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22일 화요일

‘교사형’




‘극동의 고다르’라 불린 일본 감독 오시마 나기사(1932~2013)는 유난히 차별 받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 연민하고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오시마의 영화로 잘 알려진 것은 성(욕)의 본질을 집요하게 캐들어 간 ‘감각의 제국’과 데이빗 보위가 나온 전쟁포로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러나 그가 1960년대 만든 재일동포와 한국인들에 관한 몇 편의 영화와 TV 작품은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오시마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죄책감 불감증에 걸린 일본을 비판하고 아울러 만행의 피해자인 재일동포 그리고 나아가서 일한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60년대 한국을 방문, 3편의 TV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일본군으로 참전한 재일동포 부상군인들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대우를 고발한 ‘버려진 황군’과 ‘청춘의 비석’ 그리고 가난한 한국 소년들의 모습을 담은 ‘윤복이의 일기’.
오시마가 재일동포 위안부와 불우 청소년을 비롯해 전반적인 동포들의 문제를 다룬 두 극영화는 ‘일본 춘가고’와 ‘교사형’(Death by Hanging·1968). ‘교사형’(사진)은 1958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한국인 고교생 이진우의 일본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을 다룬 것으로 이진우는 유죄선고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진우의 사후 그의 편지들이 책으로 발간돼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이진우는 청춘의 컬트우상이 되었다.
사형을 전쟁행위로 간주하면서 이의 폐지와 함께 일본 관료체제의 희극성 그리고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와 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한 ‘교사형’은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로 마치 연극과 기록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흑백작품이다.
내레이션으로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71%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이어 재일동포 사형수 R(윤융도 분)이 수감된 교도소의 안팎이 크기와 규모를 비롯해 자세하게 설명되고 카메라가 사형장 내로 들어가면서 R의 사형집행 전의 마지막 절차와 교수장비를 보여준 뒤 참관인들이 보는 가운데 R의 사형이 집행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R이 의식은 잃었으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아연실색한 참관인들인 교도소장, 가톨릭 신부, 검사와 의사 및 교도소 고위 관리들이 R에 대한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에 들어간다.
R을 소생시켜 사형을 재집행할 것인가, 한 번 죽인 사람을 어떻게 다시 죽일 수가 있는가, R의 영혼은 이미 그를 떠났으니 영혼 없는 자를 어떻게 죽일 수가 있는가를 놓고 법석들을 떨어댄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R의 범행을 재연하면서 광대극을 연출한다.
이어 이들은 R을 소생시킨 뒤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목석같은 표정을 한 R에게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범행 사실을 얘기하는데 이 과정에서 참관자들이 R과 함께 배우가 돼 R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설극장 연극식으로 보여준다.
‘조센징’이라는 말이 계속해 쏟아지면서 재일동포와 한국인의 생활습관과 태도 및 유교사상까지 닥치는 대로 조롱 받고 비하되는데 이런 희극 속에 아울러 영적, 정치적, 종교적 및 의학적 논제들이 토론된다. 이율배반적 양상을 갖추었다.
해저탄광의 노역자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온 R의 아버지를 비롯해 여러 식구가 신문지로 도배한 단칸방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신파극식으로 묘사되면서 ‘조센징’의 각박한 현실이 가차 없이 드러난다.
영화는 1시간 정도 교도소 안에서 진행되다가 그 후 잠시 R의 범행현장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가 R과 참관자들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들른다. 이어 R 일행은 다시 교도소 내로 들어오면서 얘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느닷없이 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고야마 아끼꼬)가 나타나 R의 누나라며 일본의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에 맹공을 가한다. 그러나 실제 R에겐 누나가 없는데 그럼 이 여자는 누구인가. R이 살해한 여고생인가 또는 일본에 의해 핍박받는 한민족인 재일동포의 대변자인가.  여기서 오시마는 유치환의 시를 읊고 그가 한국서 찍은 판자촌의 더럽고 가난한 아이들의 스틸사진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길고 고통스런 500년 역사와 함께 36년간에 걸친 일제의 한국점령 그리고 일한관계와 남북한 통일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어 술 파티가 벌어지고 교도소장을 비롯한 참관자들은 큰 일장기를 덮고 누운 R과 그의 누나를 둘러싸고 앉아 주정을 겸한 대화를 나누면서 사형제 폐지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성 그리고 재일동포 차별 등이 얘기된다. 영화 끝 부분에 R의 누나가 R을 안고 있는 ‘피에타’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왜 R은 안 죽었을까. R은 갖은 핍박과 간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멸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가. 보통 영화의 형식을 파괴한 아방가르드식의 작품으로 지와 감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교사형’이 Criterion에 의해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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