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6월 1일 월요일

할리웃‘여성영화 전성시대’열리나


‘피치 퍼픽 2’는 15일 개봉 첫 주말 6,900만달러를 벌었다.


남성위주의 할리웃이 계속해 젊은 남자 관객들을 위한 만화 속 수퍼히로들이 판을 치는 액션영화를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여성 팬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빅히트를 하면서 할리웃이 여성용 영화제작 방향으로 키를 움직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최근 ‘여성파워’의 위력을 과시한 영화가 안나 켄드릭과 레벨 윌슨 등 여러 명의 여자 배우들이 주연한 ‘피치 퍼픽 2’. 노래와 춤이 있는 대학교 아카펠라 합창단원들의 코미디인 이 영화는 15일에 개봉, 주말 3일간에 무려 6,92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냈다. 이 영화는 감독도 배우이기도 한 여류 엘리자베스 뱅스인데 뱅스는 여성 감독 데뷔작으로 할리웃 사상 최고의 주말 3일간의 수입을 올린 기록을 냈다.
‘피치 퍼픽 2’의 수입은 같은 주말 흥행 2위를 한 ‘매드 맥스: 분노의 길’이 낸 4,540만달러를 훨씬 앞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매드 맥스’의 주인공은 매드 맥스라기보다 샬리즈 테론이 맡은 여전사 퓨리오사라고 할 수 있다. 테론은 매드 맥스 역의 탐 하디 못지않게 액션을 과시하고 있어 이 영화는 남성위주의 액션영화라는 틀 속에 ‘여성파워’를 강조한 영화라고 하겠다.
올 들어 여성영화로서 성공한 것은 이들 외에도 ‘신데렐라’와 ‘그레이의 50가지의 색조’가 있는데 이들은 올 들어 현재까지 흥행수입 3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경우에 여성영화로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말리피슨트’와 10대용 최루영화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는 같은 주말에 개봉된 탐 크루즈 주연의 ‘에지 오브 투모로’의 흥행수입을 앞지르고 4,82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곧 개봉될 여배우 주연의 여성용 영화로 빅 히트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 멜리사 맥카시가 첩보원으로 나오는 액션 코미디 ‘스파이’(6월6일 개봉). 이 영화는 역시 맥카시가 주연해 빅 히트한 ‘신부 들러리들’과 ‘히트’를 감독한 폴 휘그가 연출했는데 같은 주말에 개봉될 남성영화 ‘앙투라지’의 흥행을 능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휘그 감독은 지금 남자들 대신 맥카시 등 여배우들이 나오는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를 연출 중이다.
이어 7월1일에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남성영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 맞서 개봉되는 여성용 영화 ‘매직 마이크 XXL’과 7월17일에 만화가 원전인 남성영화 ‘앤트맨’에 맞서 개봉될 여자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가 나오는 ‘트레인렉’도 빅 히트가 예상되고 있다.
스튜디오들은 사실 총 관객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파워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액션위주의 블락버스터 영화에 여자들을 과거보다 많이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현재까지 빅 히트를 하고 있는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에서 스칼렛 조핸슨이 맡은 블랙 위도 역을 보다 폭 넓게 다루고 있고 조핸슨 외에 스칼렛 위치 역으로 또 다른 여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을 기용한 것이 그같은 경우라고 타임스는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여성영화의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나 로맨틱 드라마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액션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들은 ‘피치 퍼픽 2’에 이어 올 여름에 나올 여성영화들이 빅히트가 예상되면서 2015년도 총 흥행수입이 할리웃 사상 초유의 11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기 여배우들이 나온 여성영화라고 해서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8일에 개봉된 리스 위더스푼과 소피아 베르가라가 나온 버디 코미디 ‘뜨거운 추격’은 개봉 첫 주말 1,330만달러를 번데 이어 두 번째 주말에는 관객이 59%나 감소했다. 이 영화는 여류 앤 플레처가 감독했으나 여성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할리웃은 아직도 남성위주의 세상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흥행 탑들을 기록한 영화의 주인공들 중 여배우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달랑 12%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은 2013년에 비해 3%가 줄어든 수치다. 그리고 지난해에 할리웃의 6대 스튜디오들이 배급한 영화들 중 여자 감독이 만든 것은 불과 4.6%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미 민권자유 유니언은 최근 이 같은 고용 불균형을 수사해 달라고 당국에 의뢰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푸’3부작




