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스파 나잇(Spa Night)


데이빗이 스파에서 몸을 씻고 있다.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시달리는 한인청년


LA 코리아타운에서 전형적인 한국인 스타일의 부모와 함께 사는 18세난 조용한 데이빗 조(조 서-올 선댄스 영화제서 연기상)의 세대 및 문화갈등과 함께 자신의 정체 추구를 담담하고 솔직하고 민감하며 또 가슴 아프게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그동안 코리아타운을 무대로 한 한국인 젊은이들의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이토록 통찰력 있고 모나지 않으면서 연민과 이해심 가득한 영화는 없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기대와 실망 그리고 동서양의 가치관의 차이와 함께 아메리칸 드림 문 밖에서 서성거리면서 자신의 좌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드라마가 차분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진실되게 그려졌다. 
데이빗의 고뇌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심각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 영화는 순전한 게이영화는 아니다. 
한국계 앤드루 안(30) 감독(‘오피니언’면 ‘주말산책’ 참조)의 데뷔작으로 그의 서두르지 않고 자상하게 관조하는 식의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는데 그와 함께 조 서의 고요하면서도 안으로 팽팽하니 감긴 연기가 돋보인다. 이 얘기는 미국에 사는 모든 한국인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것이나 마찬가지로 전 코리안-아메리칸들이 봐야 할 작품이다. 
코리아타운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패한 데이빗의 아버지 진(조연호)과 어머니 소영(김해리)은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좋은 대학(USC)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기독교를 믿는 한국 여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잘 살기를 바라지만 데이빗은 SAT 성적이 안 좋은 데다가 대학에 별 관심도 없다. 과묵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외톨이인 데이빗의 문제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 데이빗은 이를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쓰나 욕망은 용트림을 친다.
막일을 하면서 술에서 위안을 찾는 아버지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어머니가 데이빗을 비싼 SAT 과외학원에 집어넣자 데이빗은 부모를 돕는다고 스파의 일꾼으로 취직한다(영화는 스파에서 데이빗과 아버지가 서로 몸을 닦아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데이빗은 남자 손님들의 나체를 훔쳐보면서 죄의식과 욕망에 시달리는데 주인이 데이빗에게 스파에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라고 지시한다. 데이빗의 스파 안에서의 착잡한 표정과 훔쳐보는 눈길 그리고 어색한 행동에서 으스스한 분위기(촬영 김기진)가 스며나와 마치 스릴러를 보는 느낌이다. 
소영의 교회 지인인 수다쟁이 아주머니가 친절을 베푼다고 데이빗을 USC에 들어간 자기 아들 에디(태 송)과 함께 며칠을 보내게 하면서 데이빗은 술과 파티와 타운 노래방의 환락을 엿보게 되나 이런 것들이 데이빗이 시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위로해 주진 못한다. 데이빗의 고뇌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데 영화는 어떤 해결책을 내리지 못한 채 데이빗이 웨스턴 길을 따라 조깅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왜 데이빗은 그렇게 매일 같이 열심히 뛰는 것일까. 성인용. Strand.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돌주먹(Hands of Stone)


트레이너 레이(왼쪽)가 두란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4체급 세계 챔피언 권투선수 로베르토 두란 전기영화



권투영화인데 강펀치가 없다. 50년간의 선수생활을 통해 라이트급을 비롯해 미들급에 이르기까지 무려 4체급의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던 ‘돌주먹’이라는 별명의 파나마 권투선수 로베르토 두란(65)의 전기영화다.
주인공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주먹 하나로 역경을 극복하고 국민의 영웅이 되는 피와 땀의 승전보 그리고 승리에 도취한 방종과 몰락과 재기 및 로맨스 등 전기영화의 정석적인 궤도를 그대로 따라간 평범한 작품으로 강렬한 극적 높낮이가 결여됐으나 충분히 보고 즐길 만하다. 극적인 드라마로서 헤비급이 못 되고 라이트급에 그쳐 유감이지만.
