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벤-허(Ben-Hur)


주다 벤-허(앞)와 메살라가 전차경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대량으로 축소된 내용과 연출 그리고 연기 및 액션과 감정 등 모든 면에서 볼품 없는 영화다. 명화에 개칠을 한 것 같은 오명을 뒤집어쓸 작품으로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도 컴퓨터로 처리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편집을 한데다가 전체적인 장관을 보여주기 보다는 클로스-업에 치중, 흥분이 안 된다. 
루 월래스가 남북전쟁 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벤-허’는 1925년 라몬 나바로가 주연한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스펙태클한 대하 서사극으로 다시 만들어져 오스카상을 11개나 탔다. 이 두 영화에 비하면 카자크스탄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2008년작 ‘원티드’)가 만든 이 영화는 외양과 내용 모든 면에서 왜소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마치 기독교 TV 방송사에서 만든 영화 같다. 전편에서는 예수가 얼굴이나 음성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수(브라질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의 역할 비중이 막강하다. 그가 재판 끝에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향해 걷고 이어 처형 당하면서 고통하는 모습과 음성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동과 은밀한 뉘앙스 등 여러 가지로 와일러의 작품에 접근하지 못할 영화다. 도대체 왜 그리고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여러 면에서 수정했는데 만든 사람들에 의하면 와일러의 것이 배신과 증오와 복수의 영화라면 이것은 화해와 용서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터무니가 없는 내용 변경이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기원 후 25년. 유대인 귀족인 주다 벤-허(잭 휴스턴-거장 존 휴스턴의 손자)와 로마인인 메살라(토비 케벨)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 메살라가 벤-허 가문의 양자로 컸다. 그리고 메살라는 벤-허의 여동생 네이오미(에이엘레 주로)를 사랑한다. 후에 로마로 가서 장군이 돼 정복자로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메살라가 벤-허와 원수가 된 까닭은 네이오미와의 결합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
메살라에 의해 노예가 된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신세가 되는데 거기서 살아 남아 경주마의 주인인 아프리카-아랍계 일데림(모간 프리만)을 만나 그의 4필의 백마를 몰게 된다. 그리고 메살라와 전차경주에서 맞서는데. 와일러의 영화나 이 영화나 모두 전차경주 장면은 10분 정도 계속되는데 전자에 비해 이것은 긴강감이나 박력 그리고 스릴이 훨씬 미약하다. 
와일러의 것은 상영시간이 212분이었고 이것은 124분이어서 많은 얘기가 생략됐는데 배우들이 연기도 표현에 높낮이가 없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음악. 와일러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로 클래식인데 이 영화는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서 팝뮤직을 썼다. PG-13. Paramoun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의 개들(War Dogs)


데이빗(왼쪽)과 에프라임이 무기를 싣고 바그다드에 왔다.

