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메리 스코틀랜드 여왕(Mary Queen of Scots)


영국 왕가의 혈통을 지닌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라이벌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처형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여왕간 권력쟁탈 궁정 암투극


16세기 사촌지간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명에 의해 목이 달아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엘리자베스간의 권력쟁탈을 위한 경쟁의식과 갈등을 그린 궁정 음모극인데 과거 여러 번 영화화된 흥미진진한 내용을 재미있게 처리했다기 보다 마치 학위논문 쓰듯이 엄격하게 다뤄 보기가 편하지가 않다. 
대사가 많은 영화로 주인공들의 인물과 성격묘사가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며 두 사촌 여왕간의 라이벌 의식에서 발생해야 될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도 강렬하지 못하다(하나는 런던에 살고 다른 하나는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거리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면도 상당히 어둡다. 그러나 두 여왕 역의 시어사 로난과 마고 로비의 출중한 연기와 권력쟁탈이 낳은 비극적 역사라는 점에서 볼만은 하다. 
감독은 영국의 무대예술 감독인 여류 조지 로크인데 여성이어서 그런지 작품에 여성파워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두 여왕을 둘러싼 측근들로 남자들도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 자기 권력을 유지하거나 보다 강력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여왕을 비난하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로 나온다.
영화는 10대인 프랑스 왕비 메리(로난)가 남편이 죽자 프랑스로부터 스코틀랜드로 귀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메리는 어릴 때 프랑스에 보내져 가톨릭 신도가 되어 귀국 후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었고 그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로비)는 신교도 신자로 영국을 통치하고 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와 서로 각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통치하며 두 국가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의 극보수적인 가톨릭신자들인 측근들은 메리의 이런 낙천적인 생각에 반대, 여왕에 대한 음모들을 꾸민다. 메리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쥐려는 의도가 다분한 남자들이 남편감으로 등장하는데 메리의 두 번째 남편은 핸섬하나 경박한 단리 경(잭 로우든). 
한편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궁정 안에 자기 측근 더들리 경(조 알윈)을 심어 놓고 메리를 감시한다. 그러면서도 엘리자베스는 자기와 혈연으로 맺어진 메리에게 강한 감정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은 결국 절대 통치권 장악을 위해 희생된다. 
두 여왕이 서로 라이벌 의식으로 대결하는 것과 함께 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권력을 쟁취하려고 배신하고 음모를 꾸미는 궁정 내 남자 측근들과의 갈등이 중요한 플롯을 구성한다. 그리고 영화 내내 따로 놀던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극적 클라이맥스를 위해 후반에 들어 만나나 이는 허구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왕이 될 혈통을 지닌 메리를 처형한다. 
메리는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5세의 딸이고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와 그가 처형한 아내 앤 볼린의 딸. 메리는 참수를 당했지만 그 후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가 통치한다. 평생 독신이었던(처녀 여왕이라고 불린다) 엘리자베스는 29세 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난 상처를 감추려고 독성이 있는 표백제를 발라 피부가 몹시 상했고 머리도 빠졌다. 영화에서도 그의 이런 얼굴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로난과 로비의 연기다. 로난은 독립심이 강하고 자유혼을 지닌 여왕의 연기를 불꽃 튀듯이 보여주고 짙은 화장을 한 로비도 여왕의 위풍당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인간적인 모습을 다양하게 연기한다. 음악과 세트 그리고 의상도 좋다. R등급.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돌아온 벤(Ben Is Back)


할리(왼쪽)는 약물 중독자인 아들 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약물중독 10대 아들 둔 가정의 해프닝… 줄리아 로버츠의 필사적 모성애 돋보여


