인(그는 무려 8번이나 결혼했다)이 된 할리웃 최고의 글래머 스타 에이바 가드너의 자서전 ‘에이바 가드너: 비밀 대화’(Ava Gardner: The Secret Conversation-피터 에반스 저)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가드너는 루니를 사랑했고 그를 부드럽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미키는 내 남편 중 가장 작은 남편이나 가장 큰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가드너는 또 “미키는 큰 늑대로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섹스를 즐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빅 스타였던 미키는 막 할리웃에 도착한 가드너에게 끈질기게 구애, 결혼했지만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는데 심지어 다른 여자를 가드너와 자는 자기 안방 침대에까지 불러 들였다가 후에 가드너에게 들키기까지 했다. 결국 둘의 결혼은 1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루니는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배우이자 성격파 배우의 능력을 지녔던 최고의 배우였다. 보드빌 배우인 부모를 둬 생후 18개월 만에 무대에 선 루니는 80세가 되기까지 300여편의 영화와 TV 프로에 나온 쇼맨이었다. 그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쇼맨 노릇을 해 일찌감치 거리의 지혜를 터득한 생활인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니의 영화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녀 기수로 나온 ‘녹원의 천사’와 미키가 신부 역의 스펜서 트레이시와 맞서는 불량소년으로 나온 ‘소년들의 도시’ 그리고 그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검은 종마’ 등이 있다. 루니는 생애 총 4번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2차례 명예상만 받았고 정신박약자로 나온 TV영화 ‘빌’로 에미상을 한 번 받았다.
그런데 루니의 영화를 생각하면 불쾌감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맨틱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그는 여기서 키모노를 입고 눈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뻐드렁니의 일본인으로 나와 심한 액센트를 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같은 아시안으로서 볼 때마다 역겹다. 참으로 지각없는 역이다.
루니와 스크린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는 역시 노래와 춤에 재질이 뛰어났던 주디 갈랜드다. 둘은 ‘앤디 하디’ 시리즈 외에도 뮤지컬 ‘베이브즈 인 암즈’ 등 여러 편에서 공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2차 대전 전 ‘앤디 하디’ 시리즈와 뮤지컬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루니는 전쟁 중 연예병으로 근무했다. 종전 후 귀국해 보니 자신의 과거 이미지로서는 배우로 살아남기 어려움을 깨달은 루니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기파로 변신을 시작했고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MGM과도 작별했다.
그러나 역시 루니 하면 늘 1930~40년대 MGM 시절의 ‘올 아메리칸 보이’로서 기억될 것이다. 가드너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루니가 빅 스타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 많은 여배우들이 꼬마에 미남도 아닌 그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까 하고 궁금해 했지만 루니는 이젠 사라진 할리웃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생산해 낸 아주 잘 팔리는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나는 지난해 8월 웨스트우드의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에서 루니를 만났었다. 복원된 ‘세일즈맨의 죽음’ 상영 전 로비 파티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사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루니는 마치 물기가 다 빠져 말라비틀어진 오이지 같아 보였다. 난 그에게 달려가 “반갑다”며 악수를 나누면서도 ‘아, 그렇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활기찼던 루니가 세월 앞에선 이렇게 무기력하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었다. 루니는 이제 하늘에서 주디 갈랜드를 만나 춤추고 노래 부를 것이다. 굿 바이 미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4월 7일 월요일

‘노아' 주인공 러셀 크로우

“노아는 모든 종교의 연결고리 같은 인물”



현재 상영 중인‘노아’에서 노아로 나온 러셀 크로우(4월7일로 50세가 된다)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크로우는 평소 심술첨지로 알려진 기분의 높낮이가 격심한 사람이어서 질문이 마음에 안 들면 벌컥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 날 인터뷰 전에 동석한 로렌조 소리아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부회장이“러셀 크로우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 날이니 질문사항에 신경을 써 주세요”라고 경고를 했다. 이런 경우는 오래 전 뉴욕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크로우와의 인터뷰는 무척 순조롭게 진행됐다. 흰 셔츠에 감색 정장을 하고 잔 수염에 머리를 단정히 빗은 그는 처음에는 약간 인상을 썼지만 시간이 가면서 미소와 함께 유머까지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차분하고 조용히 답했다. 기자는 이날 그에게“당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는 이에 대해 별난 질문도 다 한다는 듯이 큰 미소를 지으면서“난 그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없어 당신 질문에 답할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크로우는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나와 악수를 나누면서“뭐 나더러 신이 된다면 어쩌겠냐구 물었지”라며 크게 웃었다. 이에 나는“당신 원래 신 아니야”라고 대꾸해 줬다.     