무기 팔아 부자 됐다가 몰락하는 두 젊은이


사기를 쳐 빈자에서 벼락부자가 됐다가 다시 몰락하는 두 젊은이들의 액션과 코믹 터치를 가미한 드라마로 실화다. 제목은 전쟁통에 무기를 팔아먹어 돈을 번 모리배를 일컫는 말이다. ‘행오버’를 감독한 타드 필립스(공동 각본)가 연출한 이 영화는 조야하고 상스럽고 시끄럽고 또 우스운 삐딱한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풍자적 요소가 담긴 재미있는 얘기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조나 힐의 에너지가 넘치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대사가 일품으로 겁 없이 목적을 위해 투우처럼 달려드는 그가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사방팔방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교통혼잡과도 같은 작품으로 날탕과도 같은 두 젊은이의 사기에 놀아난 관료체제를 신나게 조소하고 있기도 하다.
마사지사로 플로리다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20대의 데이빗(마일스 텔러)은 지극히 무미건조한 젊은이. 그가 오래간만에 어렸을 때의 친구 에프라임(조나 힐)을 만나면서 데이빗의 따분한 삶이 완전히 바뀐다. 뚱보 에프라임은 입이 걸고 마약을 즐기는 한탕주의자요 총기 숭배자로 그의 롤모델은 영화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이라크전쟁 중에 무기를 군납해 돈을 벌 아이디어를 가진 에프라임은 이판사판인 데이빗을 조수로 써 먼저 CIA에 무기를 납품해 상당한 이득을 본다. 때는 정부가 모든 군납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여서 에프라임과 데이빗은 모든 군납업자의 내역이 공개된 정부의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남보다 싼 값으로 군납신청을 한다. 
그래서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대량의 총기를 팔아 큰 돈을 번다. 그러나 이 계약이 성사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은데 둘은 이를 위해 요르단까지 가서 총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바그다드까지 위험한 길을 달린다. 이 부분이 긴장감과 스릴 있다. 
둘은 이제 사무실까지 차리고 직원도 고용한 번듯한 회사 사장 노릇을 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베가스에서 열리는 무기 엑스포에 참가한다. 이들 앞에 군납업자 면허를 박탈당한 멋쟁이(브래들리 쿠퍼)가 나타나 큰 건이 있다고 동업 제의를 한다. 알바니아에 남아 있는 냉전시대 소련제 무기들을 사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는 것. 3억달러짜리 장사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힐이 하도 설쳐 대서 그런지 연기파인 텔러가 기를 못 쓴다. 
R. WB.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영화