10대의 약물중독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파고든 드라마로 약물중독과 함께 중독자를 둘러싼 가족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다룬 가족 드라마다. 
특히 헤로인 중독자인 아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호하고 구원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강한 모성애가 중요한 플롯을 이룬다. 
이 영화는 전반부에서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와 약물중독 문제를 집착하듯이 파고들다가 후반에 가서 느닷없이 범죄 스릴러 형식으로 톤을 바꾸는데 이런 급격한 형식의 변경이 작품의 일관성을 해치고 있다. 
어느 가족에게나 닥칠 수 있는 매우 현실적 내용으로 볼 만한데 특히 어머니로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와 아들로 나오는 루카스 헤지스(요즘 주가가 한창 오르고 있는데 그는 이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도 쓴 피터 헤지스의 아들이다)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날 하루의 얘기다. 약물중독자 치료소에 있던 19세난 벤(헤지스)이 크리스마스 전날 치료소를 빠져 나와 작은 교외 마을의 집에 온다. 그는 아직 완치된 상태가 아니다. 
세 아이들과 외출했다 돌아온 벤의 어머니 할리(로버츠)는 아들을 보면서 크게 반가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닷없이 돌아온 벤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리고 벤의 귀가로 인해 벤의 바로 아래 여동생 아이비(캐스린 뉴턴)와 할리의 두 번째 남편 닐(코트니 B. 밴스)을 비롯해 가족 간에 작은 소동이 인다.
이에 벤을 무조건적인 모성애로 사랑하는 할리는 벤을 절대로 자기기 보는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치료소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온 기족이 교회에 갔다 오면서 집에 도둑이 들어 난장판이 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벤의 생명을 구해준 애견이 실종된다.
여기서부터 벤과 할리는 밤새 동네를 헤집고 다니면서 개를 찾는데 벤이 헤로인을 팔기도 했던 딜러여서 동네에는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할리는 아들의 알고 싶지 않은 과거 행적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벤과 할리가 헤어지면서 할리는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아들을 찾는다.
약물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해 배우들이 숨 쉴 공간이 부족한 것이 흠이나 로버츠의 맹렬한 연기와 헤지스의 차분한 연기가 잘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태우지 못한 ‘버닝’


이번에는 분명히 수상후보에 오를 줄 알았는데 또 탈락됐다. 6일 발표된 제76회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 발표에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이 제외됐다. 이 영화는 올 칸영화제서 국제영화비평가상을 탔고 미국의 비평가들로부터도 격찬을 받아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무난히 오르리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골든 글로브상은 내가 속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것으로 ‘버닝’에 대한 우리 회원들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좋아 수상후보에서 제외된 것이 거의 이상할 정도다. 한국 사람인 나는 당연히 ‘버닝’을 후보로 올렸다.
한국영화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질 못했다. 이제 ‘버닝’에 대해 기대할 것은 2019년 1월에 발표될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한국영화 문전박대의 징크스를 깨느냐 하는 것. ‘버닝’의 탈락과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폴랜드의 ‘콜드 워’(Cold War)가 탈락된 것도 놀라운 일이다.
‘버닝’의 탈락에 대한 실망을 다소 위로해주는 것은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TV 드라마부문(HFPA는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에서 ‘킬링 이브’(Killing Eve)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이 부문 다른 후보로는 줄리아 로버츠와 엘리자베스 모스 및 케리 러셀 등 강력한 라이벌들이 있지만 샌드라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아 수상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샌드라는 이 역으로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이와 함께 샌드라는 오는 1월 6일 베벌리힐즈의 베벌리힐튼에서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사회를 코미디언 애담 샘버그(사진)와 공동으로 맡아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 샌드라와 애담은 지난 에미상 시상식 때 코미디부문 감독상 공동 시상자로 좋은 콤비를 이룬바 있다.
한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들은 ‘로마’(Roma^멕시코), ‘카퍼니엄’(Capernaum^레바논), ‘걸‘(Girl^벨기에),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독일) 및 ’어느 가족’(Shoplifters^일본) 등이다.
골든 글로브상은 작품과 남녀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된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많은 부문에 수상후보로 오른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바이스’(Vice^뮤지컬/코미디). 전 부통령 딕 체이니의 생애를 풍자 식으로 다룬 것으로 작품상 외에도 감독(애담 맥케이), 남우주연(크리스천 베일), 여우조연(에이미 애담스), 각본 및 며칠 전 장례식을 치른 조지 H.W. 부시로 나온 샘 로크웰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총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다음으로 ‘페이보릿’(The Favourite)과 ‘그린 북’(Green Book) 및 ‘스타 탄생‘’(A Star Is Born) 등이 각기 작품상 등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 중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블랙 팬서’(Black Panther). 수퍼히로들의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블랙 팬서’의 감독 라이언 쿠글러와 함께 두 부문 10편의 작품상 후보 중 4편의 감독이 비 백인이라는 점도 돋보인다. 쿠글러와 함께 스파이크 리(블랙클랜스맨)와 배리 젠킨스(이프 빌 스트릿 쿠드 토크) 등은 흑인이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즈’를 연출한 존 추는 아시안이다. 그런데 올해는 여성감독의 활동이 활발했는데도 여성감독이 한 명도 후보에 오르지 못해 구설수 에 오르게 됐다.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뉴욕영화비평가서클에 의해 올 해 최우수작품으로 뽑힌 흑백 드라마 ‘로마’가 감독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도 정작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 영화의 대사가 스페인어이기 때문. HFPA는 외국어영화에는 작품상 후보자격을 주지 않고 외국어영화상 후보로만 제한하고 있다.
HFPA는 외부로부터 자주 스타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번 수상후보들도 스타들로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니콜 키드만, 샬리즈 테론, 줄리아 로버츠, 엠마 스톤, 레이철 바이스, 에밀리 블런트, 크리스천 베일, 로버트 레드포드, 에이미 애담스, 캔디스 버겐, 사샤 배론 코엔, 짐 캐리, 마이클 더글러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페넬로피 크루즈, 휴 그랜트 그리고 글렌 클로스.
로버트 레드포드가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으로 주연상후보(뮤지컬/코미디)로 오른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그의 배우로서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그의 오랜 연기생활을 기리는 뜻이 크다. 
해마다 수상후보 발표에는 이변이 있기 마련.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이변은 노래와 춤으로 요란하게 채색된 뮤지컬 ‘돌아온 메리 파핀스’(Mary Poppins Returns)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후보 등 총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막상 주제가상 부문에서는 제외 된 것. 그리고 ‘마마 미아’의 속편 ‘마마 미아:히어 위 고 어겐’도 완전히 물을 먹었다.
1월 6일 하오 5시부터 NBC-TV가 생중계하는 이번 시상식에서는 HFPA가 새로 만든 트로피가 주어지고 영화부문에서 생애업적상(세실 B. 드밀상)을 주듯이 TV부문에서도 생애업적상이 시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네버 룩 어웨이(Never Look Away)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미술가 경험으로 본 나치와 전후 독일과 예술


