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엘리아 카잔


수년전 뉴욕에서 마틴 스코르세이지 감독을 인터뷰할 때 내가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이 감독이 되겠다고 결정하게 만든 영화는 무엇인가.” 이에 그는 서슴없이 “엘리아 카잔의 ‘워터프론트’”라고 대답했다.
내가 최근에 읽은 리처드 쉬클이 쓴 통찰력 있는 카잔의 전기 ’엘리아 카잔‘(Elia Kazan)에서도 스코르세이지는 “나는 12세 때 ’워터프론트‘를 보고 내 피의 한 부분처럼 느꼈었다”면서 “이 영화는 사실주의의 표본으로 인간의 자연적 행위인 표면 뒤의 진실을 드러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찬양했다. 스코르세이지는 후에 카잔이 자신의 후기작품인 ’어레인지먼트‘를 찍을 때 무보수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 ‘표면 뒤의 진실’은 카잔(사진)이 평생 짊어지고 다닌 부담이었다. 1909년 오토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카잔은 2003년 94세로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늘 ‘아나톨리안 미소’을 지으며 살았다. ‘아나톨리안(현재의 터키) 미소’란 속내와 다른 미소를 일컫는데 이는 평생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긴 이민자로서의 카잔의 삶의 한 모습이었다. 이민자인 나도 그 의미를 잘 알 것 같다.   
영화와 연극감독이자 연기선생이며 각본가요 제작자이며 작가인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부터 연출활동을 시작했다. 그 대표적 작품이 테네시 윌리엄스가 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이 두 작품은 종전의 무대의 역할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것들로 평가받고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후에 카잔이 말론 브랜도와 비비안 리를 써 영화로 만들어 리가 오스카주연상을 탔다.
활기왕성하고 대담하고 창조적이면서도 사적이요 자기회의적이며 복잡한 성격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집념의 소유자였던 카잔은 배우들로부터 생생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배우들의 감독’이라 불리면서 사회의식이 강한 사실주의적 작품들을 여럿 만들었다.
그 대표적 영화가 뉴욕부두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횡포를 폭로한 ‘워터프론트’다. 이 밖에도 미국 내 흑백문제를 그린 ‘핑키’와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신사협정’, 미디어의 대중우민화를 다룬 ‘군중 속의 얼굴’ 및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에 관한 ‘거친 강’ 등이 있다.
카잔은 명배우들을 배출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자로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및 줄리 해리스 등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을 키운 탁월한 스승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숨은 잠재력을 찾아 끌어낼 줄 아는 신통력을 지닌 선생이었다.
그는 특히 1950년대 여러 편의 명작들을 만들었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와 함께 역시 브랜도 주연의 ’혁명아 자파타!‘와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 그리고 ’베이비 달‘ 및 ’군중 속의 얼굴‘ 등이 이 때 작품들. 뛰어난 비전과 왕성한 추진력을 지녔던 카잔은 19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감독이었다.
그의 또 다른 영화들로는 한국에서 개봉됐을 때 10대 여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받은 워렌 베이티와 나탈리 우드가 공연한 ‘초원의 빛’과 자기 가족의 자화상인 ‘아메리카 아메리카’가 있다. 마지막 영화는 F. 스캇 핏제럴드의 미완성 소설로 MGM의 요절한 명제작자 어빙 달버그를 모델로 쓴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라스트 타이쿤’(1976).
카잔은 생전 명성과 오명을 함께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두 번이나 탔고 1983년에는 미 정부가 주는 케네디센터 생애업적상을 그리고 1999년에는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그의 이런 영광은 그의 사후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배신자’라는 오명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한 때 공산당원이었다가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카잔은 미국 내 공산당 때려잡기 광풍이 불던 1952년 연방하원의 ‘반미활동 조사위’의 청문회에 출두, 공산당과 관계한 동료 영화·연극인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래서 카잔이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탈 때 많은 참석자들은 기립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의 수상에 반감을 표했었다.
그러나 카잔의 ‘고자질’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 중 한 사람이 책을 쓴 쉬클이다.  이들은 카잔이 청문회에서 밝힌 이름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이름들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며 아울러 국가에 해가되는 단체 소속원들을 고발한 것이 왜 나쁘냐는 주장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카잔이 ‘워터프론트’의 주인공으로 부두노동자들을 착취하다 뒤 늦게 각성하는 깡패 테리 말로이(브랜도)를 통해 자기 입장을 대변한 점이다. 테리는 동료깡패들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면서 정의 수호자가 되는데 카잔은 이런 동료에 대한 배신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고발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엘리아 카잔’의 저자 고 리처드 쉬클은 내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의 회원이었다. 타임지 영화비평가로 오래 활동한 그는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많은 저서와 함께 찰리 채플린, 우디 알렌 및 엘리아 카잔 등 여러 영화인들에 관한 30여 편의 기록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쉬클은 책에서 카잔의 60년에 이르는 감독으로서의 삶과 작품들을 지적이요 폭넓게 조명하면서 아울러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카잔을 추모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빛의 도시’ 파리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들을 보자. 고다르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에서 프란츠와 아르튀르와 오딜이 세계 신기록을 낸다며 뛰어다니면서 9분43초 만에 그림과 조각등 전시품들을 다 본 루브르미술관, 튀어나온 송곳니처럼 파리의 하늘을 찌르고 선 에펠탑, 강변에 앉은 연인들의 키스가 물결치는 센 강.