최근 블락버스터와 인디즈(독립영화)를 포함해 한국영화 9편을 봤다. 대부분 보고 즐길만한 수준급 영화들로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 바로 이거다”하고 속 깊이 감동할만한 예술성과 재미를 절묘하게 혼합한 영화는 없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부산행’(Train to Busan^사진)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좀비영화. 어린 딸과 함께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발 부산행 특급열차에 탄 아버지(공유)와 승객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공포액션스릴러다. 좀비영화치곤 감정적인 면과 함께 한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메시지도 있는데 기술과 연기도 좋다. 연상호감독.
역시 현재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한 한국군 특공대(대장 역 이정재)의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첩보전 액션스릴러다. 한국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해 이 영화도 액션에 감상적인 부분을 섞었는데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즐길만하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순전히 양념 구실. 이재한감독.
일제시대가 배경인 ‘아가씨’(The Handmaiden)는 폭력적인 박찬욱감독의 작품. 사기꾼 일당의 일원인 숙희(김태리)가 선배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 아가씨(김민희)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드라마다.
칸영화제서 상을 받은 미술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와 프로덕션 디자인 및 연기 등 외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다. 이 호기심용 오락영화의 문제는 박감독의 잔인성. 오래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게 자신의 내면이 어둡다고 말한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랬듯이 영화에서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는데 여기서도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고 드릴로 손을 꿰뚫는 가학성을 노출한다. 또 숙희와 아가씨의 전라의 노골적인 섹스신도 너무 길다. 인물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어대사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면 일본영화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중인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는 고종의 딸로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조국으로 탈출시키려는 반일투사들의 서스펜스액션스릴러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덕혜옹주와 역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영친왕의 탈출시도를 둘러싼 허구인데 액션과 스릴 위주의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허진호감독.
‘철원일기’(End of Winter)는 촬영, 대사, 연기 및 내용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독립영화. 평생을 철원의 고교교사로 재직한 남자(문창길)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있은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하면서 일어나는 삐딱한 가족드라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독립영화의 티를 내려고 한 흔적이 역력해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환감독.
‘4등’(4th Place)은 자식의 성취도에 지나치게 집념하는 어머니(이항나)와 어린 아들 준호(유재상) 그리고 준호의 괴짜 수영코치(박해준)에 관한 드라마. 1등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판한 영화로 유재상이 침착하게 호연한다. 자식이 1등하기만을 고대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정지우감독.
‘계춘할망’(Canola)은 연기와 내용이 다 좋은 아담하고 소박한 영화. 제주도해녀 계춘(윤여정이 다양한 표정연기를 잘 한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지 12년만에 되찾는다. 왜 혜지는 12년만에 할망(제주도방언으로 할머니)을 찾아 왔을까. 그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다시 사라진다. 끝 부분까지 잘 나가던 영화의 결점은 사족이나 다름없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요 긴 결말. 창감독.
‘우리들’(The World of Us)은 아동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섬세하고 민감한 작품. 외톨이 선(최수인)과 선의 유일한 친구인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동심의 미묘한 심리지도를 곱고 자애롭게 그렸는데 최수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윤가은감독.
그러나 이란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인 ‘친구집이 어디지’ ‘천국의 아이들’ ‘하얀풍선’ 등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모자란다.        
공상과학영화 스타일의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는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생선이 된 청년(이광수)을 통해 청년실업, 금전만능주의, 학벌위주, 편파적인 언론, 사법부의 비리 및 촛불시위와 소외계층의 실상 등 한국사회의 모든 비리를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영화. 보통을 낙오로 취급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한국의 병폐를 고발했는데 재미있고 의미도 있으나 비판의식이 지나쳐 체하겠다. 권오강감독.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젠킨스 부인이 카네기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능 없지만 오페라 가수 꿈꾸는 젠킨스의 실화영화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실화로 1940년대 음치에 가까운 맨해턴 사교계 여자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가 자신이 오페라 가수의 실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뮤지컬 소극이다. 상냥하고 우습고 재미있고 기이한 내용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즐길 만한 영화이나 다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심심하기까지 하다.         
헬렌 미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여왕’을 만든 영국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작품으로 영국에서 찍었는데 영화가 양념이 덜 된 무공해 식품처럼 맵고 짜고 신 맛이 없어 자극성을 못 느끼겠다. 이 내용은 카트린 프로를 주연으로 지난 2015년 시간과 장소를 1920년대 파리로 옮겨 ‘마게리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프랑스제가 영국제보다 감칠맛이 더 난다. 
부잣집 상속녀로 오페라광인 젠킨스 부인(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직접 ‘베르디클럽’이라는 음악 사교모임을 만들어 회원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데다가 노래 소리가 비명처럼 찢어지는 듯해 듣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라는 것. 제스처도 아주 어색하고 서투르다. 그러나 회원들은 박수를 친다. 일종의 희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등의 노래를 마치 군인이 적을 공격하듯이 무찌르고 들어가는데 젠킨스를 철저히 보호하고 극진히 돌보는 사람이 그녀의 두 번째 남편으로 실패한 영국인 배우 세인트 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 그러나 둘은 동거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부부로 베이필드에겐 따로 애인 캐슬린(레베카 퍼거슨)이 있다.
천사의 깃털 날개와 함께 머리를 티아라로 장식하길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젠킨스는 소규모의 클럽회원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원대한 꿈인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맹훈련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반주자를 고른다. 많은 후보 중에 낙점된 사람이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적인 젊은 코스메 맥문(사이먼 헬버그). 
맥문은 젠킨스의 노래를 듣고 아연실색하는데 보수가 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반주자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구겨질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이래서 젠킨스와 베이필드와 맥문 등 셋의 젠킨스 카네기홀 무대진출 작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마침내 1944년 카네기홀 리사이틀이 결정됐다. 많은 표가 2차 대전에서 귀향한 군인들에게 제공됐지만 소프라노 릴리 폰스 등 프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도 참석한다. 젠킨스의 비명소리에 많은 군인들은 야유를 보내나 일부는 격려의 박수를 친다. 그러나 이튿날 평론은 가혹하기 짝이 없고 그 때까지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몰랐던 젠킨스는 크게 낙망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젠킨스는 리사이틀 후 1달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젠킨스는 첫 남편으로부터 전염된 매독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 이 병이 그녀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념하는 순수한 사람의 꿈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데 스트립이야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하고 오래간만에 보는 그랜트도 매력이 있다. 그러나 상감은 맥문의 연기. 그가 말 대신 얼굴로 표현하는 젠킨스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일품이다. 코미디치곤 농담이 신선치 못하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형제인 토비(오른쪽)와 태너는 은행빚을 갚기 위해 은행을 턴다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 액션 드라마