*바티칸에 초청돼 교황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 아름답고 나를 겸손케 만들어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매력적이었다. 난 가톨릭도 아니고 또 세례도 안 받았다. 평소 교황과 어떤 유대관계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전의 사람들과 달리 몇 가지 문제에서 보다 열린 자세를 지닌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일부 기독교 측의 반대 때문에 교황은 우리에 대한 초청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시종일관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그는 그 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교육적 책임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당신이 혼자 서 있는 영화 포스터가 마음에 드는가. 좀 무섭게 보이는데.
- 패라마운트 스튜디오의 마케팅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다운타운 LA에 가면 14층 높이의 빌보드 광고를 볼 수 있는데 정말로 내가 봐도 대단하더라. 그런 광고는 내 생애 처음 본다.

*영화도 보지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 신화적 내용을 지닌 오래된 얘기가 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하는가.
- 영화를 보지도 않고 비판한다는 것은 진짜로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이 아닌 가정 하에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의견을 표명한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영화를 뒤늦게 본 기독도교 지도자들은 영화에 대해 매우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지구에 대한 관리와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그리고 영적인 문제를 놓고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드는 예술은 그 어느 것이든 좋은 것이 아닌가. 이 영화가 내놓은 주제 중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와 그 우리가 믿는 것과의 개인적 관계다. 이 얘기의 골자는 끝이 없는 부담을 부여하는 직무와 맞서는 사람이다. 노아는 표면적으로는 순결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그 위치에 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묻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골자는 가족드라마다. 어떤 특정한 임무에 오직 한 마음으로 집념하는 누군가가 초래하는 문제에 관한 영화라고 하겠다.  

*각본이 원전과 얼마나 다른가를 파악하려고 구약성경을 읽었는가.
- 영화에 대한 비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본의를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술에 취한 것을 가지고 비판하는데 노아는 인류 사상 처음으로 포도주를 만든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거인들을 보고 비난했지만 그것은 성경에 있는 사실이다. 민수기에 ‘우리가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는 구절이 있다. 노아에 대한 성경구절을 읽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는데 노아가 모든 종교의 경전에 나온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에 따라 나는 노아의 얘기를 인간과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의 바탕에서 이해하게 됐다. 그러니까 노아를 어떤 거창한 은유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인으로서 표현할 수가 있어 쉬웠다. 그리고 홍수라는 신화도 모든 주요 문명과 역대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한 것으로 지리학적으로도 얘기할 수가 있다. 이번에 우리가 어떤 종교를 믿건 간에 노아는 모든 종교의 연결고리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는 언제 완성되는가.
- 터키에서 막 촬영을 끝냈다. 편집은 다음 영화 촬영지인 피츠버그에서 할 예정인데 앞으로 한 5주가 걸릴 것 같다. 그것이 끝나면 호주에 가서 나의 디렉터스 컷판을 제출할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모스크바와 로마와 리우 등 세계를 돌면서 ‘노아’ 홍보하느라 내 영화 마치느라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나오는 다음 영화는 이탈리아 감독 가브리엘레 무치노가 연출하는데 각본을 읽고 너무나 아름답고 감정적이어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당신은 노아가 방주를 지었듯이 무얼 짓는 것을 좋아하는가.
- 그렇다. 호주의 내 농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곱게 장식된 지팡이를 만들어주는데 그럴 땐 선을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농장의 나무와 짐승들을 돌보는 것은 무언가를 짓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당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는가.
- 우선 당신과 얘기를 나누겠다. 그러나 난 신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는 없어 당신의 물음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연기자와 두 아이(10세와 7세난 두 아들이 있다)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사는가.
-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스카이프도 있고 전화에 페이스 타임도 있어 아이들과 얘기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얼굴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너무 바빠서 그것이 계획대로 안 된다. 원래는 영화와 영화 사이에 상당한 공간을 두었는데 이 직업이란 모든 것이 항상 변하기 때문에 그것이 뜻대로 안 된다. 아이들이 일어날 때 그들과 얼굴을 보면서 전화로 대화를 하는 것이 나의 하루를 움직이게 만드는 주요 촉진제이다. 내 뜻대로라면  아이들이 지금 나와 함께 있겠지만 난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생활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다. 그들이 같은 장소에 살고 한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사귄다는 것이 비행기를 자주 갈아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시드니나 호주에서만 일을 할 수는 없다. 난 지난 25년간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늘 돌아다녀야 했다. 이 직업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일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예언자로서의 신성한 인물인 노아의 역을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가.
- 나는 노아를 수퍼맨으로 안 보고 하나의 개인으로 보려고 신경을 썼다. 그의 과거와 은유 같은 것들을 모두 거두어내고 노아를 상응하는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엄청난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서의 인간 여정을 그리려고 했다. 그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저지른 결과도 생각해야 했다. 방주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과 그에 따른 죄의식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노아를 해석했지만 노아의 얘기를 종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뜻에 거슬리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노아의 얘기는 꼭 얘기돼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매우 중요한 것들에 대해 토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결코 나쁜 점은 볼 수 없고 대신 긍정적인 면만 보게 된다. 영적인 것과 인간의 지구에 대한 관리 그리고 우리와 동물과의 관계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얼음 속에서 70년만에 깨어난 `전사' 


