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택시 운전사(A Taxi Driver)

만섭(송강호)이 경계중인 군인과 대화하는 것을 독일 기자 페터가 바라보고 있다.


소시민의 눈 통해 소환한 광주 민주화운동 참상

광주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독일 TV 방송기자와 그를 서울서 광주까지 태워다 주고 함께 다시 서울로 돌아온 택시 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다시 한 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뜻 있는 작품이다. 어둡고 무거운 사실을 재미있게 엮어낸 장훈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역사영화이자 버디 무비로 잔인한 폭력을 유머와 온기로 다독여주는데 감독은 가차 없는 현실과 폭력과 공포를 너그럽고 훈훈한 인간적 여유와 함께 고른 리듬으로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연기파 송강호의 너그럽고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데 처음에는 데모에 반대하던 그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행동인으로 변하는 각성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택시들과 이들을 뒤쫓는 정보기관 차들 간의 도주와 추격의 액션은 거의 만화 같은 터무니없는 장면이다.
아쉬운 것은 역사적 내용을 보다 깊고 폭 넓게 다루지 못한 점인데 이로 인해 다소 주마간산 식의 작품이 되었고 한국영화의 고질인 상영시간(2시간 17분)이 긴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흘리게 될 영화로 끔찍한 사실에 전율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면서 11세 난 딸을 혼자 키우는 김만섭(송강호-실제 이름 김사복)은 동료운전사로부터 한 외국인이 광주까지 왕복해 태워다 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이 손님을 자기가 가로챈다. 4개월 치 밀린 삭월세가 10만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도쿄주재 독일 공영방송 기자 페터(토마스 크레취만-실제 이름 위르겐 힌츠페터)로 광주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선교사로 위장하고 서울에 왔다.
사우디에서 일한 경험으로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아는 만섭은 페터를 차에 태우고 그와 서툰 영어와 제스처를 동원해(이 장면이 우습다) 광주로 내려간다. 그런데 만섭은 딸을 키우면서 먹고 사는데 급급해 시사뉴스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
광주 초입에 도착하니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만섭은 겁이 나지만 10만원 때문에 촌로에게 샛길을 물어 광주에 도착한다. 만섭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광주에서 그제서야 실상을 깨닫게 되고 페터는 시민들의 활동을 TV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정보부에서 페터가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 페터와 만섭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 스릴러 분위기를 갖추는데 이런 둘을 돕는 사람들이 현지 택시 운전사인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그의 동료 운전사들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이 과정에서 만섭과 페터는 단단한 동지 의식으로 맺어지는데 군인들의 시민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보면서 서서히 자각하게 된 만섭은 혼자 서울로 가느냐 아니면 페터의 취재가 끝난 뒤 그와 함께 가느냐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크레취만이 침착하게 호연을 하는데 그 밖에도 조연진의 연기도 다 좋다. 영화는 독일의 자택에서 김사복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하시라도 서울로 날아가겠다는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인터뷰 장면으로 끝난다. 둘은 그 후로도 재회를 못 했는데 2016년 79세로 사망한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의 일부가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온리 리빙 보이 인 뉴욕(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토마스가 아버지의 정부 조핸나를 미행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정부를 꼬시는데…