액션과 인물 개발, 광활하고 쓸쓸한 모습의 자연풍경 그리고 비가조의 음악과 뛰어난 연기와 탄탄이 조여진 연출로 만들어진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로 오래간만에 보는 준수한 액션 드라마다. 
그나마 남아 있다가 은행 개발과 같은 현대의 병해로 인해 멸종되어 가는 옛 서부시대의 정취를 그리워하고 비탄해 하는 만가이기도 한데 급작스럽고 작열하는 액션과 게으름을 피우다시피 하는 인물 간의 유머와 조롱기가 섞인 대사와 관계 그리고 형제애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역작이다.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로 강도질을 할 수밖에 없게 된 형제와 은행 빚에 쪼들리다 못해 차압위기에 놓인 쓸모없이 된 목장 그리고 형제를 쫓는 법집행자들 모두에 대해 연민과 이해심이 가득한 심정으로 관조하고 있다. 
텍사스 서부의 황무지가 되다시피 한 목장을 소유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는 형제. 이혼한 두 아들의 아버지 토비는 침착하고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인 반면 1년 전에 출옥한 태너는 무모하고 폭력적이요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들의 목장은 차압위기에 놓였는데 영화는 은행을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로 그렸다.
토비는 목장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은행빚을 갚기 위해 태너와 함께 은행강도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작은 마을의 은행을 터는데 현찰도 단위가 작은 것만 가져간다. 은행 문이 채 안 열려 기다렸다가 강도질을 하는 것을 비롯해 폭력적인 범죄에 유머를 덧칠했다. 이들은 여러 탕 강도질을 한 뒤 돈세탁을 위해 오클라호마의 아메리칸 인디언 카지노에 들러 일단 돈을 칩으로 바꿨다가 이를 다시 현찰로 교환한다. 
둘을 쫓는 것이 은퇴를 앞둔 나이 먹은 텍사스 레인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와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피가 섞인 마커스의 부하 알베르토(길 버밍햄). 강도질과 도주와 추격과 총격전이 생동감과 함께 신선하고 박력 있다.
이런 폭력 속에 토비와 태너 그리고 마커스와 알베르토의 인간관계와 대사가 진지하고 심도 있게 묘사되고 얘기되는데 유머 또한 넉넉하다. 특히 마커스가 알베르토를 상대로 하는 말 속에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조롱과 농담이 섞여 있는데 악의적이라기보다 사라져버린 서부와 용맹한 인디언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운이 담겨 있다. 강도질도 마치 제시 제임스의 그것처럼 거의 미화하다시피 했다. 
폐허가 된 서부 광야와 목장과 사람들이 버린 집들이 즐비한 동네의 모습을 넓은 각도로 찍은 촬영이 보기 좋다. 뛰어난 것은 연기들이다. 파인의 차분한 연기와 꽉 조였다가 폭죽 터지는 것 같은 포스터의 연기와 콤비가 나무랄 데 없이 좋고 특히 노련한 브리지스의 체념과 예지와 고독이 가득한 모습과 나태한 태도가 그가 몸 담은 사라져가는 서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향수감이 가득하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 R. CBS Film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로이라인 킴치