캡튼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왼쪽)와 윈터 소울저(세바스티안 스탠). 

마블만화의 주인공으로 미국의 수퍼히로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를 주인공으로 만든 2011년 작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속편으로 전편보다 얘기나 스펙태클 그리고 액션과 인물들의 성격 개발 등이 한층 진보한 흥미진진한 영화다.  
냉전시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의 내용은 요즘 시의에도 맞는 요소를 지녔는데 가급적 컴퓨터 특수효과를 지양하고 옛날 영화들처럼 실제 액션을 구사해 더 재미있다. 액션과 서스펜스와 다소 복잡한 얘기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묘사가 고루 조화를 이루면서 강약과 완급의 보조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볼만한 인물은 거대한 군수업체의 최고급 간부로 나오는 로버트 레드포드. 뜻밖에도 진보파인 그가 매파로 나와 차갑고 단단한 연기를 하는데 레드포드가 조연으로 나온 것도 이색적이다.
전편에서 얼음 속에서 동면상태에 들어간 미 육군장교 스티브 로저스 즉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그로부터 70년만에 워싱턴 D.C.에서 깨어난다. 아날로그 시대의 그가 디지털 시대의 문화에 얼떨떨해 하면서 적응하려는 에피소드가 우습다. 
처음에 캡틴 아메리카가 쏜살같이 달리는 조깅을 하면서 역시 조깅을 하는 전직 육군 특공대 출신의 샘 윌슨(앤소니 맥키)과 안면을 트는데 거대한 두 날개를 몸에 달고 하늘을 나는 샘(일명 팰콘)은 이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와 동지가 돼 후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윈터 솔저와의 대결에 동참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궁극적으로 대결하게 되는 적은 거대한 군수산업체 쉴드(SHIELD)의 고급간부 알렉잰더 피어스(레드포드). SHIELD는 공중에 무한정 떠 있으면서 막강한 파괴력으로 목표물들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과 공적인 자료를 토대로 잠재적인 적을 구별해 낼 수까지 있는 무인정찰 공격기인 ‘헬리캐리어’를 3개 제조해 실용할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알렉잰더는 유엔의 안보리 같은 세계 안보위의 리더이기도 하다. 
알렉잰더의 이같은 계획에 대해 ‘헬리캐리어’의 기능과 임무에 의문을 표하면서 아직은 이르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알렉잰더의 옛 친구이자 SHIELD의 감독인 닉 휴리(새뮤얼 L. 잭슨). 이로 인해 힘으로 적을 박살내겠다는 알렉잰더와 신중론자인 닉 간에 갈등이 생기고 결국 둘은 적이 되고 만다.
이 둘을 대리해 직접 치고 박으면서 육박전을 벌이는 사람이 닉의 지시를 받는 캡틴 아메리카와 알렉잰더의 졸개인 금속제 왼팔을 가진 기공할 파괴력을 지닌 윈터 솔저(세바스티안 스탠). 그런데 둘은 과거의 절친한 전우. 둘이 지상과 공중에서 싸우느라 난리법석이 일어나는데 팰콘 외에 캡틴 아메리카를 돕는 또 다른 동지가 전직 KGB 출신의 늘씬한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스칼렛 조핸슨이 얼굴이 퉁퉁 부어 보기가 안 좋다).
운행 중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격투를 비롯해 굉장히 속도가 빠르고 박력 있는 액션신이 많은데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 역을 손에 꼭 맞는 장갑을 낀 듯이 완벽하게 해낸다. 빅 히트와 함께 제3편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앤소니와 조 루소 형제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알랭 르네



