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그린 북(Green Book)


토니(왼쪽)가 단 셜리 박사를 차에 태우고 미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순회콘서트 동행 흑백, 서로 이해하는 과정 훈훈


온 천하 만백성이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안전위주의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 코미디다. 뛰어난 연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재미있는 내용과 재즈와 클래식을 혼성한 듯한 음악과 다소 감상적인 연출이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의 마음을 훈기로 채워주는 연말 할러데이용 작품이다.
오스카상을 탄 ‘데이지 마님 모시기’를 연상시키는 얘기로 놀라운 것은 감독이 ‘덤 앤 더머’와 ‘메리에겐 뭔가 있어’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한 코미디를 만든 화렐리 형제 중의 하나인 피;터 화렐리라는 점. 그는 물론 코미디 전문이어서 영화가 코미디 분위기가 다분하긴 하나 진짜 알맹이는 진지한 드라마다. 
연기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작품인데 흠이라면 흑백문제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다룬 것. 이 영화만 같다면 미국의 흑백문제는 쉽사리 풀릴 것인데 인물들이나 상황이 모두 너무나 틀에 박힌 공식을 따라 끝이 어떻게 될지 영화가 시작되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연출 방식이 영화의 내용을 사람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기보다 조작하는 식이어서 다소 거부감이 인다. 그러나 심각한 내용을 매우 우습고 흥미진진하며 또 진지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1962년.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토니(비고 모텐슨)는 일자무식의 클럽 바운서로 아내(린다 카델리니)와 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나 마음은 곱다. 토니는 이탈리아계인데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모여 떠들어대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틀에 박힌 듯이 묘사했다. 
토니가 일하던 클럽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으면서 토니는 자가용 운전사를 구하는 재즈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흑인 단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의 집을 방문한다. 유명하고 돈 많고 박식한 셜리는 카네기홀 위층의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데 태도가 아프리카의 임금님처럼 도도하기 짝이 없다.
셜리는 8주간 미 남부 순회연주를 위해 토니를 고용하는데 셜리의 밴드 구성원인 백인들인 베이시스트와 첼리스트는 다른 차를 타고 셜리와 동행한다. 성격과 성장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로드 무비인데 둘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셜리는 온갖 인종차별을 겪게 되나 그가 곤경에 처할 때면 완력과 입심이 센 토니가 나타나 구해준다. 
둘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고 겪는 갖가지 사건과 해프닝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둘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또 깊은 정으로 맺어지게 된다. 둘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나 모두 정직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처음에는 각자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다가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존중하고 또 그것을 따르는 과정이 두 배우의 기막힌 화학작용에 의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모텐슨의 다소 어릿광대 같은 우습고 으스대는 연기도 일품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것은 알리의 위풍당당하면서도 자비로운 연기다. 오스카 조연상을 다시 탈 가능성이 많다. 알리가 밴드의 반주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이 박수갈채를 받을만하다. 제목은 흑인들이 미 남부를 여행할 때 백인들의 박해를 피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기록한 책을 말한다. PG-13 등급. Universal.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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