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5일 화요일

‘머니 몬스터’ 감독 조디 포스터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


스릴러 드라마‘머니 몬스터’(Money Monster)를 감독한 조디 포스터(53)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머니 몬스터’는 TV의 재정전문 쇼 호스트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의 제안에 따라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젊은 카일 버드웰이 방송국에 침입, 생방 중인 호스트를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리는 얘기로 쇼의 제작자로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다. 여고생 스타일의 포스터는 똑똑 소리가 날 것처럼 총명했는데 매우 차가운 인상이었으나 질문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작고 가는 참새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는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내 영화 제작에 한국인들이 여러 명 참여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멀리서 보기와 달리 주름살이 많이 졌다. 포스터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두 번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모험이었다. 만드는데 4년이나 걸렸다. 조지(클루니)가 각본을 읽고 나오기로 결정한 뒤로는 만사가 빨리 진행됐다. 이 영화는 여러 개의 얘기를 내포한 지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이다. 실시간에 일어나는 얘기여서 편집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이 영화는 또  내겐 최초의 주류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들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좌절감을 느끼면 대화를 나눠 그것을 해소하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좌절감을 과격하게 푸는 영화는 내가 처음이 나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드니 루멧의 ‘네트웍’이다. 내 영화의 인물들은 다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다 실패했다는 느낌과 기준치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각자가 나름대로 이에 대처하고 있는데 유독 젊은이만이 원시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요즘의 돈과 인간과의 관계가 당신이 젊었을 때와 달라졌다고 보는가.
“이 영화에서 돈은 하나의 아이디어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 돈과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한다. 나는 이만큼 돈이 있으니 가치가 있고 또 나는 이런 차를 가지고 있으니 가치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 내가 우리 집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저 직업을 못 얻게 되면 우리 가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돈은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 A를 맞아야 했고 또 직업에 있어서도 최고가 돼야 했다.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와 같은 목표를 가져야 했다. 돈이란 이렇게 동기가 될 수 있으나 늘 공허한 것이다.”

-요즘에도 돈에 대해 걱정하는가. 
투자에 실패한 카일이 방송국에 난입, 리를 총으로 위협하고 있다.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덜 걱정하게 된다.”

-지난해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가장 강렬한 영향을 받은 영화로 당신이 미성년자 창녀로 나온‘택시 운전사’라고 말했는데 그 영화가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그 영화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와 같은 미국의 고전에 참여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대는 미국 영화계의 황금기였다. 난 그 시기의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당시 활약한 시드니 루멧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이 영화도 루멧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때는 영화 속의 인물들이 보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돈을 가졌다가 잃는 것과 아예 갖지를 못하고 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못한 것이라고 보는가.       
“모르겠다. 난 그에 대해 어떤 큰 철학도 없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소가 아니다. 나는 그 체제를 믿는다. 문제는 그것을 과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박을 할 때 25센트에서 시작해 3달러를 만들었다가 다시 잃고 본전이 됐는데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돈을 외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만이 월스트릿을 비판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난 정치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토론을 보는 것은 진짜 흥미 있다. 그것을 보면 정치와 재정과 연예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내 영화와 같은 얘기다. 난 내 아들이 정치에 관여하려고 해서 염려스럽다. 아들은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번 선거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유발시킨다면 좋은 일이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난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림과 사진을 좋아한다. 내 집이 무너진다면 그것부터 먼저 건질 것이다. 그러나 난 소유욕이 별로 없다. 나이가 먹을수록 더 그렇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쾌적한 집이면 된다.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난 맛있는 음식을 정말로 좋아해 아무리 비싸도 좋아하는 음식은 사 먹는다.”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이며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1960년대부터 영화에 관계했으니 참 오랜 세월이다. 자랑스러운 것은 ‘택시 운전사’처럼 1970년대 영화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감독한 ‘리틀 맨 테이트’다. 불완전하나 내가 100% 느끼는 것을 화면에 올린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별로 후회할 일이 없는데 있다면 내 경력과 흥행만을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다시는 그런 선택을 안 할 것이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남녀 간에 봉급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아직도 차별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계에 여성 감독이 별로 없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유럽과 다른 곳 그리고 TV에서는 진전이 있으나 유독 주류 영화계만이 남성위주다. 그러나 이것도 서서히 변하고 있긴 하다. 남녀 고용에 관한 통계나 배분율을 더 이상 보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예술은 결코 그런 것들에 의해 통제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여자 감독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여자는 감독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난 평생에 딱 한 번 여자 감독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것도 내가 그와 친구이고 그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말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해야 할 때이다.”