영화가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넘어 선험적이요 지적으로 도전적인 예술 매체임을 작품에서 추구해온 프랑스의 명장 알랭 르네(사진)가 3월1일 파리에서 91세로 사망했다. 그가 숨지자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국가의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70년에 가까운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를 통해 공상과학영화, 기록영화, 코미디, 기족드라마, 뮤지컬 및 도저히 장르를 구분하기가 힘든 독특한 영화 등 다양한 부류의 영화를 만들었던 르네는 죽기 직전까지 병상에서도 다음 영화의 편집 초안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뉴웨이브의 대표적 인물로 모더니스트였던 르네의 많은 영화들은 너무 지적이요 초현실적인 데다가 실험적이어서 대중적이진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터득코자 하는 사람들에겐 선지자 같은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수수께끼를 푸는 지적 재미마저 있다.
르네도 이 점을 잘 안다는 듯이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보지는 않았지만 수백만명이 본 ‘조스’와 같은 영화에 물론 관심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집에서 TV 보기를 원치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우아한 트래킹 샷과 생략적인 편집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왕래가 잦은 르네의 큰 주제는 인간은 기억이라는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로 르네하면 대뜸 이 두 영화가 떠오르게 되는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ㆍ1959)과 ‘작년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ㆍ1961)는 모두 기억에 관한 것들이다.
르네의 첫 극영화인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본인 건축가와 프랑스인 여배우(에마뉘엘 리바)의 핵의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의 짧은 만남을 통해 사랑의 망각성과 기억의 아픔을 이 도시의 고통과 핵 투하 불과 14년 만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상실과 접목시킨 러브스토리이자 반전영화다.
이름도 없는 국적이 서로 다른 두 남녀의 대사와 포옹과 클로스업 되는 두 얼굴을 통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그리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명상이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에서 서술되는데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게리트 뒤라스가 쓴 각본이 육감적이요 상징적인 시와도 같다. 리바(87)는 지난해에 ‘아무르’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영화도 그 진의를 깊이 깨달으려면 여러 번 봐야 되겠지만 ‘작년 마리앙바드에서’는 완전히 비논리적이요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기억의 영화여서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은 작품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생 때(그 때 마음과 두뇌가 당한 혼란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봤지만 매번 어려운 수학문제 풀듯이 끙끙 앓는다..
처음 공포영화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오르간 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풍의 호텔 내부의 천장과 복도와 계단을 트래킹 샷으로 천천히 포착한다. 이어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처럼 이름도 없는 남자의 “다시 한 번 나는 걷는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남자의 반복되는 과거 회상과 그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역시 이름 없는 여인(델핀 세릭)의 이에 대한 부인이 계속되면서 장소를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가 분주히 교차된다. 그런데 과연 둘은 남자의 말대로 작년에 마리앙바드에서 만났을까.
영화가 논리와 질서정연한 서술방식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미로를 헤매고 다녀 오죽하면 당대 굴지의 비평가였던 뉴요커의 폴린 케이엘이 “목표 없는 대재난”이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뉴욕타임스는 “1960년대 가장 신비한 영화 중 하나”라고 칭찬했고 재클린 케네디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멋 부린 의문부호와도 같은 영화로 지식인들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히로시마 내 사랑’과 닮은 데가 있다
르네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30분짜리 기록영화 ‘밤과 안개’(Night and Fogㆍ1955)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찍은 영화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시적 수필이라고 불린다.
큰 키에 멋쟁이 신사로 수줍음이 많았던 르네는 몸이 약해 어릴 때 집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아들이 영화에 사로잡힌 것을 안 부모가 8mm 카메라를 사 준 것이 그가 영화인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생애 프랑스의 오스카상인 세자르 상을 두 번 탔고 칸영화제서 생애업적상을 받았는데 자기 영화에 부인이자 배우인 사빈 아제마(1998년 결혼)와 함께 베테런 배우인 앙드레 뒤솔리에 등 단골배우들을 자주 기용했다. 르네의 첫 부인은 작가이자 프랑스 문화상을 지낸 앙드레 말로의 딸인 플로랑스였으나 이혼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4월 1일 화요일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 매튜 매코너헤이

“영화 위해 47파운드 감량, 건강엔 문제 없어”




