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원더 윌’ (Wonder Wheel)


지니(가운데)의 소개로 미키(왼쪽)와 캐롤라이나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하 애인 향한 욕망·질투… 케이트 윈슬렛  불꽃 연기


재잘대는 우디 알렌의 영화치곤 마이너급에 속하지만 뒤늦게 찾은 연하의 애인에 대한 애정과 욕정과 질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공 지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의 화끈한 연기가 볼만한 멜로드라마다. 
그 밖에도 조연진의 좋은 연기와 알록달록하고 빛과 어두움을 잘 조화시킨 촬영(알렌의 단골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과 1950년대를 보여주는 프로덕션 디자인(알렌의 단골 프로덕션 디자이너 산토 로콰스토) 등이 훌륭한 비극적 종말의 어두운 코미디 드라마다.
지니가 한물 간 왕년의 영화배우로서 자기가 했던 역을 재현하며 망상이나 다름없는 꿈에 시달리다 못해 거의 광기 같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마치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의 블랜치 역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근육질에 상스러운 지니 남편 험프티도 코왈스키를 연상케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코왈스키네 집처럼 이 영화도 서민층의 드라마다. 
영화는 알렌이 선배 연극인에게 바치는 헌사라고도 하겠다. 연극 같은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그의 자의식이 큰 몫을 차지한 영화로 브루클린 출신의 알렌이 1950년대와 브루클린과 코니 아일랜드를 그리워하며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코니 아일랜드의 라이프 가드 미키(저스틴 팀벌레이크)가 관객을 향해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된다. 한 여름 인파로 복작대는 코니 아일랜드 저편으로 거대한 페리스 윌이 보인다. 페리스 윌은 영화에 나오는 미몽에 매어달리는 인물들의 돌아가는 운명을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미키는 뉴욕대학원생인 작가 지망생으로 빤질빤질하게 생긴 언변 좋은 난봉꾼. 해변에서 미키를 만난 지니가 남자에게 반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지니는 해변 대합조개 술집 웨이트리스로 과거 알코올 중독자였던 카루셀 오퍼레이터 험프티(짐 벨루시가 무지막지한 연기를 잘 한다)와 어린 아들 리치(잭 고어)와 함께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집에서 산다. 그런데 방화광인 리치는 지니와 재즈 드러머였던 전 남편 사이에서 본 아들이다. 지니의 이혼 이유는 지니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 
사랑도 장래도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심한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지니는 미키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데 미키는 이런 지니와 보드워크 아래 등지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면서 함께 보라 보라로 도망가자고 헛소리를 한다. 그러나 지니에겐 이 말이 진실로 들린다. 
그런데 지니 집에 5년 전에 갱스터에게 반해 가출한 험프티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돌아오면서 지니와 캐롤라이나가 미키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지니가 미키에게 캐롤라이나를 소개하면서 두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지니와 미키의 관계를 모르는 캐롤라이나는 지니에게 미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데 미키를 놓지 않으려고 혈안이 된 지니가 캐롤라이나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면서 영화 마지막 부분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야간대학에 들어간 캐롤라이나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 온 이유는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 캐롤라이나가 갱의 비리를 FBI에 고자질했기 때문. 그래서 갱스터들이 캐롤라이나를 찾아 코니 아일랜드에 온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희망의 건너편’(The Other Side of Hope)


발데마르(앉은 사람 중 오른쪽)가 할레드에게 수프를 대접하고 있다. 뒤는 종업원들.


