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메리 파핀스 돌아오다(Mary Poppins Returns)


마법의 보모이자 가정부인 메리 파핀스는 궁지에 빠진 뱅스 가족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다.

환상의 마법세계로… 춤과 노래 흥겨운 뮤지컬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노래와 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모든 것이 지나쳐 보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과함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1964년에 디즈니가 만든 줄리 앤드루스와 딕 밴 다이크가 나온 ‘메리 파핀스’의 속편인데 소란을 떨지 않고 다정하고 아름답고 포근하고 또 인간미가 넘치는 전편에 비하면 속편은 전편을 능가해야 되겠다는 식으로 과한 무리수를 썼다. 겉은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데 내용은 부실한 마법이 결핍된 마법영화다. 
또 하나 결점은 뮤지컬로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도 어느 것 하나 전편의 ‘침 침 치리’처럼 듣자마자 따라 부를 수 있게 친근감이 가는 것이 없다는 점. 속편에 나오는 노래 중 그런대로 가장 나은 것은 영화 처음에 굴뚝 청소부 버트(린-마누엘 미란다)가 부르는 ‘언더니스 더 러블리 런던 스카이.’ 
이 영화는 제76회 골든 글로브 작품(코미디/뮤지컬), 남녀 주연 및 음악 등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지만 막상 그 많은 노래 중 단 한곡도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20세기 초 런던. 전편에서 어린 아이로 나온 마이클 뱅스(벤 위셔가 어색하다)는 이제 삼남매를 둔 아버지로 아이들과 함께 사망한 아내를 그리워한다. 마이클의 착한 여동생 제인(에밀리 모티머)이 오빠 가까이 살면서 아이들을 돌본다. 그런데 마이클이 집을 산 대부금을 3개월 치나 못 내 집이 은행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이 때 하늘에서 메리 파핀스(에밀리 블런트)가 우산을 펴들고 내려와 마이클의 아이들의 보모 노릇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핀스는 아이들에게 온갖 마법의 신통력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와 함께 굴뚝 청소부 버트도 마이클의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데 버트는 제인을 좋아한다.  
영화에서 오지그릇에 그려진 그림들 속으로 아이들이 들어가 환상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노래와 춤이 있는 장면은 너무 길고 요란해 머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다. 만화와 라이브 액션을 혼성한 이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마법의 경이를 보여 준다기보다 소음과 함께 무질서를 보는 것 같다.
블런트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열심히 연기를 하지만 깨끗하고 순수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던 줄리 앤드루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메릴 스트립과 앤젤라 랜스베리가 캐미오로 나와 저마다 한 곡조씩 뽑는 것도 공연한 짓. 그러나 전편의 굴뚝 청소부 버트로 나온 밴 다이크가 영화 끝에 호호백발의 할아버지로 불쑥 나와 잠깐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은 즐겁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할러데이 시즌에 맞는 영화이긴 하다. 롭 마샬 감독. PG 등급. Disne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콜드 워(Cold War)


빅토르와 줄라(오른쪽)는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면서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사랑을 이어간다.

독재체제를 넘은 정열적이고 가슴 아픈 사랑… 흑백필름에 담은 영상미 돋보여


제목은 차갑지만 내용은 두 남녀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불타는 뜨거운 정열에 관한 것이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에 관한 것으로 개인의 관계를 파괴하는 독재국가의 횡포를 고발하고도 있다. 폴란드의 파벨 파블리콥스키 감독(‘이다’)의 흑백영화로 감독의 부모 이야기다. 
전후 공산치하의 폴란드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넘나들며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개성과 생각이 서로 다른 두 남녀 음악인의 필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맺을 수 없는 사랑의 얘기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 변화하는 정치적 분위기 안에서 이 두 사람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모습을 뜨겁고도 비극적으로 그렸다. 둘이 다 음악인어서 포크송과 재즈와 클래시컬 뮤직이 많이 나온다.
서방세계의 물을 먹은 세련된 지휘자이자 음악학자인 빅토르(토마스 코트)는 폴란드의 시골을 돌면서 민요를 수집하다가 춤과 노래를 하는 합창단을 조직하기로 하고 가수들을 오디션 한다. 오디션에 참가한 여자가 직선적이요 정열적인 줄라(요안나 쿨릭). 줄라는 오디션에서 선발되면서 곧이어 빅토르의 애인이 돼 둘은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합창단이 동독의 초청을 받으면서 빅토르는 줄라와 함께 서방세계로의 망명을 기도하나 줄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이어 둘은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하면서 삶이 둘을 안내하는 대로 생존과 사랑을 이어간다. 둘은 서로 약속하고 이를 깨고 또 서로를 후원하고 배신하면서 사랑의 험로를 줄기차게 밟는다.   
빅토르는 혼자 파리로 망명하는데 그를 그리워하는 줄라는 출국 비자를 얻기 위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다. 이어 둘은 파리에서 재회하고 줄라는 재즈바에서 가수로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개성이 강하고 애국적인 줄라는 서방세계의 무력한 남자가 되다시피 한 빅토르와 갈등을 빚으면서 둘은 다시 헤어진다. 그리고 둘은 영원히 맺어지기도 힘들고 또 끊을 수도 없는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에피소드 식의 내용으로 감독의 매우 경제적인 연출이 훌륭한데 특히 아름다운 것은 흑백 촬영이다. 이와 함께 장르가 서로 다른 사운드 트랙도 들을 만하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것은 코트와 쿨릭의 연기로 감각적이요 정열적인 쿨릭과 이에 반해 차분하고 내적인 코트의 연기가 아주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노새(The Mule)


얼이 마약 운반 후 사례금을 세어보고 있다.

90세 옹고집 노인, 얼떨결에 마약운반책이 되는데…


88세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도 한 범죄드라마로 할아버지 이스트우드가 심심파적으로 만든 것처럼 여유 있고 느린 걸음처럼 천천히 간다. 이스트우드가 역시 연출하고 주연도 한 ‘그랜 토리노’(2008)의 분위기를 지녔는데 이스트우드가 까다롭고 고집불통인 노인 역을 우스운 농담을 뱉어내면서 아주 잘 한다.
재미는 있지만 문제는 이스트우드가 별 악의 없이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니그로”라는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는데다가 멕시칸들은 몽땅 마약범죄자들처럼 묘사해 멕시칸들이 보면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멕시코의 막강한 마약 카르텔인 시나로아 카르텔을 위해 코케인을 십여 차례 픽업트럭으로 운반하고 거액의 사례비를 받은 90세난 노인의 실화로 제목은 마약 운반자를 칭하는 속어다.
아내 메리(다이앤 위스트)와 이혼하고 혼자 일리노이 주 페오리아에서 원예업을 하는 얼 스톤(이스트우드)은 가족보다 자기가 재배한 꽃을 더 사랑하다시피 하는 사람. 그는 손녀 지니(타이사 화미가)의 결혼식도 잊어버리고 자기 기분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꽃들을 매매하는 바람에 얼의 꽃장사가 안 돼 그의 꽃밭과 집이 차압된다.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으로 얼은 인터넷을 증오하는 시대에 한참 뒤진 사람임은 물론이다 .     
파티가 열린 지니의 집을 찾았다가 문전 박대를 당한 얼이 그 자리에서 자기는 평생 교통위반 딱지를 한 번도 인받았다고 자랑하는 말을 들은 멕시칸이 얼에게 다가와 쉽게 돈을 벌수 있는 일이 있으니 하겠느냐고 제의한다. 얼의 구닥다리 포드 픽업으로 멕시코로부터 마약을 싣고 미국으로 운반하는 일.
돈에 궁색한 얼은 이를 수락하는데 처음에는 자기가 운반하는 물건이 마약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이런 플롯은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첫 운반이 성공하면서 얼은 거액의 사례비를 받는데 돈 맛을 안 얼은 마약 운반을 계속한다. 누가 90이 다 되가는 노인이 트럭으로 마약을 운반한다고 생각 하겠는가. 얼이 마약 운반으로 돈을 벌기로 한 것은 돈이 필요한 가족과의 화해를 위한 한 수단이기도 하다.
얼은 카르텔의 최우수 마약 운반책이 돼 멕시코의 카르텔 두목(앤디 가르시아)의 초청까지 받고 팔등신 미녀의 섹스서비스 등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얼은 마약 운반을 중단하려고 해도 이미 카르텔의 범행에 너무 깊숙이 개입된 상태다. 이와 함께 얼이 운반하는 마약의 양이 갈수록 늘면서 얼은 연방 마약 단속 수사관들(브래들리 쿠퍼와 마이클 페냐)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다. 얼은 수사관들과 카르텔의 킬러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범죄영화인데다가 이스트우드가 나와 마지막에 액션을 기대하게 되나 이스트우드는 액션을 자제하고 온화할 정도로 부드럽게 연출했다. 각본이 다소 엉성하고 진행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즐길만한 영화로 특히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볼만하다. R 등급.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카퍼나엄(Capernaum)


자인(오른쪽)은 본의 아니게 어린 요나스를 돌보게 된다.

“이럴 거면 왜 날 낳았나요?”… 부모의 양육부실을 고소한 12소년의 생존투쟁


가난과 힘든 삶에 견디다 못해 부모를 상대로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과 함께 양육 부실을 고소한 베이루트의 빈민가에 사는 12세난 소년 자인의 감동적요 충격적인 드라마로 레바논의 여류 네이딘 라바키의 작품이다. 자인의 고난과 생존 투쟁을 보면서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이 되는데 보고나서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드는 느낌이 온다. 제76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부문 후보작.  
베이루트의 빈민가와 거기에서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기록영화처럼 보여주는데 인정사정 없고 가혹할 정도다. 감독의 확고부동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로 특히 자인역의 자인 알 라페아의 연기가 신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경탄스럽다. 
사람을 칼로 찌른 혐의로 옥에 갇힌 자인이 부모를 상대로 고소한 원고로 법정에 출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서술된다. 자인의 부모는 동네 교도소에 약물을 반입시켜 먹고사는데 자인이 사랑하는 11세난 여동생 사하르(세드라 이잠)를 닭 몇 마리에 나이 먹은 사람의 신부로 판다. 이에 분노와 슬픔에 젖은 자인은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해 빈민가에서 뜨내기 삶을 산다. 
생존력의 화신이요 생존 기술이 뛰어난 자인의 빈민가에서의 삶이 참혹하지만 흥미 있게 묘사된다. 빈민가에서 자인을 따뜻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디오피아에서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한 어린 아들 요나스(트레저 방코레가 어찌나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는지 감탄스럽다)와 함께 밀입국한 라힐(요르다노스 쉬페라의 연기가 좋다). 자인은 여기서 자기 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라힐의 인자함과 따스한 가슴에 아픈 상처를 달랜다.
라힐은 자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요나스를 카트에 숨겨 일하러 나갔으나 이젠 자인이 요나스를 친 형처럼 돌본다. 그런데 어느 날 라힐이 가짜 신분증을 살 돈을 마련하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자인은 요나스를 혼자 돌보게 된다. 라인은 억지춘향 격으로 요나스의 보모 노릇을 하게 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길에 나가 요나스를 내버리고 달아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감독이 너무나 빈민가와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참담한 모습에 무게를 주어 때로 중압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보이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끝이 다소 지나치게 교훈적이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데 특히 시종일관 웃지 않는 표정을 지닌 알 라페아의 성숙하면서도 순진한 연기가 볼만하다. 제목은 원래 이스라엘 갈릴리 북쪽 해변의 어촌 이름. 이 것이 쌓인 쓰레기 잡동사니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R 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베스트 텐


