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회계사(The Accountant)


회계사 크리스가 사격연습을 하고 있다.

수학천재 자폐증 회계사의 ‘킬러 본색’


메이저 스튜디오가 할리웃의 수퍼 스타를 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전형적인 넌센스 액션 스릴러로 얘기가 도무지 씨가 안 먹혀 보고 있자니 지루해 몸살이 날 지경이다. 벤 애플렉이 어쩌자고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나 그는 셈에 천재적 기억력을 지니고 사격과 무술에도 뛰어난 자폐증세의 공인회계사로 나와 회계도 하고 또 닥치는 대로 인명을 살상한다.
일종의 재정 액션스릴러요 가족 드라마이자 약간의 러브 스토리도 양념 식으로 섞어 넣었는데 내용이 터무니 없는데다가 애플렉의 로봇 같은 연기도 보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영화여서 재미도 없고 또 관심도 없다.
일리노이주 교외의 작은 마을의 회계사 크리스천 울프는 자폐증자로 수학과 계산에 천재적 능력을 지녔다. 자폐증자여서 말이나 대인관계가 거의 없다. 영화는 크리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군인인 크리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호신수단으로 격투술을 가르친다. 크리스에겐 정상적인 동생 브랙스턴(성인 역에 존 번달)이 있는데 이들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인도네시아의 무술을 비롯해 온갖 무술을 가르친다.
크리스의 작은 회사는 자신의 숨은 활동을 위장한 간판용이고 실제로 그는 무기와 마약밀매상들의 회계사로 자기 차고에 있는 RV에 금괴와 거액의 현찰 그리고 잭슨 폴락의 그림까지 있다. 크리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재무부 관리 레이먼드 킹(J.K. 시몬스).
그래서 크리스는 킹의 눈을 돌려놓기 위해 정상적인 업무로 실제 수족과 또 같은 기능을 하는  인공수족 등을 제조하는 대규모의 로보트공학회사의 회계장부를 돌보기로 한다. 회사의 회장은 라마 블랙(존 리트가우).
크리스가 회사의 회계장부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회사의 여직원 데이나 커밍스(안나 켄드릭)를 비롯한 몇 명의 간부들에게 알려주면서 계속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데이나와 크리스 간에 로맨스의 기운이 감돌다가 만다. 계속해 이 회사의 사람들이 살해되면서 크리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이에 대전차용 자동기관총을 들고 반격에 나서면서 수십명이 황천으로 간다. 크리스를 쫓는 킬러들의 두목이 과연 누구일까요.
애플렉의 자폐증자 연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무기력한 연기다. 영화는 마치 속편을 예고하듯이 끝나는데 감독 개빈 오카너와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물었더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대답이었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노선츠(The Innocents)


기든스가 유령을 보고 공포에 질려 있다.

‘남매에게 붙은 악령의 정체는…’ 심리공포물의 명작


헨리 제임스의 중편소설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을 원작으로 만든 전신에 오싹하는 냉기가 감돌게 만드는 1961년 작 영국산 흑백 심리공포영화다. 감독은 잭 클레이튼.
19세기 후반. 교외 대저택에서 사는 부유한 홀아비(마이클 레드그레이브)의 두 어린 조카들로 고아들인 플로라(파멜라 프랭클린)와 마일스(마틴 스티븐스)의 가정교사로 입주한 여자 기든스(데보라 카)가 집안에서 일어나는 괴현상의 원인을 캐내면서 경험하는 공포와 초현실적 현상을 다룬 영화다. 통속적인 충격적 장면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고 조명과 음악 그리고 기민한 연출과 깊이 있는 음산한 촬영 등에 의해 보는 사람의 심리를 겁에 질리게 만든다. 분위기로 겁주는 영화다.
플로라와 마일스는 모두 순진무구한 아이들인데 마일스가 동료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그러나 기든스는 그 이유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기든스는 창문에 비치는 여인의 유령과 함께 추하게 이글어진 남자의 모습을 목격한다.
기든스가 이를 가정부 그로스(멕스 젠킨스)에게 말하자 그로스는 여자는 전 가정교사인 제슬(클라이티 제섭)이고 남자는 저택 집사인 피터 퀸트(피터 윈가드)로 둘은 연인이었으나 모두 사망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생전 새도마조키스틱한 관계를 가졌으며 퀸트가 죽자 제슬은 집 부근 호수에 빠져 자살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이 두 사람의 죽음이 두 남매에게 괴이한 영향을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된다.
기든스는 남매가 죽은 연인들의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확신하고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 아이들을 악령에서 해방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에 플로라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도주한다. 이를 지켜보는 것이 제슬의 유령. 기든스는 이번에는 마일스에게 같은 시도를 하는데 이 때 남자 귀신이 나타난다. 기븐스가 마일스에게 이 남자의 이름을 말하라고 다그치자 마일스는 “퀸트”라고 말하고 쓰러져 죽는다. 그리고 기븐스는 마일스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서서히 공포감을 몰아가다가 마지막에 심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으스스한 공포영화의 명작이다. 영화음악으로 전자음악의 사용을 개척한 작품이기도 하다. 18일 하오 1시 LA카운티뮤지엄 내 빙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어퀘리어스(Aquarius)