더스틴 호프만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졸업’을 연상시키는 코미디 드라마로 대화가 상당히 많은 현학적일 정도로 지적인 영화다. 뉴욕에 바치는 헌사이자 청년의 성장기로 앙상블 캐스트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상호간 화학작용도 훌륭하다.
퍼즐을 푸는 듯한 플롯을 지녔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책과 같은 개인적 기호와 중산층의 보장 그리고 영혼을 잃어버린 예술의 본향 뉴욕을 아쉬워하는 복고풍의 영화로 자신의 장래를 못 찾아 갈팡질팡 하는 청년의 이 사람 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술된다. 
토마스 웹(영국 배우 캘럼 터너가 젊은 리처드 기어를 생각나게 한다)은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으로 작가 지망생. 출판사 사장인 아버지 이산(피어스 브로스난)과 병약한 어머니(신시아 닉슨)가 사는 대저택을 떠나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후진 아파트에 산다. 그에겐 아름다우나 독설가인 여자 친구 미미(키어시 클레몬스)가 있는데 미미는 어디까지나 친구 관계를 주장한다.
토마스의 아파트 이웃으로 혼자 사는 철학적이요 유식한 술꾼 작가 W.F. 제럴드(제프 브리지스)가 청춘의 방황에 시달리는 토마스의 조언자요 멘토가 되기를 자원하면서 둘은 대화를 통해 사제지간이나 부자지간처럼 된다. 그런데 과연 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W.F.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느 날 토마스가 미미와 함께 클럽에 갔다가 자기 아버지가 외간 여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토마스는 이 여자의 정체를 캐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여자 뒤를 마치 스토커처럼 따르는데 여자는 아버지 출판사의 프리랜스 에디터인 조핸나(케이트 베켄세일).
아름답고 총명한 조핸나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토마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이 여자를 유혹해 결국 섹스를 하는 관계에 까지 이른다. 물론 조핸나도 토마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한 여자가 부자와 모두 섹스를 한다는 불결한 플롯은 그러나 나중에 묘하게 세척된다.
마지막에 가서 W.F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 얘기가 다소 급작스럽고 조작적이어서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터너를 비롯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는 지적이요 문학적인 대사가 많은 아담한 소품으로 특히 브리지스의 현자 같은 연기가 볼만하다. 제목은 사이몬과 카펑클의 동명 제목 노래에서 따 왔다. 마크 웹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잔느 모로, 권태의 현신




공중전화 부스 안의 여인의 감은 눈을 클로스업 하던 카메라가 그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로 훑고 내려가면서 여인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사진) “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 날거에요. 쥘리앙.” 자기 정부에게 자기 남편을 어서 죽이라고 호소하는 이 간부가 콱 씹으면 다크 초콜릿 맛이 날 것 같은 잔느 모로다. 모로가 지난 달 31일 파리서 89세로 사망했다.
모로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수 중 하나였던 루이 말르가 24세에 감독으로 데뷔한 범죄 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 찬 트럼펫 소리가 자아내는 짙은 무드가 연무처럼 영화를 감싸고돈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때 광화문에 있던 아카데미극장에서 봤는데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모로가 투피스상의의 깃을 올린 채 밤새 비 내리는 샹젤리제거리를 쥘리앙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 살인마저 저지르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모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양끝이 내려앉은 농염한 윗입술과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리고 생존을 마다하는 것 같은 눈동자와 그늘진 얼굴을 했던 모로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인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피곤이 지닌 육감을 현시한 프렌치 쿨의 전형이었다.
모로는 자기 애인이 된 말르와 다음해 ‘연인들’(The Lovers)을 만들었는데 권태로운 유부녀와 젊은 애인의 정사를 다룬 영화에서 모로가 오르가즘을 묘사해 오하이오주의 판사로부터 외설딱지를 받기도 했다.
무대배우로 시작한 모로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것이 프랑솨 트뤼포의 ‘쥘르와 짐’(Jules et Jim^1962)이다.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인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그린 명화로 모로는 역시 자기 애인이 된 트뤼포의 복수스릴러 ‘흑의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1968)에도 나왔다.
모로의 미국영화로 잘 알려진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2차대전 액션영화 ‘기차’(The Train^1964)와 리 마빈과 공연한 ‘몬테 월쉬’(Monte Walsh^1970). ‘몬테 월쉬’에서 황금의 마음을 지닌 창녀로 나온 모로는 마빈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모로의 또 다른 유명애인으로는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있다. 모로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엑소시스트’를 감독한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모로의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한 나태와 피곤이 십분 발산된 것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La Notte^1961)이다. 모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아내로 나와 가정주부의 권태를 천착했다. 입천장이 쩍쩍 말라붙도록 노곤한 영화다.
‘생각하는 남자들의 팜므 파탈’이라 불린 무엇엔가 홀린 듯한 모습의 모로는 겁 없는 도도한 여자였는데 그를 타임지는 일찍이 이렇게 찬양했다. “할리웃에는 그 만큼의 깊이와 폭을 가진 여배우가 없다. 그리고 긴 고문처럼 달려드는 카메라의 시선을 그처럼 이겨낼 개성도 없으며 단순히 자태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낼 여자도 없다. 모로의 사랑의 장면은 그 누구의 것보다 강렬하고 그의 고통은 번뇌스러울 만치 신랄하다. 그야말로 무한한 복합성과 신념의 스타다.”
파리에서 태어난 모로는 장 아누이의 연극 ‘안티고네’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했다. 모로는 이런 결심을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뺨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는 몇 년 후 유명한 코메디 프랑세즈 연극반의 최연소 단원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연극과 범작 영화들에 나왔는데 말르가 모로를 이 영화에 기용한 것은 모로가 나온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고 나서였다.
모로의 또 다른 좋은 영화들로는 자크 데미의 ‘천사들의 만’(Bay of Angels^1963), 루이스 부누엘의 ‘하녀의 일기’(Diary of a Chambermaid^1964) 그리고 모두 오손 웰즈가 감독한 ‘심판’(The Trial^1962)과 ‘자정의 종소리’(Chimes at Midnight^1965) 및 ‘불멸의 이야기’(The Immortal Story^1968) 등이 있다. 모로는 1976년 자기가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자전적영화 ‘뤼미에르’(Lumiere)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또 다른 연출작으로는 ‘사춘기’(L‘Adolescente^1979)가 있다.
내가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9^11일 테러가 났다. 영화제측이 영화제 중단을 검토하자 영화제에 참석했던 모로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에너지를 죽이려한다고 해서 왜 우리가 살기를 멈춰야 합니까.” 나는 그때 모로의 이 말을 듣고 그의 고매한 인간 혼에 깊이 감동했었다. 아디외 잔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디트로이트(Detroit)