‘타인들의 삶’(The Lives of Others)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크의 세 번째 작품으로 다소 감상적이고 상영시간 188분도 좀 길긴 하지만 매우 감동적이요 사려 깊은 작품이다. 도너스마크는 ‘타인들의 삶’을 만든 후 할리웃의 부름을 받아 자니 뎁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졸작 ‘관광객’(The Tourist)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 ‘타인들의 삶’과 분위기가 닮은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연출했다. 그가 각본도 썼다. 
1930년대 나치 집권 시대에서부터 1960년대 독일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미술가가 겪는 개인적 경험과 변화하는 정치 상황 그리고 예술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 및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자 스릴러 기운마저 갖춰 흥미진진하다. 
1937년 드레스덴. 처음에 어린 쿠르트 바나트(카이 코스)가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적인 아주머니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나치가 전시한 ‘퇴폐 미술전’을 구경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치는 칸딘스키 등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작’으로 취급했다. 쿠르트의 아버지는 교사이나 나치에 가입하지 않아 직장을 잃어 집안 생계가 어렵다. 
쿠르트는 엘리자베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대한 영감과 사랑을 키우는데 엘리자베스가 정신질환을 잃으면서 나치 동조자인 산부인과 의사이자 교수인 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흐)에 의해 불임수술을 받은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이어 개스 처형된다.
2차대전 후 드레스덴은 소련의 점령 하에 들어가고 성장한 쿠르트(톰 쉴링)는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여기서 패션을 공부하는 아름다운 엘리(파울라 베어)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엘리는 칼의 딸. 물론 쿠르트는 칼이 자기 아주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흉악한 전범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런 내용이 다소 억지 같고 신파적이다. 그런데 칼은 자기 딸에게 까지 수술 칼을 들이대는 가혹한 괴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쿠르트와 칼간의 대결을 예상하게 되지만 감독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데 따라서 극적 긴장감이나 충격이 대폭 감소된다. 쿠르트는 그림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자신의 예술혼에 위배되는 공산정권의 선전 위주의 요구에 환멸을 느껴 엘리와 함께 서독으로 이주한다(아직 베를린 장벽이 안 세워졌을 때다). 쿠르트가 공산체제 하에서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감이나 상실감이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 했다. 
뒤셀도르프에 안주한 쿠르트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현대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창작열을 한껏 불사르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포토-리얼리즘으로 성공한다. 촬영과 세트와 음악 등도 좋다. 
눈에 띠는 연기는 ‘타인들의 삶’에도 나왔던 코흐의 것이다. 쿠르트는 현존하는 독일의 시각미술가 게르하르트 릭터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Sony Pictures Classic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두가 알고 있어(Everybody Knows)