클라라는 전 생애를 보낸 아파트를 자기 분신처럼 여긴다.

“내 생애가 담긴 아파트 재개발 절대 안돼”


브라질의 우아한 베테런 여배우 소니아 브라가(‘거미여인의 키스’)의 거의 허세에 가까운 위풍당당한 연기가 눈부신 진지하고 정열적인 인물에 관한 탐구다.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에 대한 여인의 끈질긴 저항과 자존을 지키려는 투쟁을 그린 브라질 영화로 훌륭하다.
제목은 브라질 동부의 해변도시 레시페에 있는 주인공 클라라(브라가)가 사는 2-3층 규모의 아파트 이름으로 이 아파트를 사서 고층 호화아파트를 지으려는 개발업자와 자신의 전 생애가 담긴 아파트를 고수하려는 클라라와의 치열한 신경전을 그렸다.
젊은 클라라의 이모의 70세 생일 파티로 시작되는데 이모가 아파트의 가구를 보면서 과거의 뜨거웠던 사랑의 행위를 회상하는 장면이 아름답고 자극적이다. 이어 장면은 현재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나이 먹은 클라라에게로 돌아온다. 은퇴한 음악평론가(옛 록과 클래식 음악이 많이 나오는데 방에 LP레코드가 즐비하다)인 클라라는 유방암 수술을 한 미망인으로 장성한 세 자녀가 있으나 혼자 친구 같은 가정부와 살면서 독립을 즐긴다. 
클라라는 매우 독립적인 여자로 거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인데 고독에 시달리기는 하나 이 역시 의젓하게 견디어낸다. 영화에 나이 먹은 사람의 고독의 기운이 가득한데 클라라가 육체적 욕망을 견디다 못해 남창을 불러 해소시키는 장면이 화끈하다. 
클라라의 투쟁은 개발업자가 클라라의 아파트를 사겠다고 시가보다 훨씬 웃도는 금액을 제시하고 끈질기게 매입을 시도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이혼한 딸까지 아파트를 팔라고 재촉한다.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다 이사 가고 클라라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클라라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데 이에 개발업자가 은근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클라라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영화가 스릴러 분위기마저 갖춘다.        
밀려드는 변화 속에 지나간 시간에 매어 달리는 여인의 서서히 진행되는 향수 짙은 드라마로 브라가가 혼자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데 브라가의 연기야 말로 경건하고 강인하며 또 뜨겁고 품위 있으며 그리고 우수가 가슴을 파고드는 위대한 것이다. 촬영도 아름답다. 클레버 멘도카 필호 감독. 성인용. 142분.★★★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막(Desierto)


모이세스(왼쪽)와 아델라가 살인자를 피해 숨고 있다.