-당신은 유럽에서 오래 살았는데 미국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다른 점은 미국에는 귀족체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다 자기를 재창조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가 없으니 케네디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면 이렇게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돈을 번다는 것으로 우리 문화의 전체적 가치는 금전적 가치를 둘러싸고 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중에 당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너무 많다. 내 어머니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묻는 윤리의식이다. 그리고 가족을 버리지 않고 단단히 결합한다는 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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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 영화배우로 성공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는 조디 포스터(53)는 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해 5세 때 TV에 데뷔, 이어 영화의 아역을 거쳐 성인배우로 성공한 자기 세대 중 가장 유명한 스타의 하나다. 
포스터를 대뜸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은 영화는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폭력적인 ‘택시 운전사’(1976). 여기서 포스터는 12세난 맨해턴의 창녀(사진)로 나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를 보고 포스터에게 집념하게 된 존 힝클리가 포스터가 예일대 1학년일 때인 1981년 포스터에게 짙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했다.   
포스터는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탔고 이어 자신의 제작사 에그픽처스를 설립, ‘넬’ 등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2000년 초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영화사가 문을 닫았다. 
포스터는 현재 감독활동에 주력하고 있는데 지난 2013년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생애업적상 세실 B. 드밀상 수상소감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포스터는 2014년 배우이자 사진작가인 알렉산드라 헤디슨과 결혼했고 전 애인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The BFG


BFG와 소피가 꿈을 채취하러 가고 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동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아늑하며 또 다정한 온 가족용 동화로 원작은 롤드 달의 1982년작 동화. ‘E.T.’에서 알 수 있듯이 스필버그는 영원한 동심의 소유자다. 필자는 오래 전에 스필버그에게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당신의 동심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쾌적한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스필버그의 동심에 사로잡혀 영화를 보면서 서슴없이 아이가 되어 즐겼다. 아이 같은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 지를 되새기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다.
실사영화와 컴퓨터로 인물을 확대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함께 있는 작품으로 변덕스럽고 장난기 있으며 또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상냥한 영화로 각본은 지난해에 작고한 멜리사 매티슨(‘E.T.’의 각본도 쓴 매티슨은 해리슨 포드의 전처)이 썼다. 이 영화에서 ‘E.T.’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니콜라스 니클비’를 읽기 좋아하는 런던 고아원의 귀엽고 조숙한 고아소녀 소피(루비 반힐이 아주 잘 한다). 어느 날 꼬부랑 할아버지 같이 생긴 거인(마크 라일런스-올해 ‘스파이들의 다리’로 오스카 조연상)이 나타나 소피를 납치해 가면서 소피의 모험이 시작된다. 소피는 처음에 거인이 자기를 프라이팬에 올려놓았을 때만해도 자신이 거인의 밥이 되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거인은 베지테리언으로 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소피는 거인을 BFG(크고 친절한 거인)라고 부른다.
BFG가 사는 나라는 거인들의 나라로 거인들 중에서 가장 작은 BFG는 자기보다 엄청나게 크고 성질 고약하고 식인을 즐기는 다른 거인들(그 중 하나는 빌 헤이더의 음성)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 BFG의 하는 일은 채로 꿈을 채취해 병 속에 담았다가(총천연색 꿈들이 마구 움직인다) 큰 나팔을 이용해 잠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 넣는 것.         
소피와 BFG는 친구가 돼 함께 꿈을 채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게 사는데 BFG는 배운 것이 없어 말과 단어가 미숙하다. “아이 이즈, 유 이즈“하는가 하면 ‘마제스티’를 마제스터‘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라일런스의 음성과 어조는 마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소피는 다른 거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BFG를 보다 못해 머리를 짜 계획을 마련한다. 여왕(페넬로피 윌튼)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우스운 부분이 BFG가 버킹엄궁에서 여왕을 만나는 장면. BFG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음료수를 마신 여왕을 비롯해 여왕의 부름을 받은 각 군 고위 장성들이 방귀를 뀌는 모습이 배꼽을 빼게 한다. 그리고 여왕의  명령에 나쁜 거인들을 절해고도로 이주시키기 위해 군대가 거인의 나라로 출동한다.
영화가 이토록 정답고 가깝게 느껴지며 또 순진한 이유 중 하나는 라일런스의 음성과 슬프면서도 따스한 눈의 연기 탓이다. 마음을 포근케 해주는 연기다. PG.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순결한 사람들(The Innocents)