제86회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남우주연상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44)와의 인터뷰가 이 영화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인 지난해 9월 토론토에서 있었다. 매코너헤이는 1980년대 실제 인물로 동성애자를 오물 보듯 하던 텍사스의 약물을 즐기는 술꾼 전기공 론 우드러프로 나와 에이즈에 걸린 뒤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에이즈 환자들을 돕는 구원의 천사 역을 영혼을 불사르듯이 연기한다. 그는 역을 위해 체중을 47파운드나 뺐다. 우드러프는 멕시코에서 사제 에이즈 약을 매입, 미국으로 밀반입한 뒤 자기도 복용하고 다른 에이즈 환자들에게도 팔았는데 이 약 덕분인지 의사의 1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단과 달리 7년을 더 살다가 1992년 42세로 사망했다. 언제나 봐도 호남인 매코너헤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했는데 텍사스 태생이어서 코맹맹이 액센트가 있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차근차근히 질문에 답했다. 매우 진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질문에 대해 심사숙고한 뒤 대답하면서 가끔 유머도 구사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 같았는데 쏘아보는 파란 눈동자가 날카로웠다.          

―영화를 위해 체중을 엄청나게 뺀 줄 아는데 그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출연에 응한 뒤 영양사를 만나서 영화에 나오기 전까지 4개월간 그가 마련한 식단대로 음식을 먹었다. 밖에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집을 찾아갈 것 같아 아예 외출을 안 했다. 은둔자처럼 지냈는데 하루에 3.5파운드씩 줄었다. 목표 체중인 135파운드에 이르렀을 때 체중 줄이기를 마쳤는데 내 평균체중이 182파운드니 47파운드를 뺀 것이다. 그러나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체중이 줄면서 가슴 아래로는 힘이 빠졌지만 그 위로는 오히려 날카로워지더라. 그리고 줄어든 체중 때문에 밤에 잠을 보통 때보다 3시간 덜 자도 됐다.”

―구체적으로 무얼 먹었나.
“생선과 야채를 소량 섭취했다. 다이어트 코크 같은 것도 안 마셨다. 그러니까 사실은 건강식만 먹은 셈이다.”

―영화는 편견적인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마음을 여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공통분모를 찾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세계여행을 즐겼다. 내가 LA에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내게 거기에는 별 이상한 종교도 있고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사람들이 있으며 또 게이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 그거 좋을 일이구만이라고 응했다. 론의 경우를 말하자면 그는 편견적이요 상놈이다. 그런 그가 에이즈에 걸리고 나서 자기가 평소 멸시하던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거기서 자연스럽게 그의 구제자로서의 특성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론 우드러프에 관해 연구할 때 그의 가족의 도움을 받았는가.
“가족이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의 일기를 보고 론이라는 사람을 잘 알게 됐다. 그는 중1과정만 마친 사람으로 한 번도 무언가를 끝마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에이즈 환자가 되면서 의사들보다 더 그 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는 매우 고독하고 갈 길을 잃었던 사람인데 에이즈 환자가 되면서 비로소 생애 처음으로 무언가 붙잡고 매달릴 일이 생긴 셈이다.” 

―론은 사제 에이즈 약을 팔아 이득을 많이 남겼는가. 그리고 그의 여자관계는 어땠는가.
“론은 결코 구세군이 아니었다. 그는 금과 캐딜락을 좋아했다. 에이즈 약을 사러온 사람이 돈이 모자라면 되돌려 보냈다. 그의 여자관계는 매우 문란했다. 에이즈에 걸리고 나서도 보호책 없이 여자와 섹스를 했는데 당시 에이즈 환자들은 진짜로 모두 함께 환자가 되자는 심정으로 아무 대책도 없이 섹스들을 했었다.”

―당신은 영화에서 완전히 론이 되는 변신을 하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영화를 만드는 4개월간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도 론이 한 대로 에이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또 연구도 많이 했다. 덕분에 난 매우 과학적인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국외자가 됐듯이 나도 나 자신을 고립시켰다. 론이 의사의 말과 달리 7년을 더 산 것은 그의 분노 탓이다. 그것이 그를 보다 활동적으로 만든 삶의 자극제가 된 셈이다.”     

―당신이 두문불출하면서 갈비씨가 되는 것을 보는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매일 같이 조금씩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별로 심각히 느끼질 못했다. 한 번은 딸이 내게 ‘아빠 목이 왜 기린처럼 길어지고 있어요’라고 물은 적은 있다. 어느 날 벽에 비친 내 실루엣을 보니 해골처럼 보여서 기분이 으스스하더라. 진짜 날 보고 놀란 사람은 내 어머니로 오래간만에 날 본 어머니가 ‘너 어떻게 된 거니’라고 물으셨다. 가족은 전적으로 날 지원했다. 그런데 은둔자가 된다는 것은 당분간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일이라고 본다.”