인도의 벵갈 깡촌에서 태어난 소년 아푸의 삶의 서클을 그린 인도의 명장 사티아짓 레이의 ‘아푸’(Apu) 3부작은 인도 영화를 세계적인 예술영화의 무대에 올려놓은 인생과 인간성에 관한 풍요한 찬미다. 인도 영화계의 마하트마 간디라 불린 레이의 이 3부작은 세계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비부티부산 배너지의 2권으로 된 베스트셀러가 원작. 영화는 1955년 제1편이 만들어진 뒤 5년간에 걸쳐 3편이 완성됐다.
마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는 자연광과 현장을 이용한 영화들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낙천성과 함께 강한 생명력을 구사하는 아푸의 삶을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될 때까지 윤회하듯이 아름답고 정직하고 또 민감하게 그렸다.
가슴 다한 연민의 정과 자비롭게 통찰하는 눈길 그리고 시적인 붓질로 인생을 관조한 심오한 영화인데 절제되고 정적인 카메라가 포착한 인간성의 적나라한 내면의 조감도라고 하겠다. 흑백화면이 광채를 발휘, 보는 사람을 아름다운 이미지 속으로 침잠케 만든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마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 같아 작품의 사실성을 더욱 북돋우는데 대화가 별로 많지 않은데도 찌들고 여윈 삶을 헤쳐 나아가는 아푸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웅변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요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역동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로 가깝고 상냥하며 비탄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으로 술렁거리는데 이런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을 인도의 세계적 시타 음악가인 라비 샨카르의 음악이 뒤에서 효과적으로 반주해 주고 있다.  
1955년에 만든 3부작의 제1편 ‘파터 판찰리’(Pather Panchali)는 ‘작은 길의 노래’(Song of the Little Road)라는 뜻으로 레이의 영화 데뷔작이다.
벵갈의 깡촌에서 평승려인 아버지와 잔소리가 많지만 굳건하고 실제적이며 다정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푸가 검고 큰 눈으로 세상의 경이를 보고(사진) 경험하면서 자라는 얘기다. 카메라가 아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시골 정경을 조용하고 곱게 화폭에 담는다.
아푸의 또 다른 가족은 아푸의 독립심 강한 어린 누나와 죽음의 변두리에서 서성대지만 장난기를 잃지 않은 깡마른 꼬부랑 할머니(이 할머니를 통해 우리는 닥쳐올 죽음을 관조할 수 있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아 아푸는 여자들 틈에서 자라는 셈이다. 인간적이요 솔직하며 아름다운 영화다.
제2편은 ‘아파라지토’(Aparajito)로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The Unvanquished). 원래 레이는 속편을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파터 판첼리’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속편을 만들었다.
아푸의 누나가 병으로 죽으면서 슬픔에 빠진 가족이 시골을 떠나 시끌벅적한 도시 베나레스로 이사 온다. 카메라가 도시의 혼란의 소리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많은 10대 소년 아푸가 콜카타에서 공부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성장과정과 비슷한 어머니를 둔 아푸가 나처럼 느껴졌다)를 표현력 풍부하게 묘사했는데 1957년 베니스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제3부는 ‘아푸 산사르’(Apu Sansar)로 ‘아푸의 세계’(The World of Apu). 이 영화는 레이가 그의 또 다른 걸작 ‘음악실’(The Music Room)로 세계 영화계의 전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었다.
20대가 된 아푸는 작가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면서 박봉에 콜카타의 달동네에 살면서도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낙천성과 생명력에 감염이 된다. 어느 날 아푸는 친구와 함께 시골에 있는 친구의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남의 부인이 될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여자와 벼락치기로 결혼을 하게 된다.
아푸와 아내는 콜카타의 쪽방에서 행복한 신혼살림을 하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출산 차 친정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사망한다. 깊은 슬픔에 빠진 아푸는 아들을 보기조차 마다하고 집을 떠나 방랑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동안 써놓은 귀중한 소설 원고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전3부작을 통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제3편의 마지막 장면. 아푸가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기 전 아내의 집에 와 어린 아들과 대면하는데 아들은 아푸에게 돌팔매질로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탓한다. 부자간의 짧지만 긴장감 감도는 갈등이 끝나고 아들을 목마 태우고 미래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 아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로써 아푸의 삶이 한 바퀴 돌아온 셈이다.
레이의 또 다른 명화들로는 ‘데비’(Devi), ‘미들맨’(The Meddleman), ‘체스하는 사람들’(The Chess Players), ‘방문객’(The Visitor) 등이 있다. 나는 ‘아푸’ 3부작을 최근 웨스트LA에 있는 뉴아트 극장에서 아침부터 오후에 걸쳐 오래간만에 다시 봤는데 가득한 사랑에 숙연해 졌었다. 당신의 영혼의 깊이를 더욱 깊이 파주는 평화로운 작품으로 영화의 근본적인 힘을 깨닫게 된다. 디지털로 복원된 ‘아푸’ 3부작이 6월4일까지 뉴아트(11272 샌타모니카·310-281-8223)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워터 디바이너’감독·주연 러셀 크로