마틸드(왼쪽)와 마리아는 임신한 수녀들을 극진히 돌본다.

추운 겨울 외딴 수녀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



거룩하고 엄격하다. 잔인과 야만성과 폭력의 뒤에 베풀어지는 사랑과 자비와 인류애의 영화로 프랑스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하고 출연진이 모두 여성인 여자의 영화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외딴 검소한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로 마음이 몹시 스산하고 한기를 느끼면서 아울러 고뇌와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나 주인공들인 수녀들처럼 고행 끝에 구원과 광명을 경험하게 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외적으로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얘기이나 내면적으로는 엄청나게 폭이 넓고 섬세하고 민감하며 복잡한 작품으로 믿음과 회의에 관한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자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볼 만한 영화다.
1945년 종전 직후의 폴란드. 프랑스 의대생 마틸드(루 드 라지)는 적십자 활동에 자원해 유대인 의사 사무엘(뱅상 마케뉴)의 조수로 이곳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군인들을 치료한다. 마틸드의 부모는 공산주의자로 마틸드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마틸드가 일하는 임시병원에 인근 수녀원의 젊은 수녀 마리아(아가타 부젝)가 찾아온다. 동료 수녀가 만삭이 돼 고통을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이 수녀원에 몇 달 전 소련군이 침입, 수녀들을 겁탈해 현재 여러 명이 임신 중으로 이들은 거의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쉬쉬하는 원장을 설득해 혼자 출산 임산부들을 돕던 마틸드는 여러 명이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자 사무엘의 도움을 청한다.          
종교를 믿지 않는 마틸드와 사무엘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에 회의하고 고뇌하는 수녀들을 구원하는 역설적인 종교영화라고도 하겠는데 영화는 믿음과 생명과 독선적인 종교적 규칙 그리고 수녀원 테두리를 벗어난 개인적 삶에 대해 조용하나 진지하게 천착하고 있다.
많은 수녀들이 개별적으로 특색 있게 성격 묘사가 잘 됐고 특히 반항적이요 독립적이며 인간적인 마리아 역의 부젝의 연기와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마틸드 역의 드 라지의 연기가 훌륭하다. 이와 함께 자연광을 이용해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잘 조화시킨 촬영도 뛰어난 안팎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성인용.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퇴짜 맞은 존 웨인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왕년에 할리웃의 스크린을 군림했던 거구의 존 웨인이 자기가 자라고 활동하고 또 땅에 묻힌 캘리포니아의 주 의회로부터 사후 불명예스런 대접을 받았다. 최근 주 하원이 웨인의 생일인 2016년 5월26일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것이다. 이유는 웨인의 인종적 편견 때문이다.
많은 웨스턴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수 없이 쏴 죽인 웨인은 실제로도 인디언들을 멸시했다. 그는 지난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식민지 개척자들의 원주민에 대한 취급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들만이 땅을 간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비록 영화이긴 하나 인디언들을 파리 잡듯 하던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으로 웨인은 존 포드가 감독한 걸작 웨스턴 ‘수색자’에서는 땅에 묻힌 인디언의 사체에다 대고 총질을 하기도 했다.
웨인은 인디언뿐 아니라 흑인도 하급 인간으로 여겼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결의안이 부결되자 안을 제안한 매튜 하퍼 의원(공화)은 “존 웨인을 기리는 날에 반대하는 것은 파이와 불꽃놀이와 야구와 자유기업 그리고 7월4일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웨인의 아들 이산도 성명을 통해 “나의 아버지는 색깔과 인종과 성적 기호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매우 존경했다”며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기인 44년 전의 발언을 놓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말했다.
생전 ‘듀크’라 불리면서 포드와 함께 만든 ‘역마차’와 기병대 3부작인 ‘아파치 요새’ ‘황색 리번을 한 여자’ ‘리오 그랜드’ 그리고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웨스턴으로 유명한 웨인은 기독교 신자로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이었다.
웨인은 공산당과 진보파 민주당원을 증오했는데 그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에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대형 졸작에는 웨인의 아들 패트릭도 나왔다.  
웨인과 동시대에 활약한 지미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 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웨인은 징집을 연기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동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 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거짓에 가까운 역설이다.
웨인의 이번 사후 불명예사건 만큼이나 아름답지 못했던 그의 생전 꼴불견 사건(?)은 그가 ‘정복자’에 나온 일이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이 영화에서 웨인은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세인의 조롱거리가 되다시피 했었다. 나도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린 기억이 나는데 웨인은 웨스턴에 싫증이 났는지 감독 딕 파웰이 말리는 데도 우겨서 징기스칸으로 나왔다.
아시안 배우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에는 코가 오똑한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존 호이트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이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웨인이 생애 나온 173편의 영화 중 최악의 것이자 1950년대 나온 최고 졸작 중 하나로 공교롭게도 웨인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수색자’가 개봉된 1956년에 나왔다.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는 원폭 실험지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이트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했다) 외에도 촬영현장에서 일했던 220여명의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에 걸려 사망했다. 술꾼에 담배를 하루에 6갑 이상 태웠던 웨인은 1979년 72세로 위암으로 숨졌다.
LA에서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펜트하우스 본부 건물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사진)이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도색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 됐다. 그러나 비록 자기 이름을 딴 기념일 제정에는 퇴짜를 맞았지만 웨인으로서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승객들의 이용이 많은 오렌지카운티 국제공항 이름이 존 웨인 공항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마리아와 토니(왼쪽)가 비상계단에서 사랑의 노래를 주고 받고 있다.