―당신은 모두 여섯 살 미만의 2남1녀를 두고 있는데 가정생활은 어떤가. 아이를 더 가질 생각인가.
사제 에이즈 약을 파는 두 에이즈 환자 파트너인 재렛 레토(왼쪽·
오스카 조연상)와 매튜 매코너헤이.
“아주 즐겁고 좋다. 모두 건강하다. 나는 영화를 찍을 때면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함께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좁은 트레일러에서 같이 산다. 좀 불편은 하지만 서로 가깝게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아이는 이제 그만 낳으려고 한다.”

―당신은 과거 여러 편의 로맨틱 코미디에 나왔으나 최근 들어 이 영화처럼 극단적인 인물 역을 맡고 있는데 스스로 그러기로 결정한 것인가.
“모두 내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페이퍼 보이’와 ‘킬러 조’ 및 ‘매직 마이크’는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난 영화와 영화 사이에 영감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휴지기간을 둔다. 최근 내가 맡은 역들은 대부분 반 영웅들인데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규칙을 세우는 사람들이며 또 자기 자신만의 형태를 창조하는 사람들이어서 하기가 아주 즐겁다. 난 상상력이 만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상상력을 동원해 반 영웅들을 만화 같은 인물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인물들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이 집에서 굶으면서 가족에게 이것이 끝나면 성대한 외식을 대접하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잘 먹었다. 그런데 그 음식은 내가 요리한 것이다. 난 가족에게 거의 매일처럼 진수성찬을 요리해 대접했는데 난 그저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다. 고약한 쾌감이 생기더라. 그러나 재미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요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론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인데 당신은 그를 연민에 찬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천박한 편견주의자이자 호모를 사갈시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나 그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그렇다면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내면에 있을 인간성에 기대를 걸었지 그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려 하지도 또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체중을 47파운드나 줄이면서 극단적인 역을 한다는 것이 때로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는가.
“상황이 요구해서 체중을 줄인 것이지 어떤 허영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난 론의 사진을 보고 그 즉시 그를 책임 있게 표현하려면 체중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까 내가 체중을 줄인 것은 극단적인 것을 위한 극단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이 영화 이후 약이나 의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는가.
“난 늘 서양식 처방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처방약에 의존하는데 그 것은 여러 가지 식품 첨가물을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항상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물과 숨 쉬는 공기에 대해 신경을 보다 더 써야 한다고 본다.”

―당신은 세계여행을 즐긴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는가.
“물론이다. 문화는 좋은 교육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기와 다른 것과 새로운 것을 사랑할 줄 알고 또 그것에 적응하도록 권장할 것이다. 어린 내 딸은 뉴욕이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색깔이 있어서 좋다고 한다.”

―역을 마치고나서 감정적인 후유증이라도 있었는가.
“영화에 나온 경험은 마치 로데오에서 황소를 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신이 탈수현상을 겪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기분 좋은 탈진이었다. 모든 역은 다 심한 신체단련 훈련 같지만 난 그것을 즐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노아 (Noah)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침략자가 있었으니…


빗속 방주 위에 선 노아(러셀 크로우).
을씨년스럽고 장황하고 지루한 구약성경 얘기다. ‘블랙 스완’을 만든 독창적인 감각을 지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작품인데 대하 서사적 규모 속에 노아라는 인간의 개인적 고뇌와 궁극적 구제라는 매우 심각한 내용을 담았으나 둘이 잘 어울리지가 못한다.
공상과학 액션모험영화 같기까지 한 작품으로 사랑의 얘기이자 가족영화요 또 전쟁 액션영화이자 재난영화인데 이런 여러 장르가 조합이 잘 안 돼 따로 놀고 있다. 감독은 짧은 내용의 노아의 얘기를 영화를 위해 자의적으로 확대했는데(상영시간 139분) 얘기가 그렇게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노아 외에도 그의 할아버지(앤소니 힙킨스)와 아내(제니퍼 카넬리)와 세 아들 그리고 첫째 며느리(엠마 왓슨)를 비롯해 가상 인물인 노아의 적인 타부족 장군 투발케인(레이 윈스턴) 등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인물 개발이 아주 약하다. 그리고 연기도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를 제외하곤 덤덤하다. 카인 이후의 황량한 지구와 그 후의 홍수영화여서 화면이 시퍼렇게 추위를 먹었다.
노아의 세상은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정복하는 양육강식의 살벌한 땅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은 창조주가 만든 짐승을 안 잡아먹고 채식을 한다. 그런데 노아가 세상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면서 창조주의 뜻에 따라 자기 가족과 세상의 모든 짐승과 조류가 피신할 거대한 방주를 짓는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데 막상 비가 쏟아지자 투발케인은 자기 전사들을 이끌고 방주에 들어가기 위해 이를 공격한다. 투발케인은 특히 노아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에게 반항적인 햄(로간 러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유혹한다. 영화는 노아와 햄의 부자간 갈등에 적당한 무게를 주고 있다.
방주에 들어가는 짐승들과 홍수 장면 등 컴퓨터 특수효과를 쓴 장면들도 별로 경탄스럽지가 못한데 하늘에서 지구로 쫓겨난 천사라는 거대한 돌로 만든 생명체와도 같은 물체가 내용에 전연 어울리지가 않는다. 재난영화치곤 굉장히 답답하고 부담감 주는 영화다. 
PG-13. Paramount.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레이드 2 (Raid 2)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유혈 액션'  