“10여년 구상 끝 감독 데뷔… 배우보다 흥미”


부모-자식 관계는 모든 것 초월, 영적 접근능력까지 생겨
여행은 항상 마법같아… 최근 한국방문도 정말 멋진 경험


1차 대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가 종전 후 4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세 아들을 찾아 터키로 간 호주농부 조슈아의 전쟁 액션영화이자 가족 드라마인‘워터 디바이너’(The Water Diviner)로 감독에 데뷔하고 주연도 한 러셀 크로(5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제목은 나뭇가지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감정의 기폭이 심해 심술첨지로 알려진 크로는 자기가 처음 감독한 영화를 위한 인터뷰여서 그런지 일어서서 상소리를 섞은 농담을 하면서 신이 나서 질문에 대답했다. 덥수룩한 수염에 비만해 보이는 호남형의 크로는 굵은 음성으로 유머를 구사해 가며 질문에 대답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진지했다.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크로는 “나는 한국에서 정말로 훌륭하고 멋있는 경험을 했다”면서“크게 즐겼던 나라”라며 큰 미소를 지었다. 필자가 이에“다시 방문하라”고 하자 그는 윙크로 대답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터키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터키는 역사가 깊은 나라로 방문하기에 멋있는 나라다. 아름답고 볼 것이 많은 나라다. 나는 이스탄불을 비롯해 터키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터키 정부와 영화계가 우리를 진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화 끝에 가서 당신과 당신이 묵던 콘스탄티노플 호텔의 매니저로 전쟁미망인 역의 올가 쿠리렌코가 서로 미소를 주고받던데 이는 둘이 그 뒤로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것을 뜻하는지.
“그것은 당신의 추측일 뿐이다. 둘은 영화에서 손도 안 잡고 키스도 안 한다. 둘은 서로 슬픔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으로 영화 끝에 가서 둘 간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소지는 있으나 우린 그것이 어떤 소지인지를 결코 모른다. 둘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는 있지만 영화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끝난다.”

-영화에서 터키를 침공한 그리스 군을 일종의 악한들로 묘사했는데 이 영화를 반 그리스적이라고 불러도 되겠는가.
“난 이 영화가 그리스를 비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터키와 그리스 간의 충돌은 역사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오토만제국 초기로까지 올라간다. 영화는 그리스 측의 눈으로 본 얘기가 아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아들들의 유골을 찾으러 터키에 간 호주 농부의 것이다.”

-오토만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조금은 안다. 이 영화는 그 제국의 융성이 아닌 해체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국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내가 터키여행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터키공화국의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이 사용했던 방에 앉았던 일이다. 침대와 그가 피우던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가 그대로 있더라. 터키 국민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디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조슈아(가운데)가 아들의 유골을 찾으러 격전지로 들어가는 것을 영국군이 저지하고 있다.
“호주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피터 위어, 프레드 스켑시, 브루스 베레스포드, 필립 노이스 및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들의 작품을 생각했다. 이 영화는 비록 규모는 커 보이나 독립영화다. 나는 독립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싸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당신은 실제로도 영화에서처럼 아들들과의 관계가 가까운지. 
“부모란 아이를 가지자마자 세상만사를 부모의 프리즘으로 보게 된다. 자식과의 연계는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영화 처음에 조슈아는 손에 든 두 개의 철사로 지하수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정확한가.
“철사나 나뭇가지로 지하수를 찾아내는 일은 호주에서는 180년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과학적인 일이다. 호주뿐 아니라 다른 곳의 건조한 땅에서도 그 방법을 쓸 수가 있다.”