뉴욕 뒷골목 라이벌 갱단의 현대판‘로미오와 줄리엣’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최고 걸작 로맨틱 뮤지컬 드라마로 1961년에 개봉돼 작품, 감독, 음악, 남녀조연 및 의상 등 모두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비평가들의 극찬과 함께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강력한 전율이 흐르는 춤과 노래의 향연과도 같은 영화로 음악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했고 가사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썼다. 영화의 안무는 무대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가 담당했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얘기를 뉴욕의 뒷골목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푸에르토리칸 갱과 백인 갱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어나는 라이벌 갱에 속한 젊은 토니(리처드 베이머)와 마리아(나탈리 우드)의 비극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백인 갱의 이름은 제츠로 리더는 리프(러스 탬블린)인데 리프는 닥스 드럭스토어에서 일하는 친구 토니와 함께 갱을 조직했다. 푸에르토리칸 갱의 이름은 샤크스로 리더는 베르나르도(조지 차키리스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베르나르도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 마리아(나탈리 우드)가 있고 토니의 애인은 성질이 불같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아니타(리타 모레노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제츠와 샤크스는 관할지역 문제를 놓고 다투는데 이런 라이벌의 대결 속에서 토니와 마리아가 서로 첫눈에 반해 깊은 사랑에 빠진다. 두 갱은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격투를 벌이는데 처음에는 주먹싸움으로 시작했던 대결이 칼싸움으로 변하고 베르나르도가 리프를 칼로 찔러 죽이자 이에 분개한 토니가 베르나르도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오빠를 죽인 토니를 용서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데 리프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리프의 친구 치노가 총으로 토니를 사살하면서 토니는 마리아의 품에 안겨 죽는다.    
‘마리아’ ‘아메리카’ ‘투나잇’ ‘아이 필 프리티’ 및 ‘섬웨어’ 등 주옥같은 노래들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춤이 있는 명작으로 우드의 노래는 마니 닉슨이 불렀다. 상영시간 152분. 
이 영화가 오는 29일 하오 7시30분 파인아츠 극장(8556 윌셔. 310-478-3836)에서 상영된다. 영화 상영 후 각기 제츠와 샤크스의 리더로 나온 러스 탬블린과 조지 차키리스가 나와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사회는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장 스티븐 화버. 
한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콘서트 판이 오는 7월14일(하오 8시)과 19일(하오 8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에 의해 할리웃보울에서 공연된다. 마리아는 솔레아 파이퍼, 토니는 제레미 조단, 아니 타는 캐런 올리보, 베르나르도는 조지 아크람 그리고 리프는 매튜 제임스 토미스가 각기 노래 부른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우, 보이저(Now, Voyager·1942)