장도리를 무기로 쓰는 갱두목 베조의 여자 킬러가 전철 안에서 일본 
야쿠자들을 처치하고 있다.

길길이 날뛰는 폭력이 빗발치듯 작렬하고 피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2011년 인도네시아산 액션 스릴러 ‘레이드’의 속편이다.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잔인무도하고 속도감 빠르고 에너지 충만한 영화로 사체가 즐비하다. 뼈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 총격소리와 흩뿌려지는 선혈이 화면을 채우면서 거의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나친 액션이 광란의 피의 발레를 추는데 이에 비하면 재키 챈의 무술영화는 아이들 장난이고 타란티노의 영화도 비린내만 피울 정도다.
동원된 무기를 보면 야구 배트와 공, 장도리와 곡괭이, 긴 칼과 단도와 손에 감아쥐는 톱니 칼, 몽둥이와 빗자루. 깨진 병과 뜨거운 구이용 철판 그리고 권총과 엽총과 장총 및 주먹과 발 등으로 이런 무기에 의해 적어도 100여명이 죽어 넘어진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울 정도로 가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는 처음 보는데 약간 타케시 키타노의 영화를 닮은 데가 있다. 특히 주연 배우 이코 우와이스가 공동으로 안무한 대담무쌍한 손과 발을 쓰는 무술액션 신은 정말로 장관이다. 
신참 형사 라마(우와이스)가 경찰 내사반의 반장에 의해 부패한 정치가와 경찰 간부 등과 연루된 자카르타의 막강한 갱 두목 방군(티오 파쿠소데와의 착 가라앉은 연기가 돋보인다)의 조직으로 침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를 위해 라마는 방군의 오만불손한 아들 우콕(아리핀 푸트라의 표독스런 연기도 좋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우콕이 수감된 교도소에 죄수로 들어간다.
교도소 내 좁은 변소에서 벌어지는 라마 대 수십명의 우콕의 졸개들 간의 격투와 비가 내린 후 진흙탕이 된 교도소 마당에서 벌어지는 우콕의 일당과 그의 라이벌 일당 간의 치명적인 머드 레슬링 격투가 박력 있다. 진흙탕 싸움에서 우콕의 생명을 구해준 라마는 우콕의 친구가 되고 그로부터 2년 후 출소한 라마는 방군의 일원이 된다.
방군의 조직은 일본인 갱 두목 고토(케니치 엔도)의 조직과 과거 10년간 평화공존을 하면서 자카르타를 말아먹고 있다. 방군을 뒤에서 봐주는 것은 부패 정치인과 경찰. 그런데 이 둘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자기 터전을 확보하려는 아랍계 피가 섞인 갱스터 베조(알렉스 압바드)와 아버지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성질 급한 우콕이 손을 잡으면서 갱전쟁이 일어난다.
액션 신 가운데 가장 멋있는 것이 황금색 가죽점퍼에 흰색 치마를 입고 창백한 얼굴에 선글라스를 낀 가녀린 여자(줄리 에스텔)가 전철 안에서 양손에 든 장도리를 써 10명에 가까운 단도를 든 야쿠자들을 처치하는 장면. 장도리에 처참히 당한 야쿠자들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선혈이 하얀 치마 위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와 함께 도주와 추격의 절정을 이루는 달리는 자동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투를 찍은 공중촬영과 불법 도색영화 촬영장과 포도주 저장소와 국수집 그리고 흐릿한 조명 속의 클럽 주방과 창고 및 좁은 복도에서 치러지는 사투 등도 볼만하다. 상영시간 2시간반동안 거의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벌어지는 격투에서 무수히 얻어터지고 온 몸에 칼을 맞고도 다시 오뚝이처럼 발딱 발딱 일어서는 라마는 분명 불사신이다.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이 때로 이치에 닿지가 않지만 방군과 우콕의 부자간 알력을 그린 드라마 부분은 시종일관 계속되는 액션에 적당한 쉼표 구실을 한다. 액션영화 치곤 인물개발과 연기도 좋고 특히 재빠른 촬영과 편집과 박동감 있는 음악이 매우 좋다. 감독은 전편에 이어 웨일즈 태생의 가레스 에반스. 
R.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 센추리15, 그로브, 다운타운 리갈.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성경영화