밀입국자와 인간 사냥꾼의 사막 추격전


사막에서 벌어지는 생사를 다투는 추격과 도주의 스릴러. 긴장감과 스릴을 갖춘 흥미 있는 얘기로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아는 얘기여서 사실감이 있으나(그러나 매우 비현실적이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끔찍하며 유혈이 낭자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코넬 와일드가 나온 ‘벌거벗은 미끼’를 연상케 만드는 액션 스릴러이자 사회비판을 겸한 멜로드라마인데 깊이나 내적 성찰은 부족하다. 순전히 물리적 재미만을 추구한 영화로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 조나스 쿠아론이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멕시코에서 14명의 미국에로의 불법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싣고 사막을 달리던 트럭이 고장이 나자 이들과 2명의 안내자가 걸어서 미국으로 건너온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가 트럭에 남부군기를 달고 위스키를 병나발 부는 사이코 카우보이 샘(제프리 딘 모간). 샘은 강력한 라이플과 맹견 트랙커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나라’로 불법 침입하는 멕시칸들을 사살하는 것이 취미다. 그리고 그는 높은 바위 위에서 사막을 걷는 멕시칸들을 마치 오리사냥하듯이 하나씩 저격 살해한다.
여기서 살아 남은 사람이 5명이지만 그 중 하나는 트랙커에 목이 찢겨 죽고 끝까지 살아 남은 것이 오클랜드에 가족이 있는 미캐닉 모이세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젊은 여자 아델라(알론드라 히달고). 둘은 자기들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샘을 피해 바위와 모래의 열사의 사막을 가로질러 도주한다.
클라이맥스에 샘과 모이세스가 모래바위산을 맴돌면서 서로 쫓고 쫓기는 액션이 긴장감 있는데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샘이 사람을 파리 잡듯 하는 킬러가 돼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 설명이 없다. 그런데 샘은 동물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보다 더 슬퍼하는 무자비한 킬러다.
두 배우의 연기는 액션영화치곤 무난한 편이고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찍은 촬영이 좋다. 액션팬들이 좋아할 영화로 북소리가 주로 쓰인 음악이 좀 과장됐다. 성인용.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중국인들이 온다, 중국인들이 온다’

