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하우스 오브 카드’




내가 막말하는 선동가 도널드 트럼프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정치가는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다. 정치의 필연적 내성 중 하나가 거짓말이다. 그 좋은 예가 워터게이트 사건 때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이 쌓이고 쌓이는 거짓말 때문에 코가 피노키오처럼 석자나 빠졌는데도 “나는 악한이 아니다”라고 오리발을 내민 것이다.
힐러리는 트럼프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마구 내뱉자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재 네트플릭스가 방영하는 정치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사상누각)에 나오는 “정치가란 선택적 진실만 말한다”는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이 ‘선택적 진실’은 결국 립 서비스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정치가들의 이런 립 서비스에 신물이 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미 서민층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트럼프가 부동자세로 서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 그 선동적 내용과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 그리고 오른 손 제스처를 비롯해 히틀러를 닮은 데가 있다. 둘이 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내세운 구호도 닮았다. 그러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말했듯이 트럼프는 가짜요 사기꾼으로 내가 보기엔 독일을 패망시킨 히틀러처럼 아주 위험한 파시스트다.          
대중이란 늘 우매하게 마련이지만 트럼프의 높은 인기는 가히 불가사의할 뿐이다. 초보수파인 내 미국인 친구 마이크조차 “아무리 미국의 기둥인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빠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트럼프의 구토 같은 연설을 들으면서 재미 만점의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들인 표가 우선인 정치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드라마는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부통령이 된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사진)가 갖은 권모술수를 동원해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앉기까지의 과정을 스릴러 분위기를 섞어 긴장감 가득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프랭크의 권력에 대한 야망의 실현에 역시 권력의 맛을 좋아하는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로빈 라이트)가 동참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와 ‘오텔로’ 그리고 ‘맥베스’를 뒤 섞어 놓은 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야, 정치판은 정말로 협잡꾼이요 야바위꾼들의 놀음판이로구나’ 하고 혀를 찼다. 프랭크는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됐다”고 믿는 자로 술수와 간계와 조작과 거래에 능한 기회주의자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식언을 밥 먹듯이 하면서 온갖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스스로도 “나는 거짓에 거짓을 수 없이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잔인무도한 실용주의자인데 프랭크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은 보다 인간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권력의 길은 위선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랭크와 클레어는 소위 ‘무시 못 할 정치적 현실’ 탓에 거짓말을 하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이에 대해 극중 한 인물이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을 증오하는 까닭이 바로 그 ‘무시 못 할 정치적 현실’을 내세우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힐난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트럼프가 이 드라마를 보고 정치가들의 술수를 배운 것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드라마야말로 모든 정치가들이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야기다.
트럼프는 또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정치드라마 ‘모두가 왕의 사람들’(All the King’s Men·1949)의 주인공 윌리 스타크(브로데릭 크로포드가 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로버트 펜 워렌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로센이 감독한 흑백명작이다.
스타크 역시 선동가로 작은 카운티의 공직자로 시작해 대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의 공약을 열변하면서 주지사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의 순수를 잃고 자기가 대항해 싸우던 기성 정치인들처럼 부패하게 되고 결국 암살당한다.
이 영화는 지난 1928~193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지내고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가 1935년 암살당한 휴이 P. 롱의 삶을 변용한 것이다. ‘킹피시’(The Kingfish)라는 별명을 지녔던 롱 역시 생전에 선동가요 중우정치가라는 말을 들었었다. ‘올 더 킹스 멘’은 지난 2006년 션 펜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말했듯이 트럼프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한 스케치의 인물거리는 되나 대통령감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백악관이라는 궁전의 주인이 되겠다고 열을 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궁전의 주인보다는 궁전의 어릿광대로서 썩 어울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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