난민 소재 인간성·유머 조화 미니멀리즘의 극치


시치미 뚝 뗀 바싹 마른 블랙 코미디의 장인 핀란드의 아키 카리우스마키의 인간성 가득하고 배꼽 빠지게끔 우스운 영화로 연기와 표정과 세트를 비롯해 대사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감독은 현재 유럽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으로 해부하면서 아울러 드라이 아이스처럼 건조한 유머를 섞어 정치와 인간관계 코미디를 잘 조화시킨 재미 만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헬싱키의 우중충한 공업지대 항구에 도착한 석탄화물선에서 밀항자 시리아 난민 할레드(셰르완 하지)가 내린다. 그는 곧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망명신청을 한다. 중년의 셔츠세일즈맨 발데마르 비크스트룀(사카리 쿠스마넨)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를 버리고 가출한 뒤 재고를 청산한 돈으로 거액의 불법 도박판에 가서 엄청난 돈을 딴다. 그리고 이 돈으로 망해가는 식당을 사고 거기에 딸린 세 명의 종업원도 고용한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할레드와 발데마르라는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핀란드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맹점을 짓궂게 폭로하면서 아울러 식당의 장사와 종업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식당에 관한 얘기를 킬킬대고 웃게끔 묘사하고 있다.
할레드는 망명신청이 거부되자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발데마르를 만나게 되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마음은 인자한 발데마르에 의해 식당 종업원으로 고용된다. 발데마르가 할레드를 보는 눈길이 하필이면 왜 핀란드 같이 못 사는 곳에 왔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다. 
할레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인 깡패들로부터 얻어터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피난길에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 핀란드에 데려오려고 모든 고생을 참는다. 이를 기꺼이 돕는 사람이 발데마르와 수용소의 여직원. 감독은 인간의 선한 마음을 요란 떨지 않고 아름답게 드러내 보여준다. 
기 차게 우스운 것은 전통 핀란드 식당 영업이 부진하자 종업원들이 모두 일본식 복장을 한 스시집으로 바꾸고 손님을 맞는 장면. 연어가 떨어지자 소금에 절인 통조림 청어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접대하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할레드와 발데마르와 함께 세 명의 종업원들의 시종일관 표정 없는 연기가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팻 분


“아일 비 홈 마이 달링/플리즈 웨이트 포 미” 하면서 시작되는 ‘아일 비 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팻 분의 노래다. 약간 비음에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조류가 막 왔다간 뒤의 백사장의 감촉과도 같이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분은 83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건강했다. 한창 감수성이 영글어가던 고등학생 때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한 내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깊숙이 들어서 그를 직접 만나(사진) 인터뷰를 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분을 최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만났다. 
분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여성 팬들의 열광을 회상했다. “한국을 너 댓 차례 방문해 공연했는데 여성 팬들이 무대에서 자기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다”면서 “그들의 손힘이 매우 세더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1956년에 불러 빅히트한 ‘아일 비 홈’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노래다. 분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님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가 당시 한국전 후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그들 고국의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 연 4년간 넘버 원 신청곡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젊었을 때 정통 올 아메리칸 보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분은 이런 이미지와 로맨틱한 음성 때문에 1950년대 백인 틴에이저들의 우상으로 사랑을 받았고 생애 총 42곡의 탑 40를 기록하면서 수천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분은 이런 단정한 모습과 온순하고 고운 노래들 때문에 당시 골반을 마구 비틀어대며 ‘악마의 노래’인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를 혐오하던 틴에이저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자란 분은 역시 테네시의 멤피스에서 활동한 프레슬리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분은 인터뷰에서도 프레슬리에 대해 자상히 회상하면서 자기가 그보다 탑 40히트곡이 딱 1곡 더 많다고 자랑했다.
분은 나이에 비해 강건할 뿐 아니라 컬럼비아 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사람답게 기억력도 비상했다. 무슨 노래를 몇 년도에 불렀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분은 이 같은 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비결을 “우유를 많아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하며 깨끗한 양심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자기를 “팻”이라고 부르라고 부탁하는 분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또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그래서 첫 대면인데도 구면처럼 친근감이 갔다.
분은 수많은 히트 팝 뿐 아니라 가스펠, 록,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를 비롯해 심지어 헤비 메탈 장르까지 섭렵한 가수다. 그런데 뒤 늦게 시도해 빅히트한 헤비 메탈 앨범을 출반했다가 자기가 출연하던 기독교TV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분은 랩은 음악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건 음악이아니라 리듬에 붙인 폭언”이라고.
분은 이 날 자신의 가수로서의 생애 외에도 지난 63년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셜리와 히트곡  ‘유 라이트 업 마이 라이프’를 부른 딸 데비 및 정치와 신앙 등에 관해서도 길고 상세하게 얘기, 인터뷰는 근 2시간이나 진행됐다.
여러 펀의 영화에도 나온 분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이 자기가 주제가도 부른 ‘에이프릴 러브’(1957)와 빅히트한 공상과학 모험영화 ‘저니 투 더 센터 오브 디 어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에서 공연한 셜리 존스와 키스 한 번 못 했다며 크게 웃었다. 감독 헨리 레빈이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존스의 입에 키스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분은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사절했다는 것이다.
분은 당시 22세였는데 그 때부터 그는 매우 도덕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릴린 몬로와 공연할 영화도 그 내용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 개봉 40주년 회고전 때야 비로소 무대에 함께 나온 존스의 입에 키스를 했는데 “가볍고 아름다운 키스였다”고 회상했다.
분은 자기가 가수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교사나 목사가 될 줄 알았다는 것. 둘 다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직업인데 분은 독실한기독교 신자다.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인 분이 지난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마지못해 지원한” 까닭도 트럼프가 새로운 기독교신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분은 트럼프 지지운동을 해 트럼프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분은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감답지 못한 짓이니 상대방을 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분은 이어 “트럼프가 비생산적인 트위팅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를 지지하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분의 많은 노래들 중 내가 즐겨 듣던 노래들은 ‘웬 아이 로스트 마이 베이비’ ‘무디 리버’ ‘프렌들리 퍼수에이전’(영화 ‘우정 있는 설복’ 주제가) ‘러브 레터즈 인 더 샌드’ ‘스피디 곤잘레스’ 및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가. “디스 랜드 이즈 마인”으로 시작되는 ‘엑소더스’의 주제가는 이스라엘의 제2의 국가로 여겨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 2005년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분의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 때 분은 71세로 여전히 스위트한  음성이었다. 세월은 가지만 분의 노래들은 내겐 지금도 청춘의 속삭임으로 남아 있다. 이 할러데이 시즌에 분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 축복 받는 기분이 날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 (Call Me by Your Name)