제리가 샬롯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있다.


고혹적인 흑백촬영... 여성영화의 결정판


여성영화의 결정판 로맨틱 드라마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영화 중 하나다. 나는 이 영화로 주인공 베티 데이비스에게 반해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 어빙 래퍼 감독. 원작은 올리버 히긴스 프루티의 소설로 제목은 월트 위트만의 시 ‘풀잎’ 중에서 ‘이제, 항해자여 구하고 찾기 위해 돛을 올리세’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보스턴 상류층의 샬롯 베일(데이비스)은 폭군적인 어머니(글래디스 쿠퍼)의 통제 밑에 살면서 병적으로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혼기를 놓친 여자. 샬롯은 정신과 의사 자퀴스(클로드 레인즈)의 권유에 따라 남미행 여객선을 타는데 여기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세련된 신사 제리 더랜스(폴 헨리드-‘카사블랑카’의 잉그릿 버그만의 남편 역)를 만나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기쁨에 빠진다.
제리는 병약한 아내와 헤어질 수 없는 처지로 오직 딸 티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켜나간다. 샬롯과 제리는 짧은 항해 중의 로맨스를 남기고 헤어지는데 이 로맨스로 인해 샬롯은 백합처럼 활짝 피어나고 귀가해 어머니에게 자신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샬롯은 자퀴스가 돌보는 과거의 자기처럼 영혼을 잃어버리다시피 한 티나를 만나 소녀를 자기 딸처럼 돌본다.
보스턴에 업무 차 들른 제리와 샬롯은 재회의 기쁨 속에 둘의 사랑을 재확인하나 결합치 못하고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센티멘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오스카상을 탄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과 눈부시게 고혹적인 흑백촬영(솔 폴리토)이 섬세한 연기와 함께 작품의 수준을 단순한 소프오페라에서 수준 높은 로맨스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잊지 못할 모습은 제리와 샬롯의 흡연 장면. 밤의 여객선 갑판 위에서 제리가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 샬롯은 제리가 건네준 담배를 자기 입에 무는데 접순 없는 뜨거운 키스신이다. 샬롯이 제리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가 멋있다. “우리 달을 원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으니까요.” 이어 카메라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오르면서 영화는 끝난다. 28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월칭 마틸다