고다르의 ‘브레스리스’에서 단발의 진 시버그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하며 신문을 팔던 샹젤리제와 반전 작가 에릭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인 개선문 그리고 얼마 전에 불이 난 노트르담성당.     
파리를 두 차례 찾았던 내가 애착을 느끼는 곳은 개선문 앞 샹젤리제에 있는 120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 푸켓(Fouquet’s)이다. 내가 이 식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 ‘개선문’(Arch of Triumph)을 통해서다. 소설은 2차대전 직전 독일서 파리로 도망 온 불체자 의사 라빅과 역시 불체자로 배우 출신인 혼혈녀 조앙의 우수와 절망과 불안에 가득 찬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라빅과 조앙이 자주 들렀던 곳이 푸켓이다. 둘은 여기서 시큼한 맛이 나는 사과브랜디 칼바도스를 즐겨 마셨는데 칼바도스는 둘의 육체적 사랑을 촉진시키는 최음제 구실을 한다. 소설은 샤를르 봐이에와 잉그릿 버그만 주연의 동명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그 이후 파리하면 이 책과 영화에 나온 푸켓이 먼저 떠올라 2011년 로만 폴란스키를 인터뷰하러 파리에 들렀을 때 샹젤리제를 걸어 마침내 그 곳엘 들러 노변 테이블에 앉았다. 가르송에게 칼바도스를 시켜 프랑스 사람들이 즐기는 에스카르고(달팽이)를 안주 삼아 마시며 이방인의 소슬함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들렀던 기차역 가르 뒤 노르(북 역)도 잊지 못할 곳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분주한 가르 뒤 노르는 메이-디셈버 로맨스영화로 게리 쿠퍼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하오의 연정’의 라스트신을 찍은 곳이다.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파리의 또 다른 곳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센 강 위의 퐁 뇌프다. 폴란스키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이 다리를 무대로 한 영화 ‘다리 위의 연인들’을 취재하러 간 것이 파리 초행이었다. 영화는 한 쪽 눈이 먼 화가 미셸(쥘리엣 비노쉬)과 퐁 뇌프를 집으로 삼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인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와의 집념적인 사랑을 그린 것이다.           
센 강을 따라 걸어 황혼녘에 퐁 뇌프에 이르러 다리 위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저만치에 노트르담이 보인다. 내가 노트르담을 본 것은 이렇게 멀리에서였다. 노트르담에 가지 않고 다리 옆에 있는 카페 퐁 뇌프에 들러 위스키를 시켜 마셨다.
‘우리들의 성모’라는 뜻의 노트르담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와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여러 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잘 만든 것이 찰스 로턴이 흉측하게 생긴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로 그리고 모린 오하라가 화끈하게 요염한 집시댄서인 에스메랄다로 나온 1939년 작 흑백작품이다. 성당 지붕의 괴물상 모습을 한 로턴이 뛰어난 연기를 하는데 소설과 달리 해피 엔딩이다.
영화는 1956년 앤소니 퀸과 이탈리아의 글래머 걸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는데 전편만은 못하나 볼만은 하다. 이 영화는 소설처럼 비극으로 끝난다. ‘노트르담의 꼽추’는 이 밖에도 론 체이니 주연의 무성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노트르담은 이 밖에도 많은 영화에서 그 위용을 뽐냈다. 그런데 노트르담 화재 후 책 판매부수가 늘었다고 한다.
파리는 요즘 불타고 있다. 프랑스의 시민 시위대인 ‘노란 조끼’들이 시내에 나와 마크롱 대통령의 정부를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방화와 파괴를 하고 있는데 지난 3월에는 ‘노란 조끼‘들이 푸켓에 불을 지르고 내부를 때려 부셔, 그 처참한 모습(사진) 을 보자니 내 가슴에 서운함이 스며든다.
노트르담 화재 후 정부가 성당 복구를 위해 돈과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대기업들이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자 20일 ‘노란 조끼’들이 이에 반감을 표시하면서 다시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은 “노트르담이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인간이 돌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시위의 이유를 밝혔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라는 영화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로 2차대전 종말기 독일군이 파리에서 철수하기 전 노트르담과 에펠탑등 파리의 기념비적인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과 이의 실행을 놓고 갈등하는 점령군 총사령관의 유사 기록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카사블랑카’에서 이별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구요”라고 애소하는 일사를 릭은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가 있을 거요”라며 달랬다. 일사와 릭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낭만의 도시 파리가 불타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25일 목요일