-조슈아는 영화에서 아들들의 유골을 찾을 때도 그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조슈아는 아들의 일기를 참고로 유골을 찾아낸다. 아들의 소속부대가 어디서 싸웠다는 것을 알고 그 장소를 찾아가 자신의 영적 능력을 동원해 지하수 찾는 식으로 유골을 찾았다. 부모란 자식에 대해 영적 접근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법이 아니라 사실적인 일이다.”

-당신은 두 아들(11세와 8세)을 어떻게 훌륭한 아들들로 키우고 있는가.
“난 직업 때문에 여행을 자주해 다른 부모들보다 그 문제에 있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이젠 보다 많은 시간을 호주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매우 강하고 기본적인 일의 윤리를 저버리는 것을 가르쳐주는 셈이다. 우린 늘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학교를 나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들에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노동의 윤리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왜 감독을 하려고 하나.
“돈이나 영예 때문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정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수년간 머리에 구상을 해왔다. 감독을 하겠다는 것은 14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도전해 볼 만한 각본을 찾아보지 못했다. 극영화 대신 난 그동안 세 편의 장편 기록영화와 30여편의 비디오 클립을 찍었는데 이것이 나의 감독교육인 셈이다. 이제 감독으로 나선 것은 이 영화의 각본 때문이다. 글을 읽고 그것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 때문이다. 글을 읽은 뒤 내 가슴으로부터 이 글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만이 이 각본을 생명체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여섯 살 때부터 배우 노릇을 했기 때문에 세트에서의 지식은 충분히 갖춰 그것이 감독에 도움이 됐다. 따라서 자신도 있었고 일에서 위안도 받았다.” 

-당신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전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잘 따르는가.
“다니엘(스펜서)은 훌륭한 엄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작정한 규칙은 영화를 찍을 때 아내와 내가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을 매번 다른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고 친구도 자꾸 바뀌는 바람에 아이들의 근본에 심한 변동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이젠 내가 영화를 위해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을 못 본다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다.”

-다니엘과 아직도 결혼한 상태인가.
“별거했으나 아직 이혼은 안 했다.”

-이 영화는 호주에서 이미 빅히트를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기대치 않았던 일이다. 2014년의 최고 흥행성적을 낸 호주 영화다. 특히 미국의 대작들과 겨뤄 흥행에서 이겼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호주의 오스카상인 작품과 의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5개의 호주영화비평가협회 상도 받았다. 과거 15년간 내 영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들이 상을 줬다.”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워터 디바이너는 사실 내 아버지다. 1978년인데 지하의 깨진 수도파이프 위치를 찾아낸 사람이 내 아버지다. 아버진 그 때 집에서 철사 옷걸이를 가지고 나와 파이프가 깨어진 곳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훌륭한 일들을 가르쳐 줬다. 그는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난 어렸을 때 밤에 몰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을 어디서 벌어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겁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내가 그런 문제를 알도록 하지 않았다. 축구화를 비롯해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사 줬다. 아버지의 제일 법칙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공급해 준다는 것이었다. 엄격하지 않으면서도 잘 지도를 했다. 음성을 높인 적도 없다. 내가 15세가 되기 전까진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욕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여행을 자주 하는데 훌륭한 여행자인지.
“가능하면 새 곳의 진수를 배우려고 한다. 새로운 곳의 문화적 유산을 볼 때면 마법에 걸리는 것 같다. 최근에 처음으로 한국엘 갔었는데 그것은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다. 새로운 곳의 문화를 경험하고 또 그것에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감독 데뷔에 대한 소감은 어떤지. 
“내 나이와 내 경험에서 본다면 감독은 배우보다 훨씬 더 흥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 감독 데뷔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배우들이 연습 없이 단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통례인데 난 그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난 이 영화의 배우들과 2주간의 리허설을 했다. 그래야 배우들이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지적으로 준비가 제대로 된다. 따라서 준비가 작품의 좋은 성공의 열쇄라고 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투모로랜드 (Tomorrowland)