영화는 특히 성질이 불같고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두란과 그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준 전설적 코치 레이 아르셀(로버트 드 니로)과의 관계를 뚜렷이 부각시키는데 레이는 두란에게 ‘전략’을 강조하면서 침착성을 챙겨주는 코치이자 정으로 그를 감싸 안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드니로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가 나온 역시 권투선수 전기영화인 ‘성난 황소’(Raging Bull)가 생각난다. ‘돌주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성난 황소’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가를 확인케 된다.
미국이 파나마운하를 관리하던 1970년대. 달동네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두란은 불량소년. 그의 미국인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버렸다. 영화는 제국주의적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묘사했다. 감독이 베네수엘라 태생의 조나산 자쿠보위즈여서 그럴까.
청년 두란(에드가 라미레스)은 가난하고 문맹이지만 콧대 하나는 높아 아름다운 고교 여학생 펠리시다드(아나 데 아르마스가 불덩이다)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구애를 하는데 만난지 30초만에 구혼하는 열혈한이다. 펠리시아드는 후에 두란의 아내가 되고 아이 여럿을 본 둘은 지금도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두란의 주먹실력을 먼저 간파한 사람은 파나마의 갑부로 두란의 매니저가 된 칼로스 엘레타(루벤 블라데스). 그러나 두란을 무려 18차례나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72세에 처음 두란을 만난 레이다. 레이는 두란의 안에 가둔 굶주린 분노와 이를 분출할 주먹질을 잘 배합할 줄 안 뛰어난 트레이너. 두란과 레이의 콤비에 의해 두란은 연전연승을 하나 뉴욕 마피아(존 투투로가 조용하게 겁주는 연기를 잘 한다)가 개입하면서 레이는 트레이너직을 떠난다.
촬영이 훌륭하고 액션도 박진한 권투장면 중에서 볼만한 것은 두란과 슈가 레이 레너드(팝스타 어셔)의 대결. 레너드가 생애 처음으로 패한 경기다. 승리감에 취한 두란은 먹고 마시면서 방종한 생활을 하는데 엘레타가 미국인 흥행사 단 킹과 두 사람의 재대결을 5개월 후로 잡으면서 체중이 40파운드나 증가한 두란은 몰락한다. 1980년 11월25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두란은 느닷없이 도중에 경기를 포기한다. 둘은 지금도 친구지간이다.
벗겨진 머리에 주름이 진 얼굴을 한 드 니로의 차분한 연기가 돋보이고 라미레스(TV 드라마 ‘칼로스’)의 연기도 강렬하다. 그러나 영화는 전반적으로 더러 허점이 있고 다소 절름거리는 연출로 매끈하게 흐르지를 못한다. PG-13. Weinstein.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파 나잇’의 앤드루 안




26일 개봉되는 ‘스파 나잇’(Spa Night-‘위크엔드’판 영화평 참조)에서 코리아타운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18세난 데이빗 조(조 서)의 삶을 통해 이민가족의 꿈과 현실과 좌절을 차분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앤드루 안(30·한국명 안기철·사진)을 최근 타운 내 한 식당에서 만났다. 어릴 때 주말 한글학교를 다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는 앤드루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영화에 대해 “내 영화는 무엇보다 가족 간의 사랑에 관한 것으로 각본을 쓸 때부터 그런 의도에서 썼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화의 상세한 면을 빼고는 대부분 내 경험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처럼 영화가 매우 솔직하다.
앤드루는 인터뷰 내내 부모 자랑과 함께 그들이 자기에게 베푼 사랑에 대한 보답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를 돕고 싶다고 거듭 말했는데 동성애자인 자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여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히 느껴졌다.