매일 한편의 영화를 보다시피 한 내가 올해 가장 감동한 영화는 소품 ‘라이더’(The Rider^사진)다. 4월에 개봉됐는데 본 사람 별로 없이 지나갔다. 사우스 다코다주 파인 리지 인디언 거주지에 사는 젊은 로데오선수 브레이디 블랙번(브레이디 잰드로)이 주인공인 현대판 웨스턴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사실적인 미 카우보이와 서부에 관한 아메리칸 목가이자 만가다.   꾸밈이 없는 엄격한 작품으로 말을 타다 머리에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로데오에 참가할 수 없는 브레이디의 내적 고뇌와 갈등을 천착한 성격탐구 영화이기도 하다.
작중 주요 인물들은 실제 로데오 선수인 잰드로를 비롯해 비 배우들로 잰드로의 실제 가족이 나오고 내용도 이들의 실제 경험과 삶을 다뤘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사람은 중국계 여류 클리오 자오로 작중 인물들에 깊은 연민의 정을 보이고 있다.
‘라이더’에 이어 나의 베스트 텐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블랙클랜즈맨’(BlacKkKlansman)-1970년대 중반 백인 동료경찰(애담 드라이버)과 함께 백인우월주의자 단체인 KKK의 내막을 파헤친 흑인 경찰 론 스탈워드(존 데이빗 워싱턴-덴젤 워싱턴의 아들)의 실화. 스파이크 리 감독. 올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블라인드스파팅’(Blindspoting)-북가주 오클랜드에 사는 흑백 두 친구의 관계를 통해 인종문제와 계급차이 및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 솔직하고 대담하며 사실적인 소품 드라마. 예측불허하고 파격적이며 유머와 황당무계 그리고 긴장감이 가득한 영화다.
‘보헤미안 라프소디’(Bohemian Rhapsody)-영국의 록그룹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 정열적이요 에너지가 충만한 작품으로 말렉의 연기가 불타듯 뜨겁다. 빅히트한 ‘보헤미안 라프소디’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즈’ 등 퀸의 히트곡들이 나온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이 영화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총 800만명 이상이 관람하면서 아직도 빅히트 중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Crazy Rich Asians)-싱가포르작가 케빈 콴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감독 존 추와  배우들이 다 아시안들인 미 메이저영화. 재벌가 아들(헨리 골딩)과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성공한 중국계 여교수(콘스탄스 우)의 편견과 난관을 극복한 사랑의 승리를 그린 화사한 코미디 드라마. 미셸 여 공연.   
‘페이보릿’(The Favorite)-18세기 영국여왕 앤(올리비아 콜만)을 모시는 두 여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와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서로 여왕의 총애를 받으려고 암투를 벌이는 코믹한 드라마. 여왕은 나름대로 두 여인의 라이벌 의식을 즐기면서 자기 속을 차린다. 세 배우의연기가 뛰어나다.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
‘퍼스트 맨’(The First Man)-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라이언 가슬링)의 실화. 암스트롱의 아내(클레어 포이)와의 관계와 시험비행사로서의 활약과 달 착륙을 위한 준비과정   그리고 달 착륙을 지적이요 차분하게 다뤘다. ‘라 라 랜드’의 데미언 차젤이  감독했는데 영화에서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쓰지 않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린 북’(Green Book)-1962년. 오만하고 도도한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단 셜리(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8주간 미 남부 순회공연에 고용된 일자무식의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 운전사 토니(비고 모텐슨)와의 관계를 그린 코믹한 드라마로 실화다. 닮은 데라곤 없는 둘이 동행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우정으로 맺어지는 얘기가 훈훈하다. 모텐슨과 알리의 연기와 콤비가 일품. 피터 파렐리 감독.
‘니코’(Nico)-미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드 싱어로 독일 태생의 가수이자 모델이며 배우였던 니코(본명 크리스타 페프겐)의 삶의 마지막 3년을 강렬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니코 역의 덴마크 배우요 가수인 트린 디르홀름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영국과 이탈리아 합작.
‘바이스’(Vice)-역대 미 부통령 중 가장 막강한 세력을 지녔던 딕 체이니(크리스천 베일)의 삶을 우습고도 진지하며 현실감 있게 다룬 드라마로 베일의 연기가 뛰어나다. 체이니의 대통령인 아들 부시로 샘 록웰이 나와 호연 한다.
외국어영화로는 ‘가디언즈’(The Guardians-프랑스)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독일) ‘로마’(Roma-멕시코) ‘카퍼나엄’(Capernaum-레바논) ‘콜드 워’(Cold War-폴랜드) ‘육과 영’(On Body and Soul-헝가리) ‘걸’(Girl-벨기에) ‘어느 가족’(Shoplifters-일본) ‘버즈 오브 패시지’(Birds of Passage-콜럼비아) ‘야생 배나무’(The Wild Pear Tree-터키) 등이 좋았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예비후보 9편에 올랐다. 한국영화가 예비후보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1월 22일 5편의 최종 후보가 발표되는데 ‘버닝’은 평이 좋아 기대해 봄직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메리 스코틀랜드 여왕(Mary Queen of Scots)


영국 왕가의 혈통을 지닌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라이벌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처형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여왕간 권력쟁탈 궁정 암투극


16세기 사촌지간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명에 의해 목이 달아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엘리자베스간의 권력쟁탈을 위한 경쟁의식과 갈등을 그린 궁정 음모극인데 과거 여러 번 영화화된 흥미진진한 내용을 재미있게 처리했다기 보다 마치 학위논문 쓰듯이 엄격하게 다뤄 보기가 편하지가 않다. 
대사가 많은 영화로 주인공들의 인물과 성격묘사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며 두 사촌 여왕간의 라이벌 의식에서 발생해야 될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도 강렬하지 못하다(하나는 런던에 살고 다른 하나는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거리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면도 상당히 어둡다. 그러나 두 여왕 역의 시어사 로난과 마고 로비의 출중한 연기와 권력쟁탈이 낳은 비극적 역사라는 점에서 볼만은 하다. 
감독은 영국의 무대예술 감독인 여류 조지 로크인데 여성이어서 그런지 작품에 여성파워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두 여왕을 둘러싼 측근들로 남자들도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 자기 권력을 유지하거나 보다 강력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여왕을 비난하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로 나온다.
영화는 10대인 프랑스 왕비 메리(로난)가 남편이 죽자 프랑스로부터 스코틀랜드로 귀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메리는 어릴 때 프랑스에 보내져 가톨릭 신도가 되어 귀국 후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고 그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로비)는 신교도 신자로 영국을 통치하고 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와 서로 각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통치하며 두 국가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의 극보수적인 가톨릭신자들인 측근들은 메리의 이런 낙천적인 생각에 반대, 여왕에 대한 음모들을 꾸민다. 메리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쥐려는 의도가 다분한 남자들이 남편감으로 등장하는데 메리의 두 번째 남편은 핸섬하나 경박한 단리 경(잭 로우든). 
한편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궁정 안에 자기 측근 더들리 경(조 알윈)을 심어 놓고 메리를 감시한다. 그러면서도 엘리자베스는 자기와 혈연으로 맺어진 메리에게 강한 감정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은 결국 절대 통치권 장악을 위해 희생된다. 
두 여왕이 서로 라이벌 의식으로 대결하는 것과 함께 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권력을 쟁취하려고 배신하고 음모를 꾸미는 궁정 내 남자 측근들과의 갈등이 중요한 플롯을 구성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따로 놀던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극적 클라이맥스를 위해 후반에 들어 만나나 이는 허구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왕이 될 혈통을 지닌 메리를 처형한다. 
메리는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5세의 딸이고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와 그가 처형한 아내 앤 볼린의 딸. 메리는 참수를 당했지만 그 후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가 통치한다. 평생 독신이었던(처녀 여왕이라고 불린다) 엘리자베스는 29세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난 상처를 감추려고 독성이 있는 표백제를 발라 피부가 몹시 상했고 머리도 빠졌다. 영화에서도 그의 이런 얼굴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로난과 로비의 연기다. 로난은 독립심이 강하고 자유혼을 지닌 여왕의 연기를 불꽃 튀듯이 보여주고 짙은 화장을 한 로비도 여왕의 위풍당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적인 모습을 다양하게 연기한다. 음악과 세트 그리고 의상도 좋다. R등급.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돌아온 벤(Ben Is Back)


할리(왼쪽)는 약물 중독자인 아들 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약물중독 10대 아들 둔 가정의 해프닝… 줄리아 로버츠의 필사적 모성애 돋보여


10대의 약물중독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파고든 드라마로 약물중독과 함께 중독자를 둘러싼 가족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다룬 가족 드라마다. 
특히 헤로인 중독자인 아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호하고 구원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강한 모성애가 중요한 플롯을 이룬다. 
이 영화는 전반부에서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와 약물중독 문제를 집착하듯이 파고들다가 후반에 가서 느닷없이 범죄 스릴러 형식으로 톤을 바꾸는데 이런 급격한 형식의 변경이 작품의 일관성을 해치고 있다. 
어느 가족에게나 닥칠 수 있는 매우 현실적 내용으로 볼 만한데 특히 어머니로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와 아들로 나오는 루카스 헤지스(요즘 주가가 한창 오르고 있는데 그는 이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도 쓴 피터 헤지스의 아들이다)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날 하루의 얘기다. 약물중독자 치료소에 있던 19세난 벤(헤지스)이 크리스마스 전날 치료소를 빠져 나와 작은 교외 마을의 집에 온다. 그는 아직 완치된 상태가 아니다. 
세 아이들과 외출했다 돌아온 벤의 어머니 할리(로버츠)는 아들을 보면서 크게 반가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닷없이 돌아온 벤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벤의 귀가로 인해 벤의 바로 아래 여동생 아이비(캐스린 뉴턴)와 할리의 두 번째 남편 닐(코트니 B. 밴스)을 비롯해 가족 간에 작은 소동이 인다.
이에 벤을 무조건적인 모성애로 사랑하는 할리는 벤을 절대로 자기기 보는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치료소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온 기족이 교회에 갔다 오면서 집에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벤의 생명을 구해준 애견이 실종된다.
여기서부터 벤과 할리는 밤새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개를 찾는데 벤이 헤로인을 팔기도 했던 딜러여서 동네에는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할리는 아들의 알고 싶지 않은 과거 행적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벤과 할리가 헤어지면서 할리는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아들을 찾는다.
약물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해 배우들이 숨 쉴 공간이 부족한 것이 흠이나 로버츠의 맹렬한 연기와 헤지스의 차분한 연기가 잘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태우지 못한 ‘버닝’