과학자 프랭크(조지 클루니·왼쪽)와 케이시(브릿 로벗슨)는 인류를 구하려고 투모로랜드로 간다

“순순한 동심이여, 인류를 구원하라”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공상과학 모험영화로 어른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보라고 만들었는지 정체가 불분명한 아주 평범한 영화다. 디즈니 작품으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투모로랜드 선전 영화 같은데 시각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은 눈부시다. 그러나 인류의 참담한 미래 세상을 구원할 사람들은 아이들밖에 없다는 주제를 공연히 복잡하고 난삽하게 서술해 전연 영화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상영시간 129분이 3시간은 되는 것 같다.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간성의 발휘와 환경보호 그리고 우리 주위의 세상사에 대한 인간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순수한 동심에 의한 세상 구원 등 온갖 좋은 소리는 다하고 있으나 서술 능력이 유연치가 못하고 설교조여서 지루한 공염불처럼 들린다.
이 영화는 ‘아이언 자이언트’ ‘라타투이’ ‘인크레더블즈’ 같은 훌륭한 만화영화를 만든 브래드 버드가 감독했는데 선의적인 모험과 상상의 얘기를 신나는 액션을 곁들여 날렵하고 흥분되게 연출하지 못했다. 내용을 극적으로 흥미 있고 역동력 있게 몰고 가는 모험심이 결여돼 무미한 맹물 같은 영화가 됐다.    
영화는 두 해설자의 서술로 진행된다(처음부터 뭔가 잘 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심술첨지 같은 과학자 프랭크(클루니)가 자기가 어렸을(토머스 로빈슨) 때인 1964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등에 지고 비행할 수 있는 젯팩을 만들어 출품하러 갔다가 심사위원 데이빗(휴 로리)에게 퇴짜 맞았다고 회상한다. 
이 때 소년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소녀 아테나(래피 캐시디)가 프랭크에게 접근, ‘T’자가 적힌 옷깃에 꽂는 핀을 준다. 그리고 프랭크는 이 핀으로 인해 거대한 로봇들과 초현대적 건물들이 있는 상상이 자유롭게 날개를 펼 수 있는 투모로랜드에 도착한다.
여기서 얘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해설자는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의 폐쇄된 우주선 발사기지 옆에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피어스 개그논)과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과학적 두뇌가 뛰어난 케이시(브릿 로벗슨)로 바뀐다. 그리고 케이시도 ‘T’핀을 받아 투모로랜드로 간다. 그러나 케이시의 여행은 불과 2분 만에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에게 핀을 준 사람과 다시 투모로랜드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생각난다) 애를 쓰는 케이시 앞에 아테나가 나타나 미래의 위험을 예고하면서 아울러 오래 전에 세계 종말에 관한 사실을 발견, 투모로랜드에서 쫓겨난 프랭크를 찾아가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만난 프랭크와 케이시가 부녀의 관계를 이루면서 함께 인류를 세상 종말에서 구원하기 위해 위험과 모험을 겪는다. 이 과정이 스릴러 형식을 취했으나 별 스릴 없다. 진짜 주인공은 케이시로 클루니는 사실 조연급인데 연기들도 무덤덤하다. PG.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 딸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My Daughter)


르네(카트린 드뇌브·왼쪽)와 모리스(기욤 카네)가 카지노 경영을 놓고 입씨름을 하고 있다.