17세 난 소년 엘리오(왼쪽)는 연상의 올리버를 사랑하면서 부쩍 성장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정열적이고 애잔한 ‘금지된 사랑’


아름답고 뜨겁다. 태양열에 구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과 두 젊은이의 드러난 육체와 그 육체가 율동하면서 벌이는 사랑의 행위 그리고 그들의 준수한 미모와 첫 사랑의 희열과 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별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고 열정으로 끓는다. 
17세 난 소년이 첫 사랑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어른이 되는 성장기이자 인간의 본능과 내성 그리고 상호관계를 매우 지적이요 감성 깊게 그린 작품이다. 뜨거운 여름 한철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깊이 맺어지는 17세 난 소년과 24세 난 대학원 인턴의 동성애를 훤히 들여다 보여주는 식으로 솔직하게 그렸다. 
두 주인공 역의 잘 생기고 신체 늠름한 아미 해머와 버들가지처럼 간들거리는 육체와 거의 소녀같이 곱게 생긴 총명한 모습의 티모데 샬라메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감독은 이탈리아의 루카 과다니노(‘아이 앰 러브‘ ’어 비거 스플래쉬‘)로 그는 이 두 사람 간의 정서적 육체적 로맨스를 매우 상세하고 통찰력 있으며 또 부드럽게 화면에 담고 있다. 원작은 앙드레 아시만의 소설로 과다니노와 제임스 아이보리가 공동으로 각색했다.
이탈리아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골 롬바르디의 고저택에 사는 그레코 로만 조각 전문교수 펄만(마이클 스툴바그)의 집에 미국에서 24세 난 인턴 올리버(31세의 해머가 24세의 인턴 역을 하기엔 좀 늙었다)가 연구차 한 여름 묵기 위해 찾아온다. 펄만은 올리버에게 17세의 갈비씨 책벌레 아들 엘리오의 방을 내주고 엘리오는 자기 방 옆의 창고로 쓰이는 방으로 옮긴다. 
두 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서로를 엿보게 된다. 이런 설정부터 봐이에리즘의 선정성을 부추긴다. 처음에 엘리오는 이 잘 생긴 미국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올리버도 마찬 가지.
둘은 책과 문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네 고적과 마을 광장과 들과 해변으로 함께 다니면서 서서히 서먹함을 푸는데 두 사람이 모두 간편한 여름 옷 차림인데다가 때로 짧은 수영복만 입어 육체의 자연미가 광채를 발하면서 둘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이런 감춰진 욕망은 두 사람의 응시와 접촉과 표정 그리고 대화 등을 통해 암시된다. 
둘은 마침내 첫 키스에 이어 정열적인 정사를 나누는데 이 장면이 매우 에로틱하고 아름답다. 한편 올리버는 엘리오를 타락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로 관계에 쉼표를 찍으나 엘리오는 기갈 들린 사람처럼 올리버를 계속해 더 원한다. 그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다.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엘리오의 복숭아 장면이 나온다. 잘 익은 복숭아가 이토록 에로틱한 효과를 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엘리오는 올리버를 사랑함으로써 부쩍 성장하는데 여름이 저물면서 올리버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침묵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긴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별 장면이 애잔하니 아름답다. 
해머가 파격적인 역을 맡아 진지하면서도 민감하고 정감 있는 연기를 잘 하는데 특별히 볼만한 것은 샬라메의 연기다. 별 말 없이 얼굴 표정과 몸동작으로 첫 사랑에 들뜨고 희열하고 아파하는 연기를 깊고 다양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스툴바그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와 함께 자연과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광채 나게 찍은 태국 촬영감독 사이욤부 묵데프롬의 촬영도 눈부시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R.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스마스를 만든 사람 (A Man Who Invented Christmas)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집필하고 있다.


