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황야의 이병헌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45)이 MGM이 만드는 웨스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신판에 7인의 한 사람인 빌리 록스로 나온다. 록스는 노역계약에 따라 미 서부에 와 종노릇을 하던 자로 날카로운 쇠꼬챙이 같이 생긴 사이칼의 명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월13일 개봉을 예정으로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신판은 앤톤 후콰가 감독하는데 7인의 리더 역은 후콰의 ‘트레이닝 데이’(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이퀄라이저’에 나온 덴젤 워싱턴이 맡는다. 흑인과 동양인과 브라질 배우(왜그너 모라)가 미 웨스턴에 나오는 파격적인 다인종 캐스트다.
신판은 ‘O.K. 목장의 결투’와 ‘건힐 발 마지막 기차’ 같은 멋있는 웨스턴을 만든 존 스터제스가 감독한 ‘황야의 7인’(1960·사진)이 원전이다. 이 영화는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토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7인의 사무라이’의 웨스턴 판이다. 그런데 역시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미후네가 주연한 ‘요짐보’와 ‘숨겨진 요새’도 ‘황야의 무법자’와 ‘스타워즈’로 만들어졌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호스트 북홀즈 및 브래드 덱스터 등이 나온 ‘황야의 7인’은 총알이 빗발치듯하는 박력 있는 액션과 과묵하고 각기 개성이 뚜렷한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와 명예를 다룬 걸작 웨스턴이다.
멕시코 깡촌의 농부들이 1년에도 몇 차례씩 마을에 나타나 닥치는 대로 곡물과 재물을 약탈해 가는 산적두목 칼베로(일라이 왈랙이 금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고약하게 호연한다)가 이끄는 도둑떼를 견디다 못해 미국의 건맨 7명을 고용, 이들과 수십 명의 산적 떼가 맞붙는다는 것이 내용이다. 앙상블 캐스트로 구성된 서부 건맨들의 쓴맛 다시는 듯한 표정과 말없이 행동하는 남성적인 연기가 일품으로 총격전이 끝나면 7명 중 3명만 살아남는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돼 서울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딜리 극장에서 봤는데 7인의 건맨들이 대형 화면을 가로지르며 말을 달리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서부터 아찔한 흥분감에 빠져 들었었다. 특히 이 때 나오는 박진하고 강건하며 또 질주하고 높이 치솟는 듯한 음악이 이 흥분감을 배가시킨다. “딴따따란 딴따딴따란 따라 따라라라”하며 리듬과 멜로디의 물결이 신나게 출렁이는 음악은 영화의 전모를 뚜렷이 묘사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생전 200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엘머 번스틴이 지었는데 그는 음악을 미 클래시컬 음악작곡가로 오스카상을 탄 ‘사랑이여 나는 통곡한다’ 등 여러 편의 영화음악도 작곡한 아론 코플랜드의 발레곡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번스틴이 음악을 작곡한 또 다른 유명한 영화들로는 그의 유일한 오스카상 수상작인 ‘서럴리 모던 밀리’와 ‘황금의 팔을 가진 사나이’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대탈주’ 및 ‘십계’ 등이 있다.
‘황야의 7인’은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빅히트했고 쿠로사와도 대단히 만족해 스터제스에게 일본 검을 선사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친한 사이로 나오는 크리스 역의 율 브린너와 빈 역의 스티브 맥퀸이 실제로는 촬영장에서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 맥퀸이 리더 노릇을 하는 브린너에게 지지 않겠다고 자기 과시를 했기 때문이다.
‘황야의 7인’ 신판에는 워싱턴과 이병헌과 모라 외에도 이산 호크, 크리스 프랫, 빈센트 도노프리오 및 루크 그라임스 등이 나오고 HBO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왕좌 게임’에 나온 제이슨 모모아가 악역을 맡는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비슷하다. 남북전쟁 후 미 서부의 한 작은 마을을 말아먹는 무자비한 광산주와 그의 졸개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젊은 미망인이 바운티 헌터인 워싱턴 등 산전수전 다 겪은 7명의 사나이들을 고용해 악당과 한판 붙는다.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이병헌이 과연 원작의 건맨 중 누구 역을 맡을지 궁금한데 어쩌면 브래드 덱스터가 맡았던 해리 럭에 상응하는 역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병헌은 비록 조연급이긴 하나 이 영화에 나옴으로써 이제 명실 공히 할리웃 스타로서의 입지를 보다 단단히 굳히게 됐다. 박중훈과 장동건도 각기 ‘찰리의 비밀’(2003)과 ‘워리어스 웨이’(2010)로 할리웃 진출을 시도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이병헌은 2009년 ‘G.I. 조’로 할리웃에 진출했는데 할리웃이 그를 캐스팅한 것은 이병헌이 영화시장의 규모가 큰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어 2013년 ‘G.I. 조’ 속편과 ‘레드 2’에 나왔고 오는 7월1일에 개봉되는 ‘터미네이터:제니시스’에서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로버트 패트릭이 맡았던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터미네이터 T-1000로 나온다. 그는 또 패러디 영화 ‘러시아워 4: 페이스오프 2’에서 랩 수퍼스타 션 ‘펍 대디’ 콤즈와 공연하며 내년에 개봉될 앤소니 홉킨스와 알 파치노가 나오는 섹시 법정스릴러 ‘비욘드 디시트’에서는 회계사로 나온다.
나는 이병헌을 몇년 전 할리웃에서 만나 적이 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영어가 미숙해 걱정”이라며 염려를 했었다. 상당히 겸손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병헌이 다시는 섹스스캔들에 휘말려들지 말기를 바라면서 그의 건투를 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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