2011년 선댄스 영화제서 단편 ‘돌’(첫 생일)로 호평을 받은 앤드루의 첫 장편인 ‘스파 나잇’도 선댄스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앤드루는 “내 영화를 포함한 독립영화는 미국의 다양한 경험을 반영하는 문화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앤드루는 LA 인근 토랜스에서 성장했는데 타운서 한의원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비즈니스 컨설던트인 어머니도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여서 처음에는 자기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이젠 영화인이 된 것에 만족한다고. 자기 어머니도 데이빗의 어머니처럼 교회엘 나가는데 앤드루는 “부모님은 날 미 동부 뉴햄프셔에 있는 사립 중·고둥학교에 보낼 정도로 사랑했다”고 또 부모 자랑을 했다.
앤드루는 올 초 이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에 나갔을 때 처음엔 어떤 반응을 받을지 몰라 너무나 겁이 났다면서 그러나 조 서가 주연상을 받고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로 앤드루의 실력이 널리 알려져 그는 최근 굴지의 연예대행업체인 ICM과 계약을 맺었다. 다음 작품에 대해 물으니 ‘스파 나잇’보다는 규모가 큰 한국인 작가의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만 알려줬다.
영화 제목처럼 스파는 코리아타운의 상징물이 되다시피 했다고 말하는 앤드루는 자기도 타운 내 스파를 종종 찾는다면서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 영화는 자기가 부모와 함께 겪은 문화적 의식이요 가족의 전통을 묘사한 것이라면서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있어 나이 먹은 어른들이 다소 불편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영화는 모든 우리 이민가족의 실상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인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들은 서브타이틀을 빼고 보면 더 실감이 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파 나잇’은 지난 4월에 열린 전주영화제에서도 호응을 받았는데 8세 때 처음 한국을 방문한 앤드루의 22년만의 재방문이었다. 감동적인 방문으로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다. 선댄스의 후원과 푼돈을 모아 만든 ‘스파 나잇’에서 데이빗의 부모 역을 맡은 두 배우는 한국 배우들. 앤드루의 열성과 진지성을 깨달아 조연호씨(아버지 역)와 김혜리(어머니 역)씨가 선선히 출연에 응해 LA까지 왔다. 모은 돈은 몽땅 제작비에 투입해 앤드루는 연출료는 고사하고 수중에 단 1페니도 지닌 것이 없다고 한다.
자신도 언젠가 가족을 갖고 싶다면서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 앤드루는 한국서 자란 한국 젊은이들보다 더 한국적이다. 소주를 마실 때 잔을 들고 얼굴을 옆으로 돌린채 마시기에 내가 “거 참 보기 드문 모습이네”라고 말했더니 앤드루는 “지금도 부모 앞에서 술 마시기가 매우 어렵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빗 역을 고르는데 무려 1년 이상이 걸렸는데 응모자 중에는 이름을 들면 알만한 한국계 배우도 있었지만 조 서를 보자마자 바로 ‘이 사람이다’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스포츠광인 조 서가 영화 촬영기간에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그의 조깅장면 중 일부는 대역을 써야 했다.      
보수적인 한국인 사회에서 게이라는 정체를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아는 앤드루는 그래서 영화에서 ‘한국인+게이’라는 두 가지의 정체를 결합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영화는 또 다분히 감정적이다. 앤드루는 특히 데이빗이 술에 취해 리빙룸 바닥에 누워 자는 아버지의 입에 물린 이쑤시개를 빼내는 장면이 마음에 간다고 말했는데 부자 간의 애정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다.
한국인 감독으로는 이창동과 홍상수를 좋아한다는 앤드루는 브라운대에 이어 칼아츠에서 영화감독 석사학위를 받았고 선댄스랩에서 각본 수련을 받았다. 인터뷰 후 “좋은 앞날을 빈다”고 말하니 앤드루는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댕큐 베리 머치”라며 미소를 지었다.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벤-허(Ben-Hur)


주다 벤-허(앞)와 메살라가 전차경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대량으로 축소된 내용과 연출 그리고 연기 및 액션과 감정 등 모든 면에서 볼품 없는 영화다. 명화에 개칠을 한 것 같은 오명을 뒤집어쓸 작품으로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도 컴퓨터로 처리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편집을 한데다가 전체적인 장관을 보여주기 보다는 클로스-업에 치중, 흥분이 안 된다. 