소설‘크리스마스 캐롤’ 집필 둘러싼
디킨스 주변 사람들 재미있게 담아


찰스 디킨스가 어떻게 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쓰게 되었는가를 허구를 마음껏 사용해 묘사한 요란하고 변덕스럽게 그린 코미디 드라마로 다소 무겁고 신선감은 없으나 그런대로 즐겁게 볼 수 있는 할러데이 시즌용 가족영화다. 
일종의 전기영화로 디킨스의 삶과 ‘크리스마스 캐롤’의 내용을 자유롭게 변용해 현실과 책의 내용을 뒤섞어 드라마로 만들었다. 출연진의 다양한 연기와 충실히 묘사한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소설의 집필 과정을 그럴싸하게 묘사, 즐길 만 하다.
디킨스가 이 소설을 쓴 것은 31세 때. 그 전에 낸 책이 세 차례나 대중의 외면을 받아 디킨스(댄 스티븐스)는 지금 재정난과 함께 슬럼프에 빠져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디킨스가 다음 소설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크리스마스 캐롤’의 내용. 그러나 그의 출판사는 크리스마스 얘기는 안 팔린다고 출판을 거부한다. 
이에 아랑곳 않고 디킨스는 소설을 6주 만에 집필해 자비로 출판한다. 그가 글의 아이디어를 찾아 방안을 헤매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모습이 재미있다. 작가의 창조적 예술적 과정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데 물론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디킨스는 책의 아이디어를 자기 가족과 자기가 만나는 주변 인물들로부터 얻는다. 인자하고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 케이트(모피드 클락)와 어린 자기 아이들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를 읽어주는 하녀 타라(안나 머피) 그리고 사람은 좋으나 무책임한 아버지 존(조나산 프라이스) 등이 가족.
그리고 그의 소설 속 인물의 아이디어를 주는 사람들로는 에브네저 스크루지의 모델이 되는 나이 먹고 인정 없는 구두쇠 사업가(크리스토퍼 플러머)와 병약한 조카. ‘험버그’를 소리치는 구두쇠는 스크루지가 돼 디킨스의 환상 속에서 디킨스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디킨스는 그 외 소설 속에 나오는 혼들과도 만난다. 물론 병약한 조카는 소설 속의 타이니 팀의 모델이다. 
이들 외에도 영화에는 디킨스의 친구이자 에이전트인 존 포스터(저스틴 에드워즈)와 디킨스 소설의 삽화가(사이몬 캘로우) 그리고 디킨스와 동시대 작가로 디킨스의 실패를 고소해 하는 윌리엄 메이크피스 대커리(마일스 줍) 등 여러 인물들이 나와 내용에 다양성을 제공한다.
BBC-TV 드라마 시리즈 ‘다운턴 애비’로 유명해진 스티븐스가 복잡하고 다소 이기적인 디킨스 역을 과장되게 코믹하면서도 경쾌하게 잘 해내고 스크루지의 모델인 자린고비 역의 베테런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역시 베테런인 조나산 프라이스 등이 호연한다. 이 밖에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PG.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무라이’(Le Samourai·1967)