백인 경찰 필립(앞)이 흑인들과 백인 여자 2 명을 심문하고 있다.

1967년 디트로이트서 무슨 일이?‘미국 흑역사’고발


지난 1967년 여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을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다룬 기록영화 스타일의 강렬한 역작이다. ‘허트 락커’와 ‘제로 다크 서티’에서 미국의 소름끼치는 역사를 다룬 여류 캐스린 비글로가 감독하고 이 두 영화의 각본을 쓴 마크 보알이 다시 각본을 썼다.
흑인 폭동의 테두리 안에서 디트로이트 시내 흑인 동네의 허술한 모텔 알지에스에서 일어난 백인 경찰의 흑인 3명 살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고질인 인종 차별과 통제가 없는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남용과 횡포 그리고 흑인에 대한 사회적 법적 불평등 등을 고발한 담대하고 절실한 작품이다. 
거의 공포와 테러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팽팽하고 영육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뉴스필름과 허구를 섞은데다가 시네마 베리테 식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어 현장감과 사실감에 전율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들도 두 명을 제외하곤 낯선 배우나 신인을 써 이런 사실감을 더 부추기고 있다. 
디트로이트 경찰이 무허가 흑인클럽을 덮쳐 고객들을 밖으로 몰아내 연행하면서 흑인들의 폭동이 시작되고 이어 방화와 약탈이 자행되자 경찰을 돕기 위해 탱크를 몰고 주 방위군이 투입된다. LA의 4.29 폭동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주 인물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경찰 필립 크라우스(윌 풀터가 가공할 연기를 한다)와 젊은 모타운 가수 래리 리드(신인 앨지 스미스가 경탄할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네 식품점 시큐리티 가드 멜빈 디스뮤크스(존 보이에가) 및 도시로 구직 차 온 베트남전 베테런 로버트 그린(앤소니 맥키).
폭동으로 공연이 취소돼 극장 밖으로 나온 래리와 그의 친구 프레드 템플(제이콥 래티모어)은 알지에스 모텔로 피신한다. 모텔에는 칼 쿠퍼(제이슨 미첼) 등 젊은 흑인 몇 명이 두 명의 젊은 백인 여자들(해나 머리와 케이틀린 디버)과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고 있다. 
그런데 칼이 창문을 통해 장난감 딱총을 경찰에 쏘면서 필립과 함께 2명의 경찰이 모텔 안으로 들어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복도에 몰아 놓고 두 손을 벽에 대고 서 있게 한 뒤 심문을 시작한다. 필립이 주도하는 이 심문 과정이 40분 간 진행되는데 협박과 폭언과 폭력이 자행되는 긴 심문 동안 모텔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이를 지켜보는 멜빈은 역사의 목격자요 참관인 구실을 한다. 
필립은 로버트 등 흑인들과 두 명의 백인 여자 등 잡아놓은 사람들에 누가 총을 쐈으며 권총이 어디에 있는지를 집요하게 심문하는데 이 과정에서 ‘죽음의 게임’ 방법을 동원한다. 흑인을 방으로 데려가 허공에 총을 쏜 뒤 다시 밖으로 나와 그를 죽였다면서 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흑인 3명이 이들의 손에 죽는다. 다소 길긴 하나 이 40분 간 영화를 보는 사람도 래리 일행과 또 같은 공포와 치욕감과 분노에 몸을 떨게 된다. 
폭동이 끝난 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필립 등 3명의 경찰에 대한 재판이 열리나 전원 백인인 배심원들은 무죄를 평결한다. 디트로이트 폭동 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과연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하게 된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콜럼버스(Columbus)