‘손수건을 꺼내라’ (Get Out Your Handkerchiefs


라울(왼쪽)과 스테판은 라울의 아내 솔랑지를 공유하고 사랑한다.

두 남자 한 여자 공유… 기이하고 발칙 프랑스영화


기이할 정도로 색다르고 독창적이며 귀엽고 경쾌한 프랑스 섹스 코미디로 프랑스영화답게 대사가 많지만 말들이 톡톡 튀도록 재치 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섹스를 다뤘는데 이런 영화는 프랑스가 아니면 만들지 못한다. 
프랑스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메나지 아 트롸’(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관계) 얘기인데 이 삼각관계는 후에 또 하나의 남자가 등장하면서 사각관계로 변이한다. 그런데 마지막 남자의 나이가 불과 13세. 이 소년과 젊은 아내의 섹스를 보자니 루이 말르의 ‘가슴앓이’(Murmur of the Heart·1971)이 생각난다. 프랑스의 명장 베르트랑 블리에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1978년 작으로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다.
대뜸 일요일 파리의 식당에서 젊은 부부 라울(제라르 드파르디외)과 솔랑지(카롤 로르)가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울은 솔랑지가 잘 먹지도 않고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며 가끔 졸도까지 하는 것이 자기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 탓이라며 이 ‘병’을 고쳐주겠다며 다른 남자와 사귀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식당에 앉아 있던 스테판(파트릭 드웨르)을 억지로 끌고 오다시피 해 그에게 솔랑지를 소개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젖가슴을 드러낸 채 뜨개질을 즐기는 솔랑지는 라울과의 섹스에 만족을 못해 탈이 났는데 남편과 스테판과 돌아가면서 섹스를 하는데도(둘은 때로 어제 솔랑지가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잊어버려 혼란에 빠진다) ‘병’은 안 낫는다. 임신을 하면 ‘병’이 나을 것 같아 노력하나 그것도 안 된다. 
스테판은 모차르트 숭배자이자 독서광인 중학교선생. 영화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엘비라 마디간’ 협주곡)과 클라리넷협주곡이 효과적으로 쓰이는데 이와 함께 프랑스 영화음악의 거장 조르지 들르뤼가 작곡한 음악이 아름답게 흐른다. 
스테판의 제자 중 한 명이 13세난 IQ 160짜리 크리스티앙(리통 리브망). 스테판이 돌보는 여름캠프에서 왈패들에게 시달리는 크리스티앙을 캠프에 라울과 함께 참석한 솔랑지가 보호를 한다. 어느 날 밤 솔랑지가 조숙한 크리스티앙을 자기 침대에 함께 들게 하면서 크리스티앙은 잠든 솔랑지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구하는데 이에 잠이 깬 솔랑지는 처음에 크리스티앙을 나무라다가 둘이 섹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솔랑지는 둘 다 아이 같은 라울과 스테판보다 비록 나이는 어리나 이 둘보다 어른다운 크리스티앙에게 의지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부모가 아들을 기숙사학교에 보내면서 솔랑지가 크리스티앙이 보고파 안달이 나자 솔랑지와 라울과 스테판이 학교를 찾아가 크리스티앙을 납치한다. 이어 솔랑지는 크리스티앙과 사랑의 줄행랑을 놓는다. 그리고 솔랑지는 마침내 크리스티앙의 아기를 임신한다. 마지막 장면은 납치 죄로 6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온 라울과 스테판이 밤에 솔랑지가 사는 집 쇠문을 붙잡고 멀리 창속으로 보이는 배가 부른 솔랑지를 그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떠나는 우습고도 가슴 싸하니 저려오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로맨틱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참신한 영화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연기들이 훌륭하다.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 Blvd. 310-478-3836)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독맨’ (Do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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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가 덩지가 큰 개의 발톱을 다듬어주고 있다.