캥거루와 부머랭 그리고 멜 깁슨의 나라 호주는 겨울인데도 날씨가 온화했다. 주위가 푸르러 심호흡이 나온다. 시드니 공항의 이민국 직원이 “굿다이 마이트”하며 인사를 했다. ‘음, 굿데이 메이트라는 말이구나’하고 속으로 웃었다. 지난주 폭스사의 공상과학 외계 스릴러 ‘에일리언’의 속편 ‘에일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와 선댄스 채널의 미스터리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Top of the Lake: China Girl)의 제2회 시즌 촬영세트 방문차 호주에 다녀왔다.
시드니는 세계 5대 미항 중의 하나라더니 정말 아름답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항 쪽으로 입술을 쑥 내민 것 같은 흰 조개껍질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거의 초자연적으로 아름답고 장엄한데 누군가가 로비 천장의 시멘트 골격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시드니의 또 다른 명물인 시드니 항구 다리에 올라갔다. 오르기 전 알콜 호흡검사와 병력 체크를 하고 안전벨트를 맨 점프수트로 갈아입는 과정이 군 시절의 공수훈련을 생각나게 했다.
등산이라곤 서울 근교의 도봉산에 오른 것이 고작인 나로선 700칼로리를 소비하며 1,300여 계단을 올라 다리 꼭대기에 닿는다는 일이 보통 모험이 아니었다. 하늘이 손에 감촉되는 다리 정상에서 까마득히 아래서 추락을 유혹하는 바다와 눈앞에 탁 트인 항구와 도시의 고운 자태를 보자니 신의 천지창조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다리 꼭대기에 아바의 ‘댄싱 퀸’을 틀어놓고 춤을 추라고 발판까지 마련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내려오니 장하다고 수료증을 준다.
저녁에 요트를 타고 내항을 둘러봤다. 검은 구름 아래 금빛 황혼이 띠를 두른 시드니의 저녁은 마침 빛의 축제가 열려 빛과 색깔의 마술쇼의 무대 같다. 오페라하우스의 벽(사진)과 다리와 도시의 마천루 위로 총천연색 빛들이 해저 미생물들처럼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며 다닌다. 마치 태초의 생명의 잉태가 꿈틀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밤의 오페라하우스를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운 괴물 같다. 돌고래 같기도 하고 입 벌린 상어 같기도 하고 또 영화 ‘작은 공포상점’의 식인 식물 같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중국인들로 바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면서 ‘월칭 마틸다’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는 호주 민요로 배낭을 등에 지고 걸어서 떠돌아다니는 원주민 일꾼의 얘기로 호주의 비공식국가다. 나는 이 노래를 고등학생 때 명동극장에서 본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반핵영화 ‘그날이 오면’에서 듣고 좋아하게 됐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가 나오는 쓸쓸하게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으로 얼마 안 있어 핵진으로 사망할 호주인들이 냇가에서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하면서 노래 부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에일리언: 커버넌트’(내년 8월 개봉)의 거대한 오픈세트는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떨어진 옛 수원지에 있다. 감독 리들리 스캇은 별 연기도 필요 없는 같은 장면을 하루 종일 찍는다. 이러니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오를 수밖에. 스캇과 주연인 마이클 화스벤더를 만났다.
이보다 훨씬 흥미 있었던 것은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 폭스 스튜디오 시사실에서 살인사건을 푸는 여형사 로빈(엘리자베스 모스)이 주인공인 시리즈의 일부 내용을 본 뒤 내용에서 아시안 소녀의 사체가 떠오른 본다이 비치로 갔다.
우리를 동반한 두 여자는 시리즈에서 창녀로 나오는 각기 말레이시아와 라오스 태생의 성전환한 사람들로 이들은 실제로 창녀들이다. 시리즈의 제작팀이 직접 사창가를 방문해 선발했다. 두 사람은 시드니에서 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고백했다.
시내로 돌아와 모스와 함께 시리즈 총제작자요 감독인 제인 캠피언(영화 ‘피아노’로 오스카 각본상)과 시리즈에 조연하는 호주 태생의 니콜 키드만을 인터뷰했다. 저녁에 키드만과 챔피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테이블로 찾아온 키드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키드만은 남편인 컨트리 가수 키스 어반과 내슈빌에 살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내슈빌에서의삶은 어떻고 이제 컨트리의 전문가가 되었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키드만은 “아주 좋아요. 무슨 컨트리든지 다 알아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생긴 것은 차게 생겼는데 사람이 아주 겸손하고 상냥했다.
호주 영화계는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를 맞으며 ‘갈리폴리’ ‘행잉록의 피크닉’ ‘매드 맥스’ ‘데드 캄’ ‘브레이커 모란트’ ‘워커바웃’과 같은 걸작들을 내놓았다. 피터 위어, 조지 밀러, 질리안 암스트롱 및 브루스 베레스포드 등 감독과 베우 멜 깁슨, 니콜 키드만 샘 닐 및 주디 데이비스 등이 이 당시 배출된 영화인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