캡션 추가

고독하고 냉혈하지만 쿨한 킬러, 알랑 들롱 매력 가득


신사복 정장에 타이를 맨 킬러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뒤 코트 깃을 올리고 이어 페도라를 쓴다. 킬러는 페도라의 앞을 손으로 좌우로 쓰다듬은 뒤 문을 열고 아파트를 나선다. 킬러는 이어 길에서 자동차를 훔쳐 탄 뒤 차고에 들러 자동차 번호판을 바꾸고 차고 주인으로부터 권총을 건너 받고 자기 임무를 위한 목적지로 간다. 목적지에 도착한 킬러는 손에 흰 장갑을 낀 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이 무표정한 얼굴의 쿨한 킬러가 프랑스 갱스터영화의 명장 장-피에르 멜빌(‘도박사 밥’ ‘밀고자’ ‘붉은 원’ ‘형사’)의 우아한 스타일을 지닌 ‘사무라이’의 주인공 제프 코스텔로다. 제프 역으로는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도는 비수 같은 눈동자를 지닌 알랑 들롱이 나온다. 이 영화는 들롱의 연기 생애를 확정지은 킬러영화로 1940년대의 미국 갱스터영화와 1960년대의 프랑스 팝문화 그리고 일본 사무라이영화의 외톨이 검객의 신화를 칵테일한 쿨한 작품이다. 
과묵한 들롱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압도하면서 고독하고 냉혈한 킬러의 창백한 매력을 독소를 품은 향기처럼 발산한다. 그가 입술을 꽉 다문 채 아름답고 차가운 얼굴의 미간을 찌푸리면서 노려보는 눈매가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는 시계의 앞면을 오른손 안쪽으로 보이게 차 시계를 볼 때마다 옷소매를 올리는 제스처가 독특한 멋을 발산한다. 
파리의 칙칙하게 어두운 곰팡이 색깔의 검소한 싱글 룸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는 제프를 카메라가 멀리서 찍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4월4일 토요일 오후 6시다. 방에는 새장에 갇힌 새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새는 자기 운명에 갇힌 제프의 고독과 신세를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와 ‘태양은 가득히’ 등 프랑스의 많은 명화들을 찍은 앙리 드카에의 무드 짙은 촬영이 영화의 스산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칼러인데도 시종일관 찌푸린 날씨처럼 음산하다. 
프로 킬러인 제프는 목표를 살해하기 전에 고급 창녀인 애인 제인(들롱의 부인 나탈리 들롱)을 찾아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는다. 영화는 시작해서 제프와 제인이 대사를 나누기까지 10분 간 말이 없다. 
제프의 목표는 고급클럽 마티스의 주인. 살인을 하고 나오는 제프를 클럽의 몇 명의 사람들이 목격하는데 그 중에서도 제프의 얼굴을 정면에서 가까이 본 사람이 클럽의 흑인 여 피아니스트 발레리(캐시 로비에). 발레리가 치는 재즈곡과 함께 프랑솨 드 루베가 작곡한 재즈음악이 킬러영화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제프는 자기 일의 대가를 받으러 갔다가 배신을 당해 자기를 고용한 자가 보낸 하수인이 쏜 총에 팔에 부상을 입는다. 여기서부터 제프는 복수를 하려고 자기를 고용한 자를 찾는다. 한편 형사반장(프랑솨 페리에)이 이끄는 수사팀이 수사에 나서면서 제프를 비롯한 거리의 ‘평상시 용의자’들이 대거 경찰서에 끌려온다. 
클럽에서 제프를 목격한 사람들이 서로 엇갈리는 증언을 하는 가운데 발레리도 제프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위증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제인도 제프가 살인사건이 일어난 밤 자기와 함께 있었다고 위증하면서 제프는 풀려난다. 그러나 형사반장은 제프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제프의 뒤를 집요하게 쫓는다. 
집에 돌아온 제프를 맞는 자가 자기에게 총상을 입힌 하수인. 이 자가 제프에게 200만 프랑을 주면서 자기 두목이 지시한 자의 살해를 요구한다. 제프가 이 자를 때려누인 뒤 그로부터 자기를 고용한 자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낸다. 제프가 배신의 복수를 위해 자기를 고용한 자를 찾아가는 뒤를 형사들이 추적하는데 제프가 이를 피하려고 지하철을 여러 차례 갈아타고 형사들을 따돌리는 장면이 멋과 함께 서스펜스와 스릴이 있다. 
그가 찾아간 집은 배신자의 집은 발레리가 사는 집. 제프는 배신자를 총으로 사살하고 마티스클럽으로 간다. 그리고 모자 보관소에 모자를 맡긴 뒤 티켓도 남겨놓고 이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흰 장갑을 끼고 발레리에게 다가가 그에게 총구를 겨냥한다. 그리고 요란한 총성이 들린다. 제프는 왜 모자 보관 티켓을 안 받았으며 왜 발레리에게 다가갔는가. 이 고독한 외톨이 늑대의 실존적 킬러영화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새로 복원된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원더’(Wonder)