이번에는 분명히 수상후보에 오를 줄 알았는데 또 탈락됐다. 6일 발표된 제76회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 발표에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이 제외됐다. 이 영화는 올 칸영화제서 국제영화비평가상을 탔고 미국의 비평가들로부터도 격찬을 받아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무난히 오르리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골든 글로브상은 내가 속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것으로 ‘버닝’에 대한 우리 회원들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좋아 수상후보에서 제외된 것이 거의 이상할 정도다. 한국 사람인 나는 당연히 ‘버닝’을 후보로 올렸다.
한국영화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질 못했다. 이제 ‘버닝’에 대해 기대할 것은 2019년 1월에 발표될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한국영화 문전박대의 징크스를 깨느냐 하는 것. ‘버닝’의 탈락과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폴랜드의 ‘콜드 워’(Cold War)가 탈락된 것도 놀라운 일이다.
‘버닝’의 탈락에 대한 실망을 다소 위로해주는 것은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TV 드라마부문(HFPA는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에서 ‘킬링 이브’(Killing Eve)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이 부문 다른 후보로는 줄리아 로버츠와 엘리자베스 모스 및 케리 러셀 등 강력한 라이벌들이 있지만 샌드라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아 수상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샌드라는 이 역으로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이와 함께 샌드라는 오는 1월 6일 베벌리힐즈의 베벌리힐튼에서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사회를 코미디언 애담 샘버그(사진)와 공동으로 맡아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 샌드라와 애담은 지난 에미상 시상식 때 코미디부문 감독상 공동 시상자로 좋은 콤비를 이룬바 있다.
한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들은 ‘로마’(Roma^멕시코), ‘카퍼니엄’(Capernaum^레바논), ‘걸‘(Girl^벨기에),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독일) 및 ’어느 가족’(Shoplifters^일본) 등이다.
골든 글로브상은 작품과 남녀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된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많은 부문에 수상후보로 오른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바이스’(Vice^뮤지컬/코미디). 전 부통령 딕 체이니의 생애를 풍자 식으로 다룬 것으로 작품상 외에도 감독(애담 맥케이), 남우주연(크리스천 베일), 여우조연(에이미 애담스), 각본 및 며칠 전 장례식을 치른 조지 H.W. 부시로 나온 샘 로크웰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총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다음으로 ‘페이보릿’(The Favourite)과 ‘그린 북’(Green Book) 및 ‘스타 탄생‘’(A Star Is Born) 등이 각기 작품상 등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 중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블랙 팬서’(Black Panther). 수퍼히로들의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와 함께 두 부문 10편의 작품상 후보 중 4편의 감독이 비 백인이라는 점도 돋보인다. 쿠글러와 함께 스파이크 리(블랙클랜스맨)와 배리 젠킨스(이프 빌 스트릿 쿠드 토크) 등은 흑인이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를 연출한 존 추는 아시안이다. 그런데 올해는 여성감독의 활동이 활발했는데도 여성감독이 한 명도 후보에 오르지 못해 구설수 에 오르게 됐다.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뉴욕영화비평가서클에 의해 올 해 최우수작품으로 뽑힌 흑백 드라마 ‘로마’가 감독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도 정작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 영화의 대사가 스페인어이기 때문. HFPA는 외국어영화에는 작품상 후보자격을 주지 않고 외국어영화상 후보로만 제한하고 있다.
HFPA는 외부로부터 자주 스타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번 수상후보들도 스타들로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니콜 키드만, 샬리즈 테론, 줄리아 로버츠, 엠마 스톤, 레이철 바이스, 에밀리 블런트, 크리스천 베일, 로버트 레드포드, 에이미 애담스, 캔디스 버겐, 사샤 배론 코엔, 짐 캐리, 마이클 더글러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페넬로피 크루즈, 휴 그랜트 그리고 글렌 클로스.
로버트 레드포드가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으로 주연상후보(뮤지컬/코미디)로 오른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그의 배우로서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그의 오랜 연기생활을 기리는 뜻이 크다. 
해마다 수상후보 발표에는 이변이 있기 마련.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이변은 노래와 춤으로 요란하게 채색된 뮤지컬 ‘돌아온 메리 파핀스’(Mary Poppins Returns)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후보 등 총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막상 주제가상 부문에서는 제외 된 것. 그리고 ‘마마 미아’의 속편 ‘마마 미아:히어 위 고 어겐’도 완전히 물을 먹었다.
1월 6일 하오 5시부터 NBC-TV가 생중계하는 이번 시상식에서는 HFPA가 새로 만든 트로피가 주어지고 영화부문에서 생애업적상(세실 B. 드밀상)을 주듯이 TV부문에서도 생애업적상이 시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미술가 경험으로 본 나치와 전후 독일과 예술


‘타인들의 삶’(The Lives of Other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다소 감상적이고 상영시간 188분도 좀 길긴 하지만 매우 감동적이요 사려 깊은 작품이다. 도너스마크는 ‘타인들의 삶’을 만든 후 할리웃의 부름을 받아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졸작 ‘관광객’(The Tourist)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 ‘타인들의 삶’과 분위기가 닮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가 각본도 썼다. 
1930년대 나치 집권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독일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미술가가 겪는 개인적 경험과 변화하는 정치 상황 그리고 예술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 및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자 스릴러 기운마저 갖춰 흥미진진하다. 
1937년 드레스덴. 처음에 어린 쿠르트 바나트(카이 코스)가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적인 아주머니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나치가 전시한 ‘퇴폐 미술전’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치는 칸딘스키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작’으로 취급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사이나 나치에 가입하지 않아 직장을 잃어 집안 생계가 어렵다. 
쿠르트는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대한 영감과 사랑을 키우는데 엘리자베스가 정신질환을 잃으면서 나치 동조자인 산부인과 의사이자 교수인 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흐)에 의해 불임수술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이어 개스 처형된다.
2차대전 후 드레스덴은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고 성장한 쿠르트(톰 쉴링)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여기서 패션을 공부하는 아름다운 엘리(파울라 베어)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엘리는 칼의 딸. 물론 쿠르트는 칼이 자기 아주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흉악한 전범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런 내용이 다소 억지 같고 신파적이다. 그런데 칼은 자기 딸에게 까지 수술 칼을 들이대는 가혹한 괴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쿠르트와 칼간의 대결을 예상하게 되지만 감독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데 따라서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이 대폭 감소된다. 쿠르트는 그림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신의 예술혼에 위배되는 공산정권의 선전 위주의 요구에 환멸을 느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다(아직 베를린 장벽이 안 세워졌을 때다). 쿠르트가 공산체제 하에서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 했다. 
뒤셀도르프에 안주한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현대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창작열을 한껏 불사르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포토-리얼리즘으로 성공한다. 촬영과 세트와 음악 등도 좋다. 
눈에 띠는 연기는 ‘타인들의 삶’에도 나왔던 코흐의 것이다. 쿠르트는 현존하는 독일의 시각미술가 게르하르트 릭터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Sony Pictures Classic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두가 알고 있어(Everybody Knows)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고향 방문, 딸의 납치,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
이란 화라디 감독의 다소 느슨한 가족 드라마


‘이혼’(A Seperation)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의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극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페넬로피 크루즈와 그의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 배우들을 사용해 스페인에서 찍었다. 인물들의 성격묘사와 이란의 사회상 비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감독이 자기 보금자리를 떠나 국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영화가 맥이 빠진 신파 타작이 되고 말았다.
납치극이면서도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여러 인물들이 나와 엮는 얘기도 중언부언 식이고 결말이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 같아 화라디의 촘촘하고 강인한 연출 솜씨를 기대하던 사람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다시피 하는 크루즈의 연기와 그와 바르뎀의 화학작용이다.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라우라(크루즈)가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래간만에 스페인의 시골 마을을 찾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면서 시끌벅적대던 저녁에 라우라의 10대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실종된다. 이어 정체불명의 납치범으로부터 이레네의 몸값을 요구하는 통지가 온다. 이 소식을 들은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아르헨티나의 베테런 배우 리카르도 다린)도 스페인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라우라의 가족들의 삶의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이 과거들 중에는 라우라와 그의 전 애인 파코(바르뎀)의 깊고 뜨거웠던 사랑이 있다. 라우라의 가족이 몸값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겉으론 완벽하게 보이던 그의 가족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난다.
개인들의 비밀과 납치를 다룬 영화로선 감정이 결여됐는데 영화를 멜로드라마처럼 이끌어 가는 바람에 강렬한 긴장감이나 극적 폭발력이 아주 미약하다. 그리고 결말을 맺는 부분이 다분히 조작적인데다가 느슨해 맥이 빠진다. 클라이맥스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기대에는 못 미치나 볼만은 하다. 화라디의 주도면밀한 연출과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얘기 그리고 섬세한 인물과 성격개발이 아쉽다. R등급. Focu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페이버릿(The Favorite)


야심찬 하녀 애비게일은 미소와 친절로 앤 여왕(왼쪽)의 총애를 산다.

화려한 궁정서 펼쳐지는 세 여인의 권력쟁탈전


신랄한 풍자가로 ‘랍스터’(The Lobster)와 ‘신성한 사슴 살해’(Killing of a Sacred Deer) 등을 만든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의 세 여인의 궁정 코미디 드라마로 기막히게 화려하고 재미있다. 란티모스는 관객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하겠는데 이번에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다시피 어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얄궂다시피 한 기지와 위트와 검은 티가 나는 유머 그리고 지적 자유를 마음껏 발휘해 관객의 지와 감성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세 주인공 여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눈부시게 화사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엮어간 각본 및 음악과 일사불란한 연출 등이 다 빼어난 영화로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세 여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우정으로 위장하고 배신과 음모를 자행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잔뜩 엮어 넣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궁정이 무대. 자녀를 17명이나 두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앤은 고독한 심술쟁이. 성질을 잘 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몹시 아파 윌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이를 옆에서 극진히 돌보는 여자가 젊은 귀족부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 사라는 앤의 친구이자 비서요 동성애 애인이자 참모인데 국정에 관심 없는 여왕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일을 처리하면서 권력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는 멍청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실속은 다 차리는 간교한 여자여서 사라의 속셈을 잘 안다.
이런 자리에 사라의 친척인 공손하고 겁먹은 표정을 한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하녀로 들어온다. 사라의 지시에 따라 부엌 막일을 맡은 애비게일이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앤의 아픈 다리에 발라 신통한 효과를 보면서 미소와 친절을 선심 쓰듯 하는 애비게일은 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앤을 둘러싸고 사라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쟁취 극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데 이런 둘의 미소로 덧칠한 독침의 공격과 방어를 앤은 나름대로 조종하며 즐긴다. 남자들도 여럿 나오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 위주의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서 논다.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위트가 날카롭고 사정없이 야박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매력적인 영화로 콜맨과 바이스와 스톤의 연기가 경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콜맨의 아이처럼 철없고 순진하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차릴 것 다 차릴 줄 아는 연기가 빛을 낸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부엌 하녀로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속 다 차리는 스톤과 표독스럽고 차고 간교한 표정의 바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드 II(Creed II)


크리드(왼쪽)가 록키의 코치 하에 빅터와 대결하려고 모스크바의 링에 올랐다.

‘록키’시리즈 속편… 아폴로와  드라고의 아들, 링 위 사생결단 대결


‘록키 II’에서는 아버지끼리 주먹다짐을 하더니 ‘크리드 II’에선 아들끼리 싸운다. 
2015년에 나온 ‘록키’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생작품인 ‘크리드’의 속편인데 ‘록키’와 그 속편들의 내용을 재탕한 것처럼 진부하고 서스펜스나 긴장감도 또 놀라울 것도 없는 타작이다. 킬링 타임용은 된다.
전편에서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의 지도 하에 새 헤비급 챔피언이 된 크리드(마이클 B. 조단)는 ‘록키’시리즈 제1편과 제2편에서 록키와 대결한 흑인 선수 아폴로의 아들. 처음에 잠깐 크리드가 링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후에 크리드와 대결할 우크라이나의 젊은 살인무기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먼테누)가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 크리드가 가수인 애인 비안카(테사 탐슨)에게 구혼을 하면서 영화는 주먹대결에 로맨스를 양념으로 치는데 매우 어색하다. 각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크리드와 비안카의 열기 빠진 관계와 함께 록키가 아내의 무덤엘 찾아가 독백을 하는 장면도 이젠 식상하다.
빅터가 크리드에게 대결하자고 선포하면서 록키와 크리드 간에 갈등이 인다. 록키는 크리드에게 폭력자에 지나지 않는 빅터와 대결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붙어봤자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빅터가 ‘록키 VI’에서 크리드의 아버지인 아폴로를 링에서 때려죽인 이반 드라고(돌프 런드그렌)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반은 빅터의 코치로 러시안 챔피언이었던 이반과 록키는 ‘록키 IV’에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운 사이. 이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후계자를 내세워 다툰다. 
크리드는 자기를 떠난 록키의 도움 없이 빅터의 도전을 받아들여 링에 오르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그러나 빅터의 반칙으로 크리드는 챔피언십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는 빅터의 재도전에 응한 크리드가 25대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의 링에서 빅터와 사생결단의 경기를 벌이는 것. 물론 그 전에 크리드를 돕기로 결심한 록키의 지도 하에 크리드가 사막에서 맹훈련을 하는데 이런 것이 다 옛날 ‘록키’의 장면을 답습한 것이다. 
조단은 전편에서는 신선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이번에는 기운이 떨어진 사람 같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록키’시리즈에서 이반의 아내로 나왔던 브리짓 닐슨(스탤론의 실제 애인이었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 많이 늙었다. 제3편이 나올 것처럼 끝난다.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감독. PG-13 등급. MGM.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린 북(Green Book)


토니(왼쪽)가 단 셜리 박사를 차에 태우고 미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순회콘서트 동행 흑백, 서로 이해하는 과정 훈훈