카지노 전쟁과 딸의 배신·실종 다룬 실화


‘미친 사랑’과 모녀간의 힘겨루기와 배신 그리고 마피아가 개입된 카지노 경영을 둘러싼 세력다툼의 소프오페라요 신파극으로 프랑스의 명장 앙드레 테시네가 감독하고 베테런 카트린 드뇌브와 연기파 기욤 카네가 나온 영화치곤 단타 정도의 영화로 끝나고 말았다.
현재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절경의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1970~1980년에 벌어진 카지노 전쟁과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젊은 여인의 실종에 관한 실화로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너무 달라 두 편의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흥미진진한 소재가 긴박감과 스릴 그리고 열정이 결여된 채 연출돼 아쉬움이 있지만 보고 즐길 만은 하다.
결혼에 실패한 독립심 강하고 도전적인 젊은 여인 아녜스(아델 아넬)가 아프리카에서 위풍당당한 암사자 같은 어머니 르네(드뇌브)가 카지노를 경영하는 프렌치 리비에라로 돌아온다. 두 사람 외의 주인공은 변호사로 르네의 재정고문인 야심만만한 모리스(카네).
그런데 아녜스가 자기보다 10세가 위인 모리스에게 깊이 빠진다. 그러나 모리스는 한 여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남자. 여기에 르네의 카지노를 노리는 마피아가 마수를 뻗치면서 모리스에게 협조하라고 종용한다. 
르네의 밑에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리스는 마피아와 결탁하기로 결심하고 여기에 자기 없으면 못 산다는 아녜스를 끌어들인다. 아녜스는 독립하겠다면서 사망한 아버지가 남겨준 카지노 경영 지분을 내놓으라고 르네에게 대어든다. 결국 딸의 배신으로 인해 르네는 카지노에서 축출 당한다. 
그리고 모리스에게 집착하는 아녜스가 실종된다. 여기서 영화는 무슨 기록영화 만들 듯이 현재의 프랑스 법정으로 넘어와 아녜스 실종을 살인사건으로 취급하는 검찰에 의해 살인혐의자로 기소된 모리스에 대한 재판과정이 묘사된다(실제 모리스를 찍은 뉴스필름이 사용됐다). 모리스는 무죄에 이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아녜스의 사체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장면 장면을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아름답고 우아하고 선정적이지만 전체적으로 플롯이 일사분란하게 이어지지 못하고 실타래 풀리듯 느슨해 극적 흥분감이나 자극성을 느끼기가 힘들다. 맥이 빠지는 연출이다. 연기는 그저 무난한 정도다. 성인용. 로열극장(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잊혀진 전쟁




25일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다.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는 할리웃의 여름 시즌이 시작되는 주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6.25동란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 됐고 LA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다.  
전쟁은 인간애와 희생 그리고 갈등과 액션 등 극적 요소가 많아 할리웃의 좋은 소재가 되어 왔다. 오스카 작품상을 탄 ‘윙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시즈 미니버’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패튼’ ‘디어 헌터’ ‘플래툰’ 및 ‘허트 라커’ 등은 다 전쟁영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할리웃이 2차 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롯해 이락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역대 여러 전쟁에 관한 훌륭한 영화를 만든 것에 비하면 3만3,000여명에 이르는 전사자와 9만2,0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를 낸 한국전에 관한 뛰어난 영화는 극히 미미하다.
한국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로버트 알트만이 감독하고 앨란 앨다가 주연한 ‘매쉬’(M.A.S.H.)로 이 영화는 한국전에 파견된 미군 이동 외과병원에 관한 블랙 코미디다. 그러나 ‘매쉬’는 영화보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인기 TV 시리즈로 더 유명하다. 그런데 LA에서 찍은 시리즈는 한국과 한국인을 엿장수 마음대로 식으로 묘사해 미주 한인들의 집단항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할리웃이 한국전에 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이 전쟁이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나 이미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2차 대전 영화에 물린 관객들이 더 이상 전쟁영화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한국전 참전군인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참전용사들로 이들 세대는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제한전쟁인 한국전보다는 선이 악을 이긴 세계적인 2차 대전을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전은 또 2차 대전의 위대한 야망과 TV로 중계된 베트남전의 생생한 현장감이 모두 결여돼 할리웃의 홀대를 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을 다룬 영화들 중에 볼만한 것들도 더러 있다. 먼저 둘 다 터프가이 감독 새뮤얼 풀러가 만든 ‘철모’(The Steel Helmet)와 ‘착검’(Fixed Bayonets)은 모두 강력하고 긴박감 있고 또 치열하며 인간성 있는 영화들로 ‘착검’에는 제임스 딘이 단역으로 나온다.
그레고리 펙이 소대장으로 나온 ‘포크 찹 힐’(Pork Chop Hill)도 준수한 한국전 영화다. 휴전 직전 서로들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무모한 고지전을 벌이는 얘기로 실화다. 걸작 반전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만든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했다.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가 나온 ‘원한의 도곡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 원작으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뒤 탈출하려다가 인민군에 의해 사살된 미 공군 파일럿의 얘기다. 그런데 홀든은 제니퍼 존스와 공연한 애정영화 ‘모정’(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에서는 홍콩 주재 미 기자로 한국전을 취재하다가 순직, 한국전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은 셈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트기 파일럿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공연한 ‘헌터즈’(The Hunters)가 있다. 그리고 역시 미치너의 소설이 원전인 ‘사요나라’(Sayonara)에서는 말론 브랜도가 한국전 참전 파일럿으로 나와 전쟁은 안 하고 일본 무대배우와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
록 허드슨이 주연한 ‘전송가’(Battle Hymn·사진)는 실화여서 한국인들에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지난 3월 97세로 사망한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린 딘 헤스 미 공군대령의 얘기로 여기서 말론 브랜도의 전 부인인 인도계 안나 카쉬피가 한복을 입은 한국 여인 양은순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 나온다.
한국전에 참전, 중공군의 포로가 돼 세뇌를 당한 뒤 귀국한 미군의 정치인 암살시도를 그린 ‘만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하는 좋은 정치 스릴러다.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에 관한 영화로는 그레고리 펙이 나온 ‘맥아더’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오 인천!’이 있는데 ‘맥아더’가 훨씬 낫다.
이밖에도 볼만한 것들로는 로버트 라이언이 나온 ‘전쟁의 사나이들’(Men in War)과 장진호 후퇴를 그린 ‘지옥 철수’(Retreat Hell) 그리고 실제로 한국전에 영국군 소총수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지옥의 한국’(Hell in Korea)과 앨란 래드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모든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 및 로버트 레드포드가 육군 졸병으로 나온 ‘전쟁 사냥꾼’(War Hunt) 등이 있다. TCM 채널에서는 23~25일 32편의 전쟁영화를 마라톤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웰컴 투 뉴욕’ 재클린 비셋