평범한 시민 폭력적으로 변하는 과정 사실적 묘사


나폴리 인근 후진 동네의 갱의 범죄와 폭력을 사실적으로 다룬 ‘고모라’를 연출한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의 또 다른 범죄영화로 긴장감 팽팽하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지녔는데 이런 범죄적 분위기를 가끔가다 블랙 코미디로 얼려주고 있다.
주인공은 착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이런 사람이라도 주변의 악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에게 대어들듯이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과 폭력 그리고 범죄와 무지 및 탐욕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실존적으로 그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품이다.
큰 눈에 다소 우스꽝스런 얼굴을 한 마르첼로(마르첼로 폰테)는 나폴리 인근 후진 해변마을에서 개미용사로 일하는 소시민이다. 아내와는 헤어졌고 성질 사나운 어머니(눈치아 스키아노)가 있다. 
마르첼로는 사랑하는 어린 딸 소피아(알리다 발다리 칼라브리아)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축구하면서 소일한다. 언젠가 돈을 벌어 딸과 함께 외국의 휴양지를 찾아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것이 꿈. 그래서 돈을 모아놓으려고 부업으로 서푼짜리 코케인 밀매를 한다. 그가 사는 동네는 마치 유령촌과도 같다. 아무렇게나 지은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칙칙한 색깔로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만드는데 폐가나 같은 건물들이 보잘 것 없는 동네사람들의 정신적 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다.
동네사람들이 사갈시 하고 있는 사람이 거구의 폭력적인 시모네(에도아르도 페스체). 시모네는 미친 개 같은 사람으로 험악하고 사납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이다. 그의 유일한 친구가 마르첼로로 마르첼로는 자기에게도 가끔가다 폭력적으로 나오는 시모네를 참는데 그가 왜 시모네를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갱의 습격으로부터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범죄 친구를 동반한 시모네가 마르첼로를 윽박질러 아파트 털이에 운전사로 동원한다. 범죄 후 동네로 돌아오면서 시모네가 마르첼로에게 턴 집의 치와와가 짖어대 개를 냉장고 안에 처넣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시모네를 내려놓은 뒤 아파트로 돌아가 냉장고 안의 개를 구해낸다. 마르첼로는 어찌 보면 사람보디 개를 더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르첼로에게 시모네가 찾아와 시모네 옆 가게의 금은방을 털자고 제의한다. 이에 마르첼로는 금은방의 주인 프랑코(아다모 디오니시)가 자기 친구라며 이를 거절한다. 그러나 시모네는 마르첼로가 저녁에 축구를 하러 나간 사이 마르첼로의 가게 안에 들어가 금은방과 붙은 벽을 뚫는다. 이로 인해 잔인하고 폭력적인 복수극이 벌어진다.  
폰테와 페스체의 연기가 뛰어나고 다색을 절제하고 화면을 퍼렇게 멍들게 채색한 컬러와 죽어가는 마을의 을씨년스런 모습을 잘 찍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침울하게 만드는 촬영도 아주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는 쿠바다’