온 천하 만백성이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안전위주의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 코미디다. 뛰어난 연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재미있는 내용과 재즈와 클래식을 혼성한 듯한 음악과 다소 감상적인 연출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의 마음을 훈기로 채워주는 연말 할러데이용 작품이다.
오스카상을 탄 ‘데이지 마님 모시기’를 연상시키는 얘기로 놀라운 것은 감독이 ‘덤 앤 더머’와 ‘메리에겐 뭔가 있어’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한 코미디를 만든 화렐리 형제 중의 하나인 피;터 화렐리라는 점. 그는 물론 코미디 전문이어서 영화가 코미디 분위기가 다분하긴 하나 진짜 알맹이는 진지한 드라마다. 
연기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작품인데 흠이라면 흑백문제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다룬 것. 이 영화만 같다면 미국의 흑백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인데 인물들이나 상황이 모두 너무나 틀에 박힌 공식을 따라 끝이 어떻게 될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출 방식이 영화의 내용을 사람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기보다 조작하는 식이어서 다소 거부감이 인다. 그러나 심각한 내용을 매우 우습고 흥미진진하며 또 진지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1962년.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토니(비고 모텐슨)는 일자무식의 클럽 바운서로 아내(린다 카델리니)와 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나 마음은 곱다. 토니는 이탈리아계인데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여 떠들어대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틀에 박힌 듯이 묘사했다. 
토니가 일하던 클럽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토니는 자가용 운전사를 구하는 재즈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흑인 단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집을 방문한다. 유명하고 돈 많고 박식한 셜리는 카네기홀 위층의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데 태도가 아프리카의 임금님처럼 도도하기 짝이 없다.
셜리는 8주간 미 남부 순회연주를 위해 토니를 고용하는데 셜리의 밴드 구성원인 백인들인 베이시스트와 첼리스트는 다른 차를 타고 셜리와 동행한다. 성격과 성장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로드 무비인데 둘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셜리는 온갖 인종차별을 겪게 되나 그가 곤경에 처할 때면 완력과 입심이 센 토니가 나타나 구해준다. 
둘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고 겪는 갖가지 사건과 해프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깊은 정으로 맺어지게 된다. 둘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나 모두 정직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처음에는 각자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다가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존중하고 또 그것을 따르는 과정이 두 배우의 기막힌 화학작용에 의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모텐슨의 다소 어릿광대 같은 우습고 으스대는 연기도 일품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것은 알리의 위풍당당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다. 오스카 조연상을 다시 탈 가능성이 많다. 알리가 밴드의 반주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이 박수갈채를 받을만하다. 제목은 흑인들이 미 남부를 여행할 때 백인들의 박해를 피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PG-13 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영원의 문턱에서(At Eternity’s Gate)


고흐는 친구 고갱이 자기를 떠나자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고갱과 우정과 갈등 그리고 정신질환… 고흐의 생애 마지막 부분 그린 전기영화 


반 고흐의 남프랑스에서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그린 전기영화로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과 고흐 역의 윌렘 다포의 정열적인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고흐의 그림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너무 고답적이요 지적이며 예술적이어서 정이 쉽게 가질 않는다.
감독은 유명한 미술가인 줄리안 슈나벨로 그는 질서 있는 서술을 무시하고 고흐의 화가로서의 영감과 그림에 치중해 보기에는 다채롭고 화려하나 실제로 고흐의 불우했던 삶을 체감하기가 힘들다. 슈나벨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지지만 그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고흐라고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으로 볼 만하다.
영화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고흐의 남프랑스의 알르와 생-레미 등지에서 창작활동과 함께 그와 화법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화가 고갱과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화상인 형 테오(루퍼트 프렌드)와의 관계 및 고흐가 자기 왼쪽 귀를 자르면서 지낸 정신병동에서의 삶 등을 다루고 있다.
고흐(다포)와 고갱(오스카 아이작)은 먼저 파리에서 만난다. 고갱은 태양을 그리워하는 고흐에게 남프랑스로 내려가라고 조언한다. 알르에 내려온 고흐는 가난에 시달리면서 형의 도움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정열이 불길처럼 타올라 계속해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그림책을 통해 많이 본 그림들이 나온다.
감독은 고흐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색깔과 형체미를 통해 자주 보여주면서 시각적으로 보는 사람을 유혹하는 반면 이야기가 약하다. 각본은 감독과 프랑스의 베테런 각본가인 장-클로드 카리에리 등 세 사람이 썼다. 감독은 고흐가 희열에 젖어 자연과 인물 모델 그리고 정물 등을 그리는 모습을 화가의 눈으로 관조하고 있다. 
고흐는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면서 어두운 삶을 살지만 생명력의 활화산인데 자기와 극진한 사이이던 고갱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면서 평소의 정신질환이 악화, 자기 왼쪽 귀를 잘라버린다. 이어 정신질환자 요양소에서 살던 고흐는 자신의 정신질환 상태를 판단하러 온 신부(매즈 미켈슨)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화에서 고흐는 자기를 시대에 앞서간 예수에 비유한다. 그런데 고흐역의 다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에서 예수로 나온바 있다. 고흐는 37 세로 요절했다.
마티외 아말릭, 에마뉘엘 세녜, 닐스 아레스트룹 및 안 콩시니 등 유럽의 스타들이 단역으로 나온다. 서술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촬영과 다포의 영육을 다 바친 경직되다시피 강력한 연기가 빼어난 작품이다. PG-13 등급. CBS Film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20년 조사위 보고’


트럼프와 김정은(사진) 간의 화해무드가 온탕냉탕을 들락날락하는 요즘 실수와 판단착오로 인해 미국과 북한 간에 핵전쟁이 벌어지는 내용의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루이스가 쓴 ‘북한의 대미 공격에 관한 2020년 조사위 보고’(The 2020 Commission Report on the North Korean Attacks Against the United States)다. ‘상상해본 소설’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둘 다 예측 불허한 사람들이 통치자로 있는 핵보유국인 미국과 북한 간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룬 것이어서 사실감이 절실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보고 교훈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사흘 동안 벌어진 양국 간의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300여만 명이고 부상자는 80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나면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사상자가 포함된다. 
마치 007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과 긴장감에 블랙 코미디 분위기마저 갖춘 이 소설은 미국과 북한 간의 핵전쟁 직전 상황과 전쟁발발 그리고 그 후유증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지도자들의 판단 착오와 우발적 충동심이 인류의 참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책은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무지와 대북 관계에 관한 어리석은 낙관과 판단의 오류 및 즉흥적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래서 책에서 트럼프는 이 보고서를 ‘마녀 사냥’이며 ‘가짜 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책은 핵전쟁과 그 후유증을 다뤘다는 점에서 같은 내용을 다룬 영화와 TV드라마인 ‘온 더 비치’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및 ‘더 데이 애프터’를 생각나게 만드는데 그 현실감과 함께 재미 있는 내용과 쉽게 진행되는 서술로 인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2020년 3월 21일 한반도 위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한국 부산의 김해국제공항에서 부산(BX) 411편을 탄 288명의 승객들 중 그 누구도 이 비행이 대참사의 비행이 되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288명 중 절반가량이 몽고의 자매학교를 방문하러 가는 부산중학교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안 돼 계기고장으로 비무장지대로 넘어서자 북한 측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다. 북한 측이 이 여객기를 격추한 이유는 그 동안 미 폭격기가 훈련을 빙자해 자주 비무장지대에 근접 비행하는 신경전을 벌인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북한 측은 여객기를 이번에도 훈련을 빙자해 접근하는 미 폭격기로 오인한 것이다.
 여객기 격추 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참모회의를 열고 대 북한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는데 그가 북한과의 전쟁 불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의 참사와 그 후유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편 김정은은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자기를 공격할 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서 보복으로 한국과 일본 그리고 괌의 미국기지를 향해 핵 공격을 감행한다. 이 때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의 마-라-라고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 공격 생존자들인 서울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도쿄의 소방서장 그리고 부산의 한 여의사의 중언을 토대로 핵의 재앙을 상세히 보여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부 중앙청사로 피신했다가 핵폭탄을 맞으면서 사망한다.           
이어 김정은은 트럼프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판단,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지시한다. 3월 22일 새벽 총 13개의 핵탄두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 14와 15호가 발사된다. 이 들이 미 본토까지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40여분.
공격 목표는 진주만과 샌디에고와 워싱턴 D.C. 그리고 9/11 때 부시가 피신했던 루이지애나주 슈레비포트의 박스데일 공군기지(트럼프도 이리로 피신하리라는 예측에서)와 뉴욕과 마-라-라고. 핵미사일이 북한을 떠나 미 본토에 떨어지기 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3개중 6개는 불발탄인데 미사일은 백악관은 빗겨가나 뉴욕의 맨해탄에 명중, 당시 트럼프타워에 있던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가 즉사한다.
북한 측 공격에 뿔이 난 트럼프는 김정은이 중국의 허락 없이 미국을 공격할 리가 없다고 판단,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핵 공격을 결심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참모가 핵 공격을 지시할 수 있는 코드가 있는 가방 ‘풋볼’을 트럼프로부터 가로채 이를 저지한다. 이어 트럼프는 오마하주 네브라스카의 미 전략사령부 지하벙커로 피신하기 위해 전용기에 오른다. 트럼프는 비행기 창밖으로 플로리다에 떨어진 핵폭탄이 만들어낸 치솟는 불덩이를 보면서 “진짜 아름답네”라고 찬탄한다.
이어 미 공군의 북한에 대한 공중 폭격과 김정은 제거를 위한 특공대를 포함한 미군 지상공격이 벌어지면서 북한군은 궤멸한다. 김정은은 묘향산의 벙커로 피신했다가 특공대가 들이닥치기 직전 자살한다. 그리고 트럼프는 상원 덕분에 간신히 탄핵을 면하고 재출마를 포기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거미줄에 걸린 여인(The Girl in the Spider’s Web)


살라만더가 아내를 학대하는 남자를 공중에 매단 채 징벌하고 있다.

스릴러서 액션물로 … ‘밀레니엄’시리즈의 변종


‘용의 문신을 한 여자’를 시작으로 한 스웨덴의 스릴러 작가 스틱 라슨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후속편인 셈이지만 이 영화는 라슨의 사망 후 데이빗 라거크란츠가 ‘밀레니엄’ 시리즈의 여주인공 리스베스 살란더를 기용해 쓴 소설이 원작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밀레니엄’ 시리즈의 변종이라고 하겠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누미 라파스가 주연한 3부작 스웨덴 영화와 루니 마라가 주연한 미국영화 ‘용의 문신’ 등이 히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BBC-TV시리즈 ‘크라운’에서 젊은 엘리자베스여왕으로 나온 클레어 포이가 살라만더로 나와 치고 박고 쏘고 맹속력으로 도주하면서 액션연기를 한다. 
속도감 있고 액션이 많아 눈요깃거리 오락영화로선 큰 손색이 없지만 살란더의 내면 묘사와 성격 개발이 아주 미흡해 포이의 맹렬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스릴러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에서 표현되었던 살라만더의 분노와 복수심과 고통당하는 내면이 거의 보이지 않고 세계를 핵의 위협으로부터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액션에 치중하고 있다. 어둡고 심각했던 다른 영화들에 비해 격이 한층 떨어졌다. 
처음에 살라만더의 어린 시절이 서막식으로 나온다. 살라만더의 아버지는 살라만더와 그의 언니를 성적으로 유린하는데 이런 아버지를 피해 살라만더는 도주하나 언니 카밀라는 아버지 곁에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헤어진 살라만더와 카밀라(실비아 혹스)는 성인이 되어 치명적인 적으로서 만난다. 
이어 천재적인 해커가 된 짧은 머리의 살라만더가 아내를 폭력으로 학대하는 남편을 응징하는 장면이 또 다른 서막식으로 나오면서 살라만더가 소개된다. 미국의 국가안보위(NSA) 전직 요원 프랜스 발더(스티븐 머천트)가 전 세계의 핵폭탄이 저장된 장소를 해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 ‘화이어폴’을 고안한다. 그런데 이것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악인이 고용한 ‘스파이더스’라는 범죄 조직에 의해 탈취되면서 NSA가 ‘화이어폴’의 회수 임무를 살라만더에게 맡긴다.
살라만더가 이를 회수하자마자 그의 아파트가 폭파되고 이어 살라만더는 영화 내내 악인들을 쫓고 또 그들에게 쫓기면서 액션이 삼빡하게 벌어진다. 맹렬히 달리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추격과 개스 마스크를 쓴 살라만더가 가축용 충격봉으로 적과 싸우는 등 박력 있는 액션 장면이 많다. 
과연 ‘스파이더스’의 관계자는 누구인가. 대충 알만하다. 영화의 또 다른 결점 중 하나는 살라만더를 돕는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스베리르 구드나슨)가 완전히 장식품으로 소모된 것. 마지못해 쓰여진 것 같다. 이와 함께 플롯도 허술한 데가 있고 작품의 톤이 무질서하지만 포이의 단단한 연기가 볼만한 효과적이요 말끔한 스릴러다. 페데 알바레스 감독.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선두주자(The Front Runner)


게리 하트(휴 잭맨)가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대답 없이 피해 가고 있다.