얼마 전 지금 독일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독일인 동료 엘마 비블로부터 e-메일이 날아왔다. 지금 베를린에서는 김치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데 네 칼럼에 그 얘기를 쓰면 어떻겠느냐면서 자기가 한국식당 ‘프로이라인 킴치’(Fraulein Kimchi·사진) 앞에서 목격한 경험담과 함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한 독일인 노부부가 ‘프로이라인 킴치’ 앞에서 나누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인이 한다는 소리가 “저것 봐요. 저 여자 이름이 킴치네. 참 예쁜 이름이기도 하지”라고 하더라는 것. 물론 이 부부는 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다른 독일인 부부가 이 노부부에게 김치에 대해 자상히 설명해 주면서 ‘코리안 자우어크라우트’인 김치가 독일에서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엘마는 독일에서 ‘킴칠리셔스’(김치와 영어로 맛있다는 뜻의 딜리셔스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생겼다면서 자기도 김치 팬이라고 부언했다. 물론이다. 내가 엘마를 데리고 코리아타운의 한국식당에 데려가 갈비와 함께 김치를 먹였으니까.
그래서 엘마가 가르쳐준 대로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보니 베를린 김치열풍의 주인공은 한국인 로렌 리씨. 한국에서 태어나 토론토와 LA에서 성장, 지난 2007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로렌씨는 8세 때부터 요리하기를 시작했는데 이모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지금 로렌씨는 베를린에서 가장 뜨거운 각광을 받고 있는 새 셰프 중 하나로 김치뿐만 아니라 한국과 독일과 캘리포니아 요리를 혼합한 음식으로 베를린 시민들의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로렌씨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김치 아가씨’인 ‘프로이라인 킴치’로 로렌씨는 식당 경영 외에도 김치요리 강좌에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하면서 독일에 김치 맛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TV와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도 로렌씨가 만든 ‘킴치 라멘버거’를 비롯해 그녀의 김치요리를 보도하면서 김치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식이어서 더 좋다고 칭찬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전 세계 외국인들로 구성된 HFPA의 동료기자들에게 김치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난 전에 코리아타운에 살아서 김치를 꽤나 많이 먹어 봤다. 처음 먹었을 때 느낀 새콤한 맛이 좋아서 이젠 코리아타운에 가기만 하면 김치를 찾게 된다. 한국하면 김치부터 생각난다.’(티나 크리스튼슨-덴마크)
‘난 한국 김치를 사랑한다! 내게 매운 김치를 제공하던 한국인 이웃이 최근에 이사를 해 이젠 내가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김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효식품으로 타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오드 모리스-노르웨이)
‘김치는 오랫동안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왔다. 쌀밥 위에 김치만 있으면 다른 음식 필요 없지.’(유끼꼬 나까지마-일본).
‘난 김치를 사랑해. 먹을수록 자꾸 더 먹고 싶게 만들어요.’(재넷 네팔레스-필리핀)
‘난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 김치를 맛본 좋은 경험이 있다. 비록 한국인들과 다른 입맛을 지녔지만 김치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기운을 넘치게 만드는 한국 음식만의 특성을 지닌 맛 좋은 요리다.’(세르게이 라클린-러시아).
‘난 코리안 바비큐를 좋아하는데 김치 없인 먹을 수가 없지.’(메헤르 타트나-인도)
‘난 김치를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전 세계가 알아야 할 음식이다. 맛있고 채소로 만든 부드러운 건강식으로 무슨 음식과 같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불고기와 김치는 나의 새 집념으로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루이 코임브라-포르투갈).
그런데 팔레스타인계 유대인인 샘 아시는 내게 “김치가 뭐지”라고 되물어왔다. 무식한 친구 같으니라구.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HFPA 동료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 온 맷 데이먼도 기자회견에서 내게 “서울에서 김치 잘 먹었다”고 말했고 최근 한국인 부인과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도 “엄마”(장모)가 해주는 김치를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줬었다. 그런데 한국사람 하고 살면서도 김치를 안 먹는 사람이 우디 알렌이다. 우디는 기자회견서 내게 “난 김치가 너무 매워 안 먹는다. 그러나 내 아내 순이와 아이들은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치는 종류도 많다. 배추김치, 무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나박김치, 백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부추김치, 동치미, 고들빼기 등 외에도 수십가지에 이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옛날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김장을 담그면서 만들어주던 김장 속을 담은 소금에 절인 배추다.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맵고 얼큰한 그 맛이야말로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서 군침이 절로 흐른다.
피코 블러버드에 있는 추어탕집에 들어가니 벽에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써 붙여져 있다. 그렇다.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다. 모두들 많이 먹고 건강하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9일 화요일