미^소간 냉전 중이던 지난 1966년 노만 주이슨이 감독하고 칼 라이너와 앨란 아킨 및 에바 마리 세인트가 나온 ‘러시아인들이 온다, 러시아인들이 온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름철 미 북동부 휴양도시 인근 해안에 좌초한 러시아 잠수함의 선원들이 발동기를 구하러 뭍에 오르면서 일어나는 혼란과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다.
그런데 지금 할리웃에는 중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붉은 오성기를 흔들며 할리웃 진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중국 최고의 갑부 왕지안린(사진)의 미디어^부동산회사 달리안 완다그룹. 완다는 먼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체인 AMC를 산데 이어 또 다른 체인인 카마이클의 매입을 시도하고 있다. 두 체인을 합하면 완다는 미국 내 최대 극장체인의 주인이 된다.
완다는 얼마 전에는 ‘다크 나잇’과 ‘주라기 세계’를 만든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달러에 샀고 최근에는 소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사가 투자한 영화의 내용에 대한 권한을 소유하게 됐다. 완다는 또 할리웃의 6개 메이저 중 하나를 매입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한편 완다는 현재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제작하는(NBC-TV 방영) 딕 클락 제작사(DCP)의 매입 절차에 들어갔다. 구입가는 무려 10억달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HFPA는 지난 11일 완다그룹의 고급 간부 우씨와 양측 변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였다.
이 자리에서 우씨는 “DCP는 주인만 바뀔 뿐이지 골든 글로브의 주체나 그 행사에는 아무 변화도 없다”면서 “완다그룹이 DCP를 매입하는 이유는 골든 글로브가 매력 있고 또 좋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16일에 왕 회장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완다의 할리웃 진출은 이 동네가 매력 있고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할리웃 산업을 어느 정도 장악하려는 파워플레이의 일환이다. 이런 의도는 왕 회장이 중국의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국인들에 의해 정해진 규칙을 바꾸려고 한다”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의도를 지닌 완다가 할리웃을 금권으로 잠식하면서 급기야 최근에는 16명의 연방의회 의원들이 완다의 할리웃 투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신을 법무부에 보냈다. 중국은 연예산업의 제1 목표를 ‘사회주의에 대한 봉사’로 여기는 공산주의 국가로 모든 연예물은 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 돈이 들어간 할리웃 영화들은 이 검열을 비켜가기 위해 자연히 당국의 비위에 맞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 돈이 투자와 배급을 주도하면 궁극적으로 제작도 좌지우지하게 되게 마련이라는 것. 게다가 왕 회장이 현 중국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의원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할리웃이 매카시즘 때 이어 또 다른 ‘적색홍열’을 앓을 우려마저 있다고 성급히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왕 회장에 질세라 최근 중국의 제2의 갑부인 잭마 회장의 알리바바그룹은 스필버그의 앰블린 픽처스와 공동제작 및 투자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마 회장은 앰블린의 주주가 됐다. 또 버뱅크에 본부를 둔 STX 엔터테인먼트도 각기 중국과 홍콩에 본부를 둔 거대 자본을 지닌 회사들과 투자협정을 맺었으며 라이언스게이트사도 얼마 전 후난 TV와 투자계약을 맺었다. 위안화의 위력이 대단하다.
중국은 북미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세계시장이고 수년 내로 최대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연간 국내 상영 외화 편수를 34편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할리웃의 대목시장인만큼 지금 할리웃의 대·소규모의 영화와 TV 작품 제작사들은 너도 나도 중국시장을 노리고 동방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할리웃의 영화와 TV 작품 제작사들이 서로 앞 다투어 중국회사들과 투자계약을 맺는 것도 이런 시장 진출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할리웃이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동원하고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영화에 중국배우를 쓰는 것. 그 좋은 일례가 맷 데이먼이 나온 ‘마션’에서 화성에 달랑 혼자 남은 데이먼을 구출하는 데 큰 공헌을 하는 것이 중국이었다. 또 올해 나온 히트작 ‘나우 유 시 미 2’에는 중국의 인기가수 제이 추가 나왔고 역시 올해 나온 ‘인디펜던스 데이: 리서전스’에는 배우 겸 가수인 앤젤라베이비가 전투기 조종사로 나와 외계인들을 무찔렀다. 그리고 판빙빙은 ‘X-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아이언 맨 3’에 리빙빙은 ‘트랜스포머즈: 에이지 오브 익스팅션’에 각기 나왔다.
그리고 내년에 나올 ‘스타 워즈: 로그 원’에는 무술배우 다니 옌과 지안 웽이 출연하고 ‘콩: 스컬 아일랜드’에는 징티안이 나온다. 현재 제작준비에 들어간 ‘주만지’ 신판에도 내용과 상관 없이 남녀를 불문하고 중국배우를 쓸 예정이라고 연예 전문지들이 보도했다. 이러니 ‘중국인들이 온다, 중국인들이 온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옴직도 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


냇 터너(가운데)가 노예들과 함께 백인들을 공격하고 있다.