영화 ‘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의 쿠바의 하바나는 미 자본주의자들의 카리브해 판 베이가스였다. 방탕과 타락이 판을 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바티스타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그 후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이 되었다. 이런 두 나라가 반세기 전 단절했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 4년 전.
바티스타정권의 타락상과 카스트로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로 흑백화면에 기록영화 식으로 묘사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는 쿠바다’(I Am Cuba·사진 ★★★★★)이다. 이 영화는 1962년 소련핵무기의 쿠바배치로 미·소간 핵전쟁의 전운이 감돈지 2년 후인 1964년 소련과 쿠바가 합작한 쿠바혁명을 찬미한 불후의 명화다. 
비배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써 대사를 가급적 줄인 채 미 자본주의의 방탕과 부패를 비판하고 아울러 미 정부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정권의 붕괴를 찬양한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매 이미지가 마치 시 구절과 같이 절실하고 아름답다.
카메라의 리듬이 춤을 추듯 하고 그 동작이 물 찬 제비의 비상처럼 사뿐히 날렵한데 이제는 사라진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있지만 매우 엄숙하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가 찍은 촬영은 새 영화언어를 창조해 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클로스업과 와이드 앵글을 잽싸게 교체해 가면서 찍은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카스트로의 쿠바를 환호하는 군중 속에 동참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역시 영상미가 수려한 ‘두루미들의 비상’(The Cranes Are Flying·1957)을 만든 소련의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했고 각본은 각기 소련과 쿠바의 시인들인 예프게니 예프투셴코와 엔리케 바넷이 썼다.
영화는 데카당한 바티스타의 쿠바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노리개 여자를 거래하는 미국남자들과 해군 그리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과 굶주리고 일상의 고역에 시달리는 농촌과 도시 슬럼의 쿠바인들의 모습을 병행해 보여 준다. 손에 들고 찍은 카메라가 마치 리듬체조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카메라 테크닉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내 이웃처럼 연민하게 된다.
제작기간 2년 그리고 상영시간 141분짜리 영화는 *식민주의와 그 것이 하바나에 미친 영향 *농부들의 비극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 준비 및 *산 속에서의 투쟁과 승리로 구성됐다.
팜트리와 사탕수수가 검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흰 깃털처럼 출렁이는 꿈을 꾸는 듯한 첫 장면 부터 단숨에 우리의 감관을 사로잡는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마리아. 마리아는 밤에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야한 나이트클럽에서 일 하다가 새벽이 되면 하바나 교외의 썩어 문드러져 가는 달동네로 퇴근한다. 6.25후 G.I.가 주둔한 한국이 생각난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르네는 과일 수레행상을 하면서 혁명세력에게 암호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면한 농부 페드로는 자기 사탕수수밭을 외국의 대기업에 잃게 되자 밭을 불 태워 버린다. 페드로의 10대난 자식들은 마을에 나가 코카 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양키 팝송을 듣는다. 
대학생 엔리케는 혁명가로 부르주아들의 단골 드라이브-인 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을 투척하면서 공산혁명 동조자들에게 경찰의 물 폭탄과 총격에 맞서라고 촉구한다. 이 장면은 4.19혁명을 연상케 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농부 알베르토는 처음에는 부상당한 혁명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나 정부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파괴되면서 저항의 무기를 든다. 
카메라가 이들의 얘기를 장면에서 장면으로 뛰어 넘어 포착하면서 우리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자이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 쿠바의 명물은 시가와 럼과 맘보와 룸바. 내 미국인 친구로 시가를 태우는 마이크는 “쿠바시가는 일종의 지위의 상징으로 맛이 굉장히 강하다”고 알려 줬다. 해적들의 술 럼은 코카 콜라와 라임과 칵테일한 ‘쿠바 리브레’가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미국에서는 ‘럼 앤 코크’라 부르는데 옛날 옛적에 세 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스가 ‘럼 앤 코카 콜라’라는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했었다.   
‘나는 쿠바다’가 새 프린트로 복원돼 상영된다. *13일(하오 4시와 7시30분)-화인아츠(8556 윌셔) *13일과 14일(상오 10시와 하오 7시30분)-플레이하우스7(673 이스트 콜로라도, 패사디나) *15일(하오 7시30분)-렘리 글렌데일(207 노스 메릴랜드) *16일(하오 7시30분)-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샌타모니카) *17일(하오 7시30분)-노호7(5240 랭커심 Blvd.-노스 할리웃)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4월 2일 화요일