섹스스캔들로 대선 중도하차 게리 하트 상원의원 실화… 휴 잭맨, 정치인 변신


1988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콜로라도주 상원의원 게리 하트가 섹스스캔들로 도중하차 한 사실을 다룬 드라마로 너무 고지식하게 실화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 극적 흥분감이나 긴장감이 모자란다. 하트는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온 조지 H. W. 부시를 앞지르고 선두를 달렸으나 모델인 다나 라이스와의 섹스 스캔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몰락의 길로 급전직하 하고 말았다.
영화는 과연 정치인은 사생활에서 반드시 투명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데 이와 함께 하트를 도중하차 하게 만든 태블로이드의 전횡과 스캔들에 흥분하는 대중의 천박한 호기심까지 비판하고 있다. 포르노 여배우와의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보면 콧방귀를 뀔 영화다.
옛날에만 해도 언론은 대통령의 혼외정사에 관해 관대했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와 아이젠하워를 비롯해 존 F. 케네디 등이 다 혼외정사를 즐긴 대통령들이다. 하트 이후의 대통령인 빌 클린턴도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를 비롯한 몇 명의 여자와의 관계로 인해 크게 혼이 났지만 8년을 백악관에서 살았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언론과 대중은 대통령의 정직성을 따지게 됐는데 전문가들은 특히 1980년대 들어 태블로이드가 워터게이트 같은 빅 스캔들 보도 특종에 혈안이 되면서 정치가들이 이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게리 하트(휴 잭맨)와 모델인 다나 라이스(새라 팩스턴)와의 관계는 처음에 이에 대한 팁을 받은 마이애미 헤럴드지에 의해 보도됐다. 신문의 기자들이 증거를 잡으려고 하트의 집 밖에서 잠복했다가 그를 덮치는데 처음에 하트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기자들에게 오만하게 “따라 붙으려면 따라 와봐”라면서 대응한다. 
그러나 기사가 나가면서 후폭풍이 몰아치게 되는데 처음에는 이 문제를 가십정도로 생각하던 워싱턴포스트가 스캔들을 보도하면서 하트는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된다. 하트가 플로리다 요트에서 만난 라이스와 관계를 가졌을 때 그와 그의 부인(베라 화미가)과의 관계는 원만치가 못했을 때다.
하트는 선거유세에서는 개인의 정직과 올바른 정체성을 얘기하면서도 자신은 부정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해 선거참모들과 대중에 의해 위선자로 여겨지면서 참신하던 그의 정책과 에너지와 젊음과 함께 매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영화는 하트를 단죄하지는 않는다. 잭맨이 가발을 쓰고 열연을 하는데 어딘가 어색하다.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 R 등급. Columbia.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역동적인 무대 매너를 구사하면서 노래 부르고 있다.

격정적인 음악‘록뮤직 화신’
영화로 환생한 프레디 머큐리


화끈하고 뜨겁고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록뮤직의 흥분과 노래 부르는 가수의 정열에 화상을 입겠다. 영국의 록밴드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영화로 프레디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의 영육을 불사르는 맹렬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표현의 연기가 눈부시다.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말렉이 혼자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해 다른 배역들의 묘사가 약한 것이 흠이다. 
퀸은 ‘보헤미안 랩소디’와 ‘위 아 더 챔피언스’ 및 운동경기 때 관중들이 잘 부르는 ‘위 윌 록 유’ 등의 히트곡을 낸 밴드로 이 영화는 전기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거려지는 콘서트 장면들은 그야말로 불덩이인데 이에 반해 인간탐구와 성격묘사를 비롯한 무대 뒤의 드라마적 요소가 다소 미약하게 다뤄졌다. 그러나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뛰게 만들며고 눈시울마저 붉게 만드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퀸이 조직된 1970년부터 퀸이 영국의 웸블리 스태디엄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 공연한 1985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을 취급하는 프레디 불사라(이란계인 그의 본명은 화로크 불사라)는 어느 날 바에 들렀다가 여기서 연주하고 나온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그윌림 리)와 치과공부를 하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벤 하디)에게 다가가 “너희들은 나 같은 리드 싱어가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프레디가 한 곡조 뽑는데 네 옥타브를 구사하는 그의 성량에 둘은 놀란다. 이어 베이시스트 존 디콘(조셉 마젤로)이 합류, 퀸이 구성된다.
프레디 불사라는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고치고 본격적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하는데 물론 그의 부모의 실망이 적지 않다. 프레디가 작곡한 노래들이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는데 이런 인기는 프레디의 가창력과 변화무쌍한 무대 매너 탓이다. 이어 이들은 음반회사 EMI와 계약을 맺는다. 프레디와 음반회사 사장(마이크마이어스)간에 노래의 길이와 통상 장르를 무시한 독특한 스타일로 충돌이 빚어진다.
프레디는 자기 팬 중의 하나인 아름다운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이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과 사랑 끝에 결혼하나 순회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동성애 기호를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다. 
퀸의 잘 나가던 활동은 프레디의 매니저 폴 프렌터가 프레디에게 솔로로 전향하라고 유도하면서 깨어지게 된다. 그러나 프레디는 솔로로서 성공하지 못한다. 프레디는 뒤늦게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팀을 재구성, 1985년 런던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출연하면서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는다. 
이 공연이 작품의 절정으로 프레디가 땀을 흘리면서 피가 솟구치도록 노래하는 연기가 아찔하도록 눈부시다. 눈물이 나오는 격정적인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말렉이 프레디처럼 뻐덩이를 하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무대에서 길길이 뛰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 하나만으로 볼만한 작품이다. 
감독은 브라이언 싱어로 그는 성질을 부려 제작 종료를 얼마 앞두고 해고당했다. PG-13. Fox.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버닝(Burning)


가난한 종수(왼쪽)와 부자 벤은 해미를 사이에 놓고 삼각관계를 이룬다.

극심한 빈부차 속 삼각관계
청춘의 좌절과 분노, 응징
이창동 감독 치밀하게 고찰


수줍고 소심한 작가 지망생인 배달부 청년과 삶의 욕구로 가득 찬 적극적인 젊은 여자 그리고 돈이 많아 일하는 것이나 노는 것이 마찬가지인 플레이보이 청년 간의 인간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고찰한 이창동 감독의 3인극 성격 드라마다. 이와 함께 계급과 빈부 차 그리고 성적 질투와 질시와 함께 꿈의 좌절과 분노와 응징 및 가족의 유래와 정의 등 다양한 소재를 주도면밀하게 다뤘는데 굉장히 느려 인내심이 필요하다. 불길이 서서히 타 들어가다가 마지막에 가공할 화염으로 작가 지망생의 분노를 태워버리는데 영화가 너무 예술적이어서 관객보다 비평가들이 더 좋아할 작품이다. 올 칸영화제서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을 탔다. 2017년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 출품작.
작가 지망생으로 막일을 하면서 사는 내성적인 종수(유아인)가 어느 날 길에서 자기와 어렸을 때 같은 반이었다는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는 비록 길거리 상품 선전원이나 생명력 넘치고 상상력 풍부한 여자. 둘은 대뜸 연인 사이가 돼 해미의 손바닥만한 아파트에서 섹스를 즐긴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기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 다음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고양이는 정말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미의 상상의 산물인가. 착실한 종수는 해미가 여행을 간 뒤 가끔 해미의 아파트에 찾아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청소도 한다. 그리고 해미의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성적 욕망도 푼다. 여전히 고양이는 안 보인다.
귀국한 해미는 종수에게 여행 중에 만났다는 미끈하게 잘 생긴 부자 벤(한국계 미국배우 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종수는 포르셰를 몰고 다니는 벤 앞에서 완전히 주눅이 드는데 이 때부터 3각관계가 발생하면서 종수는 벤의 심부름꾼 비슷한 처지가 된다. 벤은 종수를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그 태도에서 은근히 종수를 아랫사람으로 깔보는 기색이 느껴진다. 이를 못 느낄 종수가 아니다. 영화는 벤을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에 비유하고 있다.
한편 종수는 판문점 부근의 자기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데 확성기로 북한의 선전방송이 들린다. 영화는 한국의 분단상황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종수의 농부 아버지는 공무원을 폭행, 수감된 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해미와 함께 종수를 찾아온 벤은 자기는 빈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는 것을 즐긴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느닷없이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와 벤이 함께 갈등과 충돌을 향한 2인무를 추다가 충격적인 클라이맥스에 이르는데 이 같은 결말은 예측이 가능하다. 성격 드라마이자 긴장감을 갖춘 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도 한데 원작은 하루키 무라카미의 단편 ‘헛간 태우기’. 세 배우가 다 뛰어난 연기를 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페이스


NBC-TV의 모닝쇼 ‘투데이’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메긴 켈리가 최근 할로윈 얘기를 하면서 “내가 학교에 다니던 과거엔 백인들이 얼굴을 검은 칠로 분장을 해도 괜찮았다”는 망언을 해 쇼에서 퇴출당했다.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들의 DNA에 들어있다시피 한데 1983년에는 ABC-TV의 ‘먼데이 나잇 풋볼’을 오랫동안 중계해온 베테런 방송인 하워드 코셀이 풋볼중계를 하면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흑인선수를 “작은 원숭이”라고 불러 그 여파로 프로그램에서 자진 사퇴했다.
백인들이 영화나 쇼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근 1세기 동안이나 유행한 버라이어티쇼인 ‘민스트렐 쇼’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인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고 코미디를 연출하면서 흑인들을 어릿광대요 게으른 멍청이들로 묘사, 인기를 끌었었다.
‘민스트렐 쇼’의 흑인에 대한 이런 묘사는 흑인들과 직접 접촉이 없는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을 열등한 사람으로 인식케 하는데 일조를 했다 켈리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런 몰지각한 발언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켈리는 ‘트럼프 방송’인 폭스뉴스 출신으로 과거에도 예수와 산타 클로스를 백인이라고 우겨 물의를 빚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격렬한 대립양상을 띠고 있는 가운데 증오와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켈리의 발언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릇을 한 것은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 대표적 영화가 D. W. 그리피스가 감독한 대하 서사극 ‘국가의 탄생’이다. 남북전쟁과 전쟁 직후의 드라마로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백인 여자들을 겁탈하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는 바람에 이에 대항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가 조직됐다는 내용이다. 흑인들은 무법자들로 KKK는 백마의 기수들로 묘사된 이 영화를 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작품이다.
얼마 전 ‘블랙클랜스맨’을 감독한 스파이크 리를 만났을 때도 이 영화가 거론됐는데 그는 “‘국가의 탄생’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묘사된 흑인들을 보면 욕지기가 난다”고 열을 올렸다. 그가 오스카상을 받은 걸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맹렬히 비판 한 것은 영화에 나오는 스칼렛의 충실한 하녀 매미와 또 다른 하녀 프리시를 비롯한 흑인들이 다 노예근성에 사로 잡혔거나 맹한 인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리는 트럼프를 “디스 가이”라고 부르면서 “탄핵 받아야 마땅할 그가 절대로 재선되지 못하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면서 인종차별이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싶지만 결코 낙관할 수가 없다”고 비관했다.
백인 배우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낸 또 다른 유명한 영화가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사진)다. 여기서 가수로 나온 알 졸슨은 입술은 새하얗게 그리고 얼굴은 새카맣게 칠하고 무대와 나와 ‘마이 매미’를 노래한다.
특히 백인들의 흑인 노릇은 뮤지컬에서 많은데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인 프레드 애스테어, 주디 갈랜드, 빙 크로스비, 미키 루니 및 셜리 템플 등이 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춤추고 노래 불렀다. 불과 6년 전인 2012년 오스카 시상식 때는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유명 흑인가수이자 배우인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흉내를 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
할리웃은 예나 지금이나 백인들의 세상이다. 과거 할리웃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동양인 역을 다 백인 배우들에게 줬다. 특히 웨스턴에 자주 나오는 아메리칸 인디언들로 백인배우들을 썼다.
록 허드슨,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잭 팰랜스, 척 코너스, 제프 챈들러, 앤소니 퀸 및 로버트 테일러를 비롯해 심지어 오드리 헵번도 아메리칸 인디언 노릇을 했다.
그 중에서도 실로 가관인 것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걸작 웨스턴 ‘윈체스터 ‘73’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으로 나온 록 허드슨이다. 그는 영양상태가 좋은 살이 토실토실 찐 상반신을 벗어 제친 채 서툰 영어를 구사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연실색 했던 기억이 난다.
과거 할리웃의 백인배우들은 동양인역도 전매특허 냈듯이 자기들이 했다. 그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 ‘정복자’에서 존 웨인이 옆으로 찢어진 눈에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온 것. 이 밖에도 말론 브랜도, 알렉 기네스, 캐서린 헵번, 미키 루니, 폴 뮤니, 루이즈 레이너 및 피터 로레 등도 모두 동양인들로 인종 변경을 한 배우들이다. 미국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나도 인종차별을 당해 봤는데 나도 이 문제에 관해선 스파이크 리처럼 비관적이다.   .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용서해 줄 수 있겠어?(Can You Ever Forgive Me?)