“섹스장면 논란됐지만 깊이 있고 복잡한 영화”


페라라 감독·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일하고 싶어 출연
요즘 여배우들 너무 상품화…삶의 고통도 모르고 연기


최근 개봉된 아벨 페라라 감독의‘웰컴 투 뉴욕’에서 2011년 뉴욕의 호텔 하녀를 성추행한 뒤 국제통화기금 총재직을 사임한 프랑스인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캉(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아내로 나온 재클린 비셋(70)과의 인터뷰가 4월30일 웨스트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폴 뉴만과 스티브 맥퀸(‘불릿’)과 같은 수퍼스타들과 공연하며 할리웃의 지적이면서도 섹시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비셋은 얼굴과 손과 목에 주름이 지긴 했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특히 비수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는데 우아한 귀부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셋은 통일교의 돈으로 만든 맥아더(로렌스 올리비에)의 인천상륙작전을 그린‘인천’(1981)에 출연 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방문했던 한국이 아름다웠다”면서“한국을 좋아한다”며 반가워했다.   

-영화에 나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스트라우스-캉의 사건이 났을 때 그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영화에 나온 것은 페라라감독과 일하고 싶어서였다. 그와 영화에 대해 얘기한 뒤 TV를 통해 스트라우스-캉의 아내 안이 매우 지적이요 광채가 나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제라르와는 구면이어서 호흡 맞추기도 좋겠다고 느꼈다. 제라르는 야성적이나 시적이요 부드러운 점도 가진 사람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자기가 믿고 모든 것을 걸었던 남편이 그른 사람이지만 안은 진실로 남편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다. 안은 매우 조직적이요, 매사를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는 사람으로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뒀다. 난 그녀에 관해 많이 읽었다. 그리고 그녀가 늘 미소 짓고 따스하며 빛나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그 역을 진실로 맡고 싶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로 스트라우스-캉을 옹호하는 편이어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출품됐지만 영화 처음의 섹스파티 장면을 자르라는 요구를 페라라가 거절해 선정이 거부됐다. 그러나 그 장면은 에로틱한 것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스트라우스-캉의 성격과 인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영화는 섹스영화가 아니라 깊이가 있고 복잡한 영화다. 따라서 난 영화에 나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당초 내 역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맡기로 했다가 그녀가 물러나는 바람에 내게 주어졌다.”

-당신의 남편은 섹스 중독자인 괴물인데도 당신은 그의 곁을 굳건히 지키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안은 남편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그가 비록 섹스 중독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은 사랑이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스티브 맥퀸을 비롯해 멋쟁이 스타들과 영화에 나오던 때가 그리운가.
“아니다. 스티브는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고 영화들도 좋았지만 미국 스튜디오의 대작에서 내 역이란 별로 연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영화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난 지금하고 있는 독립영화에서의 역이 더 좋다. 깊고 복잡한 성격의 여자 역이 있는 미국영화가 있다면 기꺼이 나오겠지만 그런 역을 찾기가 어렵다.”

-안을 만났는가.
안이 남편 스트라우스-캉과 법정을 나서고 있다.
“그녀가 별로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은 줄 안다. 안은 영화를 보고 혹평을 했다고 들었다. 난 안을 그녀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연기했다.”