‘직업여성’ (Working Woman)


오르나(왼쪽)는 회사 사장 베니로 부터 끈질긴 성적 공격을 당한다.

직장 상사 성희롱에 속수무책인 여성의 고뇌


세계적으로 #미투와 ‘타임스 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 시의에 잘 어울리는 이스라엘 영화로 가족의 생계와 함께 자신의 야망과 자존을 위해 직장에서 행해지는 성적 희롱과 농락을 참아야 하는 여성의 갈등을 요란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룬 좋은 영화다.
여류 감독 미할 아비아드는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여기는 직장에 갇힌 여인의 수치와 고뇌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태워가면서 스릴러 식으로 긴장감 있게 처리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야단을 떨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감독은 이를 억제하면서 차분하게 다뤄 사실감이 더 절실하다.
젊고 아름답고 야심이 있는 오르나(리론 벤 슐러쉬)는 어린 세 아이의 어머니로 잘 나가는 부동산 개발회사에 판촉사원으로 들어간다. 남편 오페르(오쉬리 코엔)가 막 차린 식당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아 오르나가 생계를 도와야 하는 실정이다. 
자기를 친절히 대해주는 사장 베니(메나쉐 노이)와의 첫 대면에서 취업이 허락돼 희망에 부푼 오르나는 첫 세일즈에 성공해 베니로부터 칭찬을 받으나 이어 베니가 오르나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취해 오르나를 대경실색케 만든다. 
겉으로 보기엔 신사 같은 베니는 이튿날 오르나에게 사과를 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나 베니의 오르나에 대한 성적 공격은 갈수록 더 심해진다. 
영화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베니의 오르나에 대한 끈질긴 성적 공격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이와 함께 오르나가 자기 가족의 생계와 본인의 체면을 위해 이런 치욕을 참아야 하는 모습과 심정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베니는 오르나가 자신의 노골적인 성적 접근에 끈질기게 저항하자 처음에는 사과로 시작해 이어 공격적으로 나오더니 급기야는 마치 적에 대한 복수식으로 오르나를 괴롭힌다. 일단 자기 행동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오르나를 달랜 베니는 파리 출장에 오르나가 꼭 필요하다면서 함께 파리로 간다. 
베니와 함께 파리로 간 오르나의 결정이 다소 믿어지지가 않지만 가족 생계 문제와 함께 다시는 성적 희롱을 하지 않겠다는 베니를 믿어보자는 오르나의 심리상태를 전연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오르나는 술에 취한 베니의 노골적인 성적 공격을 받는다. 후에 오르나는 자기 어머니에게 파리에서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오르나는 베니의 이런 성적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라 좌절감에 빠지고 심적으로 갈팡질팡 하면서 자신에 대해 회의까지 하는데 그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태를 슐러쉬가 티내지 않고 안으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와 함께 멀쩡한 신사 같은 베니의 악의와 위협을 노이가 거의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연기하고 있다.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뚜렷이 표현한 소품 메시지 영화로 마지막 오르나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호텔 종업원 아르준(데브 파텔)이 테러리스틀의 동향을 숨어서 살펴보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인질 총살극… 긴장·공포·참혹