이자벨(줄리아 로버츠)은 얼굴이 오그라든 아들 오기를 키우는데 온갖 정성을 쏟는다.

장애아 둘러싼 갈등과 용서… 훈훈한 연말 가정영화


할러데이 시즌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훈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고양시키는 드라마로 주인공이 10세 난 초등학생이어서 그 또래의 아이들이 즐겨 보겠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수용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인정 그리고 용서와 친절과 연민을 강조한 얘기다.
내용이 다소 진부하고 감상적이지만 작품의 의도가 진지하고 인간적이며 또 순수해 뉘앙스의 부족과 같은 단점들을 알면서도 그런 것들을 넘어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유머도 있다. 특히 주인공 꼬마 역의 제이콥 트렘블리(‘룸’)의 경탄을 금치 못할 연기와 그의 부모로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와 오웬 윌슨의 콤비와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이와 함께 조연진의 연기도 다소 가벼운 영화에 무게를 실어준다. 
뉴욕에서 따스한 어머니 이자벨(로버츠)과 유머가 많으나 약간 아이처럼 구는 아버지 네이트(윌슨) 그리고 착하고 예쁜 고등학생인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와 함께 사는 10세 난 오기 풀만(트렘블리)은 출생 때부터 얼굴이 흉하게 오그라져 그 후 수술을 27회나 받았으나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오기는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홈스쿨링을 받고 우주인의 헬멧을 쓰고 산다. 
오기가 열살이 되면서 이자벨은 오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이에 네이트는 동조는 하나 아들이 학교에서 또래들로부터 받을 차별에 대해 걱정이 태산 같다. 물론 오기는 학교에서 줄리안(브라이스 가이사) 등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지만 이에 굴복치 않는다. 
오기는 매우 총명하고 성숙해 교사들도 놀랄 정도인데 오기에게 특별히 자상한 사람들은 교장선생 투쉬만(맨디 패틴킨)과 담임선생 브라운(데이빗 딕스) 그리고 오기가 특별히 잘 하는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 페트나(알리 리버트) 등.
영화는 오기와 오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아끼는 친구 잭(노아 주프) 그리고 비아와 비아와 사이가 어긋난 단짝 친구 미란다(다니엘 로즈 러셀) 및 줄리안 등의 얘기 식으로 챕터가 나뉘어 서술된다. 
오기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과 함께 오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에서 물러나 있는 비아의 얘기가 큰 플롯을 이루는데 비아는 부모가 온 정성을 오기에만 쏟는 것에 가끔 좌절을 느끼나 이를 이해하는 착한 소녀다. 그리고 비아와 미란다의 관계와 함께 비아의 첫 사랑인 학교 동급생으로 연극광인 저스틴(나지 지터)과의 풋사랑이 아름답게 얘기된다. 
영화가 원체 선해 오기를 못 살게 굴던 줄리안마저 나중에 구원(?)을 받게 되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고 착한 사람들만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요즘 세상에 딱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나이보다 작은 체격의 오기가 무수히 변화하는 감정의 사이클을 다변하게 연기한다. 분장으로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인데도 제스처와 음성과 분위기로 에너지 충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스티븐 치보스키 감독(공동 각본).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