자살 특공대(Suicide Squad)


자살 특공대원들은 7,000년 묵은 마녀와 싸운다.

흉악범들로 조직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액션


필자가 보기엔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소음과 파괴와 혼란의 난장판인데 이런 만화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극장을 찾아 떼로 몰려들어 엄청나게 돈을 벌 것이다. DC 코믹스의 만화를 워너 브라더스가 떼돈을 들여 만든 올스타 캐스트의 환상이나 다름 없는 액션영화로 너무 나오는 인물들이 많아 머리가 다 어지럽다. 
철저한 혼돈과 무질서의 영화로 때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얘기가 빈약하고 방향감각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다중 충돌사고를 일으킨 교차로에 서있는 느낌이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다소 긴 서막 부분은 그런대로 재치 있고 앞으로의 얘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곧 이어 얘기가 참신성을 잃고 진부한 만화 액션영화로 전락한다. 독창성 대신 얄팍한 재주와 우스갯소리 그리고 막무가내식의 액션에 의존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사람 피곤해진다. 많은 액션이 밤에 일어나는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매우 어둡다. 
미국 정부의 고지식한 고위관리 애만다 월러(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는 정체불명의 막강한 힘을 지닌 적을 타도하기 위해 독방에 수감된 흉악범들을 규합해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백발백중의 저격수 데드샷(윌 스미스)와 야구방망이로 사람 잡는 짙은 화장을 한 심리학자 출신의 할리 퀸(마고 로비) 그리고 손에서 불길이 치솟는 디아블로(제이 허난데즈). 이들 외에 부머랭을 무기로 쓰는 부머랭(제이 코트니)과 아무데나 기어오르는 슬립낫(애담 비치)과 사무라이 칼을 휘두르는 눈가리개를 한 여자 닌자 카타나(카렌 후쿠하라) 및 악어얼굴을 한 돌연변이 킬러 크락 등 특공대는 총 9명. 전자 4명을 뺀 나머지는 장식용이다. 
이들과 국가의 적이 싸우는 것이 내용인데 영화의 또 다른 결점은 이 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저 막연히 사악한 존재라고만 설명이 돼 너무나 인간적인 자살 특공대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사악한 적의 우두머리는 7,000년 묵은 마녀인데 혼이 현재의 과학자인 준 문(카라 델레비비뉴) 속에 들어가 준을 조종한다. 그런데 마녀의 심장은 애만다가 보유하고 있어 애만다는 준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다. 이런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가.
무슨 소리인지 또 왜 그런지는 알 바 없으나 준의 애인은 자살 특공대를 지휘하는 릭 플랙 대령(조엘 킨나맨). 여기다 한 수 더 뜬 재미있는 한 쌍은 할리와 그녀의 애인 조커(재레드 레이토). 할리는 조커를 치료하다가 그의 매력에 사로잡혀 애인이 됐다. 
그나마 영화에서 보기 생기 있고 보고 즐길 만한 것은 금속이빨에 푸른 머리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조커와 거리의 여인 같은 조커의 애인 할리의 관계. 조커는 무미건조한 영화에 충격을 주기 위해 동원된 일종의 게스트 스타다. 어둡게 변칙적이요 파괴적이면서 아울러 유머를 겸한 멋지고 재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조막손으로 다루다시피 해 타작에 그치고 말았다. 뱃맨(벤 애플렉)도 잠깐 나온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