유명 작가의 편지 위조범 이즈라엘(왼쪽)과 그의 공범 잭이 바에서 스카치를 마시고 있다

유명작가의 서명위조 사기 벌이는 매카시 연기 일품


1990년대 초 유명 스타들과 작가들의 편지와 서명을 위조해 팔아먹은 뉴욕의 여류 작가 리 이즈라엘의 실화로 코미디언 멜리사 매카시가 가발을 쓰고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나와 드라마 배우로 변신한 흥미 있는 작품이다.
뉴욕 출판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작가의 창작력의 원천을 다루면서 아울러 유명 인사의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풍조도 더불어 조소하고 있는데 매카시의 연기는 벌써부터 상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매카시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이 이즈라엘의 사기행각의 동료 잭으로 나오는 영국배우 리처드 E. 그랜트의 연기인데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매카시와 그랜트의 콤비네이션도 일품으로 둘의 우정과 티격태격을 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리 이즈라엘(매키시)은 완전히 한물 간 작가로 자기 책을 출판한 회사 편집자(베테런 TV 코미디언 제인 커틴)에게 전화를 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렌트가 몇 달씩 밀렸지만(편집자의 집에 열린 파티에 가서 화장실의 남은 휴지를 가방에 쓸어 담을 정도로 궁색하다) 단골 바에 가서 스카치를 니트(얼음 안 탄 것)로 거푸 마시는데 유일한 위로라면 애주중지하는 고양이.
*최근 매카시와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스카치를 그렇게 니트로 미시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얼음과 함께 마신다면서 “난 스카치를 즐긴다”고 대답해 “나도 스카치를 즐긴다”고 스카치 예찬에 동조했다.
이즈라엘은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연구하던 중 책 속에 있는 유명작가의 서명이 적힌 친필 편지를 발견, 자기 가방에 숨겨 빼낸다. 이를 계기로 이즈라엘의 유명인사 편지와 서명 위조 작업이 시작되는데 편지 한 장에 수백달러씩 팔리는 바람에 렌트비도 조달되고 술값도 넉넉해진다. 
이즈라엘이 위조하는 작가들은 노엘 카워드와 도로시 파커 등이 있고 연예인으로는 패니 브라이스가 있다. 이즈라엘의 필적 위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책방에서는 의심하지 않고 사는데 편지 내용은 다 이즈라엘의 창작이다. 
어느 날 이즈라엘은 바에 들렀다가 과거 출판 기념파티에서 잠시 대면한 날건달 잭(그랜트)을 만난다. 둘 다 술꾼으로 즉석에서 죽이 맞아 잭은 이즈라엘의 위조 작업의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 동안 잘 나가던 사기행각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FBI의 수사망에 떠오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위조편지 판매는 잭이 대행하는데 결국 이즈라엘은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에서 이즈라엘은 판사가 선고를 하기 전 “나는 위조작업 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가짜 편지의 내용은 다 내 창작의 산물”이라고 고백한다. 이즈라엘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후에 자기 경험을 쓴 책 ‘Can You Ever Forgive Me?’는 뉴욕타임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이즈라엘은 2014년 75세로 사망했다. 매리엘 헬러 감독.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길티’(The Guilty)


아스가 홈이 경찰서에서 납치된 여자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있다.

비상전화 받는 경찰과 납치된 여인의 대화… 시공 넘은 긴장감 예술적 표현


영화 전체가 경찰서 비상전화 접수실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주인공도 전화를 받는 경찰 한 사람인 협소감 가득한 덴마크 스릴러다. 별로 넓지 않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경찰과 그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여인의 대화로 이어지는 드라마여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나 영화는 이런 제한을 정신적 감정적으로 뛰어 넘고 예술성이 강한 긴장감으로 보는 사람을 유인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경찰의 노심초사에 동반해 화면 안으로 몰입하게 된다. 구스타브 묄러는 대단한 재주를 지닌 감독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아스거 홈(야콥 세데르그렌)은 업무수행 중 사건용의자를 사살, 조사 진행 중에 비상전화 접수실 근무령을 받고 근무 중이다. 약물에 취해 응급차 보내달라는 젊은이와 홍등가에서 창녀에게 강탈을 당한 남자의 전화 따위를 받는다. 이어 이벤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부터 다급한 음성으로 도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 남편에 의해 납치를 당해 지금 차에 실려 가고 있다는 것.
홈은 어떻게 해서든지 차의 위치 등 이벤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벤에게 집에 있는 딸과 전화를 하는 척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벤이 흰색 밴에 타고 있으며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비상대기 차량에 통지한다. 그러나 이벤의 전화가 끊기면서 다급해진 홈은 법규를 무시하고 혼자 지혜와 경험 등을 이용해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볏단 속에서 바늘 찾기 식인데 홈은 옆 자리에 동료 경찰이 있는 자기 자리를 떠나 옆방에서 혼자 전화와 컴퓨터를 사용, 이벤 구조에 열을 올린다. 
다시 이벤과 통화가 연결된 홈은 여인과 그의 전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둘의 가정생활 내용 및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아내려고 이벤에게 유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이벤의 실제 상황을 알게 된다. 감독은 홈이 이벤을 구원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속죄를 하게끔 했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홈의 고독과 갇힌 상태 그리고 시각적 제한을 홈의 전화를 통해 들리는 외부의 여러 가지 음향으로 해소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그와 함께 하여금 감정적 여정을 하게 만든다. 세데르그렌이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고 순전히 얼굴 표정과 음성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는 뛰어난 연기를 한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릿’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새파란 눈동자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인색한 미소를 지녔던 쿨 가이 스티브 맥퀸을 액션 스타로 신격화한 영화는 형사스릴러 ‘불릿’(Bullitt^사진)이다. 갱스터 범죄영화의 금자탑과도 같은 ‘불릿’이 이달로 개봉 50주년을 맞아 요즘 미 전국 대도시에서 재상영 되고 있다.
‘불릿’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형사 불릿으로 나온 맥퀸이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맥퀸이 차를 타고 도주하는 킬러를 쫓아 포드머스탱 390GT를 모는 장면은 자그마치 10분간 계속되는데 대부분 스피드광인 맥퀸이 직접 시속 120마일로 차를 몰며 찍었다. 나도 이 장면 때문에 ‘불릿’이 TV에서 방영될 때면 다시 보곤 한다. 
자동차 추격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장면을 찍는데 총 3주가 걸렸는데 맥퀸은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옆에서 달리는 스턴트 드라이버를 따라 맹연습을 했다. 맥퀸은 이렇게 위험한 장면을 직접 하겠다고 우겨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맥퀸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영국인 감독 피터 예이츠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주도권을 행사했다. 제작비 550만 달러가 든 영화는 빅히트, 총 4,230만 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현 시가로 3억 달러에 이른다.
로버트 본과 재클린 비셋이 공연한 ‘불릿’은 후에 나온 액션영화들인 ‘프렌치 커넥션’과 ‘히트’ 및 ‘제이슨 본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스카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을 탄 ‘프렌치 커넥션’에서 형사 포파이(진 해크만)가 고가전철을 타고 달아나는 헤로인 밀수범을 쫓아 복잡한 뉴욕시내를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불릿’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킨다.
맥퀸은 온 몸에서 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실물이었다. 과묵하고 섹시한 야생동물과도 같은 남성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맥퀸은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초기질과 카리스마가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이요 죽은 지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웬만한 살아 있는 배우들 보다 더 유명한 배우다.
맥퀸은 폐암으로 1980년 50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아내는 범죄영화 ‘겟어웨이’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던 알리 맥그로였다. 공연 시 맥그로는 패라마운트 사장 로버트 에반스의 부인이었다. 신문들은 맥퀸과 맥그로의 로맨스를 놓고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1980년은 내가 미국에 온 해로 그 때 맥퀸이 암치료를 위해 일종의 비법치료를 한다는 의사를 찾아 멕시코에 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병을 못 고치고 귀국했는데 그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갔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에 의하면 맥퀸은 죽음과 필사적으로 다투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대츠 잇”하며 싸움을 포기했다.
거칠면서도 상냥한 양면성을 지녔던 맥퀸은 늘 변두리를 밟으며 스릴을 좇아 산 국외자였다. 그가 나온 ‘주니어 보너’ ‘탐 혼’ ‘신시내티 키드’ 및 ‘헌터’ 등은 다 이런 변두리 인물이 주인공이다. 맥퀸의 국외자 생활 스타일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아버지를 모른 채 태어나 어렸을 때 알콜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인디애나주의 농부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불량아였는데 그는 이렇게 배드 보이가 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배드 보이의 어두운 매력과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기 인기형성에 이용했다. 맥퀸은 자기주장이 강해 할리웃에서 다루기 힘든 배우로 딱지가 붙었었는데 그래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감독한 스승과도 같았던 존 스터지스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G.I. 빌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공부를 한 뒤 무대와 라이브TV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맥퀸은 많은 웨스턴에 나왔다. 배우 초기 시절 나온 TV시리즈 ‘원티드: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네바다 스미스’ 및 ‘탐 혼’ 등이 다 웨스턴이다.
맥퀸은 ‘황야의 7인’ 영화 전편을 통해 불과 20여 줄의 대사(그는 대사를 싫어했다)밖에 구사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기서 공연한 선배 빅스타 율 브린너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자기 멋대로 독특한 행동을 해 브린너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맥퀸은 자동차만 잘 탈 뿐만 아니라 ‘대탈주’에서는 모터사이클을 ‘황야의 7인’에서는  말도 잘 탔는데 그의 자동차 질주 실력이 과시된 또 다른 영화는 그랑 프리를 다룬 ‘르 만스’다.     
맥퀸은 생전 “나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본능적인 연기관을 피력했다. 그의 연기는 생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샌드 페블스’ 단 한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퍼스트 맨(First Man)


닐 암스트롱(맨 앞)이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암스트롱의 역사적 달 착륙과정
영웅담 탈피 인간적 내면세계 조명