루 월래스가 남북전쟁 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벤-허’는 1925년 라몬 나바로가 주연한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스펙태클한 대하 서사극으로 다시 만들어져 오스카상을 11개나 탔다. 이 두 영화에 비하면 카자크스탄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2008년작 ‘원티드’)가 만든 이 영화는 외양과 내용 모든 면에서 왜소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마치 기독교 TV 방송사에서 만든 영화 같다. 전편에서는 예수가 얼굴이나 음성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수(브라질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의 역할 비중이 막강하다. 그가 재판 끝에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향해 걷고 이어 처형 당하면서 고통하는 모습과 음성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동과 은밀한 뉘앙스 등 여러 가지로 와일러의 작품에 접근하지 못할 영화다. 도대체 왜 그리고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여러 면에서 수정했는데 만든 사람들에 의하면 와일러의 것이 배신과 증오와 복수의 영화라면 이것은 화해와 용서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터무니가 없는 내용 변경이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기원 후 25년. 유대인 귀족인 주다 벤-허(잭 휴스턴-거장 존 휴스턴의 손자)와 로마인인 메살라(토비 케벨)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 메살라가 벤-허 가문의 양자로 컸다. 그리고 메살라는 벤-허의 여동생 네이오미(에이엘레 주로)를 사랑한다. 후에 로마로 가서 장군이 돼 정복자로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메살라가 벤-허와 원수가 된 까닭은 네이오미와의 결합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
메살라에 의해 노예가 된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신세가 되는데 거기서 살아 남아 경주마의 주인인 아프리카-아랍계 일데림(모간 프리만)을 만나 그의 4필의 백마를 몰게 된다. 그리고 메살라와 전차경주에서 맞서는데. 와일러의 영화나 이 영화나 모두 전차경주 장면은 10분 정도 계속되는데 전자에 비해 이것은 긴강감이나 박력 그리고 스릴이 훨씬 미약하다. 
와일러의 것은 상영시간이 212분이었고 이것은 124분이어서 많은 얘기가 생략됐는데 배우들이 연기도 표현에 높낮이가 없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음악. 와일러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로 클래식인데 이 영화는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서 팝뮤직을 썼다. PG-13. Paramoun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의 개들(War Dogs)


데이빗(왼쪽)과 에프라임이 무기를 싣고 바그다드에 왔다.

무기 팔아 부자 됐다가 몰락하는 두 젊은이


사기를 쳐 빈자에서 벼락부자가 됐다가 다시 몰락하는 두 젊은이들의 액션과 코믹 터치를 가미한 드라마로 실화다. 제목은 전쟁통에 무기를 팔아먹어 돈을 번 모리배를 일컫는 말이다. ‘행오버’를 감독한 타드 필립스(공동 각본)가 연출한 이 영화는 조야하고 상스럽고 시끄럽고 또 우스운 삐딱한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풍자적 요소가 담긴 재미있는 얘기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조나 힐의 에너지가 넘치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대사가 일품으로 겁 없이 목적을 위해 투우처럼 달려드는 그가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사방팔방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교통혼잡과도 같은 작품으로 날탕과도 같은 두 젊은이의 사기에 놀아난 관료체제를 신나게 조소하고 있기도 하다.
마사지사로 플로리다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20대의 데이빗(마일스 텔러)은 지극히 무미건조한 젊은이. 그가 오래간만에 어렸을 때의 친구 에프라임(조나 힐)을 만나면서 데이빗의 따분한 삶이 완전히 바뀐다. 뚱보 에프라임은 입이 걸고 마약을 즐기는 한탕주의자요 총기 숭배자로 그의 롤모델은 영화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이라크전쟁 중에 무기를 군납해 돈을 벌 아이디어를 가진 에프라임은 이판사판인 데이빗을 조수로 써 먼저 CIA에 무기를 납품해 상당한 이득을 본다. 때는 정부가 모든 군납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여서 에프라임과 데이빗은 모든 군납업자의 내역이 공개된 정부의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남보다 싼 값으로 군납신청을 한다. 