오래간만에 귀향한 라우라(왼쪽)는 옛 애인 파코와 재회한다.

고향 방문, 딸의 납치,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
이란 화라디 감독의 다소 느슨한 가족 드라마


‘이혼’(A Seperation)으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의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극 미스터리 스릴러인데 페넬로피 크루즈와 그의 남편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 배우들을 사용해 스페인에서 찍었다. 인물들의 성격묘사와 이란의 사회상 비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감독이 자기 보금자리를 떠나 국제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영화가 맥이 빠진 신파 타작이 되고 말았다.
납치극이면서도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여러 인물들이 나와 엮는 얘기도 중언부언 식이고 결말이 완전히 바람 빠진 풍선 같아 화라디의 촘촘하고 강인한 연출 솜씨를 기대하던 사람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다시피 하는 크루즈의 연기와 그와 바르뎀의 화학작용이다.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라우라(크루즈)가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오래간만에 스페인의 시골 마을을 찾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면서 시끌벅적대던 저녁에 라우라의 10대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실종된다. 이어 정체불명의 납치범으로부터 이레네의 몸값을 요구하는 통지가 온다. 이 소식을 들은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아르헨티나의 베테런 배우 리카르도 다린)도 스페인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라우라의 가족들의 삶의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안고 있는 과거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이 과거들 중에는 라우라와 그의 전 애인 파코(바르뎀)의 깊고 뜨거웠던 사랑이 있다. 라우라의 가족이 몸값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겉으론 완벽하게 보이던 그의 가족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난다.
개인들의 비밀과 납치를 다룬 영화로선 감정이 결여됐는데 영화를 멜로드라마처럼 이끌어 가는 바람에 강렬한 긴장감이나 극적 폭발력이 아주 미약하다. 그리고 결말을 맺는 부분이 다분히 조작적인데다가 느슨해 맥이 빠진다. 클라이맥스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기대에는 못 미치나 볼만은 하다. 화라디의 주도면밀한 연출과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얘기 그리고 섬세한 인물과 성격개발이 아쉽다. R등급. Focus.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페이버릿(The Favorite)


야심찬 하녀 애비게일은 미소와 친절로 앤 여왕(왼쪽)의 총애를 산다.