1831년 버지니아주 흑인폭동 일으킨 냇 터너의 삶


1831년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흑인 노예들의 폭동과 이 폭동을 주도한 냇 터너의 삶을 그린 감정적으로 격하고 분노와 역사적 의식에 가득 찬 건강한 드라마로 흑인인 네이트 파커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도 했다. 흑백 갈등이 심한 요즘 시의에도 잘 맞는 소명의식을 지닌 작품인데 좋은 드라마이긴 하나 특별히 잘 만들었거나 예술적으로 창의적이진 못하다. 
지나치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식에 집념, 보는 사람을 심리적으로 강압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고 성실하게 보여주기는 하나 사건이 갖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및 도덕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진 못 했다. 
또 후반에 가서 파커는 과도하게 터너라는 개인 한 사람에 조명을 집중해 주변 인물이나 상황이 제대로 극적으로 처리되지 않아 허전한 감이 있다. 망치로 두드려 맞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도 극적 흥분감이나 흥미를 춘분히 경험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파커의 과거 개인적 문제 때문에 큰 화제가 됐다. 파커는 지난 1991년 펜 스테이트대에 다닐 때 룸메이트이자 레슬링팀 동료로 흑인인 진 셀레스틴(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과 함께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셀레스틴은 유죄판결을 받은 뒤 재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졌다. 그런데 둘을 고발한 여자는 지난 2012년 자살했다. 
제목은 미 영화사의 초기 거목인 D.W. 그리피스가 감독한 남북전쟁과 그 후의 얘기를 그린  대작 동명영화에서 따 왔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보고 “천둥으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이 영화는 흑인들을 강간과 약탈을 자행하는 원숭이들 같이 묘사하고 이들을 처벌하는 KKK를 영웅적 단체로 그려 인종차별영화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냇 터너(파커)는 목화농장주 새뮤얼(아미 해머)과 엘리자베스(페넬로피 앤 밀러) 부부의 소유. 가운이 기울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새뮤얼부부는 다른 농장주들보다 훨씬 관대해 엘리자베스는 남달리 총명한 어린 터너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는 커서 목사가 되는데 돈에 쪼들리는 새뮤얼은 터너를 데리고 이웃 농장을 돌면서 노예들에게 설교를 시킨 뒤 주인들로부터 사례비를 받는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묘사되고 백인들의 노예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묘사 된다. 그리고 터너는 아름다운 노예 체리(에이자 네이오미 킹)과 결혼해 현실에 적응하면서 산다. 그러나 터너가 백인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는 가혹한 채찍질을 당한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참혹한 삶에 서서히 터너의 눈이 떠지면서 그는 ‘압제자를 타도하라’는 성경의 말대로 동료 노예들을 규합, 폭동을 일으킨다. 도끼와 칼로 무장한 이들이 죽인 백인들은 55-65명 정도. 그러나 폭동은 이틀 만에 진압되고 터너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파커는 연출보다 연기력이 나은데 영화의 진행속도가 느려 단조롭기까지 하다. 또 파커의 변신과정에도 극적 신빙성이 결여됐다. 촬영은 좋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봐야할 영화다.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기차를 탄 여자(The Girl on the Train)


레이철이 기차 창 밖으로 이웃을 엿보고 있다.

알콜중독 이혼녀 기억상실로 범죄에 휘말려


싸구려 냄새가 나는 모조품 같은 치정살인 스릴러로 모양새는 그럴듯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이 깊이나 폭이 없이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폴라 호킨스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이혼녀인 알콜중독자가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살인사건에 휘말려드는 내용이 흥미진진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연출력이 무기력하다.
영화는 뉴욕 교외에 사는 이혼녀 레이철 왓슨(에밀리 블런트)이 하루에 두 차례 기차를 타고 집에서 직장이 있는 뉴욕을 왕복하면서 창밖을 통해 지나가는 집의 사람들을 정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얘기는 현재와 과거를 왕래하면서 내레이션 식으로 이어진다.
슬픔을 술로 달래는 레이철은 전 남편 탐(저스틴 테루)과 그의 새 아내 안나(레베카 퍼거슨)와 둘의 갓난 아기가 사는 집 근처에 산다. 그리고 술에 취해 이 집에 전화를 걸고 무단침입까지 한다. 레이철이 또 관심 깊게 엿보는 집이 섹시하고 아름다운 메이간(헤일리 베넷)과 그녀의 마초맨 남편 스캇 힙웰(루크 에반스). 그런데 메이간은 안나의 아기의 보모였다.
어느 날 레이철은 출근(그러나 그녀는 술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길에 메이간이 집의 발코니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 남자는 동네의 정신과의사 카말 압딕(에드가 라미레스가 소리소문도 없이 영화에서 사라진다). 세 남자와 세 여자가 얘기를 엮어 가는데 중심 플롯은 레이철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한 날 일어난 살인사건.
영화의 문제는 누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어 긴장감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 여섯 명의 인물들이 하나 같이 목석같은데 그마나 가장 나은 사람은 블런트. 매우 심각하게 연기하나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내용과 연기와 인물 개발 등이 다 부진한 영화이나 한 번 보고 버릴 공항 매점서 파는 소설의 천박한 재미 정도는 있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