난 아직도 인간의 달 착륙이 왜 인류를 위한 승리인지 그 까닭을 못 깨달았지만 이 영화는 그 승리의 장본인인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그린 준수한 영화다. 뮤지컬 ‘라라 랜드’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데이미안 차젤과 ‘라라 랜드’에 나온 라이언 가슬링이 다시 콤비가 돼 만든 수고와 열정과 정성이 가득한 기품 있는 작품이다. 
차젤은 무슨 영화든지 잘 만드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임이 여실히 증명된 영화로 연출과 연기가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접근이 매우 지적이요 진지하고 신중해 거의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확신에 찬 연출력이다. 
암스트롱의 가족의 얘기와 그의 테스트 파일롯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달 착륙을 위한 준비 과정이 차분하게 서술되는 작품의 절반 정도까지는 분위기가 너무 착 가라앉아 심심하게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젤은 흥분하기 쉬운 영웅담이라는 내용에 결코 부응하지 않고 매우 사적인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영화에서 암스트롱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안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차젤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 대뜸 1961년 테스트 파일롯 암스트롱이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공중에서 비행하는 격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그의 세 살 난 딸 캐런이 암으로 죽으면서 암스트롱의 내면의 일부가 죽는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자기 감정을 죽이는 암스트롱은 겉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암스트롱을 달 착륙에 도전케 하는 계기가 된다.
암스트롱의 아내 재넷(클레어 포이가 알찬 연기를 한다)은 땅에 발을 굳건히 디딘 믿음직스러운 집안의 기둥으로 어린 두 아들을 돌본다. 이어 암스트롱은 달 착륙을 위한 제미니/아폴로 프로그램에 선발돼 휴스턴으로 이사를 한다. 그의 앞집에 사는 사람이 같은 우주인 에드 와잇(제이슨 클락)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와잇은 시험 비행에서 사망하는데 그 외에도 여러 명이 희생된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전까지 고되고 치열한 훈련이 계속되고 마침내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코리 스톨) 등이 탑승한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는다. 여기서부터 달 착륙과 이륙에 이르기까지 숨이 답답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폴로가 달에 접근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천천히 포착하는데 이 때 서정적인 음악(저스틴 허위츠)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흐르다가 달 착륙에 이르면서 영화는 무성이 된다. 침묵이 황금이다. 
우주가 경탄을 금치 못하도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촬영이 훌륭하다) 암스트롱이 달에 죽은 딸이 차고 있던 구슬 팔찌를 남겨 놓는 장면이 가슴을 감정으로 복받치게 만든다. 가슬링의 연기가 맥이 빠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훌륭한 내면연기로 봄이 옳을 것이다.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7월22일’(22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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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름캠프‘우토야 살육’
살인자와 살아 남은 자, 재판…
브레이빅 역의 리에 연기 볼 만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여름캠프 섬 우토야에서 일어난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안더스 베링 브레이빅의 살육사건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블러디 선데이’와 ‘유나이티드 93’ 등에서 북아일랜드의 유혈폭동과 9/11 테러를 다룬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각본 겸) 작품이다. 우토야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77명으로 절대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상자는 이보다 더 많았다. 
그린그래스는 액션과 스릴을 긴장감 가득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인데 이번에는 박력감이 다소 약하다. 거의 기록영화 식이어서 뉴스필름을 보는 것 같은데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통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볼 만은 하다.
영화는 세 갈래로 나뉘어 서술된다. 
첫째는 브레이빅(안더스 다니엘슨 리에)의 살육, 둘째는 여기서 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고등학생 비야르 한센(요나스 스트란드 그라빌)의 후유증 그리고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먼저 7월21일 브레이빅이 무기와 폭발물을 밴에 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밴을 오슬로의 수상 사무실과 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에 주차한 뒤 폭파시킨다. 이는 우토야 살육을 위한 교란작전이다.
이어 브레이빅은 우토야에 도착해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을 무차별 사살하는데 그가 무감정한 얼굴로 총기를 난사하는 모습이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이 끔찍하긴 한데 너무 도식적으로 묘사해 안으로 격한 기분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여기서 한센은 동생을 구하고 자기는 뇌를 비롯해 온 몸에 총상을 입는다. 중간 부분이 다소 지루할 정도로 한센의 회복과정과 좌절감과 분노와 살아남았다는 회한 및 가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린그래스는 인종화합을 그리기 위해 한센과 살육에서 살아남은 아랍계 소녀와의 사이에 로맨스 기운까지 가미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그는 자신의 소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법정에 선다. 브레이빅은 자기가 악몽 속의 괴물이 아니라 전쟁에 나간 군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인종화 하는 노르웨이의 현실을 냉정히 비판한다. 그리고 증인으로 한센이 출두한다. 그의 증언이 감동적이다. 볼 만한 것은 리에의 연기다. 차갑게 생긴 얼굴에 감정을 일체 숨기고 마치 살육을 사무 보듯이 하는 그의 연기는 겁이 날 정도다. 그라빌도 차분하다. Netflix.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샤를르 아즈나부르


내가 대학생 때 자주 들른 음악다방들은 미 팝송뿐 아니라 샹송도 제법 많이 틀어댔었다. 나는 이 때 프랑스가수들이 비음을 섞어가며 체념이라도 한 듯이 중얼중얼 대는 노래들을 들으며 괜스레 심각해지곤 했었다. 안개가 낀 감상적인 콧소리로 노래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이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그가 “이자벨 이자벨 이자벨”하면서 떠나간 님 이자벨을 몸살 나게 찾던 노래 ‘이자벨’이다.
아즈나부르가 10월 1일 남불 프로방스의 자택에서 94세로 타계했다. 그의 사망에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심오한 프랑스인이자 그의 아르메니안 뿌리에 깊이 연결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 세대에 걸쳐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들, 그의 음색, 그의 독특한 소리의 광채는 그와 함께 길이 살아남을 것이다”고 조의를 표했다.
‘세기의 엔터테이너’로 불린 아즈나부르는 에디트 피아프, 질베르 베코, 쥘리엣 그레코 및 모리스 슈발리에 등과 함께 활약한 샹송의 마지막 전설이자 역사였다. 가수요 작곡가이자 배우이며 인도주의자였던 그는 아르메니아계 부모 밑에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예계에 투신했는데 처음에는 파리의 술집 물랭 루지에서 피아프가 노래하기 전 무대분위기를 달구는 가수로 일했다. 그는 20대 초 피아프와 함께 미 순회공연을 마친 뒤 솔로로 전향했는데 피아프는 아즈나부르의 성공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생애 8개국어로 총 1,200여곡의 노래를 불러 모두 1억8,000만장의 음반을 판 아즈나부르는 처음에 음성코치로부터 카리스마도 없고 노래도 부를 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키가 5피트 3인치에 체중이110파운드 밖에 안 되는 것도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를 극복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했는데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의 샹송들처럼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는 이 밖에도 결혼과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에 관해서도 노래했다.         
나는 20년 전 아즈나부르가 LA의 윌셔와 라 시에네가 인근의 윌셔극장(현재 사반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참관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작달막했지만 그윽한 분위에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애매하게 매혹적인 음성으로 자기 히트곡들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의 히트곡들로는 ‘라 보엠’ ‘라 마마’ ‘나를 포옹해주오’ ‘아베 마리아’ ‘눈이 내리네’ ‘그녀’ ‘파르스 크’ ‘함께’ 및 ‘기억해야 하리’ 등이 있다.   
1950년대 초반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은 “프랑스는 아즈나부르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찬양했는데 아즈나부르는 이런 명성과 콘서트를 열 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우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기 2주 전까지 도쿄에서 공연할 정도로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은 사람으로 생전 “노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겐 죽음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아즈나부르는 영화배우로서도 유명하다. 스크린에 나서면 화면이 꽉 차는 스타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10명의 작은 인디언들’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양철 북’ 등 총 60여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프랑솨 트뤼포 감독의 느와르 ‘피아노 연주자를 쏴라’(Shoot the Piano Player^1960^사진)이다.
트뤼포가 할리웃 갱스터영화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으로 범죄스릴러이자 희비극이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인간미 넘치는 로맨틱한 영화로 흑백촬영과 음악도 아름답다. 파리의 싸구려 카페의 피아니스트 샬리(아즈나부르)의 영광과 몰락과 여인과 사랑에 관한 얘기로 입을 꽉 다문 무표정한 얼굴의 아즈나부르의 연기가 볼만하다.   
프랑스 서민들의 노래인 샹송은 길바닥 노래다. 처음 가수들은 길가에서 자기가 쓴 노래들을 부르며 행인들에게 악보를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가슴이 터져라 노래하던 ‘작은 참새’ 피아프도 길바닥 가수출신이다.
샹송은 곡조나 가사가 다 격렬히 감정을 부추기는데 멜로드라마 같은 거리 인생의 얘기가 우수와 감상과 동경에 찬 멜로디와 무드 속에서 흘러나와 멜랑콜리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 가수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인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후유증 그리고 욕망과 유혹과 회한 등을 노래해 그 사실감으로 인해 노래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아즈나부르는 인터뷰에서 “나는 술과 에이즈와 교통사고, 이혼과 전쟁의 아이들과 귀 먹고 말 못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에 관해 노래 부른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노래가 철학이었다. 아듀 아즈나부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잭슨(왼쪽)과 앨리가 새벽까지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 주연 뮤지컬 러브스토리
남녀 가수의 사랑, 야망, 비극 그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 레이디 가가가 첫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37년에 나온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로 전성기에 술과 약물에 빠져 인기가 추락하는 남자 가수와 그가 발굴해 빅스타가 되는 여자가수의 야심과 사랑과 비극을 그린 뮤지컬 러브 스토리다.
원작과 첫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은 할리웃 스타들이었으나 두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주연하면서 가수로 바뀌었는데 쿠퍼의 영화는 이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두 가수의 사랑과 개인적 야망과 심리적 문제 그리고 미 가요산업계의 내막을 살펴보고 있는데 쿠퍼의 연출력은 살 만하나 노래가 너무 많아 극적 강렬성이 모자란다. 가가가 작곡에 참여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마치 가가의 CD 선전물이나 자전적 영화 같다. 그러나 둘의 콤비는 잘 어울린다. 쿠퍼는 직접 노래를 불렀다. 이 외에도 그는 제작과 공동으로 각본과 가사까지 썼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열과 성의를 느낄 수 있다.
빅 스타 록가수 잭슨 메인(쿠퍼)은 술과 마약에 빠져 산다. 청각 장애까지 있어 좌절감이 심한데 게다가 자기 매니저인 형 바비(샘 엘리옷)와 불화가 일면서 더 약물과 술에 의존한다. 잭슨은 어느 날 코아첼라 축제에서(직접 공연이 열리는 현장서 찍었다) 노래를 부른 뒤 차를 타고 가다가 한 바에 들른다. 여기서 그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앨리(가가)가 열창하는 ‘라 비 앙 로즈’에 감탄, 앨리에게 데이트를 청한다. 둘은 거리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얼마 후 잭슨은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 앨리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고 노래 중간에 앨리를 무대로 불러내 앨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는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앨리의 가수로서의 성공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는데 앨리의 인기가 부쩍 오르는 것과 달리 내면의 개인적 악마와 다투는 잭슨은 술과 약물을 물 마시다시피 하면서 인기도 빨리 추락한다. 이런 잭슨을 앨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보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앨리의 노래 실력을 발견한 영국의 스타메이커에 의해 앨리는 화려한 변신을 하면서 인기 절정에 올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까지 출연하는데 이에 대해 잭슨은 앨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진짜 가수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여전한데 잭슨은 자기  문제 때문에 앨리의 장래가 위협 받는 것을 깨닫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쿠퍼의 피와 땀의 결정체 같은 영화로 연기도 잘 하는데 자기가 감독이라고 본인 얼굴 클로즈업이 심하다. 가가도 열심히 하긴 하나 아직은 어색하다. 그러나 마치 오페라 가수의 가창력을 지닌 가가의 노래는 정말 일품이다.
이 영화는 벌써부터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