2014년은 할리웃 사상 보기 드물게 성경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들이 하늘에서 만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제일 먼저 2월에 나온 예수의 얘기인 ‘신의 아들’이 히트하면서 지금까지 총 5,600만달러의 수입을 냈고 21일에 개봉된 인디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가 개봉 주말 사흘간 뜻밖의 92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어 28일에는 노아의 얘기를 다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노아’(영화평 참조)가 개봉됐고 4월16일에는 ‘천국은 실재한다’가 개봉된다. 그렉 키니어가 주연하는 이 영화는 수술 중 가사상태에서 천국을 본 소년의 얘기다. 그리고 12월에는 리들리 스캇이 감독한 입체영화 ‘엑소더스’가 나온다. 모세의 출애굽기를 다룬 ‘엑소더스’는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와 달리 모세(크리스천 베일-사진)를 투사로 다룬 ‘글래디어터’ 스타일의 대규모 액션영화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메이저 영화 외에도 앞으로 10여편의 아트하우스용 기독교 영화가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윌 스미스는 현재 카인과 아벨의 얘기를 각본으로 구상 중이고 워너브라더스는 본디오 빌라도의 얘기를 또 소니는 다윗과 골리앗의 얘기를 영화로 구상 중이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성경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결코 할리웃이 새삼 신의 계시를 받아서라기보다 수익성 때문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사자굴에라도 들어가는 할리웃이 흥행수입의 큰 원천이 될 수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관객으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뒤늦게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성경영화는 성경내용에 충실히 만들면 신도들의 호응을 받아 히트를 하지만 그 내용이 신도들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흥행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성의’와 ‘십계’와 ‘벤-허’ 및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해 흥행수입 5억4,00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예수의 수난’이 전자의 경우. 반면 예수(윌렘 다포)가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보통 남자처럼 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후자의 경우다.
성경영화가 나올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반응이다. 어차피 오락성을 감안해야 하는 할리웃으로선 성경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그것을 확대 해석해 만들게 마련이다. 러셀 크로우가 주연하는 ‘노아’가 개봉 이전에 보수 기독교파의 강한 반발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성경에 없는 내용이 많은데다가(하기야 창세기 6장에서 10장까지의 노아의 짧은 얘기를 2시간20분짜리 영화로 만들려면 확대 해석이 불가피하다) 노아에 대한 해석도 다른데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그런 얘기가 성경에 어디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던 것. 그래서 영화의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광고에 ‘이 영화는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는 단서를 삽입했고 다른 영화들과 달리 비평가들의 평 대신 뒤 늦게 영화를 본 기독교단체들의 찬사를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노아의 얘기가 있는 코란을 믿는 무슬림 국가들인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 및 인도네시아 등은 아예 ‘노아’의 자국 내 상영금치 조치를 취했다. 며칠 전 인터뷰에서 만난 아로노프스키는 이에 대해 “내 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도 보기 전에 소문만 듣고 반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노아’는 미국보다 먼저 개봉된 한국에서 현재 히트 중인데 아로노프스키는 인터뷰 후 나와 사진을 찍을 때 “내 영화 당신 나라에서 흥행이 잘 되고 있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노아의 얘기는 과거에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그가 하나님과 노아로까지 나온 창세기를 다룬 ‘바이블’(1966)에서 묘사된 적이 있다. 또 2007년에는 스티브 카렐이 주연한 현대판 코미디 ‘전지전능한 이반’으로 만들어졌으나 내용이 불경스러워 흥행서 실패했다.
성경영화로서 기독교 측의 가장 격한 반발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1988)이다.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그 내용 때문에 상영극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몰로토프 칵테일 습격까지 받았으며 스코르세지는 살해위협까지 받았다. 흥행수입은 달랑 840만달러였다. 나도 영화에 대해 호평을 했다가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기독교도들은 할리웃을 도덕적 시궁창으로 보고 있어 일단 성경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만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할리웃에서 성경영화가 계속해 성공하려면 사탕발림 식의 교언영색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접근하는 성실한 자세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