화려한 궁정서 펼쳐지는 세 여인의 권력쟁탈전


신랄한 풍자가로 ‘랍스터’(The Lobster)와 ‘신성한 사슴 살해’(Killing of a Sacred Deer) 등을 만든 그리스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의 세 여인의 궁정 코미디 드라마로 기막히게 화려하고 재미있다. 란티모스는 관객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이라고 하겠는데 이번에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다시피 어필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얄궂다시피 한 기지와 위트와 검은 티가 나는 유머 그리고 지적 자유를 마음껏 발휘해 관객의 지와 감성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다.
세 주인공 여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눈부시게 화사한 의상과 세트 그리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아기자기하게 엮어간 각본 및 음악과 일사불란한 연출 등이 다 빼어난 영화로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이다. 
세 여인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관계를 우정으로 위장하고 배신과 음모를 자행하는 이 코미디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잔뜩 엮어 넣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영국의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궁정이 무대. 자녀를 17명이나 두었으나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앤은 고독한 심술쟁이. 성질을 잘 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몹시 아파 윌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이를 옆에서 극진히 돌보는 여자가 젊은 귀족부인 레이디 사라(레이철 바이스). 사라는 앤의 친구이자 비서요 동성애 애인이자 참모인데 국정에 관심 없는 여왕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 일을 처리하면서 권력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앤은 겉으로는 멍청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실속은 다 차리는 간교한 여자여서 사라의 속셈을 잘 안다.
이런 자리에 사라의 친척인 공손하고 겁먹은 표정을 한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하녀로 들어온다. 사라의 지시에 따라 부엌 막일을 맡은 애비게일이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앤의 아픈 다리에 발라 신통한 효과를 보면서 미소와 친절을 선심 쓰듯 하는 애비게일은 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앤을 둘러싸고 사라와 애비게일 간의 권력 쟁취 극이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데 이런 둘의 미소로 덧칠한 독침의 공격과 방어를 앤은 나름대로 조종하며 즐긴다. 남자들도 여럿 나오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여성 위주의 영화로 남자들은 뒷전에서 논다.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위트가 날카롭고 사정없이 야박한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매력적인 영화로 콜맨과 바이스와 스톤의 연기가 경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특히 콜맨의 아이처럼 철없고 순진하고 심통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차릴 것 다 차릴 줄 아는 연기가 빛을 낸다. 그리고 볼 것 없는 부엌 하녀로 어리석은 것 같지만 실속 다 차리는 스톤과 표독스럽고 차고 간교한 표정의 바이스의 연기도 일품이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리드 II(Creed II)


크리드(왼쪽)가 록키의 코치 하에 빅터와 대결하려고 모스크바의 링에 올랐다.

‘록키’시리즈 속편… 아폴로와  드라고의 아들, 링 위 사생결단 대결


‘록키 II’에서는 아버지끼리 주먹다짐을 하더니 ‘크리드 II’에선 아들끼리 싸운다. 
2015년에 나온 ‘록키’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생작품인 ‘크리드’의 속편인데 ‘록키’와 그 속편들의 내용을 재탕한 것처럼 진부하고 서스펜스나 긴장감도 또 놀라울 것도 없는 타작이다. 킬링 타임용은 된다.
전편에서 록키(실베스터 스탤론)의 지도 하에 새 헤비급 챔피언이 된 크리드(마이클 B. 조단)는 ‘록키’시리즈 제1편과 제2편에서 록키와 대결한 흑인 선수 아폴로의 아들. 처음에 잠깐 크리드가 링에서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후에 크리드와 대결할 우크라이나의 젊은 살인무기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먼테누)가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 크리드가 가수인 애인 비안카(테사 탐슨)에게 구혼을 하면서 영화는 주먹대결에 로맨스를 양념으로 치는데 매우 어색하다. 각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크리드와 비안카의 열기 빠진 관계와 함께 록키가 아내의 무덤엘 찾아가 독백을 하는 장면도 이젠 식상하다.
빅터가 크리드에게 대결하자고 선포하면서 록키와 크리드 간에 갈등이 인다. 록키는 크리드에게 폭력자에 지나지 않는 빅터와 대결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붙어봤자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빅터가 ‘록키 VI’에서 크리드의 아버지인 아폴로를 링에서 때려죽인 이반 드라고(돌프 런드그렌)의 아들이라는 사실. 이반은 빅터의 코치로 러시안 챔피언이었던 이반과 록키는 ‘록키 IV’에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운 사이. 이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후계자를 내세워 다툰다. 
크리드는 자기를 떠난 록키의 도움 없이 빅터의 도전을 받아들여 링에 오르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얻어터진다. 그러나 빅터의 반칙으로 크리드는 챔피언십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는 빅터의 재도전에 응한 크리드가 25대 1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의 링에서 빅터와 사생결단의 경기를 벌이는 것. 물론 그 전에 크리드를 돕기로 결심한 록키의 지도 하에 크리드가 사막에서 맹훈련을 하는데 이런 것이 다 옛날 ‘록키’의 장면을 답습한 것이다. 
조단은 전편에서는 신선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이번에는 기운이 떨어진 사람 같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록키’시리즈에서 이반의 아내로 나왔던 브리짓 닐슨(스탤론의 실제 애인이었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 많이 늙었다. 제3편이 나올 것처럼 끝난다. 스티븐 케이플 주니어 감독. PG-13 등급. MGM.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