그래서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대량의 총기를 팔아 큰 돈을 번다. 그러나 이 계약이 성사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은데 둘은 이를 위해 요르단까지 가서 총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바그다드까지 위험한 길을 달린다. 이 부분이 긴장감과 스릴 있다. 
둘은 이제 사무실까지 차리고 직원도 고용한 번듯한 회사 사장 노릇을 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베가스에서 열리는 무기 엑스포에 참가한다. 이들 앞에 군납업자 면허를 박탈당한 멋쟁이(브래들리 쿠퍼)가 나타나 큰 건이 있다고 동업 제의를 한다. 알바니아에 남아 있는 냉전시대 소련제 무기들을 사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는 것. 3억달러짜리 장사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힐이 하도 설쳐 대서 그런지 연기파인 텔러가 기를 못 쓴다. 
R. WB.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영화




최근 블락버스터와 인디즈(독립영화)를 포함해 한국영화 9편을 봤다. 대부분 보고 즐길만한 수준급 영화들로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 바로 이거다”하고 속 깊이 감동할만한 예술성과 재미를 절묘하게 혼합한 영화는 없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부산행’(Train to Busan^사진)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좀비영화. 어린 딸과 함께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발 부산행 특급열차에 탄 아버지(공유)와 승객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공포액션스릴러다. 좀비영화치곤 감정적인 면과 함께 한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메시지도 있는데 기술과 연기도 좋다. 연상호감독.
역시 현재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한 한국군 특공대(대장 역 이정재)의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첩보전 액션스릴러다. 한국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해 이 영화도 액션에 감상적인 부분을 섞었는데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즐길만하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순전히 양념 구실. 이재한감독.
일제시대가 배경인 ‘아가씨’(The Handmaiden)는 폭력적인 박찬욱감독의 작품. 사기꾼 일당의 일원인 숙희(김태리)가 선배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 아가씨(김민희)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드라마다.
칸영화제서 상을 받은 미술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와 프로덕션 디자인 및 연기 등 외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다. 이 호기심용 오락영화의 문제는 박감독의 잔인성. 오래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게 자신의 내면이 어둡다고 말한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랬듯이 영화에서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는데 여기서도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고 드릴로 손을 꿰뚫는 가학성을 노출한다. 또 숙희와 아가씨의 전라의 노골적인 섹스신도 너무 길다. 인물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어대사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면 일본영화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중인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는 고종의 딸로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조국으로 탈출시키려는 반일투사들의 서스펜스액션스릴러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덕혜옹주와 역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영친왕의 탈출시도를 둘러싼 허구인데 액션과 스릴 위주의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허진호감독.
‘철원일기’(End of Winter)는 촬영, 대사, 연기 및 내용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독립영화. 평생을 철원의 고교교사로 재직한 남자(문창길)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있은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하면서 일어나는 삐딱한 가족드라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독립영화의 티를 내려고 한 흔적이 역력해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환감독.
‘4등’(4th Place)은 자식의 성취도에 지나치게 집념하는 어머니(이항나)와 어린 아들 준호(유재상) 그리고 준호의 괴짜 수영코치(박해준)에 관한 드라마. 1등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판한 영화로 유재상이 침착하게 호연한다. 자식이 1등하기만을 고대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정지우감독.
‘계춘할망’(Canola)은 연기와 내용이 다 좋은 아담하고 소박한 영화. 제주도해녀 계춘(윤여정이 다양한 표정연기를 잘 한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지 12년만에 되찾는다. 왜 혜지는 12년만에 할망(제주도방언으로 할머니)을 찾아 왔을까. 그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다시 사라진다. 끝 부분까지 잘 나가던 영화의 결점은 사족이나 다름없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요 긴 결말. 창감독.