진과 케이시(왼쪽)는 만보와 대화를 나누며 우정이 깊어간다.

그림 같은 자연 속 따뜻한 대화… 한인 감독·주연의  수작


현대적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유명한 인디애나주의 도시 콜럼버스(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번역가와 이 도시에 사는 젊은 미국인 여자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와 성격 탐구를 건물들을 조망하면서 만보하듯이 그린 온기와 인간성 가득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작품이다. 야수지로 오주 영화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축은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여자의 말처럼 건물들이 생명체로서 살아 숨 쉬는데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매우 지적인 작품이다. 영화 비평가이자 비디오 예술가인 서울 태생의 한국계 코고나다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을 쓰고 편집도 했는데 주인공 남자는 한국계인 베테런 존 조가 맡아서 차분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작품의 분위기와 보조가 몽환적인데 지극히 간소하고 검소한 영화로 대화와 휴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작품을 천천히 이끌어간다. 고독감에 잠겨들면서도 끝에 가서 해방감에 고요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작품을 충분히 수용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번역가인 진(존 조가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은 콜럼버스에 강연 차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건축학 교수인 아버지를 찾아 이 곳에 온다. 진은 그 동안 가족을 멀리한 죄책감에 빠져있다. 
진이 이 마을에서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서민층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서 진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케이시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눈다. 케이시는 도시로 나가 건축을 공부하고 싶으나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단조로운 삶을 견디어낸다. 
이런 케이시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박사 공부하는 냉소적인 남자 친구 개브리엘(로리 컬킨). 한편 진도 아버지를 찾아온 동료 여인(파커 포우지)을 어렸을 때부터 사모해 왔다. 
진과 케이시는 몇 날을 함께 만나 걷고 건물을 구경하면서 문화와 환경과 자라온 환경 그리고 세계관과 각자의 꿈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로 인해 둘은 짙은 우정을 맺게 되는데 그 감정이 사랑의 변두리에까지 이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리고 케이시는 이 관계 끝에 자신의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구출된다. 
조의 너그럽고 여유 있는 연기(본격적인 주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와 리처드슨의 알찬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엄격한 형식미와 함께 자연 속의 두 사람을 찍은 촬영이 극히 아름답고 드문드문 쓴 전자음악과 음향 효과도 매우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로레인이 좁은 복도에서 발길질로 적을 제압하고 있다.