-당신의 인생관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난 삶을 사랑한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매우 낙담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믿음을 잃었다. 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데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그것들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말까하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난 세상사에 관심을 버릴 수가 없고 그 같은 관심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난 인생과 우정 등 모든 것에서 진짜와 꾸미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끼며 진실을 사랑한다.”

-일 안할 때는 어떻게 소일하는가.
“난 휴가도 거의 안 간다. 가끔 유럽에 가서 친구들과 우정을 새롭게 하는 것이 전부다. 내 친구들은 다 내가 20대 때 만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늘 집을 가꾸느라 분주하다. 같은 집에서 지난 40년간 살고 있다. 그 집은 나의 뿌리나 마찬가지다.”

-당신은 여행할 때 비행기 안에서 무엇을 읽으며 호텔은 어떤 곳에 드는가.
“가벼운 책과 내가 읽고 싶은 LA타임스 기사들의 스크랩을 읽는다. 호텔은 밝고 깨끗하고 실용적이면 된다.”

-어느 나라에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영국이다.” (비셋은 영국의 서리에서 출생했다.)

-당신은 앤젤리나 졸리의 대모인데 졸리의 어머니와 친했는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내게 대모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해 다소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매우 진지한 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난 앤젤리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도 앤젤리나가 원체 바빠서 그럴 틈이 없다. 더구나 난 수줍음이 많아 누가 내게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잘 접근을 못한다.”

-폴 뉴만과 스티브 맥퀸에 대해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있는가.
“그들을 썩 잘 알지는 못했다. 폴은 참으로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끔 기찬 농담으로 사람을 웃겼다. 농담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웃곤 했다. 아주 즐거운 소년과도 같은 사람으로 매력적이었다. 반면 맥퀸은 무드파로 농담하는 것을 못 봤다.”

-당신은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니나 내 어머니는 프랑스인의 피를 지녔다. 내가 프랑스어를 하게 된 것은 나이 28세 때 프랑솨 트뤼포의 ‘데이 포 나잇’에 나오면서다. 16세 때 프랑스어 학교에 2년간 다니긴 했지만 학교의 남학생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용돈을 벌기 위해 중국 식당에서 일하는 바람에 공부는 하지도 못했다.”

-프랑스 영화는 좋아하는가.
“중독자다. 프랑스어 학교에 다닐 때 프랑스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기를 결심했다. 그 때 잔느 모로를 발견했고 베리만과 파졸리니와 펠리니 그리고 비스콘티 등도 알게 됐다. 그 때 베리만을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그가 여자를 카메라로 포착한 모습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그리고 트뤼포와 로머도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이들의 영화를 못 본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

-요즘 젊은 여배우들을 보면서 과거와 어떤 변화를 느끼는가.
“모두들 갈비씨라는데 경악한다. 그리고 요즘 배우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역을 찾아 연기를 한다기보다 스튜디오가 마련해 주는 대로 역을 맡으면서 블락버스터 영화에 나와 자기를 과시하는데 내가 젊었을 땐 안 그랬다. 그 때 우린 그렇게 상품화하진 않았다. 물론 스튜디오 시스템 때는 배우들이 상품취급을 받았지만 적어도 내기 일할 때는 안 그랬다. 요즘 여배우들은 너무 상품화했다. 연기를 하려면 보다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요즘 여배우들은 삶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

-영화사 간부들을 잘 아는가.
“전연 모른다. 난 매우 사적인 사람이어서 가까운 친구 외에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고 산다. 어떤 때 프리미어에 가면 거기 온 사람들이 도대체 다 뭘 하는 사람들인가 하고 놀란다.”

-할리웃에선 정직함이 해가 되는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언제나 솔직해 왔다. 난 가짜가 아니다. 난 내가 느끼는 것을 솔직히 얘기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도 더 신장된다고 본다. 나는 직선적인 사람이 좋다.”

-당신은 ‘그릭 타이쿤’에서 오나시스(앤소니 퀸)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로 나왔는데 재키를 만난 적이 있는가.
“뉴욕의 ‘러시안 티룸’에서 캔디스 버겐과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 때 재키가 들어왔는데 우리 곁은 지나면서 ‘헬로’하고 냉정하게 한 마디 하고 지나갔다. 난 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