‘우리들’(The World of Us)은 아동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섬세하고 민감한 작품. 외톨이 선(최수인)과 선의 유일한 친구인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동심의 미묘한 심리지도를 곱고 자애롭게 그렸는데 최수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윤가은감독.
그러나 이란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인 ‘친구집이 어디지’ ‘천국의 아이들’ ‘하얀풍선’ 등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모자란다.        
공상과학영화 스타일의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는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생선이 된 청년(이광수)을 통해 청년실업, 금전만능주의, 학벌위주, 편파적인 언론, 사법부의 비리 및 촛불시위와 소외계층의 실상 등 한국사회의 모든 비리를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영화. 보통을 낙오로 취급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한국의 병폐를 고발했는데 재미있고 의미도 있으나 비판의식이 지나쳐 체하겠다. 권오강감독.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젠킨스 부인이 카네기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능 없지만 오페라 가수 꿈꾸는 젠킨스의 실화영화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실화로 1940년대 음치에 가까운 맨해턴 사교계 여자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가 자신이 오페라 가수의 실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뮤지컬 소극이다. 상냥하고 우습고 재미있고 기이한 내용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즐길 만한 영화이나 다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심심하기까지 하다.         
헬렌 미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여왕’을 만든 영국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작품으로 영국에서 찍었는데 영화가 양념이 덜 된 무공해 식품처럼 맵고 짜고 신 맛이 없어 자극성을 못 느끼겠다. 이 내용은 카트린 프로를 주연으로 지난 2015년 시간과 장소를 1920년대 파리로 옮겨 ‘마게리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프랑스제가 영국제보다 감칠맛이 더 난다. 
부잣집 상속녀로 오페라광인 젠킨스 부인(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직접 ‘베르디클럽’이라는 음악 사교모임을 만들어 회원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데다가 노래 소리가 비명처럼 찢어지는 듯해 듣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라는 것. 제스처도 아주 어색하고 서투르다. 그러나 회원들은 박수를 친다. 일종의 희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등의 노래를 마치 군인이 적을 공격하듯이 무찌르고 들어가는데 젠킨스를 철저히 보호하고 극진히 돌보는 사람이 그녀의 두 번째 남편으로 실패한 영국인 배우 세인트 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 그러나 둘은 동거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부부로 베이필드에겐 따로 애인 캐슬린(레베카 퍼거슨)이 있다.
천사의 깃털 날개와 함께 머리를 티아라로 장식하길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젠킨스는 소규모의 클럽회원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원대한 꿈인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맹훈련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반주자를 고른다. 많은 후보 중에 낙점된 사람이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적인 젊은 코스메 맥문(사이먼 헬버그). 
맥문은 젠킨스의 노래를 듣고 아연실색하는데 보수가 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반주자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구겨질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이래서 젠킨스와 베이필드와 맥문 등 셋의 젠킨스 카네기홀 무대진출 작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마침내 1944년 카네기홀 리사이틀이 결정됐다. 많은 표가 2차 대전에서 귀향한 군인들에게 제공됐지만 소프라노 릴리 폰스 등 프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도 참석한다. 젠킨스의 비명소리에 많은 군인들은 야유를 보내나 일부는 격려의 박수를 친다. 그러나 이튿날 평론은 가혹하기 짝이 없고 그 때까지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몰랐던 젠킨스는 크게 낙망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젠킨스는 리사이틀 후 1달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젠킨스는 첫 남편으로부터 전염된 매독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 이 병이 그녀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념하는 순수한 사람의 꿈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데 스트립이야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하고 오래간만에 보는 그랜트도 매력이 있다. 그러나 상감은 맥문의 연기. 그가 말 대신 얼굴로 표현하는 젠킨스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일품이다. 코미디치곤 농담이 신선치 못하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