냉전시대 미녀 스파이의 핵폭탄급 액션


제목 그대로 원자탄급 폭력과 격투기술을 지닌 백금발의 장신 미녀 스파이가 냉전시대 베를린에서 이중삼중의 음모와 배신을 겪으면서 닥치는대로 적국의 스파이를 때려누이는 스파이 액션 스릴러로 주인공 역의 샬리즈 테론의 핵폭탄 액션이 장관이다. 
얘기에 신경 쓸 것 없이(이런 장르의 영화의 결점인 약한 얘기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공연히 플롯이 복잡하다) 테론의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온 몸으로 가격하는 액션을 보면서 즐기면 될 영화다. 멋있고 아찔하고 사납고 쿨한 액션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스카 수상자인 연기파 테론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머리를 밀고 나와 맹렬한 액션을 구사했는데 이 영화로 명실공히 액션에 능한 배우가 된 셈이다. 이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액션 영화 ‘존 윅’을 연출한 스턴트맨 출신의 데이빗 리치가 감독했는데 두 영화가 서로 액션 장면이 닮았다. 
시대가 냉전시대여서 복고풍인데 특히 제임스 본드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본드가 영국 해외첩보부인 MI6 소속이듯 테론이 영화에서 소속된 기관도 MI6여서 더 그렇다. 차갑고 스타일 갖춘 여름철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줄 오락영화다. 그래픽 노블 ‘더 콜디스트 시티’가 원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영화는 처음에 얼굴과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영국 스파이 로레인 브러턴(테론)이 얼음으로 채워진 욕조에 몸을 담은 뒤 얼음이 든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막 베를린에서 돌아온 로레인이 MI6 본부에서 자기 상사(토비 존스)와 미 CIA고위 요원(존 굿맨)에게 베를린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장면이 과거로 돌아간다. 
로레인은 망명한 러시아 스파이(에디 마산)가 가로챈 영국과 미국 스파이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회수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것이다. 여기서 로레인을 돕는 사람이 베를린 주재 영국 스파이 데이빗 퍼시발(제임스 매카보이). 그런데 완전히 베를린의 지하세계와 펑크문화에 젖어든 데이빗은 로레인의 동료이면서도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명단 회수 과정에서 로레인은 겹치는 배신 속에서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동료인지를 몰라 혼란에 빠지는데 러시아 스파이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스파이도 로레인을 감시하고 추적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스파이 델핀(소피아 부텔라)과 로레인과의 관계가 자극적인데 처음에는 서로 적으로 격투를 벌이던 둘이 급기야 침대에 들어 액션만큼이나 격렬한 정사를 치른다.
영화에서 가공할 정도로 멋있고 치열하고 흥분되는 장면은 로레인이 아파트 실내와 좁은 계단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을 상대로 장시간 육박전을 벌이는 것. 주먹과 굽이 칼날 같이 뾰족한 구두와 온 몸을 사용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서로 치고받는데 액션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박력 있는 격투다. 이와 함께 로레인이 정원용 호스를 사용해 높은 아파트에서 지상으로 비상하는 장면도 아찔하게 멋있다. 액션을 찍은 촬영도 보기 좋다.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릭스비 곰(Brigsby Bear)


곰의 탈을 들고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제임스.

지하벙커서 자란 남자 세상에 나왔는데…


세속의 때에 오염된 우리 모두가 보고 내면을 정화시킬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거의 선험적 경험을 겪게 만드는 아름답고 우습고 통찰력 있는 선한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외부와 차단된 지하벙커에서 자란 남자가 뒤늦게 자유를 맞아 사회에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아울러 주변 사람들을 순진무구한 영역으로 안내하는 얘기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제임스는 아기 때 한 부부(마크 해밀과 제인 애담스)에 의해 납치돼 지하벙커에서 자란다. 이들은 지상은 오염됐다며 제임스에게 외부 세상에 대한 공포를 주입시킨다. 제임스는 TV로 사람 크기의 장난감 곰 브릭스비가 쌍둥이 인간 자매와 함께 우주를 위험에서 구하는 싸구려 시리즈를 보면서 자라 이에 중독이 됐는데 이 프로는 자기를 납치한 남자가 만든 것.
제임스(카일 무니)가 어른이 된 뒤 경찰에 의해 구출이 되고 사건 전담형사 보겔(그렉 키니어)은 제임스와 친부모(맷 월시와 미카엘라 왓킨스)와의 재결합을 주선한다. 제임스의 새 사회에의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느라 노력하는 부모와 제임스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이 제임스의 고교생 여동생 오브리(라이안 심킨스). 
제임스의 새 세상에 대한 적응 노력과 오해와 실수와 좌절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제임스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 구경을 갔다가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어  자기도 브릭스비 곰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런 제임스를 돕는 사람이 오브리의 학교 친구 스펜서(호르헤 렌데버그 주니어). 
그리고 스펜서가 제임스가 소유한 ‘브릭스비 곰’ 에피소드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에 힘입어 제임스와 스펜서는 제임스를 납치했던 남자가 쓴 장난감 곰 옷과 소도구를 사용해 영화를 만든다. 제임스의 이런 천진난만한 의도에 점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브리와 보겔까지 전염이 되면서 영화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각본도 제임스가 썼다. 영화가 완성되고 시사회가 열린다.
세상의 때가 아직 하나도 안 묻은 아기의 마음을 지닌 가슴이 뭉클하도록 감동적인 영화로  이 풍진 세상을 분투하면서 사느라 오염된 마음을 돌아다보게 만든다. 제임스가 되고픈 마음이 든다. 무니의 티 없이 순진하고 순수한 연기가 보기 좋다. 
데이브 맥케리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