정장에 중절모를 쓴 터커(로버트 레드포드)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쇄 은행강도 벌이는 7순 노인 역
로버트 레드포드‘마지막 작품’관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노인이 총을 차고 은행을 계속해 터는 이 영화는 어쩌면 로버트 레드포드(81)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담담하고 차분한 드라마다.
마치 레드포드의 머리와 모습처럼 황금빛 기운이 감도는데 조락의 분위기와 체념의 쓸쓸함이 가득해 마음이 고적해진다. 허구를 많이 섞었지만 믿어지지 않는 실화다.
총은 있지만 총 소리는 안 들리는 아름다운 강도영화로 강도라는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강도를 하는 노인의 성격과 그가 뒤늦게 만난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레드포드의 연기 생활을 마감하는 ‘스완 송’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막상 최근 토론토에서 만난 그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60년이 넘는 배우 생활을 한 내게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으로서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드포드의 말대로 그의 은퇴작품으로서 잘 어울리는 영화다.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서술되는 매력적인 영화로 레드포드의 여유와 카리스마를 갖춘 연기가 일품이다. 7순 나이의 포레스트 터커(레드포드)는 타고난 범죄자.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연 느끼지 않고 작은 동네 은행을 터는 것이 직업(?)이다. 혼자 범행을 저지르거나 때론 두 명의 동료(대니 글로버와 탐 웨이츠)와 함께 은행을 터는데 터커는 늘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강도를 한다.
옷 속에 총을 감추고 위협용으로 쓰지만 총 한 번 안 쏘고 일을 끝내는데 은행 매니저나 텔러에게 자기가 강도라는 것을 알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고 상냥하게 현찰을 요구한다. 그래서 텔러들은 경찰에 신고할 때에도 터커에게 반했다는 듯이 나쁜 말을 안 한다. 그런데 터커는 턴 돈을 다락에 숨겨 놓고 쓰지도 않는다. 강도질 중독자다.
터커를 수사하는 사람이 젊은 형사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그런데 그도 터커를 쫓으면서도 터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헌트는 몇 차례 간발의 차이로 터커를 놓치는데 이 부분은 좀 억지다.
어느 날 강도 후 도주하던 터커가 길에서 차가 고장 난 주얼(시시 스페이섹이 빼어나게 잘한다)을 도와주다가 둘이 마음이 맞는다. 터커는 주얼에게 자기 직업을 알려주나 주얼은 이를 믿지 못한다. 두 사람은 짙은 로맨스로 맺어진다. 한 동안 직업을 쉬던 터커가 주얼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 한 뒤 집을 나선다.
실제로 터커는 76세 때인 1981년 텍사스와 미주리주의 작은 은행들을 털다가 체포됐다. 레드포드의 영화로 유유자적하면서 역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은데 그와 스페이섹의 콤비도 완벽하다. 마음이 가는 미풍과도 같은 영화로 마치 악동의 미소와도 같은 레드포드의 미소를 맞는 기분이다. 데이빗 라우어리 감독. PG-13.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지막 옷(The Last Suit)


아브라함이 파리의 기차 역무원에게 독일 땅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길을 묻는다,

홀로코스트서 구해준 은인 찾아
남미서 유럽으로 떠나는 노인
유머·인간미 가득한 로드 무비


일종의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어둡고 참혹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유머 가득한 로드 무비 코미디이자 심각한 드라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죽음에 이른 자기를 구해준 옛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남미에서 유럽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팔순 노인의 여정을 정감 있게 그렸다.
여행 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훈훈하고 인간적이며 재미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가슴을 검사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특히 심술첨지이나 예지가 가득한 주인공 아브라함 역을 맡은 미겔 앙헬 솔라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돋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88세난 은퇴한 양복 재단사 아브라함 버즈스타인(솔라)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생존, 전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삶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전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양복점을 차려 성공한 아브라함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많다. 그런데 자식들이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하고 집을 팔아버리면서 아브라함은 전에 자기가 살던 로즈의 친구를 찾아 가기로 한다. 70여 년 만으로 아브라함은 그동안 간직했던 신사복 한 벌을 챙긴다.             
먼저 도착한 곳이 마드리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드리드에 사는 젊은이 레오(마틴 피로얀스키)를 만나고 아브라함이 마드리드 공항에서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주면서 후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묵는 호스텔에서 아브라함은 호스텔 주인이자 파트타임 가수로 시니컬한 마리아(앙헬라 몰리나)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어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폴란드까지 가는 열차가 독일을 경유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역 안내원에게 독일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기차가 없느냐고 묻는다.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것. 이를 듣고 기차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독일 땅을 밟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독일 여자 잉그리트(줄리아 비어홀드).       
마침내 로즈의 과거 자기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수용소에서 나와 다 죽게 된 자기를 돌봐 준 친구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친구는 과연 아직 살아 있을까. 아브라함이 들고 온 옷은 그가 친구에게 주려고 가져왔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 번째 ‘스타 탄생’


10월 5일에 개봉되는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와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 뮤지컬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 ‘스타 탄생’(A Star Is Born^사진)은 1937년에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다. 쿠퍼는 이  영화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고른 이유를 “마음속 깊이로부터 애착이 가면서 나의 창작 혼에 불을 지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퍼의 ‘스타 탄생’의 두 남녀 주인공은 모두 가수들이지만 원작의 두 사람은 할리웃의 스타들이다.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재넷 게이너와 프레데릭 마치가 급부상하는 신성 에스터 블로젯과 하락세로 접어든 빅스타 노만 메인으로 각기 나온다.
시골 처녀 에스터가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웃에 와 알코홀 중독자인 노만의 눈에 띠면서 배우로서의 길이 열리고 이름도 비키 레스터로 바꾼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노만은 술에 절어 팬들의 인기를 잃고 연기생활도 급추락하는 반면 비키의 인기는 급상승, 오스카 주연상을 받는다.
노만을 극진히 사랑하는 비키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해 노만은 한동안 금주하지만 배우로서의 자기 처지를 비관, 다시 술에 손을 댄다. 폐인이 되다 시피 한 노만을 돌보기 위해 비키가 인기정상의 자리에서 연기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이를 안 노만은 아내의 미래를 위해 태평양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한다.
그 후 베키가 할리웃의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린 자기 영화의 프리미어에 참석,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노만 메인의 부인입니다”라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재넷과 마치의 연기가 좋은 훌륭한 드라마로 오스카 감독, 남녀주연 및 각본상 등 총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윌리엄 웰만이 공동 수상)만 탔다. 이 영화의 프리미어도 영화 속 내용처럼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 못지않게 잘 만들고 흥미진진한 것이 1954년에 나온 조지 큐커가 감독하고 주디 갈랜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나온 첫 번째 리메이크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같은데 주연남녀를 비롯해 주제가등 총 6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이 해 여우주연상은‘갈채’(The Country Girl)의 그레이스 켈리가 탔다. 갈랜드의 영화는 골든 글로브 남녀주연상(드라마 부문) 수상작이다.
갈랜드는 당시 약물중독과 체중문제 및 질병에 시달려 할리웃에서 ‘불안정한 배우’라는 딱지가 붙었을 때였다. 당초 노만 역이 제의됐던 케리 그랜트가 역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갈랜드의 이런 평판 때문이었다. 노만 역은 그랜트 외에도 험프리 보가트와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도 제의됐으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WB)의 사장 잭 워너가 둘을 퇴짜 놓았다.
제1편과 제2편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했는데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준수하다. 다만 규모와 화려한 면에서는 WB의 첫 시네마스코프작인 갈랜드의 것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정감 있고 보다 인간적인 게이너의 것을 좋아한다.                     
1976년에 나온 ‘스타 탄생’의 두 번째 리메이크는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가수들로 두 수퍼스타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온다. 두 사람의 극중 이름도 에스터 호프만과 존 노만 하워드로 개명됐다. 쿠퍼의 영화는 이 영화를 모델로 했음에 분명한데 촬영 시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토퍼슨이 세트를 방문 했다고 한다.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가 ‘에버그린’은 오스카상을 탔고 빅히트를 했다.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작품, 남녀주연(뮤지컬/코미디 부문) 및 음악과 주제가상을 탔다. 당초 남자주연으로 말론 브랜도와 가수 닐 다이아먼드 및 엘비스 프레슬리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프레슬리가 역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스트라이샌드 것 위에 올려달라는 등 요구 사항이 지나쳐 무산됐다. 프랭크 피어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두 가수의 허영의 산물”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세 번째 리메이크는 사실 2007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는데 이번에 쿠퍼의 집념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 쿠퍼가 레이디 가가를 주연으로 쓰려고 했을 때 제작사인 WB는 그의 연기력에 회의를 품어 가가는 자택에서 여러 시간에 걸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나서야 발탁됐다. 그런데 가가는 TV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호텔’로 골든 글로브 상을 탄바 있다.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영육을 바치다시피 한 흔적이 역력한 이 영화가 과연 팬들의 얼마나 큰 호응을 받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콜렛(Colette)


콜렛(키라 나이틀리)이 방에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여류 문학가의 성적 자각과 독립
나이틀리의 단단한 연기 인상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 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센세이셔널 한 레즈비언 여류 문학가 콜렛의 전기영화로 차분하게 잘 만들어 어른들이 즐길만한 드라마다. 정석적으로 전기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보기 좋은 것은 콜렛 역의 키라 나이틀리의 단단하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연기다. 콜렛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진 ‘지지’(Gigi)의 작자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소박한 시골 처녀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성적 기호를 자각하면서 자아와 독립을 찾는 문학적이요 개인적인 성장기라고 하겠는데 따라서 콜렛의 인물과 성격 묘사는 잘 된 반면 그녀의 재능을 갈취하는 남편 윌리의 그것은 다소 빈약하다. 윌리 역의 도미닉 웨스트는 이를 알고 그 점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돼지’라 불릴만한 저돌적이요 밉상스런 연기를 씩씩거리며 해댄다. 
버건디 지방 시골에 사는 10대 소녀 콜렛(나이틀리)은 자기 부모의 친구인 나이 먹은 윌리(웨스트)의 언변과 사내다움에 이끌려 그와 헛간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고 콜렛은 파리로 이사한다. 윌리는 파리에서 악명 높은 바람둥이로 일종의 문학작품 장사꾼. 젊은 문학인들을 싸구려로 고용해 소설과 평론을 쓰게 하고 그 것을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다. 그러나 그는 오입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해 늘 가난에 시달린다. 
한편 콜렛은 파리의 문화와 패션을 수용하면서 서서히 도시 여인으로 변모한다. 궁색에 쪼들리던 윌리는 콜렛에게 그녀가 자기에게 들려준 소녀 시절의 얘기를 소설로 쓰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쓴 글이 ‘클로딘’인데 윌리는 글이 평범하다고 원고를 내팽개친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윌리는 콜렛의 원고를 다시 보고 콜렛의 재능을 새삼 깨달으면서 콜렛과 함께 원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내용을 보다 야하게 만들어 낸 것이 ‘학창 시절의 콜렛’으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빅히트를 한다. 이어 윌리는 콜렛에게 속편을 쓰라면서 콜렛을 방에 가두는데 콜렛은 군소리 없이 글을 써 역시 히트한다. 이 역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콜렛은 자기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윌리에게 통보하는데 윌리는 놀란다기보다 오히려 콜렛을 격려한다. 그래서 만난 것이 미국서 온 젊은 바람둥이 여인 조지(엘리노어 탐린슨). 그런데 윌리도 이 여자와 놀아나면서 얄궂은 삼각관계가 이뤄진다. 그리고 콜렛은이 같은 관계를 소설로 쓴다. 역시 히트. ‘클로딘’ 시리즈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역시 히트를 한다.  
콜렛의 다음 연인은 남자처럼 차려 입는 귀족 여인 미시(드니즈 가우). 이 여인과의 사랑이 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고 콜렛은 연극무대에 자기가 직접 올라 연기생활을 즐기면서 순회공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콜렛은 윌리가 자기 작품의 판권을 마음대로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파란만장 했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콜렛은 후에 가서야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다. 워시 웨트모어랜드 감독.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