2008년 인도 뭄바이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타지마할 팰리스호텔에서 일어난 무슬림 극렬분자들의 테러사건을 그린 실화로 긴장감 있게 만들었지만 매우 피상적이다. 
호주 감독 앤소니 마라스의 데뷔작으로 세트와 촬영과 일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초조와 불안감 등 그런대로 볼만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가상한 제작 의도가 제대로 결실을 맺진 못했다.
우선 큰 문제가 작중 중요한 인물들을 여러 사람으로 분산시켜 그 어느 사람에게도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 점이다. 필요 없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각시켰고 인물들을 너무 2차원적으로 그려 피와 살이 있는 산 사람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이와 함께 역경을 이긴 인간 승리라는 흔해빠진 주제를 상투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선감이 없다. 부유한 호텔 손님들과 호텔 종업원 그리고 테러리스들과 경찰 등 테러와 관계된 사람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얘기가 집중력을 잃고 산만하나 볼만은 하다. 
10여명의 젊은 무슬림 극렬테러리스트들이 인파로 북적거리는 뭄바이에 도착해 기차역과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테러를 자행한다. 테러는 실제로는 사흘간 계속됐지만 영화에서는 하루 만에 끝난다. 이어 이들 중 몇 명이 타지마할 호텔을 점령한다. 
호텔손님들 중 부각되는 사람들이 갓난 아기를 가진 데이빗(아미 해머)과 그의 무슬림 아내 자라(나자닌 보니아디)와 아기의 보모 샐리(틸다 코브햄-허비) 그리고 러시안 백만장자로 특공대 출신인 바실리(영국배우 제이슨 아이작스). 이들과 함께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에 남기로 한 호텔의 종업원들이 소개되는데 그들 중 중요한 사람들이 용감한 호텔 수석요리사 헤만트 오베로이(아누팜 커)와 젊은 웨이터 아르준(데브 파텔). 이들 외에도 호주에서 인도로 여행 온 젊은 부부와 호텔 리셉셔니스트 등이 소개된다. 
감독은 호텔 곳곳에 갇힌 이들 10여명의 인물들의 상황을 오락가락하면서 보여주는데 오베로이와 특히 아르준을 빼곤 나머지는 지나치게 가볍게 묘사돼 그들의 생사에 별 관심이 가질 않는다. 이들보다는 오히려 이름 없는 테러리스트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진짜 사람들 같다.  
영화는 장시간 계속되는 테러리스트들의 무차별 인질 총살로 보는 사람을 공포와 불안에 빠지게 만드는데 매우 사실적이긴 하지만 마치 다음엔 누가 죽나 하고 기다리는 식이어서 내가 사람 죽이는 것을 구경하려고 이 영화를 보고 있나 하는 자괴심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가끔 당시 상황을 찍은 실제 필름을 보여줘 사실감을 부추긴다. 
사건 당시 경찰 특공대가 뭄바이로부터 800마일 떨어진 뉴델리에 있어서 구조가 늦어졌다. 호텔 종업원들의 영웅정신을 제법 잘 그리긴 했지만 맹탕 같은 영화로 바실리와 샐리 역은 얘기에 전연 불필요한 인물들이다. 해머의 연기는 뻣뻣하기 짝이 없지만 파텔과 커가 실속 있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R